제이든 스미스의 유명세는 분명 윌 스미스의 아들이란 사실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행복을 찾아서>(2006)를 통해 제이든 스미스는 혈연 관계보다 뛰어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했다. 여전히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말할 수는 없지만 스미스는 분명 아버지의 이름으로 힘입은 아이만은 아니다. <베스트 키드>(2010)는 그 확신의 새로운 근거로서 유효하다. 유명 배우의 아들에서 유망한 아역 배우로,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그렇게 시작됐다.

(beyond 9월호 Vol.48 'TAKE ONE MOVIE')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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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은 경계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은 지구상의 인간들에겐 위협적인 불청객이다. 물론 E.T처럼 선량한 눈빛으로 감동을 선사하고 떠나는 훈훈한 이방인의 사례도 존재하나 그 밖에 지구를 찾아온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무시무시한 행패를 부리며 인류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우주에서 날아와 뉴욕 센트럴파크에 착륙한 정체불명의 스피어, 그리고 그로부터 내려온 외계인 클라투(키아누 리브스) 역시 정체불명의 위협적 존재다. 그를 따라 내린 거대한 로봇은 더더욱 수상하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지구에 시련을 선사하는 또 하나의 외계인을 그린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지구정복을 꿈꾸는 불한당은 아니다. 지구를 찾아온 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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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멈추는 날>은 시대적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50년대 냉전시대의 갈등은 21세기 환경문제로 치환된다. 구작과 신작의 공통분모는 인류다. 인류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 지구를 우리의 것이라 여겼던 인류는 외계인의 전지전능한 능력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지구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인간이 죽으면 지구는 산다. 의미심장한 멘트까지 등장한다. 경이적이고 파괴적인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징벌적인 이미지는 위협적 설득에 가깝다. 분명 현시대에 유용한 문제의식을 야기한다. 문제는 문장이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흥미로운 주제에 비해 문장력이 떨어진다. 50년대보다 발전한 이미지를 과시할 뿐, 반 세기 이전만도 못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려는 환경주의적 메시지가 얄팍하다 못해 오만하다. 영화 속 외계인을 설득하는 사연이 되려 객석을 심드렁하게 만든다. 외계인도 알겠다는 변화의 가능성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 지구가 멈추기 전에 두뇌가 멈추는 기분이다. 이래서야 인간을 변화시키고 지구를 살릴 수 있겠나. 거대한 이미지의 파괴적 협박 뒤에 남는 건 그저 지루한 단상뿐이다.

 

(프리미어 'Movie 4人4色')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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