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5.01.03 진보 혹은 보수라는 신앙
  2. 2012.05.17 여자는 야구의 미래다. 1
  3. 2011.03.13 진보적 꼰대
  4. 2009.03.12 신해철과 진보적 공정성 2
  5. 2009.02.28 진보와 보수 2

진보는 정의롭다는 말은 언제나 부도수표 같고, 보수가 정의롭지 않다는 말은 그저 편안한 도피일 뿐이다. 어느 쪽인가는 늘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맞는 얘기를 하느냐가 관건이지. 나는 진보이기 때문에, 나는 보수이기 때문에라는 행동강령 따위는 개똥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그건 그저 정치가들이 자기 편을 손쉽게 끌어모으기 위해 동원하는 말장난일 뿐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일상에서 진보라고 말하면서도 보수적으로 군다.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자신만 모를 뿐이다. 그저 '진보' 혹은 '보수'라는 신앙을 통해서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그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정의는 대부분 지고, 아주 가끔씩 이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그 확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중요한 건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오른손도, 왼손도, 두뇌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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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Favorite, Baseball

그녀는 야구가 어렵다고 말했다. 어려워서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 그녀가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거짓말처럼 그랬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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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꼰대

도화지 2011. 3. 13. 16:56

혹자가 이명박 욕을 했다. 나는 듣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치가 종종 이명박 같은 짓을 해대는 것을 떠올렸다. 가끔 정치적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이 실생활에서 스스로 부조리하고, 권위적 억압을 불사하는 꼴을 보다 보면 구역질이 난다. 정치적인 진보가 일상에서 꼴보수처럼 구는 꼴을,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어쩔 수 없다란 식의 합리를 만들어나가며 본인의 일상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노릇이다. 사적인 대화 중에는 자신의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분신이라도 해낼 것 같은 진보적 투사가 공적인 일상 속에서 둘도 없는 꼴보수가 될 때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주둥이와 뇌의 지역자치제 정책이라도 펴고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이런 진보적 꼰대들의 행위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쥐어주는, 경종을 울리는 이미지로 각인되곤 한다. 그 삶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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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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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놀랍긴 했다. 그 위풍당당한 포즈 앞에 놓인 문구들이 뜨악했다. 하지만 사채 광고도 아니고, 그걸 도덕적 해악으로 이해하고 싶진 않다. 공정택 밀어준 어머니들의 심정도 그럼 비도덕적인 거냐. 논란의 핵심은 신해철의 언행일치 여부다. 그는 해명했다. 공격적인 욕설 퍼포먼스까지 선보였다. 이에 댓글 다는 언어가 넘쳤다. 비아냥부터 실망과 오해의 성토, 그리고 그의 논리를 이해한다는 동조도 때론 발견됐다. 사교육을 옹호함으로써 공교육을 조롱한다는 그의 태도는 맥락적 논리가 있다. 하지만 그리 멋진 것도 현명한 것도 아니다. 그의 취향이려니 존중할 뿐이다. 다만 그의 광고가 부른 파장이 전 사회적이라는 것에 있다. 신해철이라는 일개 가수의 영향력이 이리도 대단함을 새삼 느꼈다. 신해철과 무관하게 흥미로운 건 진보에 대한 잣대다. 진보가 정의와 동일하다는 개념이 신해철을 둘러싼 비판적 언어의 기저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다크나이트>의 배트맨과 조커를 살펴보자. 누가 보수이고, 누가 진보인가. 아이러니하지만 진보는 배트맨보다 조커에 어울린다. 조커는 모든 사회적 제도를 조롱하고 때려부순다. 배트맨은 보수주의자다. 단지 정의와 안정을 꿈꾸는 보수주의 자경단일 뿐이다. 이렇듯 진보가 항상 정의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신해철과 관련된 언어가 위험한 건 그를 정의의 사도로 여기는 이들의 실망감 때문이다. 이 땅에서 왜곡된 진보와 보수의 정의를 다시 정립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신해철이 잘했냐고? 판단은 셀프.

 

(프리미어 'FRANKLY SPE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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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

도화지 2009. 2. 28. 06:12

만약 누군가가 내가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편에 속하는지 가늠해본다면 아마 보수보단 진보에 가깝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게 옳다고 믿고, 조중동보단 한겨레, 경향, 시사인을 좋아하며 사회적 변화를 설득하려는 편이므로. 분명 보수보단 진보의 프레임으로 날 해석하는 게 어울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진보의 프레임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서로의 취향이 다르듯 진보와 보수를 이해하는 스타일도 다를 것 같다. , 여기서 한가지 물음. 당신이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진보란 공정하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이어야 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연병장에서 PT체조 8번을 150회 정도 반복시킨 다음 한번 다시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보수는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어도 된다는 거? 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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