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단평

cinemania 2012. 2. 23. 00:10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파산을 방조하는 사회의 방치 속에서 파멸하고 유령이 되어버린 어느 개인이 위장을 통해서 삶을 갱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끝내 괴물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하게 되는 미스터리 추리물이다. 이는 단지 일본 내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신용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문제이기도 한데,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이에 대한 서술을 간결하게 다듬고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장르적 밀도를 높이는데 각색을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캐릭터 설정과 관계에 작은 변주를 가하지만 전반적으로 원작도 살고, 영화도 사는 인상이다. 자욱한 미스터리의 지배력이 느껴지는 가운데, 결말부에 다다라 보다 강도 높은 서스펜스의 정곡을 찔러 넣고 끝내 페이소스의 잔해를 드러낸다. 과감한 각색과 심도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끔찍하고, 처참하며, 처연하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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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은 전작에서 얻어낸 가능성을 보다 확실하게 구체화하는데 성공한 인상이다. 셜록 홈즈의 숙적으로 알려진 모리아티 교수가 등장하는 이번 속편은 전편에 비해서 그럴 듯한 긴장감이 조성된다. 가이 리치가 벌려 놓은 영화 속 세계관의 스케일에 비해서 홈즈가 상대하는 악의 위압감이 부족해 보였던 전작에 비하면 이번 작품에서 홈즈가 대적하는 모리아티는 보다 확장된 음모론적 세계관을 메우고도 남을 존재감을 드러낸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와 주드 로의 왓슨 듀오가 발생시키는 버디무비의 위트는 여전히 활력적이고, 가이 리치 특유의 스타일리시로 치장된 액션 시퀀스는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해낸다. 이성적인 추리물의 세계관을 감각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로 변주한 이 시리즈는 보다 공고해진 세계관을 마련한 이번 속편을 통해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로서의 진정한 출발 동력을 얻어냈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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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스런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사건에 연루된 소년과 소녀. 용의자의 자살로 수사는 종결되고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18년 후,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사사가키가 성인으로 성장한 소년과 소녀, 료지와 유키호의 행방을 쫓는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야행(白夜行)은 밀폐된 인물의 심리와 퍼즐 같은 서사적 진행을 통해 추리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한 장르적 구조 속에 내재된 멜로적 감수성은 백야행의 특이점이라 할만한 지점이다. 은밀하게 감지되는 두 남녀의 감정적 교류가 평행적 거리감을 유지한 채 조각처럼 나열된다. 칠흑의 아스팔트를 얇게 가린 흰 눈처럼 멜로적 감수성을 가린 장르적 연막, 백야행은 추리극의 베일로 감싼 멜로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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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탐정 김전일>에서 모티브라도 얻었는지 몰라도 학원 추리물을 표방한 <4교시 추리영역>이 적어도 추리라는 장르적 밸류에 어울릴만한 기본급 수준이라도 갖췄다면 좋았겠지만 영화는 좀처럼 염치없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중고등학생 주머니 좀 털어보겠다는 심산으로 만든 영화 같은데 요즘 애들 수준을 무시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결과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라도 즐기겠다는 확고한 본전 의식이라도 없다면 안구에 쓰나미가 밀려오는 걸 막을 재간이 없을 게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최악의 수사를 동원하게 될 테니 여기서 그만. 다만 유승호 소속사는 이걸 알아야 한다. 일찍부터 스타덤에 오른 어린 배우로 장사를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주연작이란 타이틀에 혹해서 시나리오 꼴도 확인하지 않고 설익은 배우를 막 굴리다간 결국 낭패를 보게 될 거다. 예언하자면 <4교시 추리영역>은 분명 올해 최악의 개봉작 후보 0순위를 차지할 거다. 유승호에게 벌써부터 안습의 이력이 하나 지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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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전례가 있음에도 서양의 신문물과 과거 조선의 관습들이 공존하는 20세기 초 일제치하 경성이 호기롭게 묘사된다. 변화와 정체가 혼재된 과도기의 이미지는 시대에 대한 윤리적 평가를 희석시키며 장르적 발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그릇임에 틀림없다. 탐정추리극이라는 타이틀을 자신만만하게 내건 <그림자 살인>은 살인의 배후를 쫓는 전형적인 후더닛 구조의 미스터리로 시작된다. 인과관계의 나열로 놓고 보자면 플롯의 개연성은 인정할만하다. 다만 내러티브의 구조가 미숙하다. 추격전과 액션 시퀀스까지 동원하며 너비를 벌리지만 수집된 양식을 펼쳐 보이기 급급할 뿐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지 못한다. 동시에 적당한 수위의 장막이 걷히면 정답을 유출시키는 이야기는 영민한 편이 아니다.

 

이야기보다도 캐릭터가 눈에 띈다. 그러나 캐릭터들도 장르적 매력에 기인하는 건 아니다. 배우들의 표현력은 나쁘지 않다. 캐릭터 설정의 문제다. 애초에 핀트가 잘못 맞춰져 있다. 사건에 개입되는 당위부터 확실치 않은 캐릭터들은 역할에 대한 설득력을 명확하게 차려 입지 못한다. 추리물을 표방했지만 야심은 다른 쪽에 걸쳐 있다. 시대적 착취에 대한 응징을 마다하지 않으며 직업 윤리와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마저 도발하는 후반부는 전반부와 분위기가 판이하다. 말미에 다다라서 반복되는 클라이맥스는 도돌이표처럼 권태롭기도 하다. 어쩌면 동일한 얼굴로 분열된 양면성의 이미지야말로 <그림자 살인>이 노출하고자 하는 핵심적 이미지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르와 역사 의식이라는 이중주 사이에서 애매한 표정을 짓는 <그림자 살인>은 시대에 대한 딜레마를 뛰어넘지 못한 장르물처럼 보인다. 혹은 뛰어넘을 마음이 없었거나.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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