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웨텔 에지오포'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02.26 <노예 12년> 단평
  2. 2010.07.28 <솔트>낡은 수싸움, 빤한 몸싸움
  3. 2010.07.22 <솔트> 단평
  4. 2009.11.10 <2012>재난이라는 이름의 종합전시관
  5. 2009.11.05 <2012> 단평

<노예 12년> 단평

cinemania 2014. 2. 26. 02:12

1. 뒤늦은 <노예 12년> 관람기. 스티브 맥퀸의 영화답게 적절하게 가학적인 영화다. 하지만 남북 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에서의 흑인 노예를 소재로 둔 영화라는 점에선 생각보단 물리적인 가학성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나치게 감정을 싣지 않고 적절하게 고통을 묘사한다. 물론 적절하다고 말하기엔 물리적으론 끔찍하지만 그 시대적인 예상 안에서 정확히 머무르는 인상이랄까. 인물이 짊어진 고통을 영화가 끌어올려 대변하는 느낌이 전혀 없다. 어떤 면에선 역시 지독한 중립성이 느껴진다. 너무나도 사실적인, 한 치의 과부족이 없는 시대의 공기를 포착해낸다.

2. 육체적인 끔찍함을 넘어서 전체적인 풍경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참담함을 느끼게 해줄만한 신들이 더러 있는데 특히 중반부에서 신... 한복판에 절대절명의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모습을 제시한 뒤 점차 주변부의 풍경을 스케이프로 확 펼쳐놓는 광경은 마치 <만종>과 같은 평온함 사이에 갇힌 개인의 지옥을 너무나 사실적인 화풍에 담아 그리듯 전하는 인상이라 입을 벌리고 본 것 같다. 공감이나 이해라는 단어를 동원할 수 없는 그 시대적인 절망감이 한순간에 밀려오는데 이건 내가 어떤 식으로든 이렇다, 저렇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라는 압도적인 살풍경이었다. 단언컨대 손에 꼽힐만한 명장면이었다. <헝거>와 <셰임>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스티브 맥퀸이 놀라울 만큼 명확한 시선을 지닌 동시에 광각의 시야를 조망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노예 12년>을 압축하는 하나의 신이라고 생각한다.

3. 치웨텔 에지오포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도 손색이 없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정말 끔찍했다. 영화가 끌어 안아야 할 서스펜스를 잘 해결해준다는 면에서 <노예 12년>의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띌 때마다 조마조마했던 폴 다노도 물론. 개인적으론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캐릭터가 기능적으로 중요했다고 본다. 그 시대적인 관성 안에서 '착한' 주인을 묘사함으로서 시대적인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은 캐릭터랄까. 결말부 즈음에 짤막하게 등장해서 일장연설을 하는 브래드 피트는 왠지 제작자 찬스를 쓴 느낌.

4. 이 정도면 회자될만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걸작으로서의 울림과 무관하게 관객에게 호감을 남길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 여부를 짐작하는 게 아니다. 흑인 감독이 그린 흑인 노예에 관한 영화가 이리도 냉정한 거리감을 둘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노예 12년>은 감정적인 이입을 거부한 채 명확하게 그 시대성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그 환기가 관객 입장에선 시리거나 쓰리거나 무거울 거다. 그래서 관람을 권하고 싶다. 통증을 공감하는 것 이상으로 통증 그 자체를 목도하는 것도 때론 중요하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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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X는 고도로 훈련된 러시아 스파이들이 위장된 신분으로 미국 본토에 잠입해서 살아가다 일거에 미국 핵심부 공격을 개시한다는 냉전시절의 가설이다. 이 가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여하간 <솔트>는 이 가설을 뼈대로 삼아 허구의 살점을 붙여나간 첩보 액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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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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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 단평

cinemania 2010. 7. 22. 09:45

냉전시절 미국에 침투해 잠복해 있던 러시아 스파이들이 일거에 미국 공격을 개시한다는 ‘데이-X’라는 냉전시절 가설에 대한 신빙성을 묻기 전에 이 낡은 가설이 여전히 이야깃거리로서 유효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출처가 궁금해진다. <솔트>는 여성 스파이를 앞세워 <>시리즈를 벤치마킹한 작품이나 야심의 그릇만 그럴싸한 아류작에 불과하다. 와이파이 시대에 모뎀 켜는 소리마냥, 설정 자체가 진부한 이 스파이물은 이를 극복할만한 대안으로 안젤리나 졸리라는 여배우의 매력 자체를 내세워 끊임없이 액션의 보폭만 넓혀 나간다. 어쩌면 단지 우격다짐처럼 액션을 밀어넣을 수 있는 공간 확보가 본래 목적이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 눈요기 역시 그 모든 단점을 덮을 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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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갈라지다 이내 꺼진다. 달아날 곳조차 없을 정도로 지반 전체가 요동을 친다. 캘리포니아주 전체가 마치 기울어진 접시 위의 팬케이크처럼 바다 속으로 잠겨버린다. 화산도 폭발하고, 쓰나미까지 밀려온다. 지구상의 대륙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사람이 발붙이고 설 땅이 없어진다. 말 그대로 전지구적 재앙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2012>는 재난이란 이름으로 명명되는 이미지들의 합집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재앙 블록버스터의 총아다. 재난이라면 보여줄 만큼 보여준 할리우드가 아예 끝장을 보자는 심산으로 영화를 제작한 것마냥 보일 정도로 막대한 규모를 전시하는, 진정한 블록버스터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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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단평

cinemania 2009. 11. 5. 01:52

땅이 꺼진다. 화산이 폭발한다. 쓰나미가 밀려온다. 지구 전체가 요동을 친다. 사람이 발붙일 곳은 없다. <2012>는 해볼 만큼 해보다 못해 끝장을 보는 재앙 블록버스터다. 아마 지구에서 재앙이라고 할만한 이미지들은 죄다 나올 거다. 그것도 전세계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시원하고 화끈하게 파괴적 장관들을 그려낸다. 마치 큰 스크린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 훈수 두는 것마냥 그렇다. <2012>가 그려내는 무지막지한 이미지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엄청난 볼거리다. 그럼에도 그것이 심심함을 느끼게 만드는 이유는 <2012>가 규모 외에 내세울 것이 없다는 상대적 초라함 덕분이다. 사실상 <2012>에서 드라마란 거대한 이미지를 이어나가기 위한 교각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교각이 부실해 다음 이미지로 건너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점이다. 재앙의 주변부에 놓인 캐릭터들은 생존적 리얼리티보다도 휴머니즘을 구현하겠다는 연기적 일념으로 충만하듯 인위적 상황 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그 파괴적인 장관들은 볼거리 이상의 긴장감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보게 만들 뿐,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 서스펜스에 대한 연출적 감각이 부재하다. 물론 인류의 멸망적 위기를 관람한다는 건 묘하게 침통한 감상을 부른다. 그건 <2012>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를 묘사하는 이미지의 우월함 덕분이다. 말 그대로 <2012>CG팀의 공헌도가 팔 할인 영화다. 딱히 롤랜드 에머리히를 칭찬할 구석은 많지 않다. 마치 부모 잘 만난 자식의 사치를 보는 것 같다. 돈 있는 할리우드나 되니까 이 정도로 무모한 짓도 가능하단 말이다. 그만큼 그 막대한 자본을 좀 더 현명한 곳에 쓸 수 없었을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딱히 2시간 40여분에 육박해야 할 만큼 필연성이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는 명백한 필름 낭비다. 다 떠나서 (어차피 볼 당신이) 큰 화면에서 봐야 한다는 건 진리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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