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주목을 얻어야 할 배우들에게 타고난 미모란 선천적인 재능과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압박을 느끼게 만든다. 맥아담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고전적인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는 <노트북>(2004)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맥아담스가 웨스 크레이븐의 스릴러 <나이트 플라이트>(2005)를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시도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시도하길 원한다.” 그녀는 단지 할리우드의 퀸카로 살아남길 원치 않았다. 물론 여전히 그녀는 충분한 연기적 시도도, 그리고 이를 보좌할 확실한 기회도 만족스럽게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앞으로 나를 떠미는 인생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녀의 타고난 미모가 배우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 선천적 재능이라면 그녀가 품은 호기심은 배우로서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 후천적 재능이다. 할리우드의 퀸카를 넘어서 더 나은 배우로서의 삶을 이룰, 진짜 재능은 이미 그녀에게 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맘마미아!’를 외칠 만큼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이프리드는 ‘깜짝 스타’가 아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이프리드의 현재는 스스로를 갈고 닦은 노력의 보답이다.
1985년 생인 사이프리드는 1995년, 9살의 나이에 연기에 입문했다. 자신이 거주하던 펜실베니아주 앨렌타운에 있는 시빅 극장에서 연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1살 때 즈음, 몇몇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역 모델로서 활동을 해나갔다. 그리고 17살까지, 모델로 활동하면서 5년에 걸쳐 꾸준하게 브로드웨이 보이스 트레이닝에게 발성 훈련을 받았다. 이는 훗날 사이프리드가 “어린 나이에 배우로서의 삶을 꿈꾸긴 했지만, 그 꿈이 실현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사이프리드는 일찍이 다양한 TV시리즈를 통해서 경력을 수집해 나갔다. 아역 시절 크레디트에 오르지 못했던 작품을 제외하면 그녀에게 공식적인 경력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2000년부터 2001년까지 고정 출연했던 TV쇼 <As the world turns>였다. 2002년부터 2003년 사이에는 ABC의 <All my children>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사이프리드의 스크린 데뷔작은 그 다음 해 선보인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다. 이 작품에선 ‘플라스틱’이라 불리는 백치스러운 소녀 카렌을 연기한다. 애초에 사이프리드는 카렌의 퀸카 친구 역할로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사이프리드를 눈 여겨본 프로듀서는 그녀에게 카렌 역을 제안했다. 데뷔작은 흥행했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후 그녀에게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은 바로 <나인 라이브즈>(2005)였다.
<나인 라이브즈>를 연출한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다. <나인 라이브즈>는 서로 다른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다. 아홉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로빈 라이트 펜, 글렌 클로즈, 홀리 헌터와 같은 ‘진짜’ 여배우들의 리스트만으로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사이프리드에게 시시 스페이섹(<케리>의 여주인공)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처음엔 겁을 먹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환상적이었다. 그녀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기쁘다.” 사실 <나인 라이브즈>에서 사이프리드는 단 일곱 테이크만에 촬영을 끝냈지만 분명 그녀에겐 남다른 작품이다. 로드리고는 사이프리드를 생각하며 사만다를 구상했고, 로드리고의 제안은 그녀에게 선물과도 같은 영광이었다. 로드리고는 이미 사이프리드의 재능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 앞서 2004년, 사이프리드는 UPN의 TV시리즈 <베로니카 마스>의 타이틀롤 캐릭터 오디션에 참가한다. 하지만 역할은 크리스틴 벨의 차지였다. 사이프리드는 베로니카의 ‘절친’으로 기억되는 릴리 케인을 연기한다. 일찍이 살해당한 릴리는 베로니카의 기억을 통한 플래시백 시퀀스에서만 등장했지만 첫 시즌에서 미스터리의 핵심적인 단서나 다름없는 역할이었기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베로니카 마스>에 출연하는 사이, 사이프리드는 <하우스 M.D>나 <로 앤 오더: 성범죄 전담반> <CSI 라스베가스> 등과 같은 TV시리즈에서 게스트로 등장해 얼굴을 알렸다.
2006년은 사이프리드에게 특별한 해였다. 그 해 사이프리드는 HBO가 새롭게 기획한 TV시리즈 <빅 러브>에 출연하기로 결정한다. 일부다처제를 신봉하는 몰몬교 집안의 가풍에 저항하는 장녀 사라 역할을 맡은 사이프리드의 연기는 2006년 3월 12일 첫 방송 이후로 3시즌에 걸쳐 2009년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2009년 12월, 사이프리드는 HBO와 새롭게 거듭될 시즌에서의 출연 의사를 약속했지만 계획은 2011년까지 미뤄졌다. 당시 그녀는 <맘마미아!>(2008)의 성공 이후, 수많은 영화 제작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태였고 스케줄의 조율이 쉽지 않았다. 지난 해 사이프리드는 <300>(2006)과 <왓치맨>(2009)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의 신작 <서커 펀치>(2011)의 히로인 역할을 맡기로 결정했지만 결국 스케줄 문제로 하차해야 했다.
대작 뮤지컬 <맘마미아!>의 영화화 관건은 두 가지였다. 무대 위의 정교한 세트를 대신할 진짜 장관과 ‘아바’의 명곡과 안무를 온 몸으로 소화할 배우들. 무엇보다도 <맘마미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녀, 도나와 소피를 책임질 배우로 누가 지목될 것인가는 희대의 관심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도나 역의 메릴 스트립이 기대를 부추기는 ‘느낌표’였다면 소피 역의 사이프리드는 의심을 낳는 ‘물음표’였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I Have a Dream’을 완벽하게 소화한 사이프리드를 본 제작진은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스포라데스 제도를 병풍 삼아 펼쳐진 배우들의 가무는 전 세계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오래 전부터 갈고 닦은 목소리로 아바의 명곡을 재현한 사이프리드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은 셈이다.
<맘마미아!> 이후 최근 2년 사이, 사이프리드는 무려 네 편의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근작 <디어 존>(2010)을 비롯해, 지난 해에는 세 편의 작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내가 한 순간에 등장했다고 말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모든 작품이 동시에 공개됐기 때문일 뿐이다.” 이 모든 작업은 2~3개월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됐지만 대중에겐 순서를 다투듯 등장했다. 현재 사이프리드가 얼마나 ‘핫’한 배우인가를 증명하는 사례다.
아톰 에고이안의 <클로이>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그녀는 매혹적인 페로몬을 발산한다. 순수하고 발랄한 소녀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던진다. 심지어 옷조차 벗어버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숨막히는 뒤태를 드러낸 그녀는 단호하게 결심했다. “단지 옷을 벗는 건 어렵지 않지만 베드 신만큼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녀는 그 도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클로이>가 리암 니슨과 줄리안 무어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출연시킨 영화임에도 온전히 사이프리드를 위한 영화처럼 보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클로이>는 사이프리드를 감싸고 있던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걷어내고 그녀에게 잠재된 성숙한 매력을 과감하게 끌어냈다.
사이프리드는 <디어 존>에서 직접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자신이 작사한 노래로 또 한번 가창력을 뽐낸다. 사실 그 연주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사실 그 연주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는 내가 무언가를 연주하길 원했고, 나는 그저 내가 아는 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가사가 평소보다 더 잘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곡을 스튜디오 녹음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부른 ‘Little House’는 사실 아일랜드의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의 미완성곡이다. “나는 실제 데미안 라이스가 사는 곳에서 지난 가을과 이번 4월에 함께 작업했다. 우리는 <디어 존>을 위한 노래를 결코 끝내지 못했지만 나는 데미안 라이스와의 작업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차기작 <레터 투 줄리엣>(2010)의 개봉을 기다리는 사이프리드는 현재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원작을 영화화 하는 <A Woman of No Importance>(2011)와 글렌 클로즈와 올랜도 블룸이 출연한 브로드웨이 연극 <The Singular Life of Albert Nobbs>를 영화화 한 로드리고의 신작 <Albert Nobbs>(2011)를 비롯해 이미 세 작품의 출연을 결정지었다. 내년부터 시작될 <빅 러브>의 새로운 시즌에도 출연을 재개한다. “지난 해에 내가 볼 수 있었던 대본의 대부분은 나쁜 것이었지만 그 중에 몇몇 괜찮은 것이 있었다면 올해에는 정말 훌륭한 몇몇 대본들 사이에 수많은 나쁜 대본들이 들어왔었다. 만약 당신이 정말 훌륭한 대본을 받았거나 그런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제법 괜찮은 위치에 서 있는 셈이다.” 스스로의 말처럼, 그녀는 지금 제법 좋은 위치에 서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의 가능성을 만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