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지배하는 세계에 불시착한 사람들. 그 세계에서의 탈출을 고대하며 행동에 옮기던 그들은 자신이 발 디딘 땅의 정체를 알아버린 뒤, 자신의 안식을 위해줄 영토가 없음을 절실하게 체감한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블의 원작을 영화화한 <혹성탈출>의 충격적인 결말은 인간사와 지구사를 동일시해온 인류에게 있어서 경종을 울릴만한 사건이었다. 1968, <혹성탈출>이 첫 작품의 상영 이후로 여섯 편에 달하는 시리즈로 진전된 것도 그런 반향이 만들어낸 추진력 덕분이었다. 물론 이 시리즈가 시초가 된 첫 작품 이후로 팀 버튼의 리메이크작을 포함한 어떤 것도 그 이상의 흥미를 자아낸 것은 아니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진화의 시작>)에 대한 흥미와 의심의 눈길이 모이는 것도 그런 전례에서 기인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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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아톤의 화면 너머로 소년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거구의 경찰 앞에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던 소년은 심문 당하는 중이다. 거칠게 날아오는 손바닥이 얼굴을 강타하는 동시에 질문이 날아온다. 이름? 곧바로 교차된 화면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돈 다발이 떨어지는 욕조의 풍경이 낯설게 삽입된 후, 선명한 조명 아래 제 자리를 잡은 컬러톤의 화면 너머로 퀴즈쇼 사회자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소년의 표정은 역시나 상기돼 있다. 그 전에 질문 하나. 자말 말리끄(데브 파텔) 2천만 루피(20 million rupees) 상금을 얻기 위해선 (퀴즈쇼에서) 단 한 문제만 통과하면 된다. 그는 어떻게 (그 문제들을 통과)했을까? 4지 선다형의 질문. 그리고 상황은 다시 반복적으로 교차된다. 경찰의 구타와 퀴즈쇼의 긴장이 연속적으로 자리를 바꾼다. 동일한 질문이 서로 다른 상황을 관통하다 하나의 맥락을 이룬다. 그 와중에 어떤 상념이 다시 끼어든다. 미소 짓는 여인의 얼굴이 점멸하듯 나타나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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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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