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과 함께 필름 뉴요커로 자리해온 마틴 스콜세지는 전세계 영화의 수호자다. 일흔에 다다른 나이에도 녹슬지 않는 열의와 애정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발굴한다. 언젠가 영화가 될 그 삶에 대하여.
“내 모든 삶은 영화와 종교에 머물러 있다. 어쩌겠나. 그뿐인걸.” 마틴 스콜세지의 유년시절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뉴욕 맨하튼 동부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스콜세지는 가톨릭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밀집한 그곳에서 언제나 죽음과 맞닿은 폭력을 목격하거나 내몰리며 자라났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란 스콜세지에게 일종의 동아줄이었다. 영화란 그 ‘비열한 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꿈이었고, 그는 그 꿈을 향해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할리우드의 6~70년대는 영화광들의 시대를 맞이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같은 흥행사들을 비롯해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 등 작가주의적인 성향의 감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영화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영화학과 출신 세대들, 즉 아카데믹한 씨네필들이자 테크니션이었다.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스콜세지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단편을 감독하며 연출자로서의 경력에 시동을 걸던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 가문 출신의 고백적인 작품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스콜세지의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8)는 여성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카톨릭계 이탈리아 이민자 청년의 잠재적 폭력과 이중적인 심리를 다룬 문제적 수작이다. 스콜세지에게는 시대적인 공기를 파악하고 현상의 근원을 살피는 능력이 있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강압적인 불평등 처우로 가난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무법자가 되어 벌이는 사건을 그린 <공황시대>(1972)를 비롯해서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좋은 친구들>(1990) <카지노>(1995) 그리고 <갱스 오브 뉴욕>(2002)까지, 뉴욕의 이민자 출신 갱단들과 남루한 뒷골목 소시민들을 비춘 스콜세지의 카메라는 가난과 차별이라는 담보로 상환한 비극적 폭력성을 담아냈다. 무엇보다도 스콜세지는 그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나가기 위해서 폭력 그 자체를 유전자에 새긴 듯 살아가는 비열한 갱단들의 이미지를 강렬하고 사실적으로 포착한다. 그 특별한 방식의 삶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해나가는 이 세계의 일부로서 편입시킨다.
스콜세지는 이주민들로 채워진 뉴욕에 깃든 폭력의 역사를 탐구해낸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뉴욕이라는 도시의 이면들을 발췌해온 진정한 필름 뉴요커다. 1920년대 뉴욕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그린 은밀한 삼각관계에 관한 <순수의 시대>(1993)는 시대극이란 점에서 이례적이나 유럽과 같은 뉴욕 사교계 문화의 풍경을 들춘다는 점에서 그답다. 무엇보다도 뉴욕 상류층의 향락을 살핀 이 작품은 미국의 근간을 이룬 그들 역시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의 이주민이란 사실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주요하다. 또한 스콜세지의 이례적인 작품 <특근>(1985)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불분명한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밀어붙인다.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끌려서 한밤중에 집을 나선 한 남자가 처음 마주한 뉴욕의 이방인 같은 여성들과 거듭 만나며 미궁과 같은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좀처럼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만큼 혼란한 도시의 현실 그 자체를 패닉에 가까운 과장된 스토리텔링으로 녹여낸다.
<쿤둔>(1997)과 <비상근무>(1999)로 쇠퇴의 기미를 지적 받던 스콜세지는 다시 한번 폭력의 역사로 들어선다. 혹독한 뉴욕 이민자들의 역사를 그린 <갱스 오브 뉴욕>은 괴물의 탄생을 그린 영화다.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안착한 갱단들의 비열한 정서를 그린 스콜세지의 초기작과 달리 폭력 속에서 생존을 터득하고자 본능적으로 체득해 나가는 폭력성, 즉 폭력의 계승을 그린다. 미국의 미스터리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전기물 <애비에이터>(2004)는 뉴욕의 이주민들이 꿈꾸던 환상, 아메리칸 드림에 근접한 어느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진취적인 도전을 거듭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뛰어난 수완을 거둔 남자는 끝내 스스로의 욕망으로 자신마저 불사른다.
스콜세지에게 비로소 생애 첫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긴 <디파티드>(2006)는 홍콩의 <무간도>(2002)를 보스턴의 풍경으로 변환한 그의 탁월한 접근 방식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비정한 정서가 짙게 드리운 <무간도>와 달리 비열한 거리의 물리적 폭력이 체감되는 <디파티드>는 명분을 중시하던 <무간도>의 인물들과 달리 사적인 지배욕으로 팽배한 사내들의 생존 전장으로 변환된다. 무간지옥의 윤회 대신 비열한 거리 위에서의 구원을 행하는 사내들의 정조는 태평양을 건넌 리메이크작의 진수를 드러낸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영화화한 <셔터 아일랜드>(2010)는 <케이프 피어>(1991) 이후 처음 연출한 장르물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마치 생존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스콜세지의 괴물들이 끝내 분열증과 망상증으로 내몰려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되묻는 과정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인물의 태도는 폭력을 관찰해온 스콜세지가 보다 적극적인 답변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보다 새롭다.
스콜세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녹을 닦아온 거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첫 가족영화이자 3D로 촬영된 작품인 <휴고>(2011)는 분명 의외의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휴고>는 가족을 위한 영화도, 3D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한 영화도 아니다. 뤼미에르가 촬영한 달리는 기차 이후로 움직이는 그림으로서 관람의 대상이 된 영화에 스토리텔링이라는 영혼을 불어넣은 영화의 진정한 창시자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내용이 담긴 원작은 스콜세지의 마음을 당길만한 것이었다. 특히 뤼미에르의 달리는 기차 영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무성영화의 레퍼런스들을 3D로 체험한다는 건 진귀한 체험에 가깝다. <휴고>는 움직이는 그림이 영화라는 예술이 되기까지, 무성영화가 오늘날의 디지털 3D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역사를 스크린에 집약시킨다. 영화 그 자체를 오마주한다.
스콜세지는 말한다. “영화는 역사다. 영화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문화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 그리고 각자 서로와 자기 자신을 향한 연결고리를 잃게 된다.” 70세에 이른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는 스콜세지는 전세계 필름의 발굴과 복원 사업에 힘쓰며 끊어진 필름의 역사를 이어나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 그 자체를 스크린에 투영하며 대중을 영화라는 마술로 인도하고자 한다. 결코 녹슬지 않는 감각과 애정으로, 영화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영화와 함께 하는 그 삶이 언젠가 영화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전주는 다채로운 식감을 자극하는 먹거리들이 가득한 맛의 고장이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각종 식재료들이 어우러진 전주비빔밥을 닮았다. ‘자유, 독립, 소통’이라는 전통적인 슬로건 아래 디지털 영화나 독립영화를 아우르는 전세계의 비주류 영화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스페인의 신예 감독 알베르트 세라의 특별전을 기획한 이번 영화제는 4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전세계 영화의 진미를 한 자리에 차렸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영화화된다고 하자 사람들은 문제적인 캐릭터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누가 맡을 것인가에 주목했다. 루니 마라는 의외의 카드였다. <소셜 네트워크>(2010)에서 마크 주커버그가 연모하던 여인의 단정한 인상을 기억해낸 이들은 덕분에 더욱 의심했다. 스웨덴에서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닐스 아르덴 오플레르 또한 이에 질색했다. 하지만 모두의 기우를 발로 차버리듯, 그녀가 해냈다. 가시처럼 세운 머리, 스키니한 가죽 의상 곳곳을 메운 메탈 재질의 장식과 체인 벨트, 얼굴 곳곳에서 발견되는 피어싱. 퇴폐적인 스타일 만만하지 않게 무뚝뚝한 태도와 범접하기 어려운 반사회적인 인상. 마라는 완벽하게 리스베트가 되어 스크린에 등장했다. 부유한 NFL 구단주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은 이를 더욱 비범하게 수식하는 반전이었다. 화염병처럼 강렬한 폭발, 루니 마라는 이제 막 불이 붙었다. 더욱 뜨거워지리라.
마이클 패스벤더는 긴 시간 무명의 세월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증발했다. 패스벤더는 지금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그동안 스스로 의무감을 지니고 있었던 ‘전면 누드’를 대신해준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지 클루니의 수상 소감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패스벤더는 지난해 <셰임>으로 과감한 전면 노출을 선보였다. 클루니는 자신과 함께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패스벤더의 연기를, 그간 ‘섹시한 배우’로 언급되던 자신에 빗대 질투심 담은 장난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클루니가 패스벤더에게 자극을 받았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사실 패스벤더는 아직 낯선 배우다. 현재 그는 정점으로 올라서고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출신인 패스벤더는 두 살 무렵,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 남서부 도시 킬라니로 이사했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연기 수업을 받게 된 그는 영국과 미국의 영화들을 섭렵해나가며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졸업 후, 연기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간 패스벤더는 학업을 중단하고 극단의 투어에 동참한다. 그의 자리는 무대 위가 아니었다. 극이 끝난 뒤, 무대를 정리하고 짐을 옮기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배역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바텐더 일을 하면서 오디션장을 전전한 건 그 무렵이었다.
“그저 본능에 충실했다.” 캐릭터 선택에 관한 패스벤더의 답변이다. 그런 본능이 쓸모 있는 것임을 증명한 건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제작한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생생하게 그린 이 작품은 패스벤더가 내세울 만한 첫 경력이었다. TV시리즈를 비롯해서 갖은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300>(2006)에서 선명한 식스팩을 자랑하는 스파르타 전사의 일부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크린 속의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로, 기억을 채울 만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차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당시까진 그랬다. 영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랑수아 오종의 <엔젤>에서 주연으로 등장한 건 그 다음 해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패스벤더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좌우할만한 첫 번째 전환점을 만난다.
스티브 맥퀸의 문제적인 단편 연출작 <헝거>(2008)는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IRA 단원 바비 샌즈의 옥중 투쟁 실화를 스크린에 재현한 작품이다. 아이랜드의 독립투사인 마이클 콜린스의 피를 물려받은 패스벤더가 이를 연기한 건 어쩌면 운명이었다. 물론 만만한 역할은 아니었다. 단식 투쟁을 전개하고 끝내 목숨을 잃을 때까지도 이를 멈추지 않았던 바비 샌즈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굶주림을 견뎌내는 수밖게 없었다. 그리고 패스벤더는 이런 가혹한 방식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켰다. “나는 약 14kg을 감량했고 결국 59kg까지 빠졌다. 그것이 (내 연기가) 설득력을 얻고자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런 노력은 칸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이라 불리는 황금카메라상 수상 등으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패스벤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의 여류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피쉬 탱크>(2009)에 출연하며 또 한번 칸 레드 카펫을 밟았다. 아놀드에게 또 한번 칸 심사위원상을 안겨준 이 작품에서 패스벤더는 쉽게 뭇 여성들의 호감을 얻을 만큼 매력적인 미소를 지닌 남성으로 등장한다. 고행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던 <헝거>와 달리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런 평범한 캐릭터에 감춰진 추악한 단면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그에게서 새로운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헝거>와 <피쉬 탱크>는 패스벤더가 연기적 긴장과 이완의 너비가 넓은 배우임을 드러내는, 극단의 스펙트럼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나 다름없었다.
패스벤더는 일찍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을 연극 형태로 기획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 출연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독일 출신인 그가 독일어에 능통하지 못한 미국 군인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농담이자 유머였다. 제9군단에 관한 전설적인 실화를 각본화한 닐 마샬의 <센츄리온>(2010)은 혹평을 얻었지만 로마의 백인대장을 연기한 패스벤더에겐 터프하고 진중한, 전형적인 남성성을 선보이는 기회로서 손색이 없었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타운 크릭>(2008)이나 <조나 헥스>(2010)와 같이, 작품 자체가 어떠한 인상을 주지 못한 범작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2011년은 패스벤더의 경력에 방점을 찍은 한 해다. <제인 에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데인저러스 메소드> 그리고 <셰임>까지, 지난 한 해 그는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경력을 쌓아 올렸다. 샬롯 브론테의 동명 고전을 중후한 고딕 로맨스물로 완성한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를 연기한 패스벤더는 완고하면서도 로맨틱한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여심을 자극할 만한 연민을 지닌 남성으로 자신을 각인시킨다. 한편 패스벤더의 인지도를 수직 상승시킨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그는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다혈질적인 분로를 발산하는 매그니토를 연기하며 캐릭터의 매력적인 기원을 선사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심리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칼 융, 그리고 융이 치료한 신경증 환자 사비나, 이 세 사람의 의문스러운 관계를 살핀다. 무엇보다도 키이라 나이틀리의 열연이 눈에 띄는 이 영화에서 패스벤더는 기품 있는 태도를 견지하던 융이 음흉한 심리를 드러내는 순간의 이중성, 즉 희열과 절망의 아이러니를 표현해냄으로써 극적인 의도에 완벽하게 복무한다. 맥퀸의 새로운 연출작이자 클루니의 질투마저 유발한 패스벤더의 <셰임>은 그의 경력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파멸적인 쾌락을 즐기는 남자와 함께 고통스러운 과거를 공유한 여동생, 그 남매의 흔들리는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셰임>으로 패스벤더는 제68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명예까지 얻었다. “그는 한 세대 안에서 허락된 단 하나의 배우다. 남자 중의 남자이나 여성성과 나약함도 드러낸다. 그런 점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패스벤더에 대한 맥퀸의 찬사다.
올해에도 패스벤더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스티븐 소더버그의 액션물 <헤이와이어>로 한 해를 시작한 패스벤더는 오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에이리언>(1979)의 프리퀄로 잘 알려진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가 개봉을 앞두고 있따. “알다시피, 나는 많은 시간을 날려먹었다. 이제 태양이 떴으니 건초를 만들어야지.” 기다리던 태양처럼, 지금 마이클 패스벤더가 빛나고 있다.
“놀랍게도, 그 모든 가능성들이 존재했지만 이제 사라졌기에, 그 시절이 그립다.” 히스 레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셸 윌리엄스에게 슬픔을 안겼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으로 만나 연인이 되어 결별하기까지, 레저와 윌리엄스는 딸을 낳았고, 추억도 낳았다. 결국 레저는 갔고, 윌리엄스는 살아간다. 지난해 <블루 발렌타인>(2010)에서 보여준 열연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그녀는 마릴린 먼로로 분한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로 다시 한 번 오스카를 찾았다. 대본을 읽고 6개월간의 고민 끝에 작품을 결정했다는 그녀는 스크린 속에 마릴린 먼로를 다시 세웠다. 그녀는 말한다. “연기를 그만두는 꿈을 자주 꾼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오래되고, 아름답고, 사연을 지녔다. 어떤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영화에 그 모든 것이 있으니, 그녀의 삶도 그렇게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서남쪽에 위치한 프리부르는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소도시다. 4개 국어를 쓰는 스위스에서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이 작은 도시는 매년 3월이면 영화의 중립지대로 변모한다. 올해로 26회를 맞이하는 프리부르 국제영화제는 유럽 문화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고자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3월 24일부터 31일까지, 국경과 인종의 경계를 넘어선 프리부르의 스크린이 세계를 비춘다.
라이언 고슬링은 할리우드의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였다. 각기 다른 세 편의 작품으로 관객 앞에 나선 그의 2011년은 일종의 선언과 같았다. 그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그의 시간이 온 것이다.
2011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2011)는 궁극적으로 유령 같은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다. 말수도 없다. 딱히 정체를 아는 이도 없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 확실한 건 그가 운전 하나는 기똥차게 잘한다는 것. 낮에는 카체이싱 전문 스턴트맨으로, 밤이면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운반책으로, 그는 살아간다. 핸들과 기어가 그의 두뇌이자 심장인 것마냥. 그런 그가 이웃의 한 여자에게 마음을 준다. 그로 인해 예기치 않게 낭떠러지 같은 상황에 몰리지만 그는 결코 핸들을 꺾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녀에 대한 순정으로 엑셀을 밟아 직진한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 라이언 고슬링이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고슬링의 연기가 할리우드에서 1960년대 배경의 전통적인 이름 없는 영웅들을 연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알랭 들롱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그리고 <블리트>(1968)의 스티브 맥퀸까지 언급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과묵했고, 차가웠지만, 순정적이었다. <드라이브>에서 고슬링은 미세한 표정의 변화와 눈빛, 제스처만으로 극명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기적 스타일이 전통적인 고전 배우들의 레퍼런스를 동원하게 만든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로 꼽혀왔다. 그리고 지난 해, 고슬링은 성공적인 한 해를 채웠다.
캐나다 출신의 고슬링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처음 발을 들인 건 12세 무렵이었다. ‘우주비행사나 경찰 아니면 소방관이나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던 소년에게 새로운 삶을 부추긴 건 신문의 디즈니 채널 어린이 TV쇼 <미키 마우스 클럽>의 공개 오디션 공고였다. 그는 갔고, 참여했고, 합격했다. 댄서 지망생이었던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리고 여전히 우정을 자랑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타고난 끼를 과시하던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고슬링은 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촬영하는 동안 나는 그저 디즈니랜드에서 많은 놀이기구를 탔다.” 물론 이것이 의미 없는 경력은 아니었다.
그 후, 몇 편의 아동용 TV시리즈에 출연했던 고슬링은 학업을 중단하고 LA로 건너가 폭스 키즈 채널의 <영 헤라클레스>를 촬영하던 중, 마음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더 많은 시간을 캐릭터와 함께 하고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시도할 수 있도록, 영화를 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지. ‘TV는 이제 됐어.’” <리멤버 타이탄>(2000)으로 스크린에 입문한 그는 바로 다음해 배우로서의 결심을 완전히 굳혔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빌리버>(2001)에서 고슬링은 광기에 가까운 극단적 신앙을 지닌 네오 나치 청년을 연기했다. 비록 미국 내 극장 상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영화를 본 평단은 대부분 그의 연기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고슬링은 변화를 자각했다. “내게 변화가 왔다. 마치 나의 내면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할리우드와 인디 신을 오가던 고슬링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달아준 건 순정적인 멜로 <노트북>(2004)이었다. 전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그 성공 이후로 로맨스물 출연 섭외가 이어졌지만 그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진가는 인디펜던트 신에서 보다 확고하게 드러났다. <하프 넬슨>(2006)에서 약물중독자 고등학교 교사를 연기한 고슬링은 생애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부문 노미네이트를 비롯해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수상자로 단상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촬영 한 달 전, 브룩클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림자처럼 교사의 특성을 관찰했다. 이는 그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천거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인간의 형태와 흡사한 ‘리얼돌’을 사랑한 한 남자의 애틋한 사연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실제 인형을 감정적인 대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세트에서 실제로 인형과 함께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사람들은 줄거리를 듣고 웃겠지만 나는 <노트북>보다 훨씬 더 로맨틱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인형을 진짜 연인처럼 대하는 남자의 웃지 못할 광경은 진전되는 극 안에서 진실된 감동의 결정을 만들어낸다.
“목적지로 가는 백만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연기할 대상을 위한 진짜 참고사항이 없을 때, 그건 도전이다.” 고슬링은 메소드 연기에 대한 철학을 드러냈다. 단순히 캐릭터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연기자 사이의 상호적인 교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연기하는 캐릭터를 사랑하고 증오해야만 한다. 그들은 사람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물론 시행착오도 존재한다. 안소니 홉킨스와 함께 출연한 법정 스릴러 <프랙처>(2007)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고슬링은 고백했다. “안소니의 연기와 그의 재능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코 할 수 없었지.” 연기 집념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으로 외도한 고슬링은 <블루 발렌타인>(2010)으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경제적인 난관으로 권태기에 이른 한 부부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룬 이 작품에서 고슬링은 미셸 윌리엄스와 탁월한 호흡을 선보였다. “이 업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두 사람은 그들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다. 그들이 함께 한 연기를 본다는 건 일종의 스릴이다.” <뉴욕> 매거진의 평이다. 성공적인 복귀 이후, 고슬링은 2011년 최고의 경력을 나열했다. <드라이브>를 비롯해서 <피플>지로부터, “오스카 수상의 가치가 있는 배우가 단지 재미를 주고자 굉장히 섹시한 역할을 맡았다”는 평을 얻은 코미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와 조지 클루니의 네 번째 연출작인 정치물 <디 아이즈 오브 마치>가 그것이다.
다작 배우가 아닌 고슬링이 각기 장르가 다른 세 편의 영화로 한 해를 채우며 증명해낸 건,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나는 테스트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물론 지금 그가 기다릴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테런스 맬릭과 윈딩 레픈을 비롯해서 그를 원하는 감독들이 줄을 서있다.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한 해가 지났다. 그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잠재력은 여전히 폭발하고 있다.
‘팝’한 아이돌이었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엔싱크의 마지막 앨범 <Celebrity>(2001) 이후, 홀로서기에 나섰다. <Justified>(2002)로 솔로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Sexy Back’으로 완전히 섰다. 그저 팝스타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에디슨 시티>(2005)와 <알파 독>(2006)에서 안정된 연기를 선보인 그는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크워크>(2010)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재능을 뽐냈다. 냅스터의 창설자 인터넷 프로그래머 숀 파커는 팀버레이크가 품을 만한 야심이었다. 2011년, 팀버레이크는 <배드 티처> <프렌즈 위드 베네핏> <인 타임>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며 자신을 팝스타의 영역에 가둘 수 없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물론 론니 아일랜드와 함께 TV쇼에 등장해서 천연덕스럽게 외설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팀버레이크가 어디로 튈지는 미지수다. “모두 내 정신성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건 그냥 나야!” ‘저스트 팀버레이크’, 그저 자신만 알 수밖에.
북반구의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는 2월이면 시네필들의 봄,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오는 9일부터 19일까지, 제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프랑스 감독 브느와 자꼬의 신작 <Les Adieux à la reine>(2011)의 상영으로 물꼬를 트는 이번 영화제는 스티븐 달드리와 장이모우의 신작 등이 공개되며 올해 영화계의 첫 번째 흐름을 살핀다. 메릴 스트립의 명예금곰상 수상이 예정된 이번 영화제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영화의 봄을 알린다.
카사 드 라 플로라는 디자인 호텔을 추구하는 카오락의 신진 리조트다. 숲을 등지고, 바다를 마주한 천혜의 자연 경관 한가운데서 첨단의 편의를 자랑하는 시설을 갖춘, 최고의 휴식처다.
카오락(Khao Lak)은 태국 남부에 있는 푸켓 북부에 자리한 전통적인 휴양지다. 사시사철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푸켓과 달리 성수기에도 한적한 휴양을 즐길 수 있는 카오락은 그야말로 천혜의 휴식처다. 덕분에 유럽 등지의 서양인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아지트처럼 애용되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덕분에 카오락에는 100여 개의 리조트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팡가 지역에 최근 디자인 호텔을 지향하는 최신식 리조트가 개장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카사 드 라 플로라, 즉 자연 속의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리조트는 현대적인 첨단 설비의 편의를 갖춤과 동시에 자연친화적인 호흡으로 안락함을 더했다.
바다와 숲의 경계처럼 뻗어있는 도로를 따라 길게 누워있는 외관 앞에 다다르면 인공적인 폭포형 분수가 로비로 올라가는 투숙객들을 맞이한다. 넓은 로비의 개방적인 형태는 리조트로 향하는 긴 여정의 피로가 비로소 휴식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드디어 카사 드 라 플로라의 영토에 들어서면 미로처럼 갈라진, 하지만 결코 길을 잃을 염려는 필요 없는, 작은 길들을 따라 구분된 큐빅 형태의 빌라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서른 여섯 개의 큐브형 빌라가 질서정연하게 층위를 이루거나 규칙적으로 나열된 이 리조트는 너르게 펼쳐진 카오락 해변과 울창한 나무들이 자리한 숲을 전후에 두고 있다. 바다를 마주하고, 숲을 등진 이 리조트에서 객실 안과 밖에 자리하게 된다는 건, 그만큼 완벽하게 상반된 경험을 만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직으로 냉정하게 잘라 세운 듯한 콘크리트 외벽의 내부는 이와 반대로 티크목으로 마감되어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에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마감된 욕실과 벽면 일부로부터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의 조화가 느껴진다. 저마다 꽃의 이름을 딴 36개의 빌라는 9종류의 구조로 구분된다. 그러나 모든 빌라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해변을 응시하는 빌라의 창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눈과 같다. 방 안의 침대에 누워있는 순간에도 바다의 수평선이 시선에 들어온다. 또한 모든 빌라에는 개별 풀이 마련돼 있으며 그 주변에는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만끽할 수 있도록 세워진 커다란 울타리가 자연적인 정원 주변으로 둘러쳐 있다. 리조트에서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풍요로운 경관을 빌라 내부까지 제공하면서도 투숙객의 시간을 외부로부터 철저히 보호한다. 카사 드 라 플로라는 디자인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투숙객의 심리적인 배려까지 추구했다.
비치프론트 그랜드 풀 빌라를 포함한 10개의 비치프론트 빌라들은 리조트에서 해변과 가장 근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해변을 소유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해변 위에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해변이 바라보이는 풀은 실로 로맨틱한 감정을 품게 만든다. 한편 복층 구조로 이뤄진 듀플렉스 그랜드 풀 빌라를 비롯한 19개의 듀플렉스 빌라들은 공간의 편의성을 보다 강조한 인상이다. 침실과 욕실, 거실이 명확하게 층별로 분리된 이 공간은 주거적인 편의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보다 안성맞춤이다. 비치프론트 라인의 빌라들이 연인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듀플렉스 계열의 빌라들은 가족적인 여행을 위한 공간에 가깝다. 만약 보다 간편한 동선을 원한다면 단층 구조로 이뤄진 스튜디오 풀 빌라를 선택해도 좋다. 그 밖에도 최고급 객실인 카사 풀 스위트와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준비돼 있다. 모든 방의 미니바 이용은 무료로 제공된다. 무선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카사 드 라 플로라의 중심부에 자리한 야외풀은 리조트가 자랑하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바다를 향해 탁 트인 광경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풀에서 음료나 칵테일, 스낵을 주문하고 망중한을 즐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연적인 경관을 제공하는 카사 드 라 플로라는 그만큼 친환경적인 설계로 완성됐고 그에 따른 정책을 고수한다. 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완비된 리조트 내의 모든 수영장 시설에는 화학적인 성분의 소독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투숙객과 환경 모두를 배려한 처사다. 친환경적인 성분으로 유명한 태국 고유 브랜드 ‘탄’의 어메니티를 구비해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파 라 카사’에서 마사지와 사우나 등을 즐기며 긴장과 피로를 푸는 것도 좋다. 또한 비즈니스 업무의 해결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비즈니스 센터나 여유롭게 독서를 즐기고픈 투숙객들을 위한 도서관 시설도 눈길을 끈다. 피트니스 센터 이용과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다.
‘라 아란야’ 레스토랑은 태국 고유의 음식들을 기반으로 다국적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벽 대신 푸른 바다와 녹색의 잔디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오픈된 구조로 설계된 야외 레스토랑은 미각적인 만족감 못지 않게 시각적인 분위기 또한 즐길 수 있는 공감각적인 공간이다. 한편 카사 드 라 플로라에서는 특별한 서비스를 행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드림메이커’라 불린다. 투숙객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그는 누군가의 부탁을 대신 이뤄주는 이벤트 도우미, 이름 그대로 드림메이커로서 활약한다.
만약 보다 적극적으로 카오락의 경관을 즐기고 싶다면 리조트 인근의 관광 명소를 찾아갈 수도 있으며, 리조트에서 마련한 투어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리조트 앞마당처럼 자리한 카오락 해변의 끝이 보이지 않는 풍경 위를 독식하듯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진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곳에 머무른다면 시끄러운 소음도, 분주한 일상도, 특별한 목표도 완전히 잊어도 좋다. 첨단의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자연적인 낭만을 선사하는 이 리조트는 당신이 머무르는 동안 그 아름다운 풍경으로 당신을 편입시킨다. 숲과 바다의 경계 한가운데에 자리한 카사 드 라 플로라는 당신의 완벽한 휴양을 위해 마련된 안식처다. 휴식이라는 이름의 낙원이 바로 거기에 있다.
Recommendation
디자인 호텔을 지향하는 카오락의 최신 리조트. 큐빅형의 모든 풀빌라로 해변의 풍경이 중계된다.
Rooms 36 (including 2 suites) Restaurant La Aranya
Facilities Swimming pool, pool bar, Spa La Casa, Private Airport Transfer, Library and business center, Fitness centre,Dream Maker Tailor Made
Features Flat-screen TV with wireless keyboard, Wi-Fi internet access,iPod docking station, Espresso machine, Complimentary mini-bar replenished daily
Address 67/213 Moo 5. Khuk Khak, Takuapa, Phang Nga 82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