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장수한 고금의 스테디셀러 '삼국지(연의)'는 아직도 여전히 인상적인 캐릭터와 박진감 넘치는 전장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연대적 사실에 허구를 기워낸 텍스트 사이마다 지략가들의 심리전과 호걸들의 무용담이 즐비하게 이어지는 ‘삼국지’는 이미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매력적인 소스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서야 ‘삼국지’의 스크린 판본이 등장한 건 의지와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현실적 제약-기술적인 한계와 연출적인 부담감-이 '삼국지'의 텍스트를 이미지로 치환하는 무리수의 장벽처럼 존재했던 까닭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선명한 환상을 덧씌우는 텍스트의 방대한 가능성을 포용할만한 이미지를 구현해내야 한다라는 것, 그건 잘해도 본전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웅장하고 비범한 이미지에 대한 상상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문장의 방만한 가능성을 실사로 증명하고 방대한 서사의 영역을 적절히 활용할만한 전략적 자질을 갖추기엔 시도적 선례가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적벽대전>은 최근 거대한 몸집을 위세등등하게 전시하는 중국 영화들의 고무된 자발적 시도에서 비롯된 기획에 가깝다.-그것이 외국자본의 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할지라도 그 형태적 성립을 야기시킨 근원이 엄연히 중국발 정체성을 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적벽대전>은 광활한 서사 중 주요한 일부를 발췌하는 방식으로 ‘삼국지’의 세계를 스크린에 조명한다. ‘삼국지’의 3대 대전이라 불리기도 하는 ‘관도대전’과 ‘적벽대전’ 그리고 ‘이릉대전’ 중 골자 그대로 ‘적벽대전’이 발췌된 건, 그 사연과 동떨어진 이국에서도 ‘적벽가’라는 판소리로 그 사연이 변주되어 유행했을 정도로 뚜렷한 유명세와 무관하지 않다. ‘적벽대전’은 ‘삼국지’라는 실체적 환상의 대표격으로 내세울만한 가치가 확실한 부위이자 개별적인 사연 자체로 독자적인 자립성을 확보할만한 너비가 충분한 사례다. 또한 그것이 ‘삼국지’에서 삼국의 구도를 형성하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작동시키는 전환점이 되는 전쟁이란 점에서도 적절한 시작이다. 물론 조자룡이라는 인물을 통해 삼국지의 세계관을 스크린에 그려낸 <삼국지: 용의 부활>(이하, <용의 부활>)이란 전례가 있었지만 그것이 또 한번의 허구를 가미한 삼국지 팬픽에 가까운 작품임을 염두에 둔다면 <적벽대전>이야말로 ‘삼국지’가 지닌 본래적 기운을 스크린에 온전히 투영하고자 하는 실제적 구현의 욕망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삼국지’의 영화화로서 출발의 의미를 오롯이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후한제를 등에 업고 백만대군을 움직여 강남정벌에 나서는 조조군과 그에 쫓겨 신야성에서 도주하는 유비군이 맞닥뜨리게 된 장판파 전투를 상세히 다루며 <적벽대전>은 서서히 시동을 건다. <용의 부활>에서도 등장했던 이 장면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아두를 구출하는 조자룡의 전과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전투로서의 양상을 묘사하는데 더욱 치중하려는 듯하다. 거울과도 같은 방패를 반사시켜 적의 기마대를 무력화시키는 전략과 함께 관우, 장비와 같은 용맹한 장수의 활약이 설득력 있게 묘사되며 전투의 양상을 세심히 다룬다. 게다가 수전으로 시작됐다 전해지는 ‘적벽대전’의 본래 전투적 상황과 달리 지상전을 끼워 넣으며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기 전, 격돌의 형태를 잠시 전시하는 <적벽대전>은 조조군을 유인한 유비, 손권 연합군이 지휘하는 후궁팔괘진의 거대한 형상을 스크린에 가득 채우며 영화적 스펙터클을 과감히 전시(하고 다가올 속편의 위세를 예고)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도 일당백 무예 실력을 지닌 맹장들의 괴력적인 육박전을 덧씌우며 전투적 쾌감을 활성화시킨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되는 후궁팔괘진의 위용은 본격적인 전쟁국면에 돌입하지 않아 전투씬의 비중이 떨어지는 <적벽대전>에서 단연 백미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별개로 전례 없는 이미지를 구현했다고 평가할만하다.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라는 부제처럼 <적벽대전>은 아직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지 않은 탓에-혹은 속편을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린 탓에- 전장에서의 육박전보단 전쟁의 구도를 완성시키려는 인물들의 심리전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제갈량(금성무)과 주유(양조위)의 관계를 묘사함에 있어서 고전 원작에 비해 온화한 관계로 묘사되고 있다는 특이성이 발견되긴 하지만 캐릭터의 고유한 매력을 살리는데 최대한 충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특히 ‘곡조가 잘못 나오면 주량(주유)이 돌아다본다’라는 가사의 곡이 있을 정도로 음악에 정통한 풍류가였던 주유가 거문고를 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또한 호걸로 이름을 떨친 선친-손견, 손책-의 뒤를 이었지만 그에 비견될만한 군주의 위엄을 증명하지 못한 탓에 갈등하는 손권(장첸)의 심리를 상세히 묘사한 건 <적벽대전>의 인물 해석이 단순히 묘사의 일환에 멈추지 않고 해석의 수위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캐릭터를 묘사함에 있어서 단순히 외모적인 환상을 배우의 얼굴로 치환한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 인물의 특성을 배려한 세심한 세공력이 돋보인다. 이는 다양한 인물들의 일장일단으로 메워진 ‘삼국지’의 매력을 <적벽대전>이 간과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다만 절세미인이자 주유의 부인인 소교(린즈링)와 그녀의 누이 대교를 탐해 강동을 넘본다는 조조(장풍의)에 대한 거짓소문을 천연덕스럽게 발설하며 주유를 도발함으로써 오와의 연합을 성사시킨 제갈량의 간계를 <적벽대전>은 실제 조조가 소교에 대한 여색을 지니고 있음으로 묘사하며, 이것이 전쟁을 촉발시킨 계기의 원동력이라는 뉘앙스마저 남긴다. 이는 단순히 여색을 탐하고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서 조조를 한정 짓는다는 점에서 인물의 매력을 비좁게 만들고, 선악 구조로서 인물의 대비를 구축시키는 단순성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오우삼 감독이 지닌 인물에 대한 편애가 캐릭터의 구현에 반영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할리우드에서 쌓은 짬밥의 결과가 <트로이>에 ‘삼국지’를 접합시키는 발상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벽대전>은 ‘삼국지’의 텍스트에서 비롯되는 이미지에 대한 환상을 최대한 반영한다. 외모 자체만으로 ‘삼국지’의 판본에 충실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조조를 비롯해 <적벽대전>에서 주요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제갈량과 주유, 손권은 그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호사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물론 주윤발의 주유 역이 무산된 건 통탄할 일이지만- 또한 전투씬의 묘사에 있어서도 거대한 너비와 세밀한 양상, 그 어느 쪽도 놓치지 않으려는 배려가 돋보인다. 물론 박진감 넘치는 전투로 러닝타임이 꽉 채워지길 기대한 관객이라면 본격적인 전쟁이 돌입하기까지의 서사에 충실한 ‘적벽대전’ 전반전에 해당하는 <적벽대전>이 다소 지루해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거대한 위용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후반전에 대한 기대를 도모하기엔 손색이 없다. 게다가 캐릭터에 대한 환상에 충실하게 응답한 <적벽대전>은 그 나열된 이미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게다가 본격적인 ‘적벽대전’의 묘미는 이제야 시작이다. 인물들의 심리전을 통해 전쟁이 이뤄지는 과정을 연환계처럼 단단하게 묶어가는 <적벽대전>은 그 본격적인 양상을 보기 위해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는 고육지계를 감수하게 만들지만 이는 분명 기대감의 일환이라 거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거대한 전쟁을 부르는 동남풍은 마침내 불어올 것이고, ‘삼국지’의 골수팬이라면 분명 그 뜨거운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