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무엇이 맞고 틀리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맞고' '틀리다'보단 '지금' '그때'가 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두 개의 지금 혹은 두 개의 그때. 결국 지금이라서 맞고, 그때라서 틀린 것. 이것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옳고 그른 것으로 판명해주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언제나 지금은 맞지만 언젠가 그때는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이라는 마술적 흐름에 관한, 굉장히 사소한 발견의 깊이.

완전히 분절된 데칼코마니 형태의 출발점에서 제각각 시작되는 두 개의 이야기. 홍상수 감독 특유의 대구 구조를 개별화시킨 두 영화는 하나의 시작을 품었으나 두 개의 우주로 분리된다. 아마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전형으로 구별될만한 작품일지도. 개인적으론 <옥희의 영화> 이후로 또 한번의 전환점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시점으로 분리시킨 두 가지 삶의 체험. 정말 놀라운 영화적 경험. 사소한 일상의 톤으로 길어 올린 마술적 리얼리즘. 나는 이 영화에 어떤 찬사도 아끼고 싶지 않다. 놀랍다는 말도 부족하다.

정재영은 두 사람 몫을 하며 영화의 너비를 확장하고, 김민희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의 경계를 만든다. 두 개의 정재영과 하나의 김민희가 이 영화의 대구를 완성한다. 두 방향으로서 완전한 하나의 영화. 이 영화가 놀라운 건 영화라는 체험이 삶을 어떻게 예언하는가, 삶을 어떻게 반추하는가,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두 가지 질문에 합당한 답을 모두 해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현재는 언제나 옳게 합리화되고, 과거는 언젠가 틀려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지금을 사는 인간이다. 부끄럽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그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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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더 비기닝>은 버디무비로서의 장점이 강한 작품이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케미가 나쁘지 않다. 덕분에 웃음을 유발할만한 코미디로서의 장점이 발휘된다. 능력 없는 민폐 남편이자 구박덩어리로 전락한 권상우의 찌질한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성동일 역시 사회와 가정에서의 이중적인 위세를 지닌 인물이란 점에서 코믹한 극적 장치가 된다. 물론 이게 남성편향적으로 설계된 코미디란 점은 좀 지적하고 싶어지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추리물이란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탐정>이라는 제목을 지우고 싶을 정도로 형편 없는 만듦새를 전시한다. 전설적인 강력계 베테랑 형사와 아마추어 추리광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골자는 흥미롭지만 베테랑 형사는 그 경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능하고, 아마추어는 그야말로 민폐 덩어리다. 추리를 한다기 보단 완성된 시나리오를 토대로 추리를 끼워맞춘다는 인상이랄까. 추리물이란 장르 안에서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 기이할 정도의 자신감이 묘할 정도.

의외로 이 영화에서 재미있게 여겨지는 건 사건현장이 아니라 각자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부부끼리의 사연이다. 밥벌이에 무능하든, 유능하든 아내보다 약한 남편들의 고충을 나누는 광경이나 밥벌이 제쳐두고 탐정질에 환장한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내 연기를 하는 서영희의 연기는 <탐정>에서 쓸만한 서브 플롯 노릇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최소한 납득이 가는 추리물로서의 구색을 맞췄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관람을 권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어설픈 슬랩스틱 따위로 범벅된 쌍팔년도 명절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의 특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코미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은 평가해주고 싶다. 그런 면에선 팝콘무비로서 가볍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관객들에겐 미덕이 없는 영화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못하겠단 거지.

영화가 흥행한다면 누가 봐도 속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결말이다. 이미 제목부터 '더 비기닝'이란 부제를 품고 있으니 당연히 결말에 대한 야심이 팽배한 것 같은데, 과연 어떨지. 전통적인 관점에서 추석에 먹힐 영화처럼 보이긴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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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캐처> 단평

cinemania 2015. 1. 27. 03:33

1. <폭스캐처>는 실화를 바탕에 둔 작품이다. 결국 <폭스캐처>는 정해진 결말로 가는 과정에 관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어느 미친 재벌 상속자의 살인사건이 복잡다단한 미스터리의 내면이 뒤엉켜 벌어진 필연적 비극이었음을 추론해 풀어헤친 뒤 개연성 있는 서사로서 나열해내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2. 감정적인 온도를 동결시키는 서늘한 기조를 밀고 나가는데 그 덕분에 <폭스캐처>에선 감정의 온도보다도 밀도가 크게 와닿는 인상이다. 시종일관 팽창되는 감정의 밀도로 스크린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스산해 보이는 스크린 너머의 온도가 감지되기보다도 목까지 차오르는 불안감이 들썩이는 느낌을 연신 얻었다. 그만큼 심리적 인과를 세심하게 드러내는 내러티브의 개연성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는데 그에 걸맞게 시종일관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과의 흐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감상의 지표를 잘 세워나간다. 한편으론 이처럼 이성적인 내러티브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충돌을 추론해나가는 이 영화가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3. 카메라는 인물에게 결박된 유령처럼 슬그머니 그 주변에 부유하듯 존재하는데 인물의 표정과 내면의 감정을 중계하는 카메라의 거리감이 변화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평행선처럼 이어나가는 이 영화에 미세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인물과의 거리감을 통해 물리적인 풍광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서 객석에서 지속적으로 감지할 수밖에 없는 불안감을 벌리고, 조이는 인상이랄까. 특히 인물의 얼굴을 초근접 촬영한 컷이 스크린을 장악할 때 정말 광활한 풍경이 된다고 느꼈는데 인물의 내면적 갈등이나 결핍이 순간적으로 감상의 여지를 확 벌리고 쓰나미처럼 쏟아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만큼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상당히 좋았다.

 

4. 대단히 빛나는 연기를 선보이는 마크 러팔로와 스티브 카렐의 연기를 위한 반사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채닝 테이텀의 연기 또한 상당히 좋았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차지하는 그의 연기는 시작부터 호기심을 끌어내고 견인하며 영화에 탁월하게 기여한다. 무엇보다도 스티브 카렐이 맡은 존 E. 듀폰이 채닝 테이텀이 연기하는 마크 슐츠를 만나며 처음 등장할 때의 신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괴팍하면서도 음침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백만장자가 여유를 부리며 불운한 금메달리스트를 대하며 권위적인 호흡으로 대화를 주도하고, 대화의 여백을 만들어 상대의 반응을 골똘히 살피다가도 쉭쉭거리며 숨을 가다듬을 수밖에 노쇠한 육체가 새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스티브 카렐이 이 작품의 주도권을 쥐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당연히 그럴만한 연기를 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경지다. 코를 붙인 건 단지 외모를 따라가기 위해서였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살짝 고개를 들고 상대를 응시하며 침묵을 통해서 어떤 불만을 전하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신에선 그 코의 높이가 상당히 기능적인 역할을 해낸다는 인상이었다. 한편으로 감탄한 건 마크 러팔로와 채닝 테이텀이 연기하는 선수로서의 움직임이었는데 채닝 테이텀이 고릴라처럼 성큼성큼 걷는다면 마크 러팔로는 오랑우탄처럼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이런 행동묘사는 인물의 성격과도 완벽하게 부합돼서 행동과 심리에 대한 입체적인 감상 층위를 형성한다. 정말 좋은 배우들이다. 한편으론 최근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도 등장하는 시에나 밀러가 좋은 작품에서 거듭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론 그녀가 에이미 아담스 정도의 배우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에 반갑기도 했는데, 물론 어찌될진 두고 볼 일이다.

 

5. 베넷 밀러는 <카포티>, <머니볼>에 이어서 <폭스캐처>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실화 바탕 영화로 채웠는데 <폭스캐처>를 보고 나니 앞으로 어떤 경력을 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카포티> <머니볼>이 어떤 인물의 내면에 관한 영화였다면 <폭스캐처>는 어떤 사건의 내면에 관한 영화에 가깝기 때문에 그의 전작들과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인물의 관계 구도가 중요했고, 그 관계 구도로 뒤엉킨 심리가 파생시킨 사건이 중요했다는 점에서 베넷 밀러의 경력 안에선 새로운 지점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폭스캐처>가 베넷 밀러라는 감독에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담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6. <폭스캐처>는 열등감의 지옥에 갇혀버린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빈부의 대비가 아이러니할 정도로 혈연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결핍에 삶을 지배당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어울리고, 필연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불가분의 비극은 벌어지고 만다. 흥미로운 건 존 듀폰과 마크 슐츠가 자신의 열등감을 공허하게 채우는 방식인데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복무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덧없이 팽창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 그 존재감을 전시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새어나가는 순간과 그의 노력에 사냥개처럼 복무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되새기는 마크 슐츠의 환각이 흩어지는 순간 이후의 과정에선 일말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데 그 페이소스는 에필로그에 가까운 결말과 맞붙어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꿈꾸는 인간의 처연함 그 자체로 와닿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 사람이 각기 인정받고자 했던 대상은 영화의 끝에 다다라 모두 다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지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폭스캐처>는 여우를 사냥하는 인간을 흠모하다 버림 받은 사냥개들의 영화처럼 보인다. 생각보다 슬프고 처절한 영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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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다섯 군대 전투>를 축약하자면 점입가경이라 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통해 한차례 증명된 바 있지만 피터 잭슨이 물리력을 총동원해서 전투신을 뽑아냈을 때의 스펙터클은 볼거리 중의 볼거리다.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는 말을 아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여러 종족이 엮어서 발생하는 공명심과 이기심의 복마전과 물리력의 차이를 바탕에 둔 전투적 정황의 다양성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입체적인 감상 구조를 제공하고, 켜켜이 틈이 없는 감상적 지층을 만들어내는 덕분에 딱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롤러코스터. 어떤 식으로든 아이맥스에서 보시란 말밖에 할 수가 없다. 피터 잭슨이 다시 중간계로 끌려 들어가 <호빗> 트릴로지, 심지어 원전에도 없는 내용을 확장해 가며 3부작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살짝 혀를 차는 입장이었는데 이 세 번째 작품으로 다시 한번 갈무리된 트릴로지를 봤을 땐 대사업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스타워즈>의 살짝 민망한 3부작 프리퀄과 대조적으로 언급될 만한 프리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올 겨울에 이만한 볼거리는 없다. 무조건 극장에서, 이왕이면 아이맥스다.

p.s><클래시 오브 클랜> 열심히 하는 분들께선 묘하게 반가운 장면들이 더러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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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의 <타짜>가 해운대 앞바다였다면 강형철의 <타짜-신의 손>은 캐리비안 베이다. 인공 파도에 휩쓸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결국 인공 파도는 인공 파도다. 애초에 기획되지 않았던 속편이란 맹점과 한계를 그나마 강형철이 잘 메우고 이어낸 인상이지만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상. <타짜>의 캐릭터들이 차, 상, 마, 포 같아서 저마다의 파괴력도 있고, 차가 판을 휩쓰는 압도감과 마가 차를 삼키는 쾌감도 있었지만 <타짜-신의 손>은 '졸'의 향연 같아서 실력이 평준화된 선수들의 싸움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졸'전임이 뚜렷해 보여 김이 새는 지점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속편인지라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진 않아서 크게 아쉽진 않았지만 썩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러닝타임에 비해서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에선 본래 품었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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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알다시피 <어벤져스>의 속편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마블 히어로 무비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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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인형 놀이를 하듯이 영화를 만들어왔던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놀랍도록 비범한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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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앤 유> 단평

cinemania 2014. 3. 3. 01:13

<미 앤 유>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말년작이 될 것임을 제외한다면 큰 특이점이 없는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거나 비범한 걸작으로 분류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노장만이 지닐 수 있는 사려 깊은 시선을 명징하게 증명하는 작품이다. <몽상가들> 이후로 무려 10년 만에 발표한 베르톨루치의 <미 앤 유>는 소소한 성장 영화에 가깝다. 물론 영화 속의 상황이란 그리 평범하지 않다. 지하실에 마련한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은신을 즐기려던 소년이 이복 누나와 우연히 동거하게 되며 벌어지는 7일 간의 사연이란 그 공간성과 행위 설정의 의도로부터 어떤 지적인 메타포를 읽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미 앤 유>는 한 시대를 풍미한 노장이 새로운 어린 세대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에 가깝다. 부모 세대로부터 얻은 상처를 통해서 고립의 장벽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혹은 자신을 망가뜨릴 탐닉과 환각으로 도피하려는 동세대간의 소통을 통해서 삶에 대한 회복과 치유를 일깨울 수 있다는 조언이자 충고 혹은 그러한 믿음의 전달에 가깝다. 혁명과 자유를 꿈꾸던 20대의 유아기적 낭만을 아름다운 미장센 안에 담아낸 <몽상가들>이 역설적으로 텅빈 도구 같은 영화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미 앤 유>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하는 인상이라 결과적으로 꽉 찬 인상이기도. ‘Space Oddity’와 함께 맞이한 엔딩 시퀀스에서 소년의 얼굴을 줌인하는 엔딩 컷은 사실 보기 드물게 낡은 방식이라 생경하기도 했는데 베르톨루치라는 감독의 시대를 반추했을 땐 묘하게 다가오는 것도 같았다. 지나갈 시대를 미리 보고 있다는 기분. 그래서 어쩌면 <미 앤 유>는 베르톨루치의 유언 같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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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단평

cinemania 2014. 2. 26. 02:51

<논스톱>을 보면서 리암 니슨표 액션영화라는 장르가 생성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쨌든 <테이큰>에서 <언노운>,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리암 니슨의 액션은 아직까진 물리진 않는다. 사실 액션이라기보단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까운데, 비행기 기내라는 공간성을 밀실 살인의 미스터리를 위한 장으로 몰아넣는 구상이나 모든 인물에게 의심의 꼬리표를 달게 만드는 수법은 후반부까지 적당한 흥미를 쥘만한 수준을 유지한다. 사실 줄리안 무어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이 인위적으로 '내가 범인처럼 보이지 않니?'란 식의 의심스러운 표정 연기를 계주하듯이 이어가는데 다들 적당히 잘해내는 인상이라 거듭되는 의심 돌려막기가 적당히 성공하는 인상.

다만 맥아리 없게 껍데기를 벗어버리는 듯한 결말부는 자폭 혹은 추락 같다. 리암 니슨과 함께 한 자움 콜렛 세라 감독의 전작 <언노운>은 결말부가 지나치게 과격하게 나아간다는 인상이었는데, <논스톱>은 조금 부족하다는 인상. 어쨌든 그래도 최후반부의 하강신에선 물리적인 공포가 체험되는 듯. 어쨌든 일찍이 액션 스타의 꿈을 품었다던 리암 니슨은 아직도 살풀이가 한창인가 싶다. 자움 콜렛 세라가 <아키라>를 연출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건 어찌되고 있나 궁금하기도.

<노예 12년>에 등장하는 스쿳 맥네이어리와 루피타 뇽을 근래에 또 보게 돼서 반갑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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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동성애 영화로 알려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그 어떤 멜로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러브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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