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석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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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좋아해요?
굉장히 좋아하죠.

어떤 부류의 음악을?
특별히 가리는 건 없는데, 일렉트로니카나 디제잉 음악을 주로 좋아해요. <즐거운 인생> 찍으면서 밴드 음악을 한창 미친 듯이 들었고.

사실 전자 음악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즐거운 인생>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글거리는듯한 일렉기타음을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 물론 나이를 생각하면 애초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기도 했지만 취향은 각기 다르니까.
사실 음악에 대한 선입견은 크게 없으니 만약 락이 아닌 다른 음악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일단 밴드라는 틀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았죠. 밴드란 게 혼자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너무나 좋았던 건 선배님들과 감독님 간의 신뢰가 굉장히 크게 키워진 상태에서 작품에 참여했기 때문에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못했던 거 같아요.

마치 밴드가 하나의 식구처럼 느껴지던데요. 그런데 다른 세분 배우와 홀로 세대 차가 많이 나는 편인라 그런 차이를 극복하는 게 마냥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일단 그런 계기들은 선배님들과 감독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것 같은 선배님들과 같이 있게 된 신인의 입장이다 보니 수용적인 자세와 방어적인 자세가 같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선배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점도 있지만 반대로 방어적이란 건 나와 너무나 차이가 많은, 갭이 많은 선배이기 때문에 내가 깍듯해야만 하는 관계, 다시 말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관계니까.

어느 정도 거리감을 좁히기 힘든?
예. 사실 저도 처음엔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었죠. 그걸 깨주신 게 선배님들과 감독님이세요. 같이 악기 연주하고, 같이 술 마시고, 같이 밤새고, 그런 관계가 단지 촬영이란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촬영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죠. 아침부터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신고 같이 만나서 밥 먹으러 가고, 마치 정말로 옆집에 사는 이웃친구처럼, 한 멤버가 됐어요. 그 정도로 팀워크가 굉장히 높았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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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도 연주지만 보컬도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미성이 나올 것 같은 외모에서 그런지(grunge) 풍의 보컬이 나와서 놀라웠거든요.
일단 노래는 그 전부터 계속 배우고 연습하고 있었어요. 굳이 내가 음반을 내야겠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배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여러 가지 테크닉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도 배우고 있었고, 그런 것들이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 많이 도움이 됐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목을 긁는 창법 같은 경우, 음악 감독님과 연구를 좀 했었죠. 원래 내가 노래 부를 때 중저음인데 그것을 좀 더 거친, 굉장히 러프한 음악과 매치시키기 위해선 뭔가 변형이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목을 좀 긁어서 노래를 부르는 연습을 했어요.

그럼 그 보컬은 일부로 만든 것?
맞아요. 일부로. 물론 원래 노래 부를 땐 그렇게까진 아니지만 영화에선 좀 더 터프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촬영하면서 설정을 위해서 계속 계발을 했던 것뿐이죠.

솔직히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밴드를 차리는 느낌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음악을 좋아하는 이로서 음악 영화라니 반가웠을 법도 했을 테고.
솔직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배우고 싶었던 욕심이 컸어요. 종종 어떤 기자 분들은 제2의 이준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평들도 많이 해주시고 그런 기대감에 대해서 묻기도 하시는데 그런 것보다 난 그냥 무언가를 배우고 싶단 계기가 가장 컸던 거 같아요. 덕분에 악기를 또 하나 배울 수 있게 됐고,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을 얻었던 작품이었죠.

사실 기타를 잡고 무대에 선 모습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더 먼저 있었을 텐데,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예정보다 밀리지 않았다면. 아직 개봉일을 못 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아쉬웠죠. 굉장히 치열하게 준비했었고 치열하게 촬영을 했었는데 갑자기 스톱이 돼서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었어요. 사실 저에게 <도레미파솔라시도>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제대로 작업할 수 있었던 계기였거든요.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깜짝 놀랬죠. 그 때 스텝이나 배우들하곤 아직까지 만나요. 물론 영화가 올해 크랭크업됐고, 지금 일단 진행되고 있으니까 잘 되면 좋겠어요. 다들 열심히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원래 기타는 문외한이었나요?
물론 그전에도 조금씩은 만질 수 있었는데, 이 정도로 능숙한 실력으로 오게 된 건 <즐거운 인생>하면서 배운 덕분이죠.

손가락에 물집도 많이 잡혔겠네요.
처음엔 많이 잡혔지만 나중엔 굳은 살로 변형됐죠. 그래서 나중엔 아무 느낌도 없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 몇 번에 걸쳐 반복돼요. 나중엔 굳은 살 볼 때마다 흐믓해지곤 했어요.

그런데 아직 젊은 나이라서 그런 기타를 배우는 과정이 즐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세 배우 분들은 나이도 있는 편이라 애먹었을 것 같은데, 옆에서 지켜본 바는 어땠나요?
일단 힘든 건 사실이었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님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각각 악기란 것에 대해서 익숙한 분도 있는 반면, 익숙하지 못한 분도 있었고 익숙하다를 떠나서 그걸 제대로 연주할 정도의 실력은 저를 포함해 전부 다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촬영 전부터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던 계기가 악기 연습실에서 하루 7시간에서 8시간씩 하루 종일 갇혀서 연습한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연습을 1시간씩 더하면 그만큼 더 잘되겠지 싶은데 이게 또 계속 하다 보면 더 안돼요. 그런 스트레스가 쌓여서 도중에 연습실에서 나와서 담배피고 쭈그려 앉아서 한숨 내쉬고 있을 때, 선배님들도 옆에서 같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공동체를 느꼈다고 해야 되나요? 물론 제가 보기엔 굉장히 어려운 선배들이었지만 같이 이렇게 0이라는 숫자에서 출발해서 뭔가를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연습 끝나면 같이 밥 먹으러 가서 술도 마시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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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성이 자자한 감독과 실력을 인정받는 선배 배우 분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감은 물론 있었죠. 배우고 싶어서 시작을 했지만 그 계획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비유를 하자면 물과 기름 같은 성격을 가진 배우 분들이 그렇게 하나가 된 과정이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선배님들께 좀 더 다가갈까?’ 이런 고민을 한창 할 때, 먼저 선배님들께서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사실 촬영 전에 나온 시나리오 초판본과 스크린에 나오는 완성된 필름의 50%가 틀려요. 그런데 그 50%를 비틀고 새롭게 설계해나가는 작업을 저희가 같이 해나가서 재미있었어요. 감독님들, 시나리오 작가, 연출부 스텝끼리만 참여한 게 아니라 배우들까지 직접 참여해서 각자의 아이디어가 어떤 씬에 반영되기도 하고, 없었던 씬이 생겨나기도 하고, 그런 설계 과정을 거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굉장히 많이 커졌던 거 같아요. 그게 결국엔 팀워크를 다지거나 세대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됐죠. 물론 악기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연습이 잘 안되면 밖에 나와서 같이 투덜거리다가 친해져서 같이 술 한잔 마시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술과 함께 하는 얘기들이 오갔죠. 인생이든지, 영화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던 시간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영화가 어쩌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
사실 전 아직 인생은 잘 모르겠어요. 단지 이제 <즐거운 인생>을 하면서 한가지의 꿈이 생겼죠. 내가 20년 후에, 30년 후에도 저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래도 한가지 깨달은 건, 난 굉장히 행복한 놈이다라는 것. 실제로 전 어디에서든 ‘전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물론 그 전까진 너무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서 그런 것들을 좀 모르게 살았던 것 같은데, <즐거운 인생>을 계기로 다시 저를 되돌아보고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거 같아요.

사실 <즐거운 인생>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성숙했단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외적인 모습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어느 새 내 모습이 바뀌었단 걸 느끼긴 했거든요. 어렸을 땐 굉장히 밝고 귀여운 이미지나 해맑은 모습이 많았었는데 커가면서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즐거운 인생>의 촬영 후, 현준의 감성을 봤을 때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가장 중요한 건 이제 <즐거운 인생>을 하면서 배우로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굉장히 컸다는 사실이죠. 사실 제가 배우라는 의식을 갖게 된 건 얼마 안됐었거든요. 그 전까지 그냥 <논스톱>같은 거 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난 연예인이고 그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그래서 난 굉장히 좋다, 행복하다, 이런 막연한 생각 정도였죠. 그러다 슬럼프가 한 번 있었고, 그런 후에 <황진이>를 하게 된 건데 그 때부터 아마 처음으로 배우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아이돌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황진이>와 <즐거운 인생>을 거치며 불쑥 커버린 느낌이었어요. 지금 스스로에게 나름대로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느껴지나요?
전 이제 시작되는 부분이죠. 제가 뭔가 내 업적을 남길만한 굉장한 걸 보여준 건 아니니까. 다만 <즐거운 인생>이 제가 배우란 걸 알게 해 준, 그런 사실을 끌어낸 작품인 거 같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작품이란 점에서 지금이 성숙한 배우가 되기 위한 초반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나름대로 이제 데뷔한지 거의 10년째가 되가요. 그래서 이젠 베테랑이란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MC나 라디오DJ같은 방송을 오래한 덕분에 듣는 말이지, 실제로 배우로서 연기할 땐 이제 막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기인 거 같아요. (손가락을 발가락처럼 꼼지락거리며) 전 아직도 더 많이 배워야 하고,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는 굉장히 많은 걸 얻었고, 앞으로가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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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즐거운 인생> 포스터 속) 세 배우는 그런 걸음마에 많은 도움을 줬을 법한데 각각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일단 정진영 선배님은 뭐랄까. 굉장히 큰, 그러니까 광범위한 부분에서 저에게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 거 같아요. 연기나 영화, 배우 같은 전문적인 조언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추구해야 할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굉장히 좋았던 건 제가 아직까진 인생을 말하기엔 굉장히 어린애지만 제가 추구한 것을 말씀 드리면 ‘그건 아닌 거다, 잘못된 거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걸 받아주시고 또 거기에 대해서 덧붙여서 말씀해주시곤 했죠. 김윤석 선배님은 말씀이 많진 않아요. 스스로가 후배에게 특별한 조언을 잘 하지 않는데 저한테 처음으로 많이 해줬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배우가 가지고 있어야 할 테크닉이나 그것을 분석하면서 해야 될 것들, 배우로서 틀을 잡아주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조언해주셨어요. 김상호 선배님은 제가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 안에서 전혀 기죽지 않게끔 ‘너하고 싶은 대로 해. 형은 널 믿는다.’라면서 저를 굉장히 솔직한 인간으로 믿고 바라봐 주셨고, 작품 내에서도 실제로 그렇게 도와주셨죠.

혹시 저 세 배우 중 배우로서 자신의 이상형이라 꼽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요? 근데 워낙 세분이 출중한 분들이라 꼭 찍어 말하긴 힘들겠지만.
아니, 틀려요! 다! 각각 매력이 다 틀리거든요. 정진영 선배님 같은 경우는 굉장히 지식도 많으시고 솔직하신데 지식을 탁 내뱉는 스타일은 아니고, 제가 말하는 걸 굉장히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분이세요. 지적이면서도 굉장히 감성적인 인간인 거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솔직한 모습도 많이 뵐 수 있었고, 저한테 좋은 말씀들도 많이 주셨고. 윤석 선배님은 굉장히 섹시해요.

그래요?
예. 은근히 섹시하세요. 목소리도 멋지시고, 키도 굉장히 크고 매력 있으세요. 촬영할 땐 한창 정승혜 대표님(영화사 아침)이 장근석과 김윤석 중 누가 더 섹시하냐고 투표하기도 했었어요. (웃음) 김상호 선배님께서는 워낙 유머가 많아서, 항상 편하게 해주셨어요. 이렇게 각자의 매력이 다 틀리죠. 그런 것들을 조합한 모습이 얘였으면 좋겠어요. (포스터의 자신을 가리키며) 나중에 2~30년 후에.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께서 캐스팅 제의를 했을 때,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캐스팅됐다는 선배 배우들을 보았을 때, 자신을 왜 이 사이에 끼어 넣으려 하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지 않았나요?
지금도 들어요. (웃음) 사실 제 나이 대에서 훌륭한 비쥬얼을 가지고 있는 배우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왜 날 뽑았을까, 아까도 감독님께 물어봤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너 눈이 예뻐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었어요. 감독님 그럼 만약 다른 기자 분들이 ‘왜 이준익 감독님 영화에 뽑힌 거 같은지,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감독님이 시나리오 들고 저희 집 앞에서 기다렸어요.’ 라고 하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다가 맞을 뻔 했어요. (웃음)

혹시 이준익 감독님의 전작 영화들을 봤나요?
다 봤죠. <키드캅>까지.

그 중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영화가 있다면?
아무래도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중요한 건 대리만족 이라던지, 공감인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제일 공감되는 건 <라디오 스타>였어요. 그 때, <라디오 스타>를 심야영화로 보고 나서 새벽에 바로 <황진이> 촬영을 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는데 계속 30년 후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사람의 감정까지 침투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시는 순수한 감독님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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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가 공감된 건 아무래도 본인이 종사하는 업종 까닭일 것 같은데.
정말 내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게 전 슬럼프라고 했는데, 다들 그러더라고요. 나이도 어린 놈이 무슨 네가 슬럼프냐, 이러는데. (웃음) 열 아홉 살 때, 제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었거든요. <논스톱>을 끝내고 나서 소위 말하는 것처럼 확 떴다가 확 졌죠. 그런데 같이 하던 사람들은 굉장히 잘 돼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난 어디론가 이렇게 사이드로 물러나서 그걸 지켜보는 입장이고. 그 때 굉장히 방황을 했었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게 올바른 것인지,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가야 하는 것인지. 사실 그 당시에 <라디오 스타>처럼 그렇게 가까운 매니저나 친형 같은 형을 못 만나봤어요. 물론 그게 매니지먼트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또 외동인 탓이죠.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타는 성격이라서 누구에게 고민을 말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이제 혼자 고개 숙이면서 다니다가 그 당시에 어느 순간 뮤지컬 한 편을 하게 됐다.

혹시 <헤라클레스>?
예. 물론 그게 가족뮤지컬이긴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란 되게 큰 무대에였거든요. 거기서 공연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배우가 돼야겠단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 내 감정을 동화시킬 수 있는 그런 배우의 모습을 꿈꿨어요. 그때부터 이제 다시 치열하게 살았죠. 물론 어떤 실패에 의해서 내가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를 위해서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죠. 그때도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밤 11시까지 라디오하고, 12시까지 대학로 와서 새벽 2시까지 수업 받고 아침에 학교 가고, 이런 식의 생활을 한 5~6개월 가까이 하다가 이제 지금의 꿈꾸던 대학교에 들어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무대를 공부하고, 그러던 와중에 처음으로 들어온 작품이 <황진이>였어요.

아무래도 <황진이> 이후 사람들이 장근석을 배우로서 새롭게 인식했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드라마 <홍길동>에 캐스팅 됐단 소식 들었어요. 유난히 사극과 인연이 깊네요.
제 겉모습이 고전적인가 보죠. (웃음)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황진이>때 많이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나 봐요. 사실 <홍길동>이란 작품에 섭외된 것도 <황진이>의 인연 덕분이기도 해요. <황진이>를 연출하셨던 김철규 감독님께서 추천을 해주셨거든요.

결국 사극의 인연이 다시 사극을 맺어준 셈이네요.
사실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처음 대본 들어왔을 때, 사극이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기도 했고요. <황진이>의 사극 이미지가 지금도 워낙 강하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에 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탓도 있었어요. 그런데 <홍길동>은 <황진이>와 성격이 워낙 틀린 사극이더라고요. 연출자와 작가분들이 전형적인 대하드라마와 무관한 스캔들 드라마로 유명한 분들이시고,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맘에 들었어요. 굉장히 칼날이 바짝 든 악역이에요. 날카로운 캐릭터라서 하고 싶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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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진행 중 악역으로 변모하는 캐릭터 같던데.
약간의 사이코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죠. 후에 왕위에 오르면서 밑에 있는 신하들을 숙청하려 들면서 그런 성향이 짙어지죠.

그런데 의외로 대화를 나눠보니 애늙은이네요! (웃음) 그런 말 종종 듣지 않아요?
감독님도 저한테 그래요! (웃음) 아까도 같이 인터뷰하는데, ‘얘는 말하는 게 애늙은이야, 말하는 거 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웃음) 물론 저는 제가 애늙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기자 분께서 인터뷰 후에 그러시더라고요. ‘장근석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가 열 살이 많아지던지, 혹은 내가 열 살이 어려진다’고. 같은 주제에 같은 감성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게 제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사실 현준을 좀 더 꺼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니까 촬영하면서도 사실 감독님과 계속 의견을 나눈 건데, 전 현준이를 더 보이고 싶었거든요. 현준이를 더 보이고 싶었는데, 감독님께서는 ‘넌 보이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배치상 너 하나밖에 없어서 보이게 되는 역할이다. 나중에 관객들이 널 찾아서 봐야지, 네가 그걸 일부로 나타내려고 하면 더 역효과다. 앞으로 작품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고.’라고 말씀해주셨죠. 그 땐 잘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니까 그 말씀이 대충 이해가 됐어요. 촬영 초반엔 더 나타내고 싶었지만 이젠 감독님 말씀이 맞았던 거 같아요.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저도 만족스러웠던 거 같고 흡족했어요. 사실 악기 연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촬영할 때도 긴가 민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크게 어색한 거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죠.

<즐거운 인생>이 자신에게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진 제가 뭔가를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쉽게 말할 순 없지만 그런 과정은 있었어요. 감독님을 처음 뵀을 때가 제가 이제 배우라는 꿈을 막 안고 이제 제가 갈 길을 정해야 하는, 마치 사춘기처럼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는 방황의 시기였어요.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분은 내가 그런 걸 말했을 때 굉장히 진실적으로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이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 (인터뷰가 진행된) 이 자리에서 만났거든요. 이 자리에서 만나서 이야기했죠. ‘저는 배우가 너무 되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지닌 엔터테인먼트의 기질을 버리고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맨손으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기까진 용기가 너무 부족합니다.’라고 시작했죠. 그렇게 제 맘속에 있는 진실된 말들을 많이 꺼내드렸더니, 감독님께서도 그만큼 저를 새롭게 보셨나 봐요. 단지 얼굴만 잘생긴 꽃미남 아이돌 정도로 생각하셨는데 그 내면에 대한 교감이 생겼던 거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도 얘기할 시간이 굉장히 많았고, 작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제 인생에 대해서도 감독님께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그랬던 만큼 어떤 방향들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도 했죠.

연극 무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보죠?
굳이 연극과 영화를 나누자는 것보단 그 당시엔 배우로서 가장 순수해진 제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내가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 머리를 이렇게 하는 게 나을지, 그런 비주얼적인 장면들을 기준 삼아 평가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을 벗어 던지고 싶더라고요. 정말 0에서부터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때 저희 학교 동기들이 대학로 무대로 나가면서 굉장히 발전한 모습을 보았고, 그랬기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였거든요. 그랬었죠. 굉장히 좀 어지러운 시기였는데, 전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 그만한 가치에 달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연극 무대에 잔뼈가 굵은 세 배우를 만난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생각되네요.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랑 나이대가 비슷한, 혹은 좀 더 나이가 많은 다른 배우분들도 부러워해요. 정말 넌 돈 주고도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웠다고, 오히려 전 돈 받고 배웠잖아요. (웃음) 어쨌든 다들 부럽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한다는 건 엄청난 소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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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은 배우로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좋은 계기가 생긴 만큼 스스로가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려봄직도 한데.
일단 계획은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아직은 어리고 배워야 할 것도 굉장히 많지만 제가 너무도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나, 저희 학교에 계시는 교수님이나 공통적으로 배우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초적인 경험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나름대로 배운 지식들이나 경험을 쌓는 훈련법도 알려주셨죠.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기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중고등학교는 많이 못나갔지만 대학교는 악착같이, 정말 거의 매일매일 나갔어요. 그런데 한번은 주변의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너무 부러워졌고 그들의 심정이 궁금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모든 것들이 느끼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거의 생떼를 쓴 적이 있어요. 저희 매니저한테. (웃음)

아르바이트?
사실 작년에 너무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저와 동갑인 동기들은 방학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한 시간 동안 번 몇 천원을 꿀맛처럼 여기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랑스럽게 친구들한테 소주 한잔씩 사는 모습이 전 너무나 멋져 보였어요. 물론 저도 지금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전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순수함이 부러웠어요. 내 또래 친구들이 돈을 어떻게 버는지에 대해서 되게 궁금했었고. 그래서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커피전문점 같은 데서 파트타임으로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아르바이트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죠. 결국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땐 정말 그런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직접 경험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중요시해야 할 것 같아요.

만약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영업방해가 되지 않았을까요? (웃음)
그렇죠. 그래서 안됐던 것 같고. 사실은 제가 유명한 커피전문점 본사에 연락해서 돈 안 받겠으니까 2시간만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실질적으로 하진 못했죠. 지금도 하고 싶은 맘은 있어요. (웃음)

그래도 배우들은 연기를 통해서 간접경험들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어요.
네. 배우로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우리는 다른 인물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작품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물론 그런 것들을 작품 안에서 경험할 수 있지만 결국엔 연기로 보여주는 것들은 진실인가, 거짓인가의 문제 같아요. 기초적인 연극무대에서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훈련이 필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그들의 감정을 느껴야만 될 것 같고. 누군가가 그런 말 했었는데 ‘배우는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다’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저에겐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기다리다 미쳐>라는 영화도 찍은 것으로 아는데, 군입대를 소재로 했다고 들었어요. 고무신이라고 하나? (웃음) 군대에 대한 간접경험이 됐나요?
군복 입고 훈련 같은 걸 몇 번 연출했던 그게 뭐, 어디 경험이겠어요. 돌 맞을 거 같아요. (웃음) 경험했다고 하면. 군대 갔다 오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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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촬영한다는 건 지극히 간접적인 거라서, 사실 간접적이라고 말하기에도 무례할 수 있는 비주얼만 제가 입어본 거죠.

솔직히 난 20대 초반에 당장은 군대에 대해 깊이 생각 못 하다가 1,2년 지나니까 갑자기 피부로 와 닿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확실히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가기 전까진 군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본인의 나이가 딱 그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주변의 친구들도 지금 한창 갈 때니까.
대학 동기들은 하나 둘씩 가는 타이밍인 거 같아요.

그 때가 가장 번뇌가 밀려올 때에요. (웃음)
동기들이 한창 고민하다 하나 둘씩 가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학기 2학년을 마친 후가 피크인 거 같아요. 보통 다들 지금쯤 군대를 가는데 전 모르겠어요. 전 이제 막 배우가 되겠다는 제 도화선에 불을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실제로 지금의 결과물들도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셨고, 그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오는 거 같아요. 처음으로 이제 배우로서 나가야 할 길을 찾아서 가고 있는데 이 길을 아직 더 가보고 싶어요. 더 확고하게 밀고 가다가 정말 배우다, 쟤는 정말 배우다, 란 소리를 들었을 때, 아마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자신의 나이 대에 맞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본인의 의지대로 배우의 길 안에 머물러서 나이를 먹는다면 성인 연기를 보여줄 때가 오겠죠. 스스로 본인이 후에 어떤 연기자로 성장해 있었으면 하나요?
주변에서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너, 음반 언제 내냐’고. 계속 들어왔어요. <즐거운 인생> 하기 전부터. 구체적인 제의도 들어오고 그랬었는데 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배우의 모습이거든요. 만약 나중에 제가 20년, 30년이 지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할 수 있는 배우의 모습이라면, 아주 솔직한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 배우의 모습이, 그러니까 장근석이란 배우가 2~30년 후에 연기를 굉장히 잘 한다는 배우로 인식됐으면 좋겠고,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는 배우였으면 좋겠고, 그만큼 연기나 배우에 대한 직업에 매진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때도 오만함을 가지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노력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준익 감독님 영화가 항상 노는 영화였는데 그 중, <즐거운 인생>이 제일 대놓고 노는 것 같았어요. (웃음) 어쨌든 배우로서 놀듯이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인생을 사는 방법 아닐까요.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놀아보길 바라나요?
아직까지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배우가 제 위치인 거 같아요. 그런데 배울 때는 겸손하고 성실하게 배우되, 그것을 캐릭터로 표출할 때는 과감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과감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기죽거나 눌려서 내 자신을 표출하지 못하면 배우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일일 테니까. <즐거운 인생>같은 경우는 워낙 선배님들이나 감독님이 저에게 편한 자리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제가 거침없이 카메라 앞에서 까불 수 있었고, 싸울 수 있었죠. 그런 모습, 그 기분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어요. 점점 하나씩을 내 거로 만들면서, 하나씩 배우면서,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감 있게 놀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즐거운 인생>이란 어떤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자신감. 자신감이 좋아요. 저는 누군가가 저한테 ‘넌 지금 행복하니?’ 라고 물어본다면 ‘네, 저는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그 자신감이 결국엔 저를 계속 밀어주고 있는 힘이고, 물론 이제 막 젊음을 누리는 이십 대 초반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이십 년, 삼십 년 그런 모습을 제가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이 육십이 돼서 어깨에 힘주는 모습보다는 자연스럽고 밝게 웃으면서 나는 너무 행복하단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런 할아버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일단 지금의 장근석은 <즐거운 인생> 중이군요.
저는 너무 즐겁죠. 그리고 굉장히 만족해요. 주어진 제 삶에 너무나 만족하니까, 물론 목표는 아직 저 멀리에 있어요. 지금의 내 인생에 만족하는데 목표는 저기 있으니까, 이제 목표를 향해서 만족할 수 있게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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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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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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