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달인’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코너에 출연했다. 하지만 비로소 이제야 떴다. 흔히 프로에서 보인다, 안 보인다, 이런 얘기를 한다. 난 특색 없는 얼굴이라 안 보였다. ‘범죄의 재구성’ 때는 범인 분장을 지우니까 못 알아보겠다. 다른 사람 같다. 개그맨들에겐 농담 같은 고민이 있다. 내가 만약에 조금만 더 못생겼더라면 좀 더 특색 있는 얼굴이 됐을 텐데. 지금은 분장을 해야 나를 알아본다. 그게 좋고 싫을 때가 있다. 알아보면 불편한 자리가 있지만 못 알아보면 서운할 자리도 있으니까. 체육학과 출신이더라. 원래 중고등학교 때 축구부였다. 전주대학교 체육과도 특기생으로 갔지. 중고등학교 시절 단짝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합숙을 가면 그 친구랑 밤마다 토크쇼를 했다. 사람들이 웃어주면 너무 좋더라. 그때부터 개그맨에 대한 꿈을 키웠다. 원래 예고나 예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죠. 그래서 그 친구와 약속을 했다. 우리 대학가면 축구보단 하고 싶은 개그를 하자. 그 친구가 MBC개그맨이 된 특기생이면 축구를 잘 한 거 아닌가? 일단 실력 있는 학생이 축구를 그만 둔고 하면 감독님들이 이유도 묻고 잡으려 한다. “감독님, 저 축구 그만 두겠습니다.” “음, 그럴래?” 나 같은 경우는 그 정도가 아니었던 거지. (웃음) 평범한 선수였다. 그런데 어떻게 특기생이 됐나? 내가 다니던 학교가 잘했을 뿐이지. 배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우리 동기가 차두리, 위로 축구 그만 두고 개그맨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 그 당시에 부모님은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접고 그저 일에 끌려다니면 힘들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져라.” 그러셨다. 그렇게 제 앞에선 흔쾌히 허락하셨는데 지금 와서 말씀하시길, 그 당시에 사실 마음 고생이 많았다고 하시더라. 게다가 내가 집에선 말이 별로 없거든. 말도 안하고 축구만 하던 애가 어떻게 사람들을 웃기나 걱정을 하셨겠지. 집에선 왜 그리 조용했을까. 내가 집안의 장손이라 나와 한 살 차이 나는 친척 동생들도 내게 어른 대접을 해줬다. 그래서 집에선 의젓한 척을 하다 보니 얘기를 잘 못하게 되더라. 아마 내가 개그 하는 모습을 부모님께서 보셨을 때 일반 시청자 입장하고 똑같았을 거다. 웃기는 사람이구나, 싶었겠지. ‘달인’이 폐지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와전됐지. 병만이 형은, “내년부터 ‘달인’과 함께 각자 다른 코너를 병행하면서 점차 ‘달인’을 내리겠다.” 그랬는데 기사엔 ‘달인 내년 초 접고 각자 활동’ 이렇게 나간 거다. 사실 오래 하긴 했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 다른 코너로 인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달인’은 개그콘서트의 인터미션 같다. 쉽게 말해서 소극장 공연의 브릿지와 같다. 코너와 코너를 연결하는 쉬는 타임. 우리도 코너 사이에 짧게 한 두세 개씩 들어간다는 개념으로 짰는데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 몰랐거든. 아이디어가 풍부해야 할 텐데.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재다. 지금 같은 인터뷰도, ‘인터뷰의 달인, 16년간 인터뷰만 해오신 오보 종종 서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사실 개그를 하면서 웃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산된 호흡대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데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웃어버리면 약속이 망가지는 거다. 우리끼리 순간적으로 주고 받는 애드립이 많다 보니까 웃음이 터질 때가 있다. 종종 가학적인 개그는 리허설을 안 한다. 예를 들어 병만이 형이 실제로 매운 청량고추를 먹어야 할 때, 이걸 리허설 하면 그 맛에 대한 기억이 남아서 녹화할 때 연기가 들어간다. 그럼 자연스럽지 못하니까 100%리얼로 가기 위해 리허설을 하지 않는다. 그럼 녹화 때 병만 형이 그걸 먹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우리도 옆에서 처음 보니까 관객만큼 웃음이 터진다. 나름 사고 상황인데 그 상황마저도 개그로 응용한다. 멤버간의 호흡이 대단하다 느껴진다. 서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류담 형이 병만 형한테 대본에 없는 이상한 걸 시켰다가 병만 형이 당황한다면 앞으로 쉽게 애드립을 못 던질 거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고 팀워크가 끈끈하니 애드립 같은 것도 잘 나온다. 서로 언제부터 알게 된 사이인가? 병만이 형과는 개그맨 되기 전부터 알았다. 알게 된지 횟수로 10년 정도니까. 담이 형은 개그맨 되자마자 병만이 형과 붙어살다시피 했고 그래서 워낙 친해졌다. 원래 코너짜려면 서로 친해야 한다. 그래서 초반에 코너를 짤 때 친하지 않은 사람과 술도 자주 먹고, 같이 놀러도 다니기도 하고 그렇게 친해져야 쉽게 개그를 교환하지. 아이디어 냈을 때 속으로 이게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이런 불편함이 있으면 절대 안되니까. 영화로 데뷔했구나. 지금 공백기가 조금 길긴 하지만 영화배우라고 보시면 된다. (웃음) 그 때 병만이 형을 처음 만났는데 서로 개그감도 맞아서 꾸준히 연락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개그맨 선후배가 됐지. 셋 중 아이디어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나? 각 코너마다 아이디어 뱅크가 있지만 우린 특별히 누가 주도하는 경우는 없었다. 우린 셋이 모이면 항상 장난을 친다. 굳이 “아이디어 짜자, 모여.” 이게 아니라 항상 누가 먼저 시작하면 실생활이 연기가 된다. 실제 캐릭터들도 비슷비슷하고. 그런 게 하나씩 더해져서 코너가 만들어진다. 수제자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했나? ‘달인’ 첫 회를 봤다면 알 텐데 처음엔 지금처럼 정장을 입고 말끔한 상태에서 나타났다. 그런 상태에서 4차원 개그를 치는데 잘 안 먹혔다. 좀 밋밋하더라. 그래서 고민하다 우스꽝스럽게 분장하고 말짱한 척 서 있으면서 목소리 톤도 진지하게 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흔히 바보라면 우스운 몸짓을 하거나 오버된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지방 공연 때 분장실에서 형들에게 말하지 않고 무대 나가기 직전에 여자 옷을 갈아입고 수염을 이상하게 그린 뒤 안경까지 거꾸로 쓰고 나갔다. 그 상태에서 예전처럼 4차원 개그를 던지니까 사람들이 웃더라. 아, 이거다 싶었지. 나는 내가 바보라는 걸 모르고 진지한 척하지만 사람들이 볼 땐 바보 같은 분장이 보이니 웃기나 보더라. 처음 석 달 동안은 병만 형이 분장을 다해줬다. 처음엔 점하나를 그렸다가 그 다음엔 털을 붙이고 나중엔 한쪽만 더 길게 붙였지. 그게 지금의 수제자가 됐다. 그 이전 코너인 ‘뮤지컬’에 비해 대사량이 현저히 적어졌다. 부모님은 되게 싫어하셨다. ‘뮤지컬’에선 멋있게 노래하고, 연기하고, 대사도 많았는데 ‘뮤지컬’ 내리더니 어느 날, 얘가 바보분장하고 가만히 서있다가 맞고 들어가는 거다. 아버지도, “야, 굳이 꼭 그 역할을 해야겠냐” 하시더라. 그런데 ‘달인’이 인기를 얻으니까 지금은 굉장히 좋아하시지. 우리 아버지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프로에 출연도 하셨잖아. 바보 분장까지 하시고. 그랬나? 그 회는 못 봤나 보다. 몰랐다. 그 때가 ‘창피함을 모르고 살아오신 달인’이었거든. 병만 형이 “창피해서 못 해먹겠다.” 이러면서 들어가고, 내 차례에서 “저는 절대 창피하고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러면 담이 형이 “정말 창피한 거 없지? 아버지~.” 이러면 아버지가 분장 똑같이 하고 나오시는 거였다. 그런데 막상 나오시니까 정말 너무 창피하더라. (웃음) 그때 아버지께서 “니는 네 애비가 챙피하나? 나가!” 이 대사를 하셨는데 정말 달아나듯 나갔다. (웃음) 신봉선, 사실 처음엔 우리 기수가 부담이 많았다. 우리 위 기수인 19기 선배들은 신인 때부터 워낙 잘 했거든. 요즘 신봉선 씨는 예능인이 다 됐다. 그래서 종종 배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절대 그런 건 없다. 봉선이는 동기이자 동갑이라 친하다. 예전에 ‘북두신권’ 할 때, 아니, 그 코너를 기억하나? 사실 수제자가 거기 나왔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웃음) 여하간 “검색창에 내 이름을 쳐봐라.” 이런 대사를 날렸었다. “넌 누구냐?” “내 이름을 검색창에 쳐봐라.” 이거였지. 그 때는 프로필이 안 나왔다. 그런데 이젠 검색하면 프로필이 뜬다. 내가 동기들 중에서도 확실히 늦게 떴다. 다들 검색하면 이름과 사진 나오고, 직업 ‘개그맨’ 뜨는데 난 조금 늦게 생겼다. 사실 그런 것도 노렸던 거 같다. 이 정도 하면 뜨지 않을까? 그렇게 자신의 프로필이 생겼다는 건 어느 정도 유명해졌다는 의미다. 자신감이 생긴다. 지방 공연을 가거나 개콘 녹화 중에 ‘다음은 ‘달인’팀입니다’하고 등장할 때 다른 코너보다 함성이 크면 무대 위에서 굉장한 자신감을 느낀다. 어느 행사에서 수제자 이제 수제자가 아니라 달인이 돼야 할 텐데. 우리끼리 종종 하는 얘기지만 병만이 형이 이렇게 뜰 줄 몰랐다. 병만 형이 데뷔 8년 차 정도 되는데 이정도 경력에서 큰 이슈를 못 얻은 선배 개그맨들은 사실 현상 유지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거기서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게 대단한 거지. 나도 조급해 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개그를 꾸준히 하면 분명히 달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병만 형이 예전에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스타성이 없는 것 같다고. 그런데 지금 현재 개그맨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개그를 하잖아. 작년 연말에 병만 형 때문에 한번 더 놀랐다. 병만 형이 KBS연예대상에서 대상 후보에 오를 줄 누가 알았겠어. 수염을 지우고 츄리닝을 벗어야 할 순간이 올 거다. 올해 목표는, “아, 쟤가 대사도 할 줄 아네?” 이런 말을 듣는 거다. (웃음) 예전에 ‘뮤지컬’ 할 땐 행사MC 섭외가 들어오곤 했는데 지금은 말을 안 하다 보니까 현저하게 줄었다. 그래서 내가 간혹 말로 웃기면 신기해한다. 그래서 올해는 분장을 지우고 수제자가 아닌 개그맨 ‘봉숭아학당’에서도 수제자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소품을 상당히 많이 이용한다. 내가 ‘달인’에서 대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수제자 개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왜냐면 아무 말 없이 옆에 서있다가 끝나고 나서, ‘저기,’ 이 한마디 할 때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숭아학당’에서 대사가 많아지면 수제자 캐릭터 특유의 맛이 흐려질 거다. 그래도 내 딴에는 말을 안 하면서 웃겨야 하니까 말 풍선 같은 소품을 이용하는 거다. 그런데 말을 안 하니까 너무 심심하다. 항상 호시탐탐 끼어들 기회를 엿보는 거 같다. 간혹 몇몇 분들은 봉숭아 학당에서 하는 게 없다고 하는데 편집이 돼서 그런 거다. 녹화 때 실제로 보면 굉장히 많이 끼어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봉숭아 학당에서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 몇 개 빠지면 가만히 앉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항상 타이밍을 찾지. 그런데 눈치도 잘 봐야 한다. 봉숭아 학당에 많은 학생이 있지만 재미없는 학생은 편집되거든. 만약 별로 안 터져서 이거 편집될 거 같다 싶으면 안 나간다. (웃음) 반대로 이거 웃기다 싶으면 괜히 나가서 리액션 하고. 순발력이 관건이겠다. 무대 위에서의 경력이나 자신감이 중요하더라. 나도 올해 4년 차인데 신인 입장에서는 안 터지면 어떡하지, 이렇게 겁이 나서 못 하는 게 많다. 반면 무대 위에서 경력이나 자신감이 있으면 뭐든지 막 시도하게 된다. 재미없으면 말고. 시간과 경력으로 해결되는 문제인가. 개그맨들 중 대학로 소극장 공연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많이 떨게 된다. 카메라 울렁증,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 아무리 공연 경험이 많아도 확실히 방송은 또 다르다. 본인도 아직 떨리나. 무대 위에서 안 떠는 사람은 없다. 단지 떨리는 걸 사람들에게 숨길 수 있을 뿐이지. 실명은 거론할 수 없지만 경력이 오래된 모 선배는 아직도 무대에서 자기가 준비한 게 안 터지면 땀을 많이 흘린다. 녹화 때, 우리가 뒤에 모니터를 하다가 그것 때문에 많이 웃는다. 만약 예상했던 게 안 터졌다, 그러면 땀이 아주. (웃음) 무대 위에서 관객을 상대할 땐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갖게 된다. 가장 떨리는 순간은 언젠가? 새 코너 들어갈 때 그렇다. 인기 많고 안정적인 코너를 하던 사람이 새로운 코너를 들고 나갔을 땐 관객 반응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새 코너가 기존의 코너를 이기려면 기존보다 더 많은 웃음을 얻어야 된다. 그게 한 3~4주 지속돼야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거지. 그래서 새 코너 올릴 때 개그맨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살핀다. 많이 사랑 받았다. 그만큼 나중에 긴장도 클 텐데. 만약 수제자가 원래 내 모습이라면 부담감이 있을 거다. 난 지금 백지 상태다. 분장만 지워도 새로운 모습이 된다. 아직 내가 갈 길이 많기 때문에 부담감은 별로 없다. 물론 나도 ‘달인’처럼 사랑 받는 코너를 하다가 새 코너를 시도하면 긴장될 거다. 하지만 두려움보단 설렘이 앞서지 않을까. 분장을 지운 내 얼굴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벌써 설렌다. 어쩌면 아마 그때 다시 인터뷰 할 거 같은데. 아, 요즘 주가가 장난 아닌데? 이러면서. (웃음) 올해로 서른이다. 실감이 안 난다. 내가 30대가 됐다니! 동안이다. 그렇죠. 동안입니다. (웃음) 사실 나이로 치면 늦게 인기를 얻은 셈인데 그래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비교해보면 좀 늦은 셈이다. 하지만 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이쪽 길을 걸을 거라 생각하니까. 지금 병만이 형이나 수근이 형도 뒤늦게 이슈가 된 걸 봐도 끈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난 서른 다섯 이후까지 무대에서 착실히 버티고 그 이후로 버라이어티까지 진출하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 때쯤이면 개그의 달인이 되려나. 대사의 달인이 되겠습니다. 언변의 달인! (프리미어 '2009 ENTERTAINERS WE FOCUS') =지면의 확장판이며 지면과 달리 반말체를 사용했음= 사진 출처: 프리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