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소수의 지성인이 아닌 다수의 관객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수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영화란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한 편의 영화가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기엔 어렵다. 어쨌든 다수라는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흥행이 기준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중국 본토의 영화시장이 성장하고 영화의 제작편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영화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는 고무적일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중국의 영화 시장은
양적으로 팽창하는 게 사실이다. 거의 하루에 한편 단위로 제작 편수가 늘어날 정도로 활성화 되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활동 공간이 더 많아진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반면에 시장의 확대라는 건 상업적인 기질의 영화에 대한 요구로 점철될 수도 있다. 일방적인 소비의 목적으로 영화가 취급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실제로 그런 문제에 대한 토론도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과거를 보면 중국 감독의 95%가 거의 다 예술영화를 찍고 5%도 안 되는 감독들만이 시장성 있는 영화를 찍었다. 그렇게 예술성에 편중한 영화를 찍어내니까 관객들이 극장에서 중국영화를 보려고 안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박스오피스 5위 내는 거의 다 할리웃 영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장이 죽어버리다 보면 시장이 없어져버리는 사태로 연결될 수 있다. 내 생각에 기본적으로 시장이 먼저 커져야 투자 회사에서도 이익을 기대하게 되고 그로 인해 투자가 이뤄져서 영화산업이 활성화된다. 그렇게 되야 영화 판에 여유 공간이 형성돼서 예술영화도 지원해줄 수 있고, 다방면의 시도가 이뤄질 수 있는 거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중국 시장을 살펴본다면 시장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그리고 중국영화를 박스오피스 3위 안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건 분명 그런 노력을 통한 효과다.
하지만 영화는 상품이기 전에 예술이다. 결국 흥행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건 목적이 전도된 거 아닌가.
예전에 중국에서 ‘흥행하는 영화라 해서 좋은 영화는 아니다’라는 설을 들었는데 나는 그 말이 이상했다. 좋다거나 나쁘다를 말하기 위해선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술창작에선 표준이 없다는 거다. (테이블을 가리키며) 내가 이 테이블을 이 쪽에 놓는 것도, 저쪽에 놓는 것도 모두 창작이라 한다면, 누가 와서 나에게 이건 저기에 놔야 된다 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영화도 많은 돈이 투자돼서 만들어지는 만큼 일종의 사업이기 때문에 관중들을 불러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그게 결코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없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의 강제규 감독이 아시아와 한국에서 흥행을 이끌지 못했다면 과연 좋은 감독이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강제규 감독 영화의 작품성은 결국 흥행성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확인된 결과다.
작년, <황후화>의 국내 개봉을 위해 장예모 감독이 내한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견해에 동의하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박스오피스는 거의 할리우드 영화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영화를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를 단순히 시장성만으로 본다면 우리도 그에 대항할만한 시장성을 고집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자 하면 과거처럼 할리우드 영화에게 점령당하는 거다. 근래 중국 관객들이 중국 영화를 점차 선호하게 되는 변화는 모두 그런 고민을 통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거둔 효과다. 난 감독이란 ‘동사(動詞)’같은 존재라고 본다. 왜냐면 움직여서 영화를 찍고 그런 행위를 계속해야 되니까. 영화는 말로만 찍는 게 아니다. 장예모 감독은 영화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중국 영화계에서 공헌이 큰 감독이다. 그런만큼 세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상업 지향적인 태도에 따른 비난도 따르고 있다.
몇몇 영화평론은 상업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게 공격적인 말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너무 대중성을 노리고 상업적인 영화만 찍는다고. 하지만 만일 내가 소수 관객의 권리를 위한 영화를 찍는다면 그게 오히려 가식적인 것 아닌가. 그냥 그런 영화로 상 하나 타기 위한 심산이 될 테니까. 난 영화를 찍기 전에 ‘관객들이 무엇을 원할까?’ 혹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려고 할까?’ 이런 생각부터 먼저 한다. 그런데 요즘 몇몇 젊은 감독들은 영화제에서, 예를 들면 칸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같은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할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마치 상을 타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럼 그 영화 자체는 심사위원 몇 명을 위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오히려 상업영화가 더 낫지 않은가? 난 소수의 심사위원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수의 관객들을 고려하며 영화를 만든다. 전문적인 영화 매체와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감독들과 예술을 논하고자 하는데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겐 이 시장, 즉 중국의 영화 시장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좀 더 추가한다면 좋은 감독은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다.
할리웃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규모를 키운 영화들을 제작하는 건 좋다고 본다. 다만 그런 환경이 내실을 갖춘 소규모 영화들의 발달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거다. 예를 들면 작년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개봉관을 잡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고 들었다. 반면,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는 같은 시기에 대규모 개봉이 이뤄졌다. 이런 사태는 우려스럽지 않나?
일단 확실한 건, <황후화>가 중국에서 개봉했기 때문에 <스틸라이프>의 시장이 줄어든 건 아니다. 일단 <스틸라이프>는 중국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부를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 영화가 영화제를 위해 만든 영화나 다름없기 때문에. 중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첸카이커 감독과 장예모 감독, 펑 샤오강 이 세 명의 감독들이 중국의 영화시장을 너무 크게 장악하기 때문에 소규모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영화가 많이 눌렸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런데 1년 12달 중, 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하는 건 기껏 한달 남짓이다. 내 영화가 개봉할 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결국 11개월이라는 시간이 남는다. 그 나머지 시간 동안에 개봉되는 영화들의 흥행성이 떨어지는 건 결국 그들이 관객의 마음을 못 잡은 것 아닌가? 그건 우리 탓이 아니다. 작년, 중국에서 <스틸 라이프>보다 적은 예산으로 완성된 <크레이지 스톤(crazy stone)>이란 영화는 오히려 흥행이 좋았다. <스틸 라이프>보다도 더 소규모적인 영화였지만. 왜냐면 그건 영화제만을 고려한 영화가 아니라 관중들을 위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성이 뛰어나도 흥행성이 전무하다면 좋은 영화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인가?
그렇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구분할 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로 구분하는 것보단 영화의 규모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게 옳다고 본다. 대중을 위한 영화인가 소수를 위한 영화인가.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는 처음부터 소수 관객을 위하는 영화니까 그런 영화가 흥행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왜냐면 애당초 출발하는 지점이 그러했기 때문에.
영화의 성향에 따라 흥행성에 대한 기대감도 맞추어야 한다는 건가?
애초에 영화가 지니는 태도에 따라 이루고자 하는 결과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긴 힘들다. 상도 타고, 흥행도 잘 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도 심사위원을 해봤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할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영화들이 많은 숫자의 대중에게 관심을 얻고 흥행에 성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작 지향의 판세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근래 몇 년 사이 대작영화의 흥행으로 규모가 큰 영화의 제작 편수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제작비도 수직 상승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부작용들이 오늘에 이르러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작 영화들이 항상 관객에게 사랑 받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무너지면 시장 전체의 위기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물론 여러 가지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씬을 단순 비교한다는 건 어림없지만 이런 사례는 중국에서도 검토 대상이 될만한 사안 아닐까?
일단 내가 한국의 상황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만약 관객들이 소규모의 영화들을 선호해서 나타나는 상황이라면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만약 블록버스터가 외면당한다면 그건 관객들이 그에 싫증을 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아니라면 분명 영화 내부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거다. 단지 규모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 때는 그 문제의 핵심을 먼저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 관객이 좋아하는 방향에 따라 영화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건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다.
<집결호>는 최근 중국에서 제작되던 블록버스터들과 시대 배경이 고대에서 좀 더 현대로 옮겨져 왔다. 사실 고전적인 시대 배경과 무협적인 소재를 취하는 게 중국의 관객들을 공략하는 안전한 방법 아닌가? 그런데 <집결호>는 그런 코드와 무관하다. 어쩌면 일종의 모험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시도라고 본다. 난 처음에 코미디 영화로 데뷔해서 그 영화로 흥행 감독이 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다른 장르를 시도하니까 더욱 흥행했다. 관객들이 감독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좋아한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사실 <집결호>는 감동을 위한 영화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전쟁 영화를 선호하니까 전쟁으로 포장을 한 셈이라고 해도 좋다. 예전엔 중국에서도 전쟁영화를 많이 찍었다. 하지만 그건 국가 홍보용으로 찍은 영화들이라서 가식적인 메시지로 채워져 있었다. 홍보용이다 보니. 이번 영화를 위해 내가 직접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팀을 찾았고, 한국의 MK 픽쳐스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특수분장이나 특수효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의 스텝들과 같이 5개월 동안 많이 고생해서 찍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찍어놓은 영화를 보면 여태까지 중국에서 봐왔던 전쟁영화와는 정말 다른 생생한 작품을 찍어냈다.
<집결호>는 여러모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닮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감독 당신에게 꽤나 인상적인 영화였나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첫번째로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그 다음에 생생한 전쟁의 질감이 잘 묘사됐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런 질감이 표현된 영화다. 난 유럽의 세일링(selling) 담당자들과의 대화 중, 전쟁영화를 언급해야 할 때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린다. 이번 <집결호>를 위해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텝들이 많은 준비를 했고, 그 때보다 더욱 기술이 발전된 덕분에 <집결호>에 많이 응용됐다. <집결호>의 하이라이트 몇 장면을 중국의 스텝들에게 보여줬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국의 스텝들을 다 중국으로 초청해서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지금 기획되고 있는 오우삼 감독의 <적벽>이나 루주안 감독의 <남경대학살>같은 영화에서도 적극적으로 그런 의견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태극기 휘날리며>는 외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국의 기술로 완성된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기술로만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을 법도 한데?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을 당시, 한국 스텝으로만 이 영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촬영에 임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었기 때문에 좋은 스텝들을 양성할 수 있었고 이렇게 수준 높은 스텝들이 한국에 많아졌을 거다. 그런 면에서 강제규 감독이 한국과 아시아 영화에 공헌한 부분이 많다. 한편으로 강제규 감독이 그런 결심을 했던 건 일종의 모험이었고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나도 처음엔 <집결호>의 모든 스텝들을 중국인으로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중국의 스텝들은 솔직히 그럴 정도의 수준에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험하기에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헐리웃 스텝과의 작업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만약 <집결호>를 한국의 스텝들과 할 수 없었다면 헐리웃의 스텝들을 초청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비싸다. 그리고 만약 헐리웃의 스텝들이 중국까지 오려고 할 것인가도 미지수다. 그들에게 중국은 생소해서 위협적 일수도 있고 중국 시장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경계심이 생겨 도움을 주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스텝과의 작업에 문제는 없었나? 언어소통 이라던지.
별로 그런 건 없었다. 좋은 통역도 있었고. 영화인들과 작업하다 보면 꼭 말을 다하지 않고
절반만 이야기해도 무엇을 말하는 건지 다 안다. 한국 영화계에 기술적으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 까닭은 한국이 그런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들을 먼저 시도했기 때문이다. <집결호>를 통해서 본 한국 스텝들은 할리웃의 수준,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이 소규모 영화의 제작만을 지향했다면 이런 인재들은 없었을 것이다.
의아했던 건 무술감독도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무술감독은 중국에도 많고, 오히려 더 유능할 것 같은데?
만일 쿵후 같은 무술 영화를 찍었다면 중국 무술 감독을 썼겠지만 <집결호>는 전쟁 영화이기 때문에 전쟁 영화에 정통한 좋은 무술 감독을 찾았지만 중국에 그런 분야에 걸맞은 무술 감독이 없었다. 그리고 폭파 장면 같은 위험한 특수효과를 위해서는 무술감독과의 싸인이 잘 맞아야 촬영 시 안전성 문제가 많이 줄어든다. 언어상의 소통이 되지 못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한국의 스텝들과 작업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합작 형태의 영화 제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헐리웃에 대항하는 비헐리웃 영화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합작영화들이 앞으로 지닐 수 있는 비전을 생각해본다면?
합작영화는 좋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홍콩과 중국의 합작영화가 많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현재 중국은 홍콩 감독들의 주류시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 영화계가 기술 교류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한국과 중국이 각자 서로의 기술을 교류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시장을 넓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난 종종 한국 드라마를 부모님께 권해드리는데 그럴 경우 부모님도 잘 보시더라. 그런데 아마 미국 드라마를 권해드리면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 사람이니까 가족에 대한 관념을 비롯해서 문화적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공감대의 여지도 큰 것 같다. <집결호>는 아시아 영화인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스텝들이 한국 스텝들과 함께 작업하며 한국 스텝들의 우수한 기술력과 프로다운 의식수준을 많이 배웠을 거다. 결국 공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현상인 셈이다.
오우삼 감독은 최근 본국으로 돌아와 <적벽>을 기획 중이지만 중국 감독 중 헐리웃에 진출해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다. 본인도 헐리웃에 진출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헐리웃의 기술을 이용한다거나 자본을 끌어들여 찍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난 중국의 영화를 찍고 싶다. 왜냐면 난 중국의 생활에 익숙하고 그런 모습을 잘 찍어내기 때문에. 내가 헐리웃에 가서 미국의 생활을 영화로 담아내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런 건 미국 감독들이 더 잘 할 테고. 한국 영화는 한국 감독들이 만들어야 하듯이.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