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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4 <걸스카우트>아줌마와 어머니, 여성의 양면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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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를 위한 투자로 탕진을 거듭하다 남편과 이혼하고 딸의 양육권마저 빼앗긴 미경(김선아)은 봉순(이경실)과 이만(나문희), 은지(고준희)와 이웃이자 같은 곗돈을 넣는 사이다. 그런데 그들의 계주였던 미용실 원장 성혜란(임지은)이 곗돈을 들고 튀었다. 게다가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는 봉순은 아들의 수술비를 곗돈으로 충당하려던 차에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결국 그들은 함께 곗돈을 찾아 떠난다. 단지 곗돈을 들고 달아난 성혜란이 잘 간다는 미사리의 카페를 향해서 무작정 간다.

 

곗돈 떼인 아줌마들의 억척스런 고군분투를 담고 있는 이 영화가 <걸스카우트>라는 제목을 달게 된 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별반 까닭 없다. 게다가 그녀들은 (girl)’이라 불릴만한 이들도 아니다. 물론 그것이 (역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영화와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녀들의 연대가 어떤 조직적 슬로건을 머리말로 삼기엔 그리 조직적인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곗돈을 떼먹고 달아난 이들을 찾기 위해 막연한 단서 하나만 믿고 뭉친 것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그녀들은 걸스카우트란 이름으로 자신들을 지칭하게 된 것뿐이다. 결국 <걸스카우트>에서 걸스카우트는 별반 의미 없음을 통해 그 연대의 가치를 재생산한다. 제 각각의 사연을 통해 여자란 이름을 잃어버리고 아줌마로써 억척같이 살아가야 하는 그녀들의 환경을 환기시키고 그 연대에 필연적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20대인 은지를 제외한 30대 미경과 40대 봉순, 60대 이만은 각각 아줌마라고 불리는 여성이다.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그녀들에게 여자로써의 정체성은 아줌마의 삶에 매몰된다. 게다가 20대인 은지마저 죽은 아버지가 남긴 사채 빚을 떠안으며 빚 독촉에 시달린다. 그녀들을 괴롭히는 건 치열한 자본주의적 살풍경이다. 게다가 매번 재테크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던 미경은 곗돈마저 떼이고, 망나니 같은 아들의 박대 속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이만도 삶이 순탄치 않다. <걸스카우트>는 이토록 삶이 만만치 않은 여성들을 한데 모으며 그들을 자연스럽게 연대시킨다. 고단한 삶에 억매인 그녀들은 세대차이를 뛰어넘어 여성이라는 굴레로 얽힌 사연 아래 정렬한다.

 

<걸스카우트>는 여성의 연대를 남성에 대한 적대감 혹은 열등감의 반대급부로써 배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상시킬만한 것이기도 하다. 아줌마라는 이름 안에서 그녀들은 억척스럽지만 어머니란 이름 안에서 그녀들은 강인해진다. 삶의 피로를 남성에게 떠안길 수 없는 생계의 주체라는 점에서 그녀들은 고단하지만 굳세다. 나약한 여성상을 넘어 아줌마의 탈을 쓴 어머니의 강인한 모성을 두른 <걸스카우트>는 여성을 남성의 대리적 자아로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가될만하다. 

 

각각의 캐릭터에 집중하던 영화는 중반부로 넘어가는 동시에 긴박한 추격전으로 양상을 달리하며 호흡을 조절한다. 쫓고 쫓기는 활극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우여곡절은 매 순간 반전을 발생시키며 유연한 이야기적 묘미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스타일리쉬한 화면전환과 재치 있는 상황 설정은 나름대로 특별한 감상을 남긴다. 물론 한바탕 시끄럽게 몰아치던 이야기가 다소 허탈하게 내려앉는 결말부는 진부한 감이 없진 않지만 그 말미에서 등장하는 풀스윙 이미지마저도 나름 구도가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도 억척스럽지만 살가운, 아줌마와 어머니라는 여성의 양면성을 통쾌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그려낸다는 점은 <걸스카우트>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이는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했을 여배우들의 고군분투가 일군 성과이기도 할 것이다.

(씨네서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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