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족보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어딘가 친숙하다. 예술영화라는 말보단 가볍고, 블록버스터보단 고상하다. 아트버스터가 대중에게 먹힌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8월에 개봉된 <비긴
어게인>은 10월까지
3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3개월간 다양성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수성해왔다. 다양성영화 중엔 최초로 세 자릿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비긴 어게인>이 흥행에 탄력을 받게
된 시점부터 아트버스터라는 단어를 명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트버스터는 ‘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라고 정의하는 신조어다. ‘아트’보단 ‘버스터’에 방점이 찍히는 인상이다. 올해 아트버스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지난 3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개봉 직전이었다. 그 이후로 아트버스터는 대단히 보편적인
용어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일찍이 2011년에 영화 <북촌방향>의 홍보과정에서 한차례 사용된 바 있었지만 올해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미디어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널리 읽히고 발음된다.
<비긴 어게인>을 홍보한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예술영화라고
하면 지적인 예술을 즐기는 소수 취향의 영화라고 느껴져서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있다. 그런 거부감을
대중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대중들의 입장에선 아트버스터라는 단어가 생각 이상으로 친근하고
쉽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녀>, <프란시스 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등 아트버스터라고
불린 영화들에게선 어떤 공통점이 발견된다.
“사실 완성도가 뛰어난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이긴 한데 주제가 가볍게 느껴지고, 표현방식이 예쁜, 소위 ‘달달한’ 영화들이 전반적으로 잘되는 분위기다.” 영화사 그린나래미디어의 유현택
대표의 말처럼 아트버스터라고 명명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관객의 취향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테면
전체적인 영화의 형태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영화의 일부가 되는 소품들에 대한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그러니까
어떤 관객에겐 아트버스터를 본다는 건 소품숍을 방문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가 된다는 말이다. 아기자기한
파스텔톤의 소품이 즐비하게 등장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미래적인 환경 속에서도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온화한 색감이 인상적인 <그녀>는 그 단편적인 이미지의 취향을 소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만족감을 부른다. 게다가 아기자기한 디테일과 거창한 스케일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충족시킨다.
KT&G 영화사업팀 팀장 진명현은 아트버스터에 대한 소비 욕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독립영화들은 저렴해 보여서 싫고, 상업영화는 평범해
보여서 싫은 관객이 존재했던 것 같다. 요즘 소위 아트버스터라고 불리는 예술영화가 그 영역을 잘 파고든
것 같다.” 결국 아트버스터를 본다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 특별해진다는 만족감을 즐기는 관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선 도시를 잘
묘사한 영화들의 성적도 하나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진명현 팀장은 말한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보다도 도시가 키워드인 거 같다. 제목에 유명한 도시 이름이 들어간 영화들의 흥행이 나쁘지 않다. 대표적으로 <미드나잇 인 파리>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그랬고,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흥행했다. <프란시스 하>나 <비긴 어게인>도
영화의 배경인 뉴욕을 잘 보여준다. 해외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런 영화들은 낭만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SNS가 아트버스터의 열풍을 확산시키는 경향도 있다. 고급스러운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듯이 자신의 남다른 영화적 취향을 타인에게 전파한다. 영화적인 취향을 통해서 자신을
메이크업하는 거다. 예전에 비해서 영화를 많이 보지만 과거의 시네필과는 달리 진지한 영화적 비평에 심취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영화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전시하고 음악을 공유하는데 집중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소품을 활용한 머천다이즈 제작을 통한 마케팅이 활발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포스터와 스티커, 엽서는 물론 텀블러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사회나
이벤트를 통해서 배포한다. 저예산 마케팅을 추구해야 하는 다양성 영화들의 필연적인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이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취향을 적절하게 건드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유명한 셀러브리티나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하거나 게스트로 초대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마련하는 이벤트가 잦아진 것도 유명인들의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부여한다.
“SNS의 전파속도가 빠른 만큼 어느 영화나 예쁘고 감각적인 아트워크나 감성적인 텍스트를 통한 마케팅이 선행적으로
이뤄지는 거 같다. 대체로 이런 방식은 20~30대 여성
취향에 정확히 적중하는 경우가 많다.” 유현택 대표의 말은 20~30대
여성들이 아트버스터의 주요한 관객층에 속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네이버의 영화 섹션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녀>, <프란시스 하>와 같은 아트버스터 류의 영화들은 20대 여성의 호감도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극장 환경의 변화도 주요하다. 과거와 달리 다양성영화를 상영하는 요즘의 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멀티플렉스 체인에 준하는 쾌적한 환경을 조성한다. CGV 무비꼴라주나 롯데시네마 아르떼처럼, 멀티플렉스에서도 예술영화
전용관이 확대됐다. 극장 환경에 대한 거부감은 남성보단 여성 관객에게 예민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선 바람직한 결과다.
“예전엔 50개
미만의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다양성영화 시장과 200개 이상의 개봉관을 지닌 상업영화 시장으로 분류됐는데
요즘은 100개 전후의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중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유현택 대표의 말처럼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여러모로 반길만한 일이다. 다양한 취향을 배려할 수 있는 시장의 확대는 결국 전체적인 시장 규모를 확대시킬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편식의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아트버스터 열풍 속에서
영상미나 음악 좋은 영화를 찾는 경향이 많아졌다. 수입 경쟁이 심해지고 수입 단가가 치솟는 경향이 발생한다. 영화의 투자 비용이 상승할수록 손실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는 전체적인
시장성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트버스터는 여전히 불명확한 단어다. 그만큼 시장의 미래도 불확실하다. 확실한 건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건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지금
아트버스터라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기회란 말이다.
언제나 인형 놀이를 하듯이 영화를 만들어왔던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놀랍도록 비범한 걸작이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거듭해서 보면 볼수록 그가 대단히 고집스러운 감독이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됩니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상하좌우로 정갈하게 이동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여지없이 딱 떨어지는 좌우대칭의공간 구도, 카메라가 비추는 공간 곳곳을 채운 소품들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는 인위적인 완결성, 그 인위적인 풍경 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캐릭터들의 도드라진 설정과 과장된 연극적인 연기를 펼치며캐릭터 역시 하나의 무대 장치처럼 자리잡게 만드는 배우들, 유아적인 낙천성을 끌어안은 동화적인 세계관.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이 지닌 이 모든 일관성은 그의 영화들을 특별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특수한 개성이라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귀여운 소품 이상의 무언가로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영화 자체가 지닌 특이한 개성에 동감하면서도 사적인 취향으로 점철된 소유물 취급을 당하기 쉽다는 말이죠. 대중적인 공감대를 얻기 쉬운 영화는 아닐 거라는 말입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기존의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동원되는 모든 요소들 또한 감독의 취향과 의도에 완벽하게 복무하고 있고, 철저히통제되고 있습니다. 물론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그의 인형 놀이에 동참하면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그 놀이를 즐길 것임에 분명합니다. 배우들 입장에선 이런 방식의 기회가 많지 않을뿐더러 믿을만한 감독이 쥐어준 일탈과도 같은 연기적 경험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보세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놀라운 캐스팅입니다. 개중 몇몇은 정말 두 신 안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 영화에 출연하는 건 그만큼 이 놀이를 즐기고 싶어한다는 방증이겠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이란 감독에 대한 배우들의 선호도를 대변하는 척도가 될만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영화는 동유럽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주브로스카의 산 꼭대기에 위치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시작됩니다. 한때 세계 최고급 호텔로 꼽히던 이 호텔의 흥망에 대해서 간략하게 브리핑하며 그 간극의 사연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던 영화는 직접 인물의 입을 통해서 그 사연에 대해서 상세하게 구술, 정확하게는 재현하기 시작합니다. 궁극적으로<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야기꾼의 영화입니다. 웨스 앤더슨이 지어낸 허구의 세계를 영화 속 화자의 입을 빌어서 사실적 재현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셈이죠. 언제나 그렇듯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역시 웨스 앤더슨의 전작들처럼 허무맹랑하지만 귀엽고 순진한 어드벤처의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밀고 나갑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다양한 공간들이 등장하고 그 공간과 공간의 연계는 세트를 부순 자리에 새로운 세트를 바로 지어세우듯이 동선의 연계성을 의심한다는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손쉽고 간편하게 이뤄집니다. 그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임에 틀림없으며 그 공간의 변화와 함께 등장하고 퇴장하는 배우들의 이름을 수집하는 것 역시 특별한 재미를 주는 작품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기존의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처럼천진난만한 낙관성으로 점철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인물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서 형성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어드벤처는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 안에선 이례적인 폭력성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활기가 넘치고 냉소적인 유머와 개성 있는 캐릭터의 향연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대단히 동적이며 과장돼 있고,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결말부에 다다르면 기존의 웨스 앤더슨표 영화들과다른, 놀라울 정도로 생소한 감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 비극성을 감정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듯 환기시키는데 생각 이상으로 큰 울림이 남습니다. 개인적으론 웨스 앤더슨의 데뷔작인 <바틀 로켓>부터 최근작이었던 <문라이즈 킹덤>까지 단 한번도 체감해보지 못했던 상심과 애수에 가깝습니다.
기존의 웨스 앤더슨 영화들이 외부의 사건을 감독 개인의내적인 세계관에 집약시키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의 모티프가 됐을 법한 외부적인 사건을 내적인 세계관에 반영해서 인테리어했을 뿐, 그 외적인 모티프의 너비를 보존한 가운데서 보다 폭넓게 외부적인 영역으로 확장해 낸듯한 인상입니다. 영화는 여러 모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파시즘이나 나치즘이 부른 살풍경들을 연상시키는데 이런 비극성의 요소들을 극적인 소품으로 활용하지 않고정면으로 마주보며 그 의미 안으로돌진해버립니다. 결국 그 비극성을 우회하지 않고 돌파해버리는 것이죠. 결국 객석의 관객들 역시 영화와 함께 그 비극성의 통증을 고스란히 관통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이 드러낸 최초의 비범함이자 거장으로서의 면모라고도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부연할 필요도 없는 걸작입니다. 게다가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가운데서도 이런 감정적인 여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웨스 앤더슨이란 창작자가품고 있었던 새로운 너비를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웨스 앤더슨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오랫동안 회자될 작품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론 영화의 결말부를 지나며 가슴 속에서 종이 울리는 기분마저 느꼈습니다끼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울림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서 상영관을 벗어난 뒤에도 한동안 멍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분이었죠.
웨스 앤더슨의 영화답게 음악의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명 음악감독인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와 랜달 포스터가 함께 완성한 이번 OST는 러시안 포크를 비롯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유럽의 악기들을 최대한 활용한 음악들로 채워져 있는데 덕분에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선율에도 영화의 특이성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것이 한편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그리는 세계관의 특이성을 보다 도드라지게 반영하고 있다는 감상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화면 비율이 거듭 바뀌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960년대에 유행했던 2.35:1의 와이드 스크린 비율을 비롯해서 1930년대에 유행했던 1.37:1, 그리고 오늘날에 자주 활용되는 1.85:1의 비율로 화면이 변하는데 이는 각각 그 시대에 유행했던 화면비를 적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화면비의 적용이란 곧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엄격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그 시대의 시선을 대변하겠다는 야심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이 적극적으로 반영한 최초의 현실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결과적인 상심이나 애수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지금 웨스 앤더슨과 같은 창작자 역시도 간과할 수 없는 폭력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사실 아닐까요. 영화의 배경이 된 동유럽에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