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을 쓴 팬더가 날렵하게 날아올라 적들을 제압한다. 다양한 초식에서 비롯되는 일격필살에 벌떼처럼 날아들던 적들이 죄다 꼬꾸라진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묵직한 팬더의 현란한 몸놀림. 하지만 그것은 팬더의 백일몽에 불과하다.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깬 팬더는 비좁은 방에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뒤뚱거릴 따름이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어울리지 않게 작은 앞치마를 몸에 두르고 대를 걸쳐 이어온 아버지의 국수가게에서 국수를 나르고 배달한다. 그렇게 몸은 국수를 말고 있지만 마음은 쿵푸에 꽂힌 팬더는 결국 아버지의 희망을 배반하고 쿵푸대회가 열리는 시합장으로 계단을 오른다.
<쿵푸팬더>의 스토리텔링은 명백하게 상투적이다. 권선징악과 성장스토리의 데코레이션을 얹은 비만팬더의 쿵푸 도전기는 분명 지극히 상투적이라 지적할만한 내러티브를 지녔음에도 그것을 간과하게 만든다. 복부비만(?)으로 계단조차 힘겹게 오르는 팬더 포(잭 블랙)가 전설적인 쿵푸 후계자로 선정되어 그토록 갈망하던 쿵푸를 익히게 된다는 설정이 작위적인 우연에 기대고 있음에도 이는 <쿵푸팬더>를 폄하하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쿵푸팬더>가 관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 동원한 전략적 방점은 캐릭터와 설정의 묘미에 찍혀있기 때문이다.
<쿵푸팬더>는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를 훌륭한 창조력으로 돌파하며 유희적인 소임을 다한다. 살집만큼이나 넉살이 풍부한 포를 비롯해 동물을 응용한 쿵푸 초식-호권, 후(원숭이)권, 사권, 학권, 당랑권-을 상징적 캐릭터로 배양한 직설적인 캐릭터 등 외모부터 성격까지 다양하고 뚜렷한 캐릭터들은 단순한 이야기에 풍부한 감성을 주입한다. 무엇보다도 경쾌하고 귀여운 위트로 무장한 비만팬더의 포는 <쿵푸팬더>의 유희 그 자체를 온몸으로 작동시킨다. 그저 표정만 봐도 희극을 기대하게 만드는 팬더 포의 미워할 수 없는 능청스러움은 잭 블랙의 탁월한 목소리 연기와 맞붙어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킨다. 특히 식탐이 강한 포가 <스타워즈>시리즈의 요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너구리 쿵푸스승 시푸(더스틴 호프만)의 만두 수련(?)을 거치는 장면은 캐릭터의 대비를 극대화시키고 그 성격까지 영리하게 반영시킨 시퀀스를 연출함으로써 명백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나 슬로 모션을 응용한 몇몇 장면은 특별한 웃음을 제공한다.
권선징악으로 치장한 무한도전 성공담은 닳고 닳은 초식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쿵푸팬더>는 잘 만든 캐릭터 하나 열 배우 안 부럽다는 애니메이션의 기본기가 단단하다. 쿵푸팬더 포를 비롯한 창조적 캐릭터들을 통해 다양성의 이미지를 확보하고, 이로부터 유희의 절대적 내공을 끌어내는 <쿵푸팬더>는 단연 신나고 군더더기 없이 즐거운 오락적 묘미를 제공한다. 게다가 제 각각의 캐릭터와 절묘하게 부합되는 이미지의 배우들이 목소리를 통해 생동감을 더하며 캐릭터적 이미지에 설득력까지 더한다. 이는 뛰어난 세공력을 바탕으로 실사와 다를 바 없는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만화적으로 재생산해내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단출하면서도 뛰어난 아이디어와 창조적 마인드가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지를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다가올 베이징 올림픽에 발맞춰 쿵푸와 팬더를 결합한 드림웍스의 전략은 그 자체로 속물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쿵푸팬더>는 그런 의심 따위는 거둬도 될 만큼 시종일관 유쾌하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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