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렐은 어려서부터 길들이기 어려운 야생마와 같았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하던 삶은 배우라는 단어 앞에서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방탕한 문제아에게 꿈을 제시한 건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 즉 배우로서의 야망이었다.
콜린 파렐은 정제되지 않은 듯한 혈기와 출렁이는 불안을 품었다. 살짝 찡그린 미간과 살짝 숙여내린 얼굴로 상대를 응시하는 눈은 외로움과 나약함으로 흔들리다가도 과감한 반항기를 거칠게 들고 일어선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한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힐 만한 파렐은 그 이전에 가십을 제공하는데에도 바쁜 셀레브리티였다. 최근에도 런던의 술집에서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구설수에 오른 바 있지만 이는 파렐로부터 불거져 나온 과거의 대단한 사건들에 비하면 파파라치들에게 딱히 매력적인 먹잇감도 아니었을 게다. 수많은 여성들과의 염문과 섹스 비디오 유출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상은 호사꾼들을 위한 안주거리처럼 떠돌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파렐을 주목받게 하는 건 분명 그가 선택한 배우로서의 성공적인 행보 덕분이다.
1976년, 콜린 파렐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더블린 교외의 캐슬낙에서 자란 파렐에게 배우로서의 현재를 제시하고 연기적 재능의 반석을 닦은 건 그의 누나 캐서린이다. 캐서린은 언제나 늦은 시간까지 고전영화들을 즐겨 봤고, 파렐은 그때마다 그녀의 옆에서 같은 곳을 응시했다. 파렐의 시선에서는 말론 브란도나 폴 뉴먼, 마릴린 몬로와 같은 배우들의 명연기가 펼쳐지고 있었고, 그는 그들의 연기에 매혹당했다. 또한 12세에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하는 누나를 보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찾은 공연장에서 파렐의 꿈은 더욱 부풀었다.
그러나 파렐의 십대는 거칠고 성겼다. 클럽과 슬램가를 전전하며 주먹질을 하거나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는데 바빴던 파렐은 지독한 음주와 약물에 찌들었다. 심지어 그는 18세 때를 회상하며 “단지 6개월간 술독에 빠져지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덕분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당시 그를 진료한 의사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왜 당신의 우울증을 이상하게 여기는 거죠? 당신의 쇼핑 리스트를 읽어봤나요?”
하지만 파렐의 방탕한 생활은 그가 품었던 배우로서의 꿈마저 망가뜨리지 못했다. 그리고 1995년, 그에게 운명적인 기회가 찾아온다. 친구들과 함께 1년여 동안 호주에 머물던 파렐은 시드니의 교외에 있는 본디에서 유명 사진작가 스튜어트 캠벨을 만난다. 캠벨은 파렐의 재능을 알아봤다. 그래서 그를 자신의 아일랜드 친구이자 호주국립예술학교(NIDA)의 연기팀장인 토니 나이트에게 소개한다. 나이트는 파렐에게 연기에 매진할 것을 권하며 시드니의 클리브랜드 거리에 있는 아마추어 공개 공연장을 추천했다. 결국 그곳에서 처음으로 스티브 하트의 <Kelly’s reign>으로 무대에 오른 파렐은 후에 이를 회상하며 말했다. “카우보이나 인디언을 연기하며 빵빵거리다 죽는 시늉이나 할 줄 알았던 누군가에게는 완벽해 질 수 있는 기회였지.”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간 파렐은 1996년, 캐서린을 따라 가이어티 드라마 스쿨에 입학한다. 그리고 같은 해, 파렐은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다.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가 출연한 <핀바를 찾아서>(1996)에 단역으로 출연한다. 크레딧에조차 포함되지 못했던 이 작품 이후로 또 한번의 단역 경력을 거친 그에게 진정한 의미로서의 영화 경력은 팀 로스의 <전쟁지역>(1999)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2000년, 파렐의 첫 주연작아저 조엘 슈마허가 연출한 <타이거랜드>가 개봉됐다. 1971년, 베트남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던 미군 병사들이 전장에 가길 꺼리며 탈영을 시도한다는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어낸 이 작품에서 파렐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두각을 드러낸다. 그 후로 악명을 자랑했던 무법자 제시 제임스를 연기한 서부극 <파이브 건스>(2001)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하트의 전쟁>(2002)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했지만 두 작품은 비평과 흥행면에서 온전히 참패했다. 그 사이에 파렐은 개인적으로도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당시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여배우 아멜리아 워너와 만나 2001년 7월에 결혼을 올렸지만 불과 4개월 만에 이혼하게 된 것.
하지만 2003년 다시 한번 재기의 시간이 찾아온다. 파렐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고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작품은 대단한 흥행을 얻었지만 파렐은 되레 작품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곤 했다. “당신은 범죄 예방하는 방법는이 얼마나 불확실한가를 확실히 이해했는가?” 조엘 슈마허와 다시 한번 작업한 <폰부스>(2002)는 온전히 파렐의 역량을 세상에 드러내는 창과 같은 영화였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주연 배우로 짐 캐리와 윌 스미스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원신 형식의 연출 방식에 부담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단 12일 간의 촬영으로 완성된 이 작품에서 공중전화박스에 갇힌 주인공은 파렐의 몫이 됐다. 하지만 영화는 쉽게 개봉되지 못했다. 2002년 11월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에서 무차별 저격 사건이 벌어졌으며 유사한 소재를 지닌 영화의 상영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다음 해 4월에 개봉됐고, 파렐의 열연은 보답받았다. 저명한 비평가 로저 에버트는 파렐의 연기에 대해서 이와 같이 평했다. “상영시간의 대부분에서 등장하는 파렐은 에너지와 강렬함을 보여준다.” 파렐은 자신이 놓인 공간의 너비와 대조될 만큼 대단한 긴장감을 구사하며 열연을 펼쳤다.
알 파치노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스파이물 <리크루트>(2003)는 인상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음에도 파렐의 연기만큼은 상대적으로 좋은 평을 얻었다. 벤 애플렉이 출연한 안티 히어로물 <데어데블>(2003)에서 악당 불스아이를 연기한 파렐은 자신의 아이리쉬 악센트를 극속 캐릭터에 적용시키며 캐릭터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가미하기도 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범죄 액션물 <S.W.A.T. 특수기동대>(2003)를 시작으로 점차 할리우드의 주연배우로 거듭난 파렐은 점차 높아지는 명성과 부만큼이나 유명한 여성 셀레브리티와의 스캔들로 인한 구설수도 빠르게 전파됐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한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우린 그저 동료일 뿐, 데이트하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파파라치의 사진 앞에서 이는 비겁한 변명 정도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렐은 그 가십에 묻히지 않고 자신의 본격적인 연기 경력을 넓혀 나갔다. 올리버 스톤의 롤타이틀 전기영화 <알렉산더>(2004)에서 파렐이 연기한 알렉산더는 논쟁의 중심에 섰다. 대제국을 건설한 고대의 정복자를 양성애자로 묘사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파렐은 정복자의 근엄한 초상 위에 불안한 심리를 드리우며 자신의 성격을 캐릭터에 반영한다.
마이클 만의 범죄영화 <마이애미 바이스>(2006)에서 그의 진가는 확실히 드러난다. 제이미 폭스와 함께 투톱을 맡은 파렐은 마초적인 강인함과 함께 섬세한 멜로적 감수성을 드러내며 굵고 예민한 자신만의 성향을 캐릭터로 승화시킨다. 같은 해에 우디 알렌의 <카산드라 드림>에서 이완 맥그리거와 함께 형제로 등장하는 파렐은 방탕하지만 나약한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를 연기한다. 뉴욕 타임즈는 파렐의 연기에 대해서 “얌전한 파렐의 연기는 보기 드물게 효과적으로 힘과 느낌을 전달한다.”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마틴 맥도나가 직접 연출하고 브렌단 글리스, 랄프 파인즈와 함께 출연한 <킬러들의 도시>(2008)에서 파렐의 이런 특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결국 파렐은 생애 처음으로 노미네이트된 골든글로브에서 트로피를 거머쥔다.
<크레이지 하트>(2009)에서 기습적으로 등장하며 빼어난 노래 실력까지 뽐내는 파렐은 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선보인다. 닐 조단이 연출한 <온딘>(2009)에서 알코올중독을 극복하며 신체적 장애를 지닌 딸을 돌보는 아버지를 연기하는 파렐의 모습은 마치 그의 방탕한 과거와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물론 파렐의 악명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배우로서의 명성은 아직도 미지수의 영역에 놓여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렐은 흥미로운 문제아다. 유일하게 연기를 통해 길들일 수 있는,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악동이랄까.
(beyond 7월호 Vol.46 'STARDOM')
'cultur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핫 걸’의 탄생, 클로이 모레츠 (0) | 2010.08.08 |
---|---|
그림 같은 영화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0) | 2010.08.05 |
앤 헤서웨이, 공주는 여왕으로 성장한다. (0) | 2010.06.14 |
애니메이션의 도래지,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0) | 2010.06.05 |
일 살비아티노, 르네상스의 현대적 복원 (0) | 2010.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