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무공을 자랑하던 고수 라마가 죽어서 남긴 시신을 소유할 수 있는 자는 대단한 능력을 얻게 된다는 소문과 함께 강호에 피바람이 분다. 두 조각으로 나뉜 그의 시체를 소유하고자 절대고수들이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 그 가운데 잔인한 고수 문파로 알려진 흑석파가 시신을 보유한 한 가문을 급습해 부자를 죽이고 시신의 절반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그 시신을 소유하게 된 여성 검객 세우는 자신의 그런 삶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자 도주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성형에 성공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흑석파는 그녀의 뒤를 좇게 된다.
앞선 문맥은 <검우강호>의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되기까지의 여정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검우강호>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 시퀀스와 CG컷을 동원한 오프닝 시퀀스가 포함된 10분여의 러닝타임을 할애하며 이를 설명해낸다. 이는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이다. <검우강호>는 무협물로서 기초적으로 빤한 소재나 줄거리를 공들여 설명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다소 유치한 무협물 특유의 설정을 비범하게 포장하지 않은 채 단지 내러티브의 정보로서 전시되는 이 압축적인 도입부는 <검우강호>가 오락물의 하위 장르로서의 기능성에 충실한 작품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검우강호>는 할리우드의 영향력이 감지되는 작품이다. 무협의 코드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고전적인 웨스턴 무비의 정서와 특정한 스파이물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캐릭터와 플롯까지, 단연 할리우드의 영향력이 감지되는 영화다. 오우삼 자신의 작품인 <페이스오프>의 흔적부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와 같은 스파이물의 영향력이 깊게 감지되는 <검우강호>는 현대적 소재의 장치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비범한 대의를 표방하는 무협물의 정서와 달리 물질적인 욕망과 개인적인 삶에 천착하는 인물들의 태도가 보다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무협물의 포맷 안에서 이례적인 정서적 묘사를 선택한 작품이기도 하다.
빼어난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검우강호>는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파악하고 목적지에 다다르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의의를 전파하기 보단 자신의 기능성을 확실히 인지하고 그 역량을 전시하는데 능한 가공품으로서 유용하다. 다양한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표현하고 갈등을 야기시키는 내러티브의 소모품으로서 유용하게 등장하고 퇴장한다. 시종일관 거듭되는 유려한 액션신을 기대했을 어떤 관객에게는 <검우강호>의 액션신이 양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나 후반부를 장식하는 액션신의 완성도는 분명 즐길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검우강호>는 레일을 깔고 그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은 작품이다. 기차가 지나는 역을 살피기 보단 전진하는 기차의 방향이 보다 뚜렷하게 눈에 띈다. 어떤 특별한 철학적 의미를 발췌해내기 보다는 영화가 발생시키는 장르적 쾌감과 이야기의 진전에 방점을 둔 작품이다. 대단한 장르적 성취를 이뤘다거나 새로운 기원을 여는 작품이라기 보단 제 목적을 이루고 오락적 성과를 제공하는 무협물로서 유효하다. 취향의 문제만 아니라면 딱 눈감고 시간을 죽일 만한 유용한 롤러코스터적 무협물일 따름이란 말이다.
고명한 피리를 불며 요괴를 잠재우던 표은대덕은 다른 세 신선의 실수로 요괴에게 피리를 빼앗긴 뒤, 자신의 존재를 망각한 채 세상으로 사라진다. 세 신선은 세상에 뛰쳐나온 요괴들을 잡기 위해 사라진 표은대덕과 피리의 행방을 좇고, 이를 위해 도사 화담(김윤석)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선들과 함께 요괴를 좇던 화담은 그 과정에서 전우치(강동원)와 맞닥뜨리게 된다. 설화적인 프롤로그를 밑그림으로 판타지의 자질을 채색해나가는 <전우치>는 이를 통해 토속적 비현실성을 현대적 시대상 안으로 이입해 나간다. 실존인물이라 전해지기도 하는 고전소설 ‘전우치전’의 신묘한 주인공 전우치를 발체해 현대적 배경에 이입한 <전우치>는 전통적인 영웅 캐릭터의 뼈대에 현대적 서사라는 살을 붙이며 ‘한국형 히어로무비’의 유형을 제시한다.
욕망이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서로를 밟고 올라서려는 캐릭터들의 아귀다툼을 그려낸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전우치> 역시 저마다의 욕망으로 맞부딪히는 인물들의 격돌을 그린다. 하지만 최동훈의 지난 두 전작이 복마전이었다면 <전우치>는 각축전이다. 두 전작이 저마다의 욕망을 향해 내달리던 캐릭터들의 힘겨루기였다면 <전우치>는 욕망을 안은 캐릭터의 롤러코스터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의 캐릭터들은 욕망의 패를 감추고 상대의 패를 읽어내기 위한 수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복마전의 말판 위에 놓여있다. 그 말판을 설계한 최동훈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주사위를 굴리듯 캐릭터들의 일진일퇴를 연출하며 다채로운 캐릭터의 묘미를 한껏 활용한다. 비중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게 캐릭터들의 개성을 드세게 살리고 이를 통해 영화의 스타일마저 단단하게 동여맨다. 두드러지되 모나지 않는 캐릭터 영화를 완성해냈다. <전우치>를 향한 팔 할의 기대감도이를 겨냥한다. 나열된 배우들의 이름을 읽어내려 가는 것만으로도 감상에 대한 군침을 돌게 만드는 <전우치>는 궁극적으로 이를 조율할 최동훈의 캐릭터 조율 실력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물건처럼 보일만한 작품인 셈이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전우치는 매력적이다. 시대적 배경의 변화에도 곧잘 넉살 좋게 어울리는 전우치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처럼 과장된 제스처와 표정으로 비현실적 이미지를 축적하면서도 현실적 괴리감을 능숙하게 돌파해나간다. 단순히 그 캐릭터의 표현적 존재감만으로도 장르적 가능성이 구축되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문제는 그 주변부다. 중심에 박힌 캐릭터의 모양새는 명확하지만 그 주변부에 놓인 캐릭터들은 구심점이 흐리고 쓸모를 명확하게 얻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전시된다. 유해진의 초랭이는 적당한 수준의 위트를 자아내고 사연의 전환점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쓸모를 지닌다. 전우치를 상대하는 화담을 연기하는 김윤석의 표현력은 적절하나 선악의 기질적 변화를 설득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 캐릭터 자체에 대한 흥미가 반감된다. 동시에 임수정이 맡은 서인경은 지나치게 장치적이며 세 신선은 <전우치>에서 제 구실 자체가 무력한 낭비에 가깝다.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백윤식과 염정아만큼의 설득력도 없다. 제 역할을 설득하지 못하는 캐릭터들은 그저 자리만 지킨다. <전우치>에선 최동훈의 장기라 할만한 캐릭터영화로서의 리듬이시종일관 엇박자로 삐걱거린다. 그저 캐릭터를 볼모로 서사적 노선을 거침없이 돌파해나갈 뿐이다.
현대도시를 배경으로 둔 무협판타지라는 점에서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연상시키는 <전우치>는 전자보다 적극적으로 토속적 설화를 차용한다는 점에서 보다 한국적인 판타지 장르로서의 토대를 마련했다 할만한 작품이다. 십이지신상을 모티브로 구상된 듯한 요괴들의 디자인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직조된 스토리는 판타지라는 외래장르와 보다 어울리는 장르적 접목을 시도했다 할만한 지점이며 어느 정도 성과를 인정받을 만한 구석이 발견된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감을 구사하는 액션신을 따라잡기엔 숨이 차게 느껴지는 앵글의 잔상이 시야를 가리며 감상적인 묘미를 반감시키지만 전반적인 액션신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앵글은 공간감에 있어서 탁월한 시야와 반경을 제공한다. 심중한 여운을 남기고, 유연한 위트를 담아낸 대사들의 순발력도 빼어나다.
다만 그 요소들이 잘 어울리지 못하고 저마다 독립적인 빼어남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보인다는 게다. 마치 저마다의 음을 지닌 음표들이 악보로서 오선지에 배열된 채 화음을 이루지 못하고 제 음을 고집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기분 사이로 끼어드는 일말의 아쉬움을 떨쳐내긴 어렵다.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많은 것들을 흔들어 섞지 못해서 문제인 셈이랄까. 음표만 나열한다고 악보가 나올 리 없는 것처럼.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는 욕망이라는 게임판을 달리는 캐릭터들의 암투를 그린다. 최동훈의 장기는 상대의 패를 읽고 훔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다루는 능수능란함에 있었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여미는 캐릭터들의 조화는 최동훈의 장기를 여실히 증명했다. 그런 면에서 <전우치>는 핵심적인 기대감을 배반하는 작품이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전우치는 꽤나 쓸만하다. 그 존재감과 표현력만으로도 하나의 장르적 가능성을 보게 되는 기분마저 든다. 다만 주변부의 캐릭터를 다루는 손맛이 무뎌졌다. 구심점이 흐린 인물들이 쓸모를 명확히 얻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전시되고 그만큼 숫적인 산만함만 어지럽게 감지된다. 최동훈의 장기라 할만한 캐릭터영화로서의 장점을 만끽할 수 없다는 점에선 분명 아쉽다.
하지만 <전우치>는 최동훈이란 이름에 얽힌 기대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적 토대의 구축이란 점에서 성과가 발견되는 작품이다. 현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판타지라는 점에서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연상시키는 <전우치>는 토속적 설화를 적극 활용하며 캐릭터를 완성하고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한국적이란 의미를 강하게 어필해낸다. 십이지신상을 모티브로 둔 요괴들의 디자인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직조된 스토리는 판타지라는 외래장르의 국산화란 이름에서 보다 어울리는 형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품는다. 지나친 속도감을 두르고 묘사되는 액션신이 시각적인 묘미를 반감시키지만 공간감을 구축하는 앵글의 포착력은 탁월하다 평할만하다. 심중한 여운을 남기고, 유연한 위트를 담은 대사들의 순발력도 빼어나다. 문제는 그 요소들이 잘 어울리지 못한 채 저마다 독립적으로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음표들이 악보로서 연주되지 못하고 제 음만 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기분 사이로 끼어드는 아쉬움을 떨쳐내기 어렵다.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이자 영춘권의 계승자라는 엽문(견자단)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무인 곽원갑>이나 <정무문> 혹은 <황비홍>시리즈의 기시감이 드는 건 무리는 아니다. 일제 치하에서 망국인의 정신적 지주가 된 쿵푸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다는 점에서도, 동시에 무예에 조예가 있는 배우의 리얼 액션이 바탕이 된 무술 영화라는 점에서도 전자들과 공통 분모는 뚜렷하다. <엽문>은 일제치하의 역사가 잉태한 시대적 반일 정서를 통해 감정을 고양시킨다. 이는 국내 관객의 동감을 얻을 여지가 있다. 다만 그 민족적 자존심을 시대적 함성으로 승화시킨 광경 속에서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반발심이 우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혹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물에 익숙한 세대라면 그것들을 보고 난 후와 비슷한 감상을 얻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그 모든 감정적 판단과 무관하게 <엽문>이 중국 무술영화의 양자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견자단은 자애롭고 여유로운 강자의 풍모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유연하면서도 폭발력 있는 견자단의 몸놀림만으로도 <엽문>은 특별하다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우직한 야심을 과감히 뿌리고 거둔다. 과거 중국영화의 향수를 느끼는 세대에겐 반가움을, CG와 와이어액션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묵직한 압권을 전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