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ing TV
언제부턴가 케이블과 종편 채널에서 공중파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전파의 주체들은 누구인가. 궁금하다면 채널, 아니, 페이지 고정할 것.
‘빠’들의 힘, <SNL 코리아>
TVN의 <SNL 코리아>는 미국의 간판 라이브쇼 <SNL>의 한국 버전이다. 안상휘 CP가 <SNL>의 국내 도입을 건의했고 일단 8회 정도를 해보고 판단하자는 내부 의견을 얻었다. “1회가 별로였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다. 1회 호스트였던 김주혁이 잘해줘서 할만해졌다.” 안상휘 CP에 따르면 시즌1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호스트에 따라서 기복이 심했다. 시즌 2의 양동근 편부터 감을 잡았다. 19금 개그를 본격적으로 건드리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신동엽의 호스트 출연은 <SNL 코리아>의 뇌관을 건드렸다. 잠재력이 폭발했다. 시즌 3에 신동엽을 영입한 건 <SNL 코리아>의 전후를 구분하는 신의 한 수였다. 크루들의 캐릭터가 확실해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우리 사회에서 음성화된 19금 소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능수능란하게 주무르고 과감한 정치 풍자와 위트 있는 시사 만평까지 도맡으며 파격적인 포복절도를 선사했다. 그리고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지금까지 <SNL 코리아>는 토요일 11시마다 생방송됐다.
“스튜디오 콩트를 4~5개 정도 준비하고, 야외 촬영되는 뮤직비디오도 2개 정도를 확보하고 오프닝 스테이지와 ‘위크엔드 업데이트’까지 대략 11개 코너를 정리해야 한다. 매주마다 그만한 아이디어를 짜고 대본 작업을 하며 생방송을 대비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도 한 주 내내 생방송을 준비했던 예전과 달리 이젠 호스트와 크루들의 리딩과 리허설, 생방송은 토요일 하루 동안만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크루들이 스타가 된 만큼 <SNL 코리아>에만 집중해야 한다면 결국 이탈할 수밖에 없을 거다.” 크루 한 사람 한 사람이 <SNL 코리아>의 저력임을 알고 있다. 오전에 대본을 리딩하고, 점심 이후로 무대 리허설을 가진 뒤, 6시 즈음엔 실전에 가까운 ‘런 스루(Run Through)’를 통해서 모든 동선과 진행을 체크하고, 8시 반에 진짜 관객들을 대상으로 1차 공연을 한다. 이 때 안상휘 CP는 직접 객석에서 관객 반응을 체크한다. 이전까지의 리허설이 섀도우 복싱이라면 1차 공연은 최종 스파링이다. 생방송의 컨디션을 짐작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 이는 콩트의 리액션을 살피는 것인 동시에 과감한 표현이나 연기가 불쾌함으로 인식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생방송 이전의 마지막 기회다. “센 걸로 먹히면 더 센 것을 보여줘야 된다. 수위로 승부하면 안된다. 결국 아이디어로 허를 찔러야 한다.”
리딩부터 1차 공연까지 깨알 같은 대본이 수정되고 콩트의 설정도 변하며 캐릭터 자체가 뒤바뀌기도 한다. 신동엽을 위시한 크루들은 서로에게 화기애애한 ‘지적질’을 불사한다. “막내 작가와 선배 작가가 20년 차이가 나는데도 똑같이 대본을 놓고 비교한다.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낸다. 초기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선배 작가들이 많이 나갔다. 지금은 정착이 된 거다.” 어쩌면 그만큼 치열하다는 말이다. 좋은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분위기에선 그만큼 적극적일 수밖에. 결국 <SNL 코리아>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빠’들의 방송이란 말이다. “시작할 때부터 크루의 힘이 강한 쇼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지금의 크루 진영에 90% 이상 만족한다. 다만 캐릭터들이 확실해지다 보니까 콩트의 성격도 그 안에 갇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확고한 위치를 점한 만큼 새로운 고민도 자라난다. 그리고 그 고민이 <SNL 코리아>의 비전일 것이다. “언젠가 마지막회가 끝나면 방송에 못 나간 자료들을 모아서 <시네마 천국>처럼 상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안상휘 CP의 기약할 수 없는 바람이다.
목소리를 찾아서, <히든 싱어>
JTBC의 <히든 싱어>는 가수들이 도플갱어 같은 성대를 지닌 모창 가수들과 대결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 가수들이 아마추어 실력자들 앞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승욱 PD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궁리하던 중 한 작가로부터 아이디어를 들었다. ‘진짜 가수와 모창 가수가 한 무대에 서면 어떨까.’ 그렇게 시작된 것이 <히든 싱어>였다. 일단 연말특집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2회 정도 제작해보고 반응을 살피기로 했다. 일단 가수 섭외만큼이나 모창 출연자들을 찾는 것도 난관이었다. 모창을 잘해도 방송 무대에 적합한 실력자를 걸러내고 트레이닝까지 시켜서 무대에 올리는 건 그 자체로 강행군이었다. “사실 그 두 편 이후로 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정규물 편성은 어렵고 시즌제로 진행할 순 있을 것 같았다.” 결국 1월 초에 편성이 확정됐고, 팀이 꾸려졌다. 2달 간의 준비 끝에 3월부터 시즌1이 전파를 탔다.
<히든 싱어>의 첫 번째 고민은 룰의 보완이었다. 2편의 파일럿 제작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결국 중요한 자산이었다. 1회 박정현 편에서 1라운드부터 모창 출연자를 공개했던 걸 2회 김경호 편에서 2라운드로 미뤘다. 모창 출연자들의 얼굴 공개 시점이 빠를수록 관객들의 적응력도 빨라져서 게임의 흥미가 급격히 낮아진다는 판단 떄문이었다. 시즌1 중간에는 2라운드에선 목소리를 가린 채 얼굴만 공개해서 목소리와 얼굴의 매칭에 혼선을 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시즌1 역시 섭외와의 전쟁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모창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가수의 섭외도 난관이었지만 모창 가수들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건모 씨는 1월부터 예심을 했는데 섭외가 오케이된 건 4월 중순 즈음이었다. 미리 모창 출연자를 축적해놔야 했다.”
이름도 없는 프로그램인 탓에 참가자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작가들은 유투브, 음악 관련 커뮤니티의 동영상을 뒤지거나 보컬 학원이나 대학교 실용음악과로 발품을 팔며 모창의 귀재들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찾은 지원자들 가운데 1차 예심으로 8명 가량을 뽑은 뒤, 2차 예심 때 무대에 오를 5명을 확정한다. 그런데 예심 때만 해도 놀라운 실력을 자랑하던 참가자가 녹화 때 무대 위에선 극심한 긴장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진짜 실력자를 가리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중요했다. 프로 가수와 진검 승부를 벌인 준우승자들의 ‘왕중왕전’을 끝으로 시즌1을 마감한 <히든 싱어>가 남긴 아쉬움은 가수를 꺾고 1천만원의 상금을 거머쥔 모창 출연자가 없었다는 사실. “ 적어도 한 번은 나올 줄 알았는데 어렵더라. 하지만 이룰 게 있으니까 다음 시즌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시즌2는 오는 9월 무렵에 전파를 탈 계획이다.
입심의 파괴력, <썰전>
JTBC의 <썰전>은 제목 그대로 ‘썰의 전쟁’이다. 흔히 ‘썰을 푼다’고 했을 때의 그 ‘썰’ 말이다. 김수아 PD와 정다운 작가가 <썰전>을 기획했을 당시만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한주간의 이슈를 토크로 푼다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라디오 스타> 같은 정치 토크’라고 하면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김수아) 동아줄을 내려준 것은 유일하게 호감을 표한 여운혁 CP였다. 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썰전>은 빛을 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일단 방송 후 반응을 보자는 분위기는 <썰전>이 전파를 탄 뒤 호의적인 물살을 탔다. 예능국뿐만 아니라 보도국에서도 흥미를 보였다. 일찍이 <썰전>의 자산은 김구라였다. <라디오 스타>의 작가시절부터 김구라의 토크 감각에 익숙했던 정다운 작가는 일찍이 김구라를 위시한 토크쇼를 구상했다. 김구라가 운전대를 잡은 <썰전>을 굴려줄 단단한 바퀴가 될 고정 게스트들이 관건이었다. “처음부터 섭외가 반이라고 생각했다. 달변도 중요하지만 결코 기가 꺾이지 않고 끝까지 말할 사람들을 구성하는 게 최고의 과제였다.”(김수아)
1부와 2부의 외피는 정치와 문화란 점에서 확연히 달라 보이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결국 썰을 푼다는 것. 방송을 통해서 묻지 않았던, 사실은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고위공직자들의 인명을 앞에 두고 던지는 질문이 이런 식이다. “그 중 뭐가 ‘땡보’직인데?” <라디오 스타>를 벤치마킹했다는 토크쇼답게 <썰전>의 파격이란 바로 그 솔직함 자체에 있다. 이는 정치 문외한인 예능 작가들 덕분이기도 하다. “국회의원들이 재래시장 살리기를 한다고 보라카이로 연수를 갔다고 하면, ‘거기서 뭘 배워서 오죠?’ 이런 리액션이 가능하니까. 보통의 인간사에서 일어날만한 일이 근엄해 보이는 정치계에서도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면 웃기더라.”(정다운) 토크 주제가 잡히면 관련 자료를 게스트들에게 보내주고 작가들이 직접 통화하면서 게스트들의 의견을 대본에 반영한다. 하지만 뉴스는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법. 정해졌던 주제 대신 새 이슈로 갈아타는 건 다반사다. 드라마로 치면 ‘쪽대본’을 쓰는 셈. 개개인의 입담이 좌우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특별한 리허설도 없다. 방송 전에 간단하게 당일의 토크 주제의 흐름과 중점을 정리한 뒤 안부나 묻는 수준이다. 썰을 풀 준비가 된 고정 게스트들이 준비된 덕분이다.
사실 월요일에 녹화해서 목요일에 송출하는 방식은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에선 상상할 수 없다. <썰전>의 평균 녹화시간은 4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4시간 동안 쉴새 없이 말하는 게스트들의 입담’을 걸러내기에 이틀은 생각보다 버겁다. 하지만 뜨거운 뉴스를 뜨거운 타이밍에 썰로 푼다는 건 <썰전>만의 강점이다. 그리고 녹화일과 방송일의 간극을 줄이는 건 <썰전>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궁극의 해법이다. 김수아 PD와 정다운 작가는 <썰전>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한다. “콘텐츠가 좋으면 결국 사람들이 본다.” 그래서 밥 먹을 때 엠넷을 봤던 정다운 작가는 이젠 YTN을 보고, 김수아 PD는 <9시 뉴스>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ELLE KOREA 7월호 No.249 'ELLE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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