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ny Happy Bunny
먹지 말고 개그에 양보하세요.
거북이 등딱지를 매고 요리하는 토끼가 장안의 화제다. 이름하여 웹툰 <역전! 야매요리>. 주체할 수 없는 개그 본능으로 야매요리를 창시한 그녀의 이름은 정다정, 거꾸로 해도 정다정이다.
정말 유명해졌어.
길거리에서 알아봐주는 사람도 생기고, 친구들도 물어보는데 실감이 안나. 솔직히 살짝 거품이 꼈지. 원래 받을만한 관심이나 평가를 넘어서, 일종의 과대평가?
기대(?)와 달리 멀쩡하게 생겨서 실망했다는 의견들이 있던데.
오타쿠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해서? 뭐, 어쩔 거야. 내가 이렇게 생겼는데!
생각보다 어리다는 말도 있고.
다들 세상 좀 겪은 20대 후반이나 30대로 생각하는데 아니란 말이지. 뭐야, 20대 풋내기 여자잖아.
처음에는 원래 요리 잘하면서 못하는 척하는 거 아닌지 의심스러웠어.
블로그든 웹툰이든 태어나서 처음 한 요리들이야. 솔직히 이쯤에서 망쳐줘야지, 이러면 더 스트레스 받을 걸. 연습도 없이 그냥 무조건 해. 그래야 실수도 자연스럽게 나오거든.
원래 요리를 좋아하는 편?
원래 먹는 걸 좋아했는데……뭐지, 납득이 간다는 저 표정은! 2년간 미국에 있었는데 그쪽 친구들은 생일마다 브라우니 한 판을 만들어와서 나눠먹는 거야. 그게 좋아 보이고, 브라우니도 맛있어 보이고, 그래서 생일도 아니면서 맨날 만들어서 갖다 바치고, 그러니까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맨날 먹을 것만 싸 들고 오냐 그러고. 그렇게 베이킹으로 시작했지.
먹고 싶어서 만들었다?
부모님 없을 때 혼자 라면 끓여먹는 거나 같아.
외국은 왜 나갔어?
외고를 갔는데, 너무 ‘빡셌어.’ 경쟁하는 분위기에 적응도 안되고 방황하던 차에 엄마가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보냈지. 거기 2년 있다가 돌아와 복학해서 1년 간 잘 지내다가 아빠 연수 때문에 다시 나갔다가 아예 졸업하고 작년 초에 들어왔어.
외국 생활은 좋았어?
영어도 막히는 게 없고, 사고방식도 자유로워서 잘 맞았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잖아. 몇 살에 학교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이래야 좋은 인생이지 않겠니? 명절에 친척 만나면 압박도 느끼고. 외국도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의 인생을 존중해주거든. 가치관이 달라졌고, 그 뒤로 공부를 놨어. 너희들은 공부해라. 나는 ‘야자’를 째겠다.
터닝 포인트였군.
많은 영향을 받았지. 원래 성격도 낙천적이야. 길거리에서 바이올린 켜면서 살아도 행복할 거 같아.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주의라서.
보통 한국 부모님들은 극성인데.
우리 부모님도 똑같아. 초등학교 고학년쯤 인생설계를 해주시는 거야. 어느 외고를 들어가서 어느 대학교를 가고, 미국의 어느 회사에 취직하면 1년에 10만 달러를 벌 수 있어. 아빠가 자수성가해서 나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나 봐.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더라.
아빠가 작년 한해 동안 입시 준비를 시켰는데, 그게 잘됐다면 지금쯤 대학생활 중이겠지. 돈 받아서 각종 참고서 ‘질러’놓고 정작 방에 앉아서 ‘잉여스럽게’ 컴퓨터만 했어. 나중에는 침대에 눕고, 노트북도 눕히고, 들키면 안되니까 방문 잠그고. 결국 이렇게 잉여의 결정체로……
재미로 시작한 일이 진짜 일이 됐네.
자유연재하던 블로그에서는 마음대로 소재 선택해서 요리하고 자막만 붙이면 끝인데, 이젠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웹툰이니 사진과 어우러지는 스토리를 찾고 만화도 그려야 돼. 솔직히 만화가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림을 못 그리니 좌절감도 들지. 나도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가끔 이런 쪽지도 날아와. 먹는 걸로 장난치면 지옥 간다!
원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어?
인물화는 잘 그렸어. 고등학교 다닐 때도 애들이 그려달라면 그려줬거든. 만화를 연습한 건 아닌데 항상 가방에 연습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특이한 걸 그리기도 했지. 교과서에 있는 소설을 각색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글도 많이 썼어.
고수나 샤이니 판넬 만든 거 보고 빵 터졌어.
솔로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 때 남친과 먹는 장면을 엔딩으로 하려는데 어디서 구해. 판넬을 남친으로 만들어서 앉혀놓고 함께 먹으면 처량한 느낌도 나니 좋겠다 생각했지. 사실 너무 튀는 아이템이라 금방 식상해지니까 자주 쓸 수는 없어.
블로그 연재 시절에 ‘이거 님들 웃기려고 만든 블로그가 아니라 요리해 먹으려고 만든 블로그임’이라고 당당히 선언했는데 지금은 어때?
내 만화가 요리 만화니까 ‘일상’ 카테고리에 해당된다 생각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개그’ 카테고리를 클릭하니 <역전! 야매요리>가 제일 처음에 있는 거야! 앗! 이게 개그만화구나!(웃음) 요리에 관심 없는 독자들도 개그 때문에 본다는 거야. 블로그 시절에는 남들 의식하지 않고 아무 거나 던지면서 웃겼는데 지금은 의식적으로 개그도 쳐야 되고, 요리도 해야 돼. 사진 찍고, 만화 그리고, 대사 치는 게 마지막 스텝인데 항상 고민이야. 특히 자막. 예를 들어서 당근을 썰거나 재료를 손질하는 장면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잖아. 그런데 매번 새로운 자막을 붙이면서 웃겨야 한다는 건 힘들어. 요리가 너무 잘 나오면 좀 망쳐줘야 되나 싶기도 하고.
<스타크래프트> 용어가 심심찮게 보여. 게임도 해?
미션 깨려고 <스타크래프트> 관련 책도 사봤어. 배틀넷은 안해. 지면 ‘빡치잖아.’ 그리고 상대가 말도 걸잖아. 너 진짜 못한다, 이러고. 게임은 원래 좋아해. 원래 남성스러운 면이 있나 봐.
‘소금을 소금소금, 후추를 후추후추’ 이런 말은 원래 쓰는 거야?
소금을 적당히 뿌려주세요, 이건 재미없잖아. ‘소금소금’하면 조심스럽게 뿌리는 어감이고, ‘후추후추’는 탈탈 터는 느낌? 어감이 잘 맞아떨어지고 들어도 재미있잖아. 웃길 거 같아서 작정하고 쓰는 건 잘 안 터지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이런 말들에 호응이 더 좋아.
정다정 작가는 천재라는 사람도 있던데.
요즘 워낙 ‘후달려서.’
캐릭터는 왜 토끼야?
내 필명이 우사미였는데, 혹시 우사미짱 알아?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우사미짱?
블로그에 ‘카레’ 편을 올리고 입시 때문에 한 달 정도 쉬었는데 공지만 올리면 심심할 거 같은 거야. 독자들의 질문을 Q&A로 정리하려는데 글로 쓰면 재미없잖아. 그래서 만화 형식을 구상하니 화자가 필요한 거야. 사람으로 가긴 밋밋하고 필명이 우사미짱이니 캐릭터도 토끼로 하자. 이리 된 거지.
그럼 거북이 등딱지는?
프롤로그에 부엌을 너무 어지럽히면 엄마한테 ‘등짝 스매쉬’를 맞으니까 조심하자는 멘트가 있었어. 그래서 등짝을 보호하는 뭔가가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등딱지 생각이 나는 거야. 나중에 거북이 가족이 등장하는 건 그 등딱지가 동생 건데 내가 뺏어온 거라고 설정하면 재미있을 거 같았어.
메뉴 선정의 기준은?
일단 내가 먹고 싶어야 돼. 가족도 안 먹는데 내가 먹기 싫으면 처리해줄 사람도 없어. 너무 쉬워도 안돼. 계란 후라이를 하면 사진이 서너 장밖에 안되겠지? 일단 분량이 돼야 하지. 물론 가끔 기념일에 맞춰서 하는 요리는 예외지.
진짜 다 먹어?
솔직히 남기는 것도 있는데, 거의 다 먹어. 8000kcal 브라우니 알아?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했던?
내가 했지만 정말 맛있었어. 초콜릿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는 거 있지. 근데 그게 8000kcal잖아. 한 숟갈에 300kcal, 밥 한 공기야.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숟가락을 놨지.
요청 받는 메뉴도 많지 않아?
블로그할 때부터 있었지만 일단 내가 먹고 싶어야 되고, 그래야 스토리도 자연스럽게 나와. 남들이 시켜서 하는 요리는 잘못 되면 그 사람이 시켜서 이리 됐다고 탓할 거 같아. 책임져도 내가 지겠어!
‘파테 드 카나드 앙 크루드(Pate de Canard en Croute)’? 발음도 어려운 이 요리는 어쩌다 도전한 거야?
<줄리 & 줄리아>라는 영화에 나왔는데, 그게 실제로 요리하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잖아. 거기서 맨 마지막에 그 요리를 하거든. 그리고 내가 원래 파이를 좋아해. 게다가 그건 고기도 있고, 파이도 있으니까. 그런데 오븐이 없어서……비주얼도 충격적이었지. 원래는 더 징그러웠어. 밥통 뚜껑을 열었더니 오리 진액에 요리가 잠겨있는데, 솔직히 그건 ‘오프 더 레코드’, 도저히 내보낼 수 없었어. 그래서 좀 퍼내고 사진 찍은 거였지.
요리하면서 촬영까지 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구도가 나와야 하고, 그렇게 하면서 스토리 구상도 하기 때문에 직접 할 수밖에 없어. 가끔 손이 두 개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한 손은 내 거고, 동생이나 엄마한테 한 손을 빌리지. 사진은 무조건 내가 찍고.
결과물이 나와야 스토리도 생기겠네.
막연한 구상 정도만 갖고 있다가 사진에 맞춰서 작업하는 거지. 이 타이밍에 어떤 컷이 들어가고, 인트로와 엔딩은 이렇게 잡자. 그래서 사진 찍는 게 스트레스지. 요리 하나에 150~200장 정도 찍는데, 매번 손 씻어가면서 촬영하다 보니까 한번 할 때 6시간씩 걸리는 거야. 어떨 땐 요리를 정해놓고도 하기 싫어서 이틀 뭉개다가 시작하니까 종종 마감에도 늦어.
어쨌든 디지털 카메라 개발자한테 감사해야지.
가서 절하고 요리 먹여야 돼. 두 번 먹여.
일주일에 두 번 해달라는 댓글도 있던데.
일주일 간격이 적절해. 4일 정도 작업하고, 3일 정도는 머리를 식히면서 다음 편 구상하고, 이게 나한테 딱 맞는 리듬이야.
요즘 가족 출연 분량도 늘었더라.
일상 얘기를 늘려야 될 거 같아. 독자를 길들이는 거지. <낢이 사는 이야기>도 그렇잖아. 나랑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만화만 보면 옆집 언니 같고 그렇잖아.
엄마는 요리 잘해?
아니. 엄마가 요리를 잘하면 내가 요리를 시작했겠어?
이거 써도 돼?
나중에 머리 끄댕이 잡힐지도……
연애 경험 있어?
있어. 없을 것처럼 보이나!
커플한테 치를 떨잖아.
내가 계속 ‘커플 타도’ 외치고 다니니까 이미지가 약간 ‘모솔(모태솔로)’ 같긴 하지. 연애 한번 못해봐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길거리 지나가면서 커플 봐도 별 느낌 없어. 재미를 위해서 과장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 이번 만우절 특집으로 트위터에 장난을 쳤어. 남자친구 생겼다고. 그런데 너무 당연한 반응이 오는 거야. ‘구라 치지 말아라.’
소재 떨어질까 봐 연애 못하겠다며.
걱정 안 해. 안 생길 거니까! 일하느라 맨날 집에만 있구먼.
설마 4월 14일은 짜장면 특집?
맞아! 14일이 마침 연재하는 토요일이잖아. 그런데 너무 뻔하네. 4월 14일, 블랙데이, 짜장면.
이제 수입도 생겼으니 식재료 구입에도 여유가 생겼겠네.
<역전! 야매요리> 때문에 쓰는 음식값만 지출하면 모르겠는데, 온갖 먹는 데 다 쓰니까 오히려 엥겔 지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어. 작년에도 과외를 해줘서 수입이 있었는데 지금과 다를 건 없는 거 같아. 계속 먹는데 지출.
<역전! 야매요리>의 ‘빅재미’는 깨알 같은 시행착오야. 그런데 요리도 하다 보면 실력이 늘 수밖에 없잖아. 실수도 줄어들고.
고민이야. 내 밥줄이니 항상 아마추어가 되자고 다짐하지. 그래서 세세한 과정까지 다 찍는 거고. 요리를 못해야 된다는 게 과제야. 과제.
그래도 트위터에서 네일아트 안 받냐는 물음에, ‘요리하는 사람은 네일아트하면 안돼요’ 라고 답할 때, 프로의식이 느껴졌어.
일종의 책임감이지. 엉망진창으로 요리하지만 나를 따라 하는 분들이 많잖아. 요리 중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넘어갈 수 있지만 네일아트는 정말 선을 넘어가는 거지.
팬카페의 ‘도전! 야매요리’ 코너 열기도 대단하던데.
덕분에 매주 항의 메일도 받아. ‘이렇게 하라 그래서 따라 했더니 지금 이게 뭐냐. 내가 지금 우리 엄마한테 ‘등짝스매쉬’ 맞게 생겼다’면서.
등짝스매쉬를 맞아야 진정한 야매요리 아냐?
오! 그렇지? 나중에 이 말 써먹어야지.
단행본 준비 때문에 보조 작가도 구했다던데.
야매요리를 진짜요리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깔끔하게 정리한 미니 요리책을 함께 만들 거거든. 그 분한테 감사해야지. 내 책을 누가 보겠어.
새로운 스텝에 대한 고민도 있겠어.
언젠가 대학은 갈 거야. 굉장히 큰 인생 경험을 놓치긴 싫으니까. 다만 내 의지였으면 좋겠어. 어느 정도 이상의 대학은 가야지, 이런 건 못하겠어. 경쟁하는 것도 싫고. 내 또래들은 이제 취직도 준비해야 하고 스펙 쌓는 게 중요한 나이야. 이런 말하면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좀 안타까워.
살다 보면 또 새로운 흥미가 생기겠지.
큰 교훈을 얻었어. 평생 이리 갈순 없겠지만 ‘잉여력’이라도 소신껏 꾸준히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길이 뚫린다는 것.
엔딩 멘트로 딱이네.
오늘 나 말 좀 되는데! 올 ㅋ
(ELLE KOREA 5월호 No.235 'ELLE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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