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우니까 조심하라더라.
나를? 왜지? 그런데 사실 그런 말은 많이 듣긴 했다. 여우 같다고. (웃음)
어쨌든 <우리동네>를 보고 나서 그런지 지금 마치 가면을 쓴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외모가 오히려 가면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솔직히 지금같이 인터뷰하는 것처럼 내가 비쥬얼적으로 보여질 때만큼은 개인적으로 꾸미려고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영화상 캐릭터로 류덕환을 보자면 특정하게 뭔가 떠오르는 게 없다는 게 내겐 조금 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림그릴 때 검은 종이에 그리는 것보다 하얀 종이에 그리는 게 더 그림이 잘 나오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메리트가 없는 게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캐릭터를 잡거나 이런 부분들에서는 가끔 도움이 될 때가 있고 남들보다 접근이 더 쉬울 때도 있다. 물론 항상 쉬운 건 아니겠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단 조금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이하, <마돈나>)의 동구처럼 <우리동네>의 효이같은 경우도 연기 이전에 캐릭터를 위한 어떤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다.
일단 <마돈나>때는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감독님들과 약속을 했던 것처럼 살을 찌우는 게 일단 목표였고, 그 다음에 씨름을 익히고 트랜스젠더 분들을 만나면서 그들만의 여성적인 감성을 찾아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동네>같은 경우는 뭔가 자꾸 따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싸이코패스들을 따라 하기 보다는 내 것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보편적인 모양새까지 무시할 순 없었을 텐데.
물론 그걸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대중성도 무시하면 안 된다. 내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내 나름대로의 싸이코패스를 했는데 관객들은 ‘저건 싸이코패스가 아니잖아’ 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대중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면에서는 분명히 싸이코패스적인 어떤 성격이나 표정, 행동 같은 것들이 나와야 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그런 걸 준비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효이라는 인물을 내면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그의 성장 배경이나 어떤 전사(前史)들을 내 나름대로 조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존의 싸이코패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효이에겐 분명히 나름대로의 어떤 아픔이나 슬픔, 기쁨 같은 감정이 있다는 거, 태어났을 때부터 싸이코가 아니란 거다. 분명히 성장환경에 대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자극을 받았던 이유가 컸지.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싸이코패스라기 보단 손가락질했다가도 그 아픔이 어느 정도 이해되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싸이코패스가 되길 원했었다.
예전에 초등학생이 할머니를 망치로 때려죽이고 나서 그게 잘못된 건지 모르더라는 사건 기사를 접했을 때의 묘한 감정이 생각나기도 한다.
효이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그게 나쁘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것에 대한 아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했을 때 그에게는 아픔인 셈이지. 그 아픔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싸이코패스로 비춰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거 같다.
항상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쓴다고 들었다. 효이의 시나리오도 썼나?
사실 효이란 인물에 대해선 쓸 수 없었다. 예전 같은 경우는 내 나름대로 그런 것들을 써나가고 그랬었는데 <우리동네>는 효이가 왜 이런 아픔을 가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성장 배경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인물이 어떠한 상황에서 자랐는가에 대한 것들을 내가 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단지 정할 수 있었던 건 효이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을지, 그리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그게 전혀 악이라는 걸 모르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심정적 근거들, 그런 것들만 내가 정할 수 있었지, 얘가 어떻게 자랐고, 어릴 때는 어땠고, 누구와 만났고, 그런 것들을 내가 정할 수 없었다. 이미 시나리오상에 그런 다이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감히 그렇게 건드리는 걸 차마 할 수 없었던 거다.
이미 인과관계가 시나리오에 명백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사실 효이라는 인물의 정체를 감춰서 반전의 효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동네>는 이미 누가 범인인지를 알고 보게 된다. 이럴 경우에 영화의 스토리가 맡아도 될 몫을 배우가 떠맡아야 한다. 결국 <우리동네>는 배우에게 부담이 큰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본인은 어땠나?
난 항상 부담이 커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커지는 거 같다. 그 부담감 때문에 계속 파고들려는 집요함이 생겨서 더욱 노력을 하게 된다고 할까.
그렇다면 본인에게 <우리동네>는 좋은 자극이 됐을 것 같다. 그런데 범인이 누군지 알고 가는 상황에서 장르적 긴장감은 많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부담되지 않았나?
<우리동네>같은 경우는 방금 말한 것처럼 범인이 누군지 이미 밝히고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보기 전에 긴장감이 없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누가 살인을 저질렀고, 누가 범인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이 왜 이래야 했고, 왜 이렇게 상황이 전개가 되느냐가 <우리동네>에선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누가 범인일까에 치중을 하는 기존의 스릴러 영화들과는 다르게 <우리동네>는 이 두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 것이며, 세 사람의 감정관계나 인과관계가 어떻게 엮이는지, 그 매듭이 도대체 어떻게 풀릴까에 더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긴장감이 중요했다. 솔직히 난 효이가 어디서 어떻게 살인을 저지를까, 여기서 누가 죽을 거 같다는 식의 긴장감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오히려 비중을 두고 싶었던 건 인물간의 갈등과 관계가 어떻게 풀리고,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는가라는 것들이었다.
효이는 사악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순수한 존재다. 너무나 순수해서 사악한 거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양면적 성향을 동시에 표현해야 한다는 것도 고민이었을 것 같다.
난 그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누군가의 힘을 빌렸다.
누구 말인가?
그게 그 아역 친구다. 왜냐면 사실 내 능력이 좀 더 좋았다면 현재의 효이를 통해 내가 직접 그런 것들을 보여줬어야 되는데 난 거기까진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그 아역친구의 도움을 빌렸다. 영화상에서 아역 친구의 분량이 많진 않지만 꽤나 임팩트가 있다. 아역 비중에서 그 아이의 순수함과 살의를 갖게 된 동기 같은 것들이 모두 밝혀지기 때문에, 그 친구의 씬이 없었다면 내가 그렇게 효이라는 캐릭터의 양면성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류덕환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말도 듣지 못했을 거다.(웃음) 그 친구(아역 시절의 효이)가 없었다면. 물론 떡볶이 집에서의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그건 어떻게 봤던지 간에 단면성이니까, 이 아이가 왜 아픔도 없고 살인을 저질러야 했는가의 동기는 내가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친구에게 더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친구 덕분에 양면성이 또렷해졌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청룡영화제 때, 황정민 선배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밥상은 남들이 다 차려놨는데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다 받는다고, 그거랑 비슷한 얘기다. 나도 다른 배우가 있었기에 그렇게 주목 받은 것뿐이지, 난 내가 혼자 다 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결국 <우리동네>에서 류덕환의 밥상은 어린 효이가 고양이 목을 비틀 때 다 차려진 건가? (웃음)
내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는 긴장감의 출발점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지. 외로울 때 항상 자기 곁에 있었던 고양이가 자기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 고양이를 죽였는데 이상하게 불쌍하지도 않고, 밉지도 않고, 자기가 무섭지도 않고, 그냥 단순한 쾌감, 혹은 그에 대한 어떤 즐거움만 있으니까. 그런 씬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이후에 효이의 어떤 행동들이나 그런 사건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관객들이 공감하게 되는 거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선균이나 오만석 같은 배우들의 안정적인 서포트가 효이란 캐릭터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건 아닐까.
일단 만석이형과 저 같은 경우는 분명히 살인마라는 세 글자를 건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다른 연기가 나왔다. 연기 스타일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건 캐릭터상의 문제다. 서로 연기를 하면서 대치했던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경주라는 인물과 많이 부딪히지는 않지만 마지막 씬에서 본격적으로 부딪히면서 긴장감이 팽팽히 도는 가운데 과연 누가 이길지 지켜보게 되는 건데, 어떻게 보면 내가 계속 쏘아붙이고 혼자 얘기하니까 마치 경주가 진 것처럼 표현됐다. 물론 둘의 긴장감은 끝까지 있었고 누가 효이를 죽인 건지는 결국 모른다. 효이가 자살했는지, 경주가 죽였는지 나도 모르고, 감독님만 아는 거겠지. 감독님께서 아직도 말씀해주시진 않지만 난 처음엔 경주가 그 힘을 못 이겨서 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왠지 효이가 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 쪽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쏘아붙이던 효이의 모습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건 아닐까 싶다. 그에 반해서 선균 형의 연기는 일단 너무 편안하다. 사실 난 영화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내 연기를, 우리 영화 자체를 보면 항상 긴장되고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어깨가 여기까지 올라가고(어깨를 펴면서)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선균 형의 힘이 컸단 생각이 들더라. 그나마 관객들을 편안하게 해주시니까. 목소리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연기 스타일을 갖고 계시니까. 나라도 저렇게 했을 거야, 나라도 저 상태에서는 저렇게 감정이 나왔을 거야, 라고 생각될 만큼 중립적인 입장을 너무나 잘 표현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너무나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효이가 굉장히 극단적이고 재신이 굉장히 스무드(smooth)한 역할이라면 경주는 그 가운데서 치고 받고 하는 인물이다. 그런 조합이 어떻게 보면 연기적으로 잘 맞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긴장감을 갖게 되는 반면,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구도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효이가 자신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난 효이가 전신주에 붙은 자신의 몽타주가 자신과 닮지 않았냐고 묻는 장면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했다. 자신을 과시하는 듯한 이런 행위는 결국 누군가의 관심을 얻고 싶어하는 것이고 자학을 통해서라도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로 느껴졌다. 이는 한편으로 그 거리의 무관심을 조롱하는 행위라고도 생각했다.
자꾸 아역 때만 말하니까 내가 한 게 없는 거 같아서 좀 그런데,(웃음) 사실 아역 분량에서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엄마의 무관심 속에서 자랐고, 그래서 살아있는 동물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의 모습, 그리고 소연이라는 여학생을 좋아해서 나름대로 관심을 표했지만 돌아오는 무관심, 그로부터 느껴지는 아픔들, 그런 주변 인물들로부터 보여지는 무관심한 아픔들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몽타주 씬에서도 그렇고 자기가 살인자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는 건 좀 더 관심을 받고 싶어했던 부분들이 컸기 때문인 거 같다. 그 타깃은 일단 경주였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의 무관심을 하나씩 접하게 되고 그런 게 쌓이다 보니까 광기가 더욱 커진 것일지도 모르고. 그리고 동물 병원에서의 충동적인 살인도 명보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거다. 명보에게 거짓말로 소연이랑 살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그녀가 죽은 것조차도 모르고 있지 않나.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소연이에 대해서 상처를 받았던 건 정작 명보 때문이었는데 그런 당사자의 무관심이 충동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효이의 그런 모습들이 무관심에서 출발한 셈이라고 봐도 될 거다.
솔직히 <전원일기>에 출연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웃음) 연기 경력이 나이에 비해 상당하더라.
여섯 살 때부터 시작했다. 시작하게 된 동기는 내가 너무 숫기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웅변을 시킬까 연기를 시킬까 고민을 하셨던 것에서 출발한다. 병적으로 숫기가 없었다고 하더라. 이 세상에 어머니와 할머니 말고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심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아는 분을 통해서 소극장에서 연극을 배우다가 한번 대회를 나갔는데 심사위원으로 유인촌 선생님이 계셨다. 그런데 날 좋게 봐주셨는지 관심 있으면 오디션을 보라고 하시면서 어느 연락처를 알려주셨는데 그게 <전원일기>오디션이었다. 그래서 오디션 보고 어떻게 하다가 <전원일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TV쪽을 들어가게 되니까 여기저기서 얘기가 나오고 그를 빌미로 다른 오디션 보고 하니까 <허준>이나 <왕초>같은 드라마도 나오게 됐다. 그러던 중, 영화 일을 몇 번했는데 그게 매번 잘 안됐다 개봉 못한 영화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까 난 정말 영화랑 안 맞나 보다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묻지마 패밀리>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하게 됐다.
‘내 나이키’ 편에 출연했던.
장진 감독님과 박광현 감독님과의 인연이 그때부터 시작이 됐다.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무모하지만 배우라는 길을 택하고, 해야만 한다고,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던 게 <묻지마 패밀리>이후부터였다. 사실 그 전에는 내 주위의 아역배우들을 이겨야겠다는 열등감이 강했다면 그 때부터는 내 의지대로 해나가는 식이었던 거 같다. 그 이후부터 스스로 (필름있)수다 사무실 찾아가서 계속 인사 드리고, 돌아다니면서 나 장진 사단이라고 떠들고 다녔고 그러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내 욕심이었고, 의지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커졌던 거 같다.
하지만 결국 배우로서 확실히 각인시킨 건 필름있수다에서 제작하지 않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서였다.
<웰컴 투 동막골>하고 나서 <마돈나>라는 작품을 택했던 건 물론 내 욕심도 있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도 있었는데 그 남들 중에 가장 첫 번째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장진 감독님이었다. 장진 감독님한테 ‘저 이번에 형 도움 없이 영화 하나 찍었어요. 한번 봐주세요.’라고 한번 말하고 싶었었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지금은 이제 그런 특정한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 의지는 없지만 내 스스로가 해야만 한다는 의지가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게 앞으로 중요한 거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같은 건 크게 중요한 거 같진 않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그냥 어머니가 시키니까 했던 거 같고.(웃음) 이제부터 시작인 거 같다. 내가 이제 보여줘야 하는 것들, 조금 더 공부를 해야 하는 것들도 많고.
평소에 조승우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많이 피력한 것으로 안다. 여전히 조승우는 류덕환에게 이상형인가?
내가 조승우 형을 너무 좋아해서 <웰컴 투 동막골>(이하, <동막골>)당시에 (강)혜정 누나와 친분이 있으니까 몇 번 물어보기도 했었고, 매니저 형 아는 분들 통해서도 몇 번 인사도 드렸지만 친해지거나 그렇진 않았다. 너무나 친해지고 싶었었다. 대학교 시험 볼 때도 조승우 형의 '지킬 앤 하이드'를 가지고 종합 연기 준비도 할 정도로 애정이 너무 깊었었다. 언제는 한번 누가 (조승우와) 닮았다는 소리를 해서 난 정말 날아갈 정도로 기분이 좋았었다. 너무 행복했지, 그땐. 내가 좋아하고 우상으로 섬기는 배우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기분은 정말 어떻게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로 이젠 나도 나중에 내가 조승우 형을 닮고 싶어하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닮고 싶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 같은 게 오히려 지금은 더 큰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분을 안 닮고 싶다는 건 아니다. 게다가 그걸 따라가긴 어렵겠지. 다만 그 분의 연기에는 그분의 스타일이 있고, 분명히 나만의 스타일도 있기 때문에 존경은 하지만 이젠 내 길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커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좀 엉뚱하지만 효이가 ‘나, 괴물이지?’란 대사를 할 때 <마돈나>의 동구가 했던 ‘나 장만옥닮지 않았어?’라는 대사가 생각났다. (웃음) 왜냐면 괴물이나 장만옥은 효이와 동구에겐 누군가에게 이렇게 인정받고 싶다는 어떤 구체적인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류덕환은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은 어떤 구체적인 상이 있나?
음…글쎄. (골똘히 생각하다가)그들은 어쨌든 간에 둘 다 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다. 둘다. 오동구 같은 경우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한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고, 효이도 다른 사람이 아닌 경주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다. 그런 것처럼 나 같은 경우도 인정받고 싶은 특정 인물 같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 인물들에 대한 심리 상태를 나에게 비교하자면 어느 한 특정인물한테 주목이나 인정을 받고 싶다기보단 내 자신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거 같다. 난 항상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충족하기 위해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물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지적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을 다 새겨듣지도 않는다. <마돈나>때도 안 좋다고 하셨던 분들도 있었고, 좋다고 하셨던 분들도 있었다. 사실 <아들>같은 영화를 찍었을 때는 내 나름대로 굉장히 무난하고 조용히 연기했다면 <우리동네>에서는 감정이 극단적인 상태로 치닫는 그런 연기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연기를 했을 때 칭찬이 더 많이 나온다. 솔직히 <아들>때 편안하게 연기했는데 이건 그냥 그랬구나, 하고 지나갔는데 <우리동네>같은 영화는 잘한다고 하는 모습들이 난 일차적으로 보여지는 어떤 시각적인 부분에 의해 내가 보여진다고 생각했다. 일단 겉모습을 통해 보여지는 것들, 표정이 굉장히 많이 나타난다거나, 연극적인 요소로 억지스럽게 표현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통해 인정받는다는 게 과연 정말로 내가 인정을 받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스스로를 아직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긴가?
사실 칭찬해줬을 때, 그런 것들을 굉장히 기분 좋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결국 내 자신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을 때도 있는 거니까. 왜냐면 <우리동네>나 <아들>이나 <마돈나>나 <동막골>이나, 내가 임했던 연기의 자세는 똑같았다. 내가 어떤 연기를 하든 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한 퍼센트 지수는 항상 똑같았다. 물론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 같은 것들은 분명히 다르겠지만 내가 했던 연기적 태도는 분명 똑같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굳이 캐릭터가 뚜렷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일 거다. 한편으로 다음 영화에서는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하게 가도 아, 류덕환 정말 연기 잘한다, 이번 영화 참 좋았다, 라는 얘기가 과연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내 자신 스스로 한번 실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래서 그 특정인물을 굳이 정하자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기보단 나인 거 같다. 오히려 나한테 인정받고 싶고, 내가 내 자신에게 죽어도 만족을 못할지라도 한번쯤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연기가 나올 때까지 해보는 게 내 모습인 거 같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겠다는 거지.
동구나 준석이나 효이가 아니라 그냥 류덕환이라는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럴 수도 있다. 내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배제하지 않고서 연기에 임했던 게 <아들>이었다. <아들>같은 경우는 반전에 대해서 좋다고 생각하시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게 별로 안 좋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런데 어쨌건 반전에 대해서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난 오히려 그런 반응들이 내 개인적으론 굉장히 좋았다. 왜냐면 그 전 상황까지는 그만큼 승원형이랑 내 모습이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그만큼 뒤통수 맞은 게 큰 타격이 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부분들이 내 의도처럼 최대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으로 비춰지길 원했고, 그 둘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이길 원했었다. 어떻게 보면 <마돈나>나 <우리동네>와는 다르게 <아들>때는 최대한 그런 모습에 류덕환의 모습으로 다가가길 원했고, 류덕환의 모습이 조금 더 많이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통해서 내 나름대로 치밀하게 반전을 준비했었다. 앞으로는 내가 그런 연기를 했을 때도 <우리동네>나 <마돈나>를 통해 받았거나 받고 있는 어떤 칭찬들이 똑같이 나올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뭐가 있을지, 그런 것들이 내가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인 거 같다.
살기 위해서 여자가 되야 했던 동구처럼 류덕환은 살기 위해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배우가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살기 위해서 배우가 된다는 것보다는 배우는 나에게 너무 하고 싶은 낙인 거다. 내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연기를 하면서 분명히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스트레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난관들을 계속 헤쳐나가고, 그런 과정들이 쭉쭉 나아가다가 결국 결과물을 봤을 때 느끼는 것들. 이번에도 하나 해냈구나, 100% 마음에 들진 않지만 오늘도 하나 해냈구나, 이런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서 계속 이렇게 하는 거 같다. 이런 것들을 말로 풀어내자면 내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즐거움 때문에 배우를 한다기보단 배우를 하면서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이 일을 하는 거 같다. 어떻게 보면 그게 내가 연기를 하는 정답일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즐거움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계기는 뭐였나?
그러니까 그 정체성이라는 게, 옛날에 이휘재 씨가 하셨던 인간극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래, 결심했어’ 뭐 이런 거? (웃음) 정체성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작품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걸 보는데 이 느낌을 한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냥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짜릿한 것도 아니었고, ‘우와’도 아니었고, 경악도 아니었고, 그냥 이게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한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나에게 영화에 대한 어떤 집요함이 생기게 된 계기인 거 같다. 물론 난 이러니까 배우를 해야만 한다고 내가 지금도 느끼고 있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 배우라는 이 한 단어가 제 이름에 붙여질 때, 배우 류덕환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사실 난 아직 창피하다. 그건 아직 내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많이 배우고 있는 입장이니까. 물론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업상으로는 배우 류덕환이 맞겠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떤 전문용어로 배우 류덕환이라고 불렸을 때는 난 아직 창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배우라는 정체성을 앞으로도 계속 살려나가야 될 것 같다. 내가 이렇기 때문에 배우 류덕환이라는 정체성은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계속 찾아나가면서 만들어나가야만 할 것 같다. 내가 그 만족감을 언제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찾아나가야만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수로 표시한다는 게 힘들겠지만 효이는 본인에게 몇 %의 만족이었나?
(골똘히 생각하다가)난 모르겠다.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번에 <우리동네>를 보고 나서 그 때 찍었던 씬이 몇 테이크였는지 알 것 같더라. 영화를 보면서도 감독님이 몇 번째 테이크를 썼겠구나라는 걸 느낄 정도로 내가 너무 생각을 많이 했던 작품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몇 번 테이크를 썼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물론 그렇게 테이크를 많이 간 것도 아니고 연기도 즉흥적으로 나왔지만 모니터를 이렇게 많이 본적은 진짜 처음이었다. 모니터를 계속 돌려서 보고 또 보면서도 하나하나 꼼꼼히 봤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도 몇 번째 테이크를 썼는지도 알 것 같더라. 그래서 이번에 이 씬에서는 그 테이크를 썼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된 작품이었던 거 같다.
결과적으로 영화에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가?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거 같다. 가령, 내가 왜 이 감정을 생각 못했지? 그러니까 영화 전개상 보다 보면 저 감정은 안 맞는 거 같다는 그런 느낌들이 있었다. 내 연기부분에서는 그런 것들이 있었고, 오히려 연기적으로 걱정했던 부분에서 음악이 비중을 많이 살려준 부분도 있었다. 음악이 깔리고 나니까 오히려 그 씬의 시니컬한 느낌이 더 살고, 그래서 조금 더 좋아진 부분도 있었다. 사실 내 연기 부분에 대해선 항상 나는 만족할 수 없는 거 같다. (웃음) <천하장사 마돈나>때도 그랬고. 내가 (신)하균 형이랑 조금 비슷한 성격인데 내가 찍은 영화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못 본다.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이렇게(손으로 눈을 가린 채로) 가리거나 중요한 장면 나올 때는 유심히 봐야 되는데 오히려 옆에 있는 사람을 본다. 어떻게 볼까,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족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소심함 때문에.
스스로를 자학하는 경향이 약간 있는 거 같다.
그런 게 조금 있다. 어쩌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완벽주의자?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자꾸 자학을 하는 거 같다. 예를 들어서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의 농도가 딱 80%라면 그 80%에 맞춰야 된다. 누가 봐도 80%에 맞는 거 같다고 하는데, 내가 맛을 봤을 때 79%밖에 안 되는 거 같다면 그 1%를 만족하기 위해서 나는 계속 농도를 맞추려고 할 거다. 내 입 맛에 맞는 그 1%를 만족하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 내 자신을 자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 중 자학했던 사람이 많다더라.
아, 그런가? 그럼 좋게 받아들여야지. (웃음)
그런데 이야기해보니 여우보단 애늙은이 같다. (웃음)
애늙은이도 많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전원일기>라는 드라마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웃음) 너무 높으신 선배님들이다 보니까 난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계속 몸에 배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셨던 게 네가 인사를 했는데 저 선배님이 모르고 지나갔다면 네 인사를 모른 척하고 간 게 아니라 못 보고 갔을 수도 있기 때문에 너는 끝까지 인사를 해야 된다는 것. 그래서 무조건 나는 내 인사를 못 받았을 때는 내가 쫓아가서 인사를 해야 된다.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몸에 배어있다 보니까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스텝 한 분들한테까지 가서 인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여우라는 말이 나왔던 것도 상대방의 반응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말을 하나씩 커트한다거나 농담도 함부로 못하는 거 같고, 농담을 했을 때도 그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자꾸 안으로 소심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너무 배려가 심하다 보니까?
좋게 말하면 배려고, 나쁘게 말하면 나 혼자 망상에 빠지는 거지.(웃음) 그러니까 얘기를 하다가도 가벼운 농담을 할 수도 있는데 제 딴에는 기분이 나쁠까 봐, 그게 어떻게 보면 칭찬의 의미일 수도 있는데 괜히 했다가 뭐야, 이사람, 이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혼자서 자꾸 상상을 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말하면서도 자꾸 생각하게 되고, 이 정도 수위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따르기 때문에 여우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계속 조심스럽게 말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대선배님들을 통해 몸에 밴 습관이 눈에 띠어서 애늙은이처럼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역 시절부터 쌓아왔던 연기적 학습능력, 즉 필모그래피가 지금의 연기적 자양분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난 아역 때도 내가 아역 취급 받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난 지금 아역 친구분들한테도 처음에 만났을 때는 무조건 존댓말을 쓴다. 어쩌면 내가 그걸 겪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기분 나쁠 때가 있다. 무조건 어리다고 해서 반말하고 그냥 너는 대기하다가 조금 이따 나오라고 할 때 나와,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말하고, 이런 부분들이 어떻게 보면 무시당한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최대한 배려해준다고 하는 게 일차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누구나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이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친해지기 전까진 존댓말을 한다. 무시당하는 것까진 아니라도 내가 이렇게 보이면 너무 약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들을 내 나름대로 소심하게 표현했겠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강하게 계속 쌓여왔던 거 같다. 그래서 주연, 조연 같은 걸 따진다기 보단 현장에서의 내 모습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고 난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한 씬을 나오더라도 두 씬을 나오더라도 언제나 나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주연급 배우로서 빠른 나이이기도 하다.
<우리동네>는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분량으로 따졌을 때 조연급이지만 난 내 마음속으로 항상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내 연기에 대한 어떤 신조나 정확한 어떤 연기관 같은 게 흐트러지지 않고 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내 중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아역 때부터 그런 생각이 쌓이다 보니까 주연, 조연, 단역 배우에 대한 개념이 다 사라진 거 같다. 누구는 주연, 누구는 조연, 또 혹은 누구는 단역, 난 이런 것들을 정해놓은 거 자체가 너무 싫었다. 물론 우리가 구분을 위해 배역을 나누겠지만 영화 일을 하면서 만큼은 주연이 조연이 될 수 있고, 조연이 주연이 될 수 있듯이 항상 누구든지 그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주연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이라도 빠졌을 때 영화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다 주인공이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주연이 훨씬 더 많이 고생하고 그에 대한 대우도 물론 다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신조만큼은 항상 주인공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주연이나 조연, 그런 거 생각 안 하게 되는 거 같다.
그런데 솔직히 난 스물 다섯은 넘었을 줄 알았다. 항상 연기를 보면서 스물 한 살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연기를 통해서 막연히 생각했던 나이와 실제 나이 사이의 괴리감을 알고서도 놀란 부분도 있다.
아~! 정말?
요즘 학교에서 연극 준비했다고 하는 거 같던데.
어제 끝났다. 어제 쫑파티도 했고. 그래서 지금 사실 상태가 별로 안 좋다. (웃음)
사실 그 연극도 졸업작품이라도 준비하는 건 줄 알았다. (웃음)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