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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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의 한국 개봉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한국은 내 고향인 대만과 같은 역사를 지닌 나라라 형제 같은 느낌이 든다. 일제 점령기의 역사를 공유한 한국에서도 <색, 계>에 대한 역사적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와호장룡>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7년 만에 다시 <색, 계>로 한국을 찾게 됐다. 게다가 두 편의 영화가 모두 중국영화란 점에서 특별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본인의 영화가 어느 정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나?
그렇게까지 큰 인기가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내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관심도 있다. 어제 시사회와 레드 카펫에 참가하면서 한국의 여러 매체와 관객들로부터 따뜻하고 친근한 인상을 느꼈다. 그런 흥분과 열정을 극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사실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라웠다.

한국에서 <색, 계>의 무삭제 상영이 결정됐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까 싶다.
일단 <색, 계>를 풀 버전으로 상영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다. 왜냐면 섹스씬을 단순히 선정적이라고 여기거나 나쁘게 해석될 수 있는데 그것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건 그 장면을 미술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받아들이는 평가라고 생각돼서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게 될 수 있다는 것보다, 그런 기분은 내게 영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실이라서 굉장히 영광스럽다. 대만이나 홍콩의 경우, 영화 산업에 굉장한 붐이 일고 활성화되던 시기에 굉장히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반면에 영화 산업이 별로 활성화되지 못할 때는 배급에도 문제가 생겨서 감독이 직접 영화를 팔아야 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아시아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서 <색, 계>가 호평 속에 개봉했고, 대만과 홍콩에서는 레코드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들었다. 또 이런 상황이 더욱 활성화돼서 내가 받았던 그런 환호를 배우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의 수상 전례로 예상하지 못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당시 기분이 어땠나?
먼저 상을 받을 당시 너무 흥분됐다. 사실 그 전에 <색, 계>가 미국에서 NC-17등급을 받았고, 그 점이 여러 가지로 영화에 제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수상을 통해 <색, 계>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특히 7명의 심사위원들이 모두 감독들이었는데 그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특히 기뻤다. 사실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감독상을 받았고 그 당시도 흥분됐지만 그건 개인적으로 받는 상이라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색, 계>는 작품 자체로 상을 받게 돼서 스텝들과 영광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뻤다.

장아이링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자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장아이링은 중화권에서 워낙 사랑을 받는 작가이며 나도 개인적인 팬이다. 때문에 함부로 그녀의 작품을 각색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색, 계>는 그녀의 다른 소설과 달리 작가가 오랫동안 공들였던 작품이고, 28페이지의 짧은 단편이었지만 그녀가 표현하고자 했던 절망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담겨 있었다. 게다가 여성의 심리가 잘 표현된 것은 물론 항일전쟁시기의 강인한 여성의 사랑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없어 두려웠지만 한 번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여주인공 ‘왕치아즈’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작품을 아끼는 마음도 마찬가지로 컸다. 결국 이런 두 가지 마음을 담아 영화를 만들게 됐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두 작품 모두단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허락되지 않은 금지된 사랑이야말로 더욱 로맨틱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그런 점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스무 살에나 받아들였어야 할 극적인 로맨스가 나이 오십이 돼서야 편해지고 다룰 수 있게 됐다는 게 다른 사람에 비해 남다르긴 하지만, (웃음) 난 지금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시간인 것 같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색, 계>의 원작은 굉장히 재능 있는 반면, 거친 문체를 가진 여작가들의 작품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서부시대를 바탕으로 펼쳐진 카우보이와 마초맨의 사랑이야기였기 때문에고 시대적으로 용납될 수 없었지만, <색, 계>는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건 애국심과 여성의 성정체성을 서로 저울질한다는 위험한 발상이고 그건 시대적으로 더욱 타부(taboo)시되는 일이기 때문에 영화화를 머뭇거리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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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망설임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화를 완성하고자 했던 욕망의 근원이 뭔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탈 때 고속으로 깊게 떨어질수록 스릴이 커지는 것처럼 내 안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파헤치고 그걸 들여다 봤을 때 나 역시도 그런 흥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그런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그건 사실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그럼으로써 예술적으로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고 세상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걸 해부하는 작업을 즐겨야 한다. 이런 작업은 내가 영화 감독으로서 항상 배역을 빌어서 내 연기를 보는 것과도 같다. 이번엔 왕치아즈를 빌어서 내가 연기를 한 셈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고통과 욕망 혹은 욕정을 달리 생각하면 그건 색(色)이다. 모든 산물이 갖고 있는 모든 색깔이 색이니까 내가 보는 시야에 있는 모든 사물을 난 색깔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욕망할 때도 그 색을 떠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어떤 나의 욕망, 색을 자제하고 그것을 감시하는 계, caution이 항상 공존한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영화상으로, 화면상으로, 스크린으로 옮겨서 보여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내가 <색, 계>를 통해서 하고자 했던 작업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색, 계> 라는 제목의 의미를 직접 듣고 싶다.
<색, 계>는 불가에서 말하는 인간의 심리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다. 장아이링의 소설은 늘 두 가지의 대조적인 심리들이 그려지곤 한다. 계는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욕망을 물리치는 것이고, 색은 색정의 색, 색깔의 색을 가리킨다. 특히 색은 인간이 눈으로 보는 동시에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도 가리킨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그것을 배척하고 항거해야 할 때도 있다. <색, 계>는 그런 의미에서 대조적이지만 하나로 관통되기도 하는, 한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의미다.

<색,계>에선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강렬한 정사씬이 등장한다. 사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동성애도 그 자체만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계속해서 극단적인 방식의 사랑을 묘사하는 이유는 뭘까?
중년의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웃음) 난 과거에는 보수적이었고, 사랑에 대해서 평범한 느낌을 가진 사람에 불과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평범한 가정생활을 통해 일반적인 사회적 의무들을 이행해 왔고, 상당히 정상적인 범주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협, 애니메이션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시도하게 됐고 중년 이후가 되어서 젊었던 시절,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것들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잡을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색, 계>는 그보다 노골적인 수위로 표현했지만 마찬가지다. 표현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두영화는 자매와도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결말부에서 보여지는 두 인물의 대조적인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앞둔 왕치아즈(탕웨이)의 표정이 담담한 것에 비해서 살아남은 이(양조위)의 표정은 상당히 비극적인 슬픔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색, 계>는 마치 죽은 자의 비극처럼 포장돼있지만 오히려 살아남은 자의 비극이 아닐까 생각했다.
잘 본 것이다. 결말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언급하거나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관객들 스스로의 개인적인 해석을 열어두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에 나 역시도 동의한다. 한편으로 시대적 배경에서 생각해보면 누가 지배를 받느냐, 누가 지배를 하느냐라는 시대적 기로가 존재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곳이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상하이에서 이가 왕차이즈를 성적으로 지배하는 포지션은 각각 먹이와 사냥꾼 같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 중국의 옛날 이야기 중, 호랑이와 청이라고 부르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청은 항상 호랑이를 따라다니면서 호랑이를 지배한다는 귀신인데 그런 옛날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결국 여주인공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서 어떤 희열을 느꼈고, 오히려 그 남자 주인공은 귀신 같은 여자의 기억에 의해 계속 고통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맥락을 이루고 있으니까 말한 대로 산사람의 비극이고 지옥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전쟁 영화에서는 선한 사람은 항상 죽고, 살아남은 자는 그에 대해 가책을 느끼면서 죽은 자만 못하게 살아간다는 그런 형식을 생각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징벌의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불공정한 시대적 기운과 결탁한 인물에 대한 단죄이거나 복수라고 말이다.
정확하게 그건 어떤 슬픔이라고 본다. 그 여주인공의 죽음은 남자주인공에게 있어서 자신이 정말 유일하게 사랑했던 자신의 내면의 영혼, 청을 죽여버린 셈이기도 하다. 그건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시대 속에서 진짜 자기 영혼의 솔직한 모습을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서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색, 계>는 시대의 어떤 애국심이나 도덕심, 아니면 개인의 행동에 대한 어떤 룰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시대가 개인의 인생에 끼치는 어떤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사람과 사람간의 애매한 관계 속에 숨겨진 열정에 대해서 더 많은 흥미를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맞는 건지, 뭐가 틀린 건지, 무엇이 정의로운 건지, 정의롭지 않은 건지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등장인물을 통해서 선이나 악, 삶이나 죽음을 아우르는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투영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결국 결말을 열어둔 건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말처럼 들린다.
왕치아즈에 대한 어떤 견해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도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가 애매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왕치아즈는 착한 여자가 나쁜 여자로 변장해서 그 삶을 살다가 결국은 그 나쁜 삶을 좋아하게 된 셈이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에 빠져버리고 좋아하게 된 개인의 복잡한 내면이 내재하고 상황의 혼란스런 정체성을 관객들에게 열려진 결말로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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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복잡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해야 하는 여배우를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애초에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사실 여배우를 캐스팅할 때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 <색, 계>는 여자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이고, 원작자인 장아이링도 여성의 시각을 통해 항일전쟁시기의 강인한 여성상을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 속 여주인공이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신선함 역시 캐스팅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중요한 역에 신인 여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사연이 있을 법하다.
지금 현존한 어떤 배우도 왕치아즈의 역할로 마땅히 떠오르는 이가 없어서 결국엔 공개 오디션을 하게 됐다. 그 공개 오디션에 만 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는데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탕웨이를 봤을 때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일단 리딩이 굉장히 좋았고, 어떤 세계관이나 자세를 살펴봤을 때 그녀가 왕치아즈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겉으로 순수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내면은 강인한 소설 속의 여주인공의 모습과 빼닮아 있었다. 사실 왕치아즈의 역할은 내 자신의 분신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내 자신의 분신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큰 모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캐스팅은 최고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니까 어떤 영화든지 다 위험성이 있는 작업이다. 사실 탕웨이를 캐스팅하고 연기훈련을 거치면서 반 이상의 작업을 진전시키기까지 확신이 없었다. 굉장히 순수한 사랑을 꿈꾸다가 그로부터 퇴락되듯 욕정에 빠져드는 모습을 왔다갔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끌고 갈만한 연기력을 조율하는 게 이 캐릭터에서 힘들었던 점이었다. 그러나 훈련을 거치면서 탕웨이는 잘 따라와줬고 내가 원하던 여주인공의 신선한 느낌까지 잘 살려주었다. 배우에 대한 선호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항상 중요한 건 배우가 그 역할에 충실하면 관객들이 배우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탕웨이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라서 대단히 만족스럽다. 또한 그녀가 신인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유명배우를 캐스팅한 것 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반해서 양조위는 상대적으로 감독이라면 신뢰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라는 인물은 양조위를 염두에 둔 캐릭터였나?
항상 작품을 볼 때마다 대본을 먼저 보고 영감을 느끼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한번도 배우를 먼저 설정하고 캐릭터를 설정한 적은 없다. 물론 <음식남녀>의 아버지 역할을 한 랑웅(Sihung Lung)은 애초에 아버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딱 한번의 예외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외엔 단 한번도 배우를 먼저 염두에 둔 적은 없다. 물론 양조위와는 늘 작업해보고 싶었고, 1년 전부터 언젠가 캐스팅해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기도 했다.전체적으로 그의 역할은 여주인공보다 표현의 한계가 있었지만 그는 누구도 그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양조위에게 이는 지금껏 자신이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악역으로서, 중국어 대사를 소화하고 중년남자를 연기하는 등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 도전을 이룬 양조위는 훌륭한 배우다. 그와 함께 작업하게 된 건 결국 내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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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지금껏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악역이란 기준에 대해서 더 듣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사람이 저지르는 죄와 정말 사악한 영혼을 갖고 태어났다고 느껴질 정도로 의도적인 범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내 기준으로 치자면 어떤 동정심을 부르는 죄인은 악역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양조위가 연기하는 이는 비틀어진 자아를 지닌,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악역이지만 동시에 영혼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복합적이고 좀 복잡한 악역이라고 생각한다.

<색, 계>는 1930~40년대의 상하이, 홍콩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현 세대에겐 낯선 풍경인데 그 시대와 공간의 고증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색, 계>에 매료된 건 1930년대에 대해서 얘기하려 했기 때문은 아니고, 그 시대를 배경이 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하지만 고증은 중요하기 때문에 정확한 고증을 하려고 했다. 그 시대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지금 중국을 살아가는 젊은 중국인 세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치욕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다른 영화 감독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어찌 보면 금지된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는 시대다. 하지만 난 그 동안 영화를 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과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확장시킬 수 있었고, 미술팀과 최선을 다해서 고증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세트의 상점가들은 그 시대에 있었던 상점가들을 고증해서 만들었다. 그 때 당시, 많은 해외망명자들이 그 상점가를 은신처를 삼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동서양이 교류하는 듯한 이상한 풍경을 그 시대에 발견할 수 있었다. 굉장히 매력적이고 화려한 그런 배경이 잘 다뤄지도록 노력했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다. 주로 어떤 것으로부터 흥미를 느끼는가?
한 개의 단순한 요소로 이뤄진 것으로부터는 흥미를 느낄 수 없고, 두세 개의 어떤 복합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것에 호기심을 느낀다. 항상 내게 신선하게 느껴지거나 호기심을 일으켜서 답을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을 위주로 작업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서 답을 찾으려 하지만 반면에 답이 없는 결말을 만드는 작업과정이 즐겁다. <색, 계>처럼 여성의 성 정체성과 애국심을 저울질하는 두 가지 요소가 섞인 복합적인 이야기가 내게는 굉장히 흥미롭다.

처음 할리우드에 진출할 당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상태에서 앞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영어가 많이 향상됐지만 <센스 앤 센서빌리티> 당시엔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가지고 영국 사람에게 가서 그들과 같이 일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큰 도전이었고 그 자체가 큰일이었다. 사실 그 이후로 모든 영화의 프로젝트를 할리우드에서 만들고 제작했기 때문에 어쩌면 내 모든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할리우드적인 영화는 <헐크>였는데 <헐크>는 내 생각에 예술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급 당시 힘들었던 점들이 있었다. 내가 추구하는 건 재료와 어떤 부분들만을 갖고 오되, 이것은 딱 이 장르다라고 할만한 영화는 만들지 않기 때문에 영화의 배급과 홍보를 하는데 있어서 나도 모르는 두려움이 있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이라면 배급이나 홍보 같은 메커니즘의 이해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선 비할리우드 영화는 독립영화고, 할리우드 영화는 주류영화다라고 나누기도 하는데, 난 그 중간지점(gray area)에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또한 좋은 시나리오는 모든 것을 갖고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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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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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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