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맺은 계약. 자살을 약속하는 소녀들.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은 부제처럼 동반자살을 약속한 동급생 여고 소녀들의 의식을 비추는 가운데 시작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가운데 촛불을 어스름하게 밝힌 엄숙한 성당에서 각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내고 피를 떨어뜨린 계약서에 손을 얹는 의식은 비장하다. 침묵의 제의를 지배하는 건 정적으로 대변되는 의문이다. 동반자살을 도모하는 소녀들의 사연에 물음표가 새겨진다. 그리고 의문에 휩싸인 정적을 부수는 커다란 울림을 통해 괴담은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여고괴담5>는 사춘기의 트라우마를 호러의 자질로 연동시키는 기존의 시리즈와 동력은 비슷하다. ‘여고’라는 환경이 머금은 ‘괴담’이라는 소재는 어딘가 설득력 있는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여고괴담5>는 그 설정의 유효함을 소진하는 또 한번의 기획이다. <여고괴담5>는 정서적으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물론 여기서 발생하는 기시감은 작품의 자질까지 평가된 결과가 아니다. 모호한 형태로 침잠된 정서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태도가 그렇다. 아이러니하지만 공포스럽지 않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여고괴담>이라는 시리즈가 표방한 장르적 의도는 명백하다. 그만큼 그 의도를 기준으로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여고괴담5>는 무섭지 않기로 따진다면 시리즈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몇 번 정도의 깜짝쇼가 때때로 움찔하게 만드는 요량은 있어도 근본적으로 공포의 수위까지 나아간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르적 특징이 열악하다. 스테레오 타입의 사연으로 치장된 캐릭터들도 아쉬운 대목이다. 개별적인 캐릭터 각자를 두르는 인과관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개개인의 갈등엔 적당한 당위가 존재한다. 그 갈등을 유발하는 사연의 깊이가 지극히 얕다.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그리고 그 평면적인 사연이 입체적인 구조를 이루지 못하고 두꺼운 평면의 형태로 포개져 나열되는 느낌이다. 그만큼 충돌하는 사연들로부터 파생되는 감흥이 지극히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긴장감의 결여도 이 지점에서 비롯되는 느낌이다.
어둡고 흐릿한 인상을 유지하지만 그것이 싸늘하거나 으시시한 감정을 담보하지 못한다. 물론 귀신보다도 사람이 더욱 무섭다라고 이해되는 결과는 흥미롭다. 여고생이라는 예민한 시절의 풍경을 바탕으로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엇갈리는 관계의 침몰을 지켜본다는 건 나쁘지 않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진짜 사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건 장르적으로 끔찍한 패착이다. 나약한 장르적 해석과 빈곤한 상상력이 동원된 스토리는 <여고괴담5>이 기본적인 자산 관리가 불성실한 작품임을 인지하게 만든다. 신예 배우들의 연기엔 일장일단이 있다. 다만 그 연기를 온전히 평가하기엔 캐릭터의 설계가 안이하다. 이는 분명 캐릭터가 배려해야 할 기본적 요구가 불충분한 탓이다. 이런 결과가 경력이 짧은 어린 배우들의 자신감을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 10주년 기념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시리즈의 가장 큰 고비를 맞이하는 인상마저 든다.
<여고괴담2: 메멘토 모리>가 떠올랐다. 정서적인 기시감이 그렇다. 물론 그 정도로 비범한 감상을 부여한다는 게 아니다. 침잠된 정서만 그렇다. 무섭지 않기로 따진다면 시리즈 가운데 가장 밑바닥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두어 번 정도 움찔할 정도의 깜짝쇼를 제외하면 놀랄만한 구석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안타까운 건 평면적인 사연이다. 개별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낸 갈등엔 적절한 당위가 있다. 다만 그 개별적 사연들이 지극히 스테레오 타입이다. 거기까지도 좋다. 그 개별적 사연이 충돌하는 양식이 어떤 입체적인 감흥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불필요한 사족이 동원된다. 평면을 구조로 쌓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평면이 계속 포개져서 두껍게 평범해지는 느낌이랄까. 점차 심심함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어둡고 흐릿할 뿐, 으시시하거나 싸늘하지 않다. 귀신보다도 무서운 사람의 내면을, 그것도 여고생이라는 예민한 시절의 풍경에 담아놓고자 한 의도는 나름 야심적이다. 다만 진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건 장르적으로 끔찍한 패착이다. 해석력이 연약하고, 상상력이 빈곤하다. 가톨릭 미션 스쿨이라는 배경은 그저 고딕적 환경을 병풍처럼 두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잔혹하다는 수사가 민망할 정도로 핏빛의 농도에 비해 압박이 약하다. 애초에 경력이 짧은 배우들의 연기를 논한다는 건 사족이다. 연기적 어색함을 찍어내는 것보다도 캐릭터를 치장시켜주기 힘든 작품의 자질이 문제다. 10주년 기념작이라는데, 이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게 될 기념작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경력이 짧은 어린 배우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진 않을까, 내심 안타까운 심정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