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약속했던 연인 제프(소지섭)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은 뒤 시름에 빠져 있던 만화가 지망생 소피(장쯔이)는 복수를 다짐한다. 미모의 연기자 안나(판빙빙)와 눈이 맞아 자신을 차버린 제프의 관심을 다시 자신에게 이끌고 시원하게 뻥 차버리는 것. 게다가 안나와 모종의 과거를 지닌 사진 작가 고든(허룬동)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든든한 지원사격까지 약속을 얻어낸다. 이른바 ‘소피의 복수’를 담은 <소피의 연애매뉴얼>은 좌충우돌의 명랑한 로맨스를 묘사하는 순정만화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5단계의 챕터로 구성된 스토리와 알록달록한 풍선껌과 같은 미장센, 그리고 과잉된 감정을 표출하는 캐릭터, <소피의 연애매뉴얼>은 온전히 순정만화의 컨셉이 반영된 영화적 결과물이나 다름없다.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간지러운 장면이 여럿이며, 단순히 순정만화적인 느낌을 벗어나 유치한 스토리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게 만든다. 아무래도 남자보단 여자들을 배려한 취향의 영화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거나 각오해야 한다. 장쯔이의 과잉된 연기보다도 차분하게 슬랩스틱을 선사하는 소지섭의 간지 버린 표정이 더욱 인상적이다.
베를린에서 공개된 <매란방>의 러닝타임이 147분으로 알고 있다. 어제 내가 본 건 118분이었는데 중국에서 상영된 건 어떤 버전인가? 중국에서 상영한 것도 베를린 버전과 같은 147분짜리였다.
혹시 118분 버전은 봤나? 편집에 어디까지 관여한 건가?
공교롭게도 아직 보진 못했다. 사실 영화사 측으로부터 한국 사정에 맞춰서 러닝타임을 줄인다는 말은 미리 들었다. 배급사에서 나름대로의 사전에 맞춰서 부탁한 것이라 생각하니 반감을 갖거나 크게 염두에 두진 않았다. 일단 러닝타임을 줄였다고 하니 조정된 부분이 어떤 부분일 거란 예감은 든다. 그리고 중국이 아닌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요청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다만 수입사의 판단이 옳은 방향이길 바랄 뿐이다.
예전에 펑 샤오강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펑 샤오강 감독은 아시아에서 제작되는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펑 샤오강 감독이 그때 어떤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하게 된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감독마다 조금씩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서 중국도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자신의 나라가 지닌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를 영화에 담아내고 이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국 영화 중에서도 훌륭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영향을 준다. 실질적으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미국 문화 자체가 우세한 위치에 놓인 건 확실하다. 만약 한국이나 중국 감독이 자기 나라의 역사적인 전쟁을 영화로 찍었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 대부분을 이해시키긴 힘들 거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경우는 다들 서양문화를 이해하는 만큼 쉽게 받아들인다. 만약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인도감독이 인도영화처럼 찍었다면 세계시장에서 지금처럼 인정받기 힘들었을 거다. 그렇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 속의 중요한 부분들을 우리가 영화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란방>에서 일본군 장교가 경극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그런 맥락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중국이 위대하다는 의도로 접근한 대사는 아니다. 실제로 매란방은 일본으로 서너 번씩 건너가 공연을 했고, 이를 통해 일본 친구들을 알게 됐다. 그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 당시에 일본군은 무력으로 중국을 점령할 수도 있었지만 문화를 정복함으로써 중국을 완전히 점령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일본과 중국의 갈등을 좀 더 디테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5분 정도의 분량을 편집과정에서 잘라냈는데 만약 그 장면이 남아있다면 이런 부분을 좀 더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경극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 건 <패왕별희>와 같은 중국영화의 영향력 덕분이기도 하다. 혹시 중국 내에서는 경극을 소재로 한 다른 장르나 매체가 제작되고 있나.
아직도 중국 내에서 많은 관객들이 경극을 좋아하고 보기 때문에 여전히 공연이 이뤄진다. 특히 북쪽지방 사람들은 더더욱 경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해서 다른 컨텐츠를 만들기 보단 여전히 경극 자체가 존재하고 있다. 경극은 높은 경지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이므로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지만 지금 현재로선 완전히 대중적인 예술이라 말하긴 힘든 측면이 있다. 물론 예전엔 아주 대중적인 예술이었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경극은 현실주의적인 예술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어떤 동작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형식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동작이나 표정으로서 모든 것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경극이 서양에 끼친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유명한 감독, 배우, 평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들 가운데 경극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찰리 채플린과 매란방은 굉장히 많은 교류를 하는 친구관계였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가령 예를 들어서 컵을 들고 물을 마신다면 실제로 컵은 없지만 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동작만 하지 않나. 사실 이런 것들이 매란방과의 교류를 통해서 얻은 영향의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그리고 러시아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은 매란방이 연기하는 장면을 실제로 찍었었고 여전히 그 영상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매란방은 단지 중국에 국한되는 인물이 아니라 당시 유명한 세계의 대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매란방이 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당신의 작품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바가 있을 거다. 15년 전 상영됐던 <패왕별희>를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그 영화를 통해 경극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거다. 자신의 작품이 타국인들에게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의식해본 적 있나? 혹은 반대로 자신이 타문화의 영향력을 얻었다고 할만한 경험은 없나?
실제로 내가 다른 관객들에게 큰 영향을 줬는지 스스로 잘 느끼긴 어렵다. 나는 문화혁명을 겪은 세대였고, 문화혁명으로 당시에 노동자가 됐다. 사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나를 영화 대가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건 우리가 가진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더욱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고. 물론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서양의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다. 우리 문화 속에서도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는 것처럼 서양문화 속에서도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싶진 않다.
<매란방>은 예술가에 대한 일대기를 담은 영화다. 예술가라 할 수 있는 당신이 그 이야기를 선택한 것에 대한 계기가 있을 텐데.
<매란방>은 예술가가 자기 인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얻게 되는 어려움과 공포를 극복해나가는 영화다. 자신을 버리고 관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배우다. 유일하게 서방국가에서 경극을 보여줬던 배우이기도 했다. 일본 침략기엔 자신을 버리고 다시 배우로서 살아가고자 결심하기도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종이 족쇄를 차는 백부의 모습은 그 시대의 예술인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다양한 매체와 접하지 못하고 그만큼 자유롭지 못했던 형편을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 예술가로서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이다.
<매란방>은 크게 세 맥락으로 구성된 영화다. 사실 세 번의 사건 속에서 매란방보단 그 주변부를 차지하는 인물에게서 얻어지는 극적인 감정이 크다. 궁극적인 의도가 궁금하다. 그리고 혹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구상해보진 않았나?
실제로 매란방이란 인물에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되는 세 부분을 단락으로 나눠서 각자 세 명의 인물을 거치는 방식으로 묘사했다. 처음에 스승님과의 대결에서 매란방이 비록 승리자가 됐지만 사실 승리 이후에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걸 느낀다. 결국 성공이라는 것조차도 그 뒤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쟁과 같은 어떤 외부의 압력에 의해 무대에서 자신의 예술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건 어떤 예술가에게라도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매란방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세 단락을 통해 매란방이란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다. 만약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을 통해 매란방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까.
<패왕별희>와 <매란방>은 당신이 만든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비교되기 좋은 영화다. 벌써부터 그러는 분위기고. <패왕별희>는 15년 전 작품이다. <매란방>은 실재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패왕별희>와 전혀 다른 작품이다. 일단 연기하는 인물들이 다르지 않나.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는 사회를 주도하는 주류라 할 수 있는 중심인물이 아니라 변두리의 인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 속에서 늘 긴장관계를 지니고 살았다. 결국 그 사회가 발전하는 변화 속에서 적응할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서 매란방은 그에 반해서 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매란방은 물처럼 흘러가는 인물이었다면 데이는 불처럼 꺼져가는 운명이다. 매란방은 부드러운 저항가란 점에서 실제 아시아인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두 인물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화두는 없을까?
인물이 다르긴 하나 두 인물을 통해서 느껴지는 바는 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려 하면 할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 같다. 단지 나는 매란방이 이를 더 포용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매란방>을 통해서 포용하는 인간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패왕별희>의 장국영과 <매란방>의 여명을 비교한다면 어떤가?
장국영이라는 배우는 굉장히 민감하고 내적으로 불 같은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서 여명은 마치 차분한 검객처럼, 혹은 불교를 공부하는 승려처럼 조용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배우다.
몇 년 전부터 아시아 합작영화들이 활발히 제작됐다.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아시아인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공통된 소재나 주제를 이용해서 아시아인들끼리 좋은 영화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이젠 이런 합작영화가 더 이상 소수의 사례가 아니라 보편화된 단계로 올라섰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합작영화에 참여해보고 싶기도 하다. 한국도 괜찮고, 일본도 괜찮고, 혹시 어느 회사랑 합작하면 미래가 밝을지 당신이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 (웃음)
혹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이야기가 있나?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다만 어떤 이야기들은 영화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거 같고, 어떤 이야기들은 관객들이 과연 그 이야기를 영화로 보고 싶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는 내가 소년 시절 문화혁명 당시, 남쪽 지방인 운남 열대야 지방의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평범한 삶이긴 했지만 자연환경 속에서 얻었던 역경과 사랑, 이상을 비롯한 청춘 시절의 충동 같은 감정들과 그로 인한 다양한 사연에 대해서 한번 꼭 다루고 싶다. 다만 그게 관객들이 보고 싶어할만한 이야기일지 잘 모르겠다.
이번이 첫 방한이 아니다. 뭔가 특별한 일정이라도 보냈나.
여명(이하, '여'): 와서 보니까 홍보사에서 영화 홍보를 위해 스케줄을 많이 잡아놓은 덕분에 일단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 같이 온 스텝들은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남대문도 다녀 왔다는데. (웃음) 홍콩에서 한국이 TV에 나오는 걸 보고 놀러 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맨날 오게 되면 일만 하고 간다. 가끔 그냥 편하게 거리를 걸어 다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쯔이(이하, '장'): 어제 간 극장은 새로 만든 극장인지 좋더라. 한국의 영화 산업이 빨리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더라. 여: 처음 한국에 온 게 12년쯤 된 거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친숙하다. 그 시간 동안 여러 번 와서 그럴까. 물론 잠깐씩 머물 수 밖에 없었지만 몇 주마다 한번씩 오가던 곳처럼 그 시간차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매란방>은 경극을 소재로 한 영화다. 현재 중국에서 경극에 대한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가? 여: 일단 내가 사는 홍콩에도 경극의 일종인 ‘오극’이라는 홍콩식 지방 경극이 있다. 그러나 홍콩은 워낙 작은 도시고, 시장도 작기 때문에 점점 ‘오극’은 많이 없어지는 추세다. 그래서 정부에서 보호차원으로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공연하기도 한다. 그래도 중국은 워낙 도시들이 크니까 계속해서 꾸준히 경극이 공연되는 기회가 많아지는 걸로 안다. 최근엔 ‘매란방 대극장’이라는 게 생겨서 매란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많은 경극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들이 마련되고 있다.
본인은 경극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 수준이었나? 여: 나도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경극에 대한 깊은 지식이나 인지는 없다. 매란방만 해도 우리 역사에 이런 인물이 있었고, 그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학교 교과서를 통해 소개되는 이야기 정도만 알게 됐을 뿐, 깊은 지식은 없었다.
그만큼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한 영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여: <매란방>을 본 젊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매란방이 살았던 연예계가 지금과 얼마나 다른지를 이해하면서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동시에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단지 핸드폰이 없어서 전보를 쳐서 연락하는 것처럼 기술적인 환경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는 일, 사랑과 같이 겪어내야 할 감정, 이런 인간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어떻게든 극복하는 걸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시대적 차이만 있을 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걸 느낀다면 <매란방>이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맹소동의 헤어스타일이 그 당시 유행이었는데 지금도 유행되곤 하지 않나. 그조차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시간이 흘러도 어디에 있어도 사람 사는 건 마찬가지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사진기자들의 플래쉬가 영화를 다시 플래쉬백하는 느낌이었다. (웃음) 영화로 치자면 미래가 되는 지금 내 앞의 기자들의 플래쉬가 그때보다 빨리 터진다는 것만 다르지. (웃음) 살아가며 느끼는 감성은 시대와 무관하게 비슷하다고 느낀다.
연기에 임하기 전에 준비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장: 경극을 훈련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경험이 전무한 예술을 배운다는 것도, 실제 인물을 모방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2달 정도의 훈련 기간을 거치면서 그 인물 자체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 덕분에 촬영 당시엔 그냥 그 인물이 됐다. 돌아보면 즐거운 작업이었다. 여: 우리 같은 후배에겐 먼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부터 공부했다. 한 세기 이전의 성취감을 따라잡는다는 건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 당시 주변 환경과 모습이 어땠는가에 대한 세심한 연구와 토론을 거쳤다. 그에 근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장쯔이 씨는 남장 배우 ‘맹소동’을 연기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장: 일단 첸카이거 감독님과 영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다. 항상 내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난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다. 물론 경극을 배우는 과정은 사실 상당히 힘들었다. 몸의 자세부터 작은 손동작이라던가, 입 모양까지 다 배워야 하는 탓에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들이 내 자신에겐 큰 도전이었고 그래서 즐거웠다. 맹소동의 분량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때때로 맹소동을 좋아해주거나 그로부터 신선한 생동감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걸 보면서 좋은 경험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매란방과 가슴 아픈 사랑을 나누지만 영화에서 햇빛처럼 밝은 부분을 차지하는 역할이라고 본다.
반대로 여명 씨는 여장 배우를 연기하는데 그만큼 여성적인 제스처를 익히기 위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혹시 그로 인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여: 사실 영화로 보여진 연기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처럼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대 위에서는 여자 같지만 무대 밖에서는 남성적이지 않나. 촬영 중에 특별히 신경 쓴 바는 없었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감독님이 잘 연출해준 덕분이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정신적으로 전력을 다해서 임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에피소드처럼 전하면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단순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 같아서 그에 대한 말은 삼가겠다. 그냥 배역 그 자체로 생활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추억을 훼손하지 않고자 배려하는 거니 이해해달라.
<패왕별희>의 장국영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여: 비교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 장국영은 존경하는 배우다. 외부에서 비교하는 걸 좋아한다 해도 내가 그 비교에 참여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상관없다.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나? 여: 장쯔이 씨는 내면이 꽉 찬 배우다. 관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연기를 한다. 사실 데뷔 이후로 10년 동안에 출연작이 10여 편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만큼 배우로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고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신인 때 찍었던 무협영화 한편(<와호장룡>)이 크게 흥행한 만큼 그 이미지에 지배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스스로가 그 동안 새로운 장르와 작품을 선택해왔다. 최근엔 본인이 직접 제작한 현대물도 찍었다는데 이런 움직임을 보면 많은 관객들이나 나 같은 배우의 입장에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만큼 장쯔이라는 배우를 보는 관객들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장: 여명 씨는 매란방처럼 젠틀하고 우아한 면이 있는 반면에 가끔씩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연예계 톱스타로 살아왔으면서 그런 모습을 간직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워낙 친한 관계이고 평상시에 배우라는 의식을 안하고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덕분에 현장에서 연기를 하려고 의식한다기 보단 최대한 편안하게 촬영에 임했다. 영화에서 매란방과 맹소동이 즐겁게 웃는 장면을 보면서 평상시 서로를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우정이 있기 때문에 함께 교감하는 모습들이 연기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명 씨의 말대로 장쯔이 씨는 <와호장룡> 이후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장: 지금까지의 작품을 보면 분명 그 때보단 범위가 넓어진 거 같다. 최근에 소지섭 씨와 찍은 <소피의 복수>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의 나이는 스물 대여섯 정도인데 실제로 내 모습은 열 일곱, 여덟 정도로밖에 안 보이더라.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미안한데, (웃음)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고 비단 내 생각만은 아니다. (웃음) 덕분에 배우로서 나이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내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경험을 얻었다. 반대로 나이가 많은 역할을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배우로서 연령을 맞춰서 연기하는 범위도 훨씬 넓어진 것 같다.
장쯔이 씨는 예전에 <야연>으로 내한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멜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 소지섭 씨와 함께 <소피의 복수>로 호흡을 맞췄다. 장: 아, 그건 한국영화가 아니니까 아직 이뤄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웃음)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장: 일단 소지섭 씨는 중국어 대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거다. (웃음) 영화에서 상반신 육체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덕분에 아름다운 근육을 봤다. 아쉽게도 여명 씨는 근육을 보여줄 기회가 없더라. (웃음)
혹시 여명 씨는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할 만큼 인상적인 한국 여배우가 있나? 여: 항상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화제를 바꿔보고 싶다. (웃음) 어떤 남자배우가 어떤 여자배우와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단지 하루 동안의 뉴스 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영화사가 아시아의 모든 배우들을 캐스팅할 역량이 되고 그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생각이 있으며 최소한 10편까지 찍을 수 있는 시리즈를 기획할 수 있다면 일년에 오직 그 영화 한 편만 나와도 될 것 같다. (웃음)
매란방을 연기하면서 직접 화장을 하기도 했는데 배우로서 화장하는 게 어색한 일은 아니었을 거 같다. 여: 연기할 때도 화장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매란방>에선 화장도 준비의 일종으로서 하나의 예술 안에 포함되는 행위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단순히 일상적인 화장과 비교할 순 없는 거 같다.
<매란방>에서 원화는 백부로부터 무대를 떠나라는 유언을 얻는다. 하지만 결국 배우의 길을 걷는다. 본인들도 배우로 살아가면서 얻는 자부심도 있지만 그만큼의 난관도 느낄 것 같다.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장: 일단 배우로서 살아가면서 얻는 장점이 단점보단 많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그만큼 사회가 주는 책임감을 받아들이면서 생활을 한다. 다만 사생활에서 많은 제약이 있고, 가끔 미디어에서 기사를 팔기 위해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그럴 땐 힘들지만 그런 작은 문제 때문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 일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배우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가거나 연기를 하면서 그걸 표현해내는 과정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자신의 연기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는 매란방의 대사가 배우로서 의미심장하지 않던가? 그리고 연예인으로서 ‘종이족쇄’를 차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때가 있나?
여: 예술가는 누군가가 사랑을 얻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점유하게 되면 그것도 결국 불행이 될 수 있다. 맹소동이 매란방을 떠나가는 것도 정답인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감히 매란방의 선택을 대신할 순 없다. 다만 나 역시도 사랑보다 일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연예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운명적인 아픔이 있다. 장: 많은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아가지만 누구나 자신의 일 가운데서 결정해야 할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 역시도 어떤 실제적 경험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때때로 영화 속 감정이 현실의 감정과 충돌하는 경우도 없진 않다. 여: 요즘 장쯔이 씨한테 ‘종이 족쇄’가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풀린 거 같다. (웃음) 나도 예전에 우리 집 커튼 사이로 사생활을 찍어가는 이들을 대면하곤 했다. 가끔 파파라치들 떄문에 속도 위반을 하면서도 피해야 할 때도 있고. 이런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감내해야 하는 측면이 없진 않다.
만약 자식이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겠나? 장: 만약에 내가 낳은 자식이 배우가 되느냐, 안 되느냐, 라는 문제는 그 아이가 선택할 일이다. 만약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엄마로서 배우를 하며 겪게 됐던 좋지 못했던 경험까지 다 가르쳐주고 싶다. 여: 난 스무 살 때부터 서른 다섯 살까진 자식이 생기면 죽어도 배우는 못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우리 집안엔 다시 나 같은 배우가 나올 수 없을 테니까. (웃음)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아들보단 딸을 갖고 싶다.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로서 너무 많은 기대를 할 거 같다. 그런데 그 아들이 내가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면 기분이 좋지 않겠지. 하지만 딸이라면 내가 충족시켜야 할 기대가 많지 않을까. 딸은 내게 있어서 성공적인 걸 보여주지 못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혹시나 아들이 연예계 계통에 있다면 절대 얼굴이 알려지는 일은 못하게 할 거라 결심했다. 예를 들어 프로듀서라던가, 그러니까 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끔 할 거다. 물론 이건 다 내 생각에 불과하고, 정말 그런 상황이 왔을 땐 운명에 따르게 될 거다. 다만 나는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엄격한 가치관을 갖고 있을 뿐이다. (웃음)
최근 홍콩영화가 많이 침체됐다. 여: 예전엔 분명 홍콩영화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고, 잘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 만약 냉기라면 분명히 다음엔 더 좋아지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주식도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는 것처럼 모든 일엔 기복이 있다. 관객들은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뉴스를 원한다. 영화도 그런 면에서 관객들을 자극시킬 수 있고 새롭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성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영화는 검열이 심해서 표현의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다. 장: 듣기로는 한국도 옛날엔 영화를 찍거나 상영하는 데 있어서 많은 제약이 있었다고 들었다. 심의도 거쳐야 되고, 절대 보여질 수 없는 부분도 있고. 그런데 이젠 등급제도 정착되고 관객들이 많은 영화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들었다. 중국 영화는 아직 심의 제한이 있어서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예전에 심의가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에서 <올드보이>의 혀가 잘리는 모습과 같이 폭력적인 묘사를 담은 영화가 상영될 수 있었을까? 지금이기 때문에 그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영화는 인간의 심정을 눈으로 보는 표현의 문화다. 중국도 점점 올라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면 더 많은 관객들이 중국영화를 선택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여: 시간에 따라서 모든 변화가 이뤄진다. 할리우드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면 <트랜스포머>같이. 하지만 아시아인들은 뭔가를 생각해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창의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너무 비슷한 소재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런 환경의 제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란 새로운 것을 창작해나가는 일인만큼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이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인재를 통해 공간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난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순 없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노력에 동참하고 싶다.
<매란방>에서도 보이듯 자본과 예술은 어느 정도 필연성이 있다. 여: 좋은 예술이 나오려면 돈 많고 용감한 사람이 투자해야 한다. (웃음) 게다가 지금처럼 영화계 시장이 좋지 않을 땐 투자자들이 잘 선택해서 투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내가 한 발자국 나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마 다른 전세계 영화시장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관객들은 어차피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그 숙제는 우리가 풀어가야 한다. 전세계 어디에나 예술가는 존재하고 그들은 자신의 길에서 노력하는 방식으로 세계에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난 <매란방>을 통해 어떤 어려움이 있고 힘들다 해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겨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백부는 경극 배우였다. 그는 배우로서 명성을 누렸고,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백부는 광대였다. 광대란 명예를 쌓아 올려도 한 줌 바람에 허물어지기 좋은 운명에 불과했다. “경극배우로 성공해도 멸시를 벗어날 수 없다. 무대를 떠나라.” 백부의 유언장을 읽어 내려가던 어린 원화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연기를 가르칠 선생님이 왔다. 백부는 원화에게 무대를 떠나라 했지만 운명은 원화를 무대 위로 올려 보낸다. <매란방>은 배우로서의 삶을 면치 못했던 어느 한 사람의 운명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 된 이름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배우 ‘매란방’의 실존적 삶을 영화화했다는 <매란방>은 한 인물의 인생 속에서 격정적인 사건을 추출해 서사적으로 나열한다.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반복으로 진전되는 상황은 3번의 점프컷을 통해 크게 분할된다. 유년시절 스승으로 모시던 대배우와의 대결, 성장한 매란방(여명)과 맹소동(장쯔이)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미국 진출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 휘말린 매란방의 역경. 3조각으로 나뉜 서사엔 저마다 극적인 사연이 존재하며 이는 <매란방>이란 스토리텔링을 분할하는 카테고리처럼 질서정연하게 나열된다. 그 중심엔 어김없이 ‘매란방’이 있다. 그러나 그는 사건의 근원이 되는 주체라기 보단 모든 사건에 연루된 객체로서 그 자리를 지킨다. 사건의 배경이 되어 병풍처럼 존재한다.
물론 유년 시절의 서사는 매란방이라는 인물의 기초적인 서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한다. 서양연극을 공부했다는 구여백(손홍뢰)은 원화를 만난 뒤 관료직을 버리고 원화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결국 타성에 젖은 경극 배우들의 전통적 관념에 대항하고자 하는 구여백에게 감화된 매란방은 자신의 스승과 대결을 펼친다. 물론 그 대결의 주체는 매란방이 아니다. 진보적인 구여백과 ‘경극의 대왕(伶界大王)’이라 지칭되던 보수적인 대배우의 대립 안에서 매란방은 승부를 결정짓는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국면 안에서 매란방이 느끼는 정서적 애환이 백부의 유언을 환기시키며 일종의 감흥을 부른다. 대배우의 쓸쓸한 몰락과 이를 지켜보는 매란방의 부채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어떤 예감이 매란방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매란방>에서 묘사되는 ‘매란방’은 전반적으로 반사율이 낮은 인물이다. 공허하며 한편으로 단조롭다. 인물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낄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흥미로운 건 매란방의 주변부를 차지하는 서사이며 그 서사에 참여하는 주변인들이다. 씬의 감정을 지배하는 건 대배우이거나 맹소동이거나, 일본군 장교다. <매란방>에서 ‘매란방’은 주체의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주체적인 감정을 야기시키지 못한다. 실제 인물의 서사가 그러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영화상에서는 그렇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유년 시절 이후 여명이 연기하는 매란방의 서사가 이에 해당한다. 유년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시점부터 매란방이란 인물의 관점은 흐리멍텅해진다.
매란방은 대단한 사연 속에서 감정을 지배하는 역할을 선점하지 못한 채 그저 존재한다. 유년 시절 이후로 나열되는 두 번의 큰 사건 속에서 매란방은 무색무취의 형태로 그저 늙어갈 뿐이다. <매란방>은 주인공을 날려버린 배경 사진과 같다. 그 여백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나 주변부에서 고조되는 감정에 흥미를 느낀다면 다행이겠지만 매란방에게 흥미를 느낄 수 없는 매란방 이야기라는 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면 감상 자체가 텅 비는 꼴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찰리 채플린도 영감을 얻었다는 매란방의 실제연기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경극이 소리를 절제한 무대극으로서 무성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영화는 매란방의 삶이 관객에게 어떤 영감을 주지 못할 정도로 심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만든다.
‘매란방’이 <패왕별희>의 데이(장국영)가 연기한 실존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인물이 경극배우라는 점에서 <매란방>과 <패왕별희>는 누군가에게 비교하고 싶어지는 영화가 될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수순일지는 의문이다. 단지 두 영화가 평행선에 놓기 좋은 비교군의 조건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경극을 소재로 한 첸 카이거 감독의 작품이란 공통분모가 선명한 까닭이다. 하지만 단순히 여명과 장국영의 연기력을 비교한다거나 두 작품의 우열을 논한다는 건 사실상 부질없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매란방>은 <패왕별희>보다도 훌륭한 기능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존적 재현과 허구적 창작의 너비만큼이나 두 작품은 엄밀히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애초에 타고난 환경과 천성이 다른 두 인물의 서사에 우열의 잣대를 부여한다는 건 어딘가 무지막지한 태도다.
사실 118분 가량의 상영시간으로 국내에서 개봉될 <매란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떤 면에서 무색한 일처럼 느껴진다. 국내 수입사에서 가위질 했다는 30분의 서사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첸 카이거 감독의 승인을 얻었다지만 감독 스스로도 편집본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과물을 놓고 이야기한다는 건 어딘가 무색한 일이다. 실질적으로 영화상에서도 무성의한 편집의 결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매란방>은 위대한 경극배우, 좀 더 포괄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예술가가 인생과 세월의 풍파 속에서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재현하는 드라마다. 30분이 잘려나간 국내개봉판의 모습에서 매란방의 수난이 오버랩된다. 마치 그것은 문화적인 정서나 이해 차이로 경극의 묘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를 멸시하는 타지인들의 무지한 태도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