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 질곡의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허구의 로맨스.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실존인물을 밑그림으로 허구적 로맨스를 채색한 작품이다. 기록적 역사에 근거를 둔 재현이 아닌, 실존인물을 통해 뻗어나간 상상을 스크린에 입힌다. 비극적 역사 속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을 비극적 멜로의 주인공으로 재생산한다. 이런 사연이 있었다면 어떨까, 정도의 가벼운 거짓말을 실제적 삶에 덧칠한다. 논픽션의 캐릭터에 픽션의 삶을 입힌다는 건 나름대로 쓸만한 설정이다. 그런데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추구하는 픽션의 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명(조승우)의 순애보에 동화되기엔 그 얕은 사연에 감정을 담그기 망설여지고, 대원군(천호진)과 명성황후 민자영(수애)이 벌이는 심리전까지 어지럽게 날뛰는 통에 감정이 산만하다. 그 가운데서 판타지에 가깝게 연출된 CG액션신이 종종 스크린을 채운다. 분명 멜로적 플롯이 주가 되는 것 같은데 멜로에 집중하자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역사적 플롯에 눈을 돌리자니 영화를 볼 이유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이건 멜로드라마도, 역사스페셜도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명성황후를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치환해서 얻어낸 값어치가 고작 이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고작 이걸 해보자고 92억이나 되는 제작비를 썼단 말이다. 덕분에 미술은 꽤나 볼만하다만, 스크린을 전시관 윈도우로 착각하는 이들은 없을 테니, 이걸 어쩐담.
수출만이 살 길이다. (베트남에서) 이겨서 돌아오라. 대통령 각하 만세. 새마을 운동. 어느 시대를 추억하는 용어들이 이처럼 삭막한 건 그 시절의 낭만이 철저히 억압됐기 때문이다. 통금과 단속이 난무하던 1970년대 유신의 시대에서 낭만은 잡초가 아니고서야 싹을 피우지도, 뿌리를 내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고고 70>은 그 어두운 70년대에 음지에서 잡초처럼 자라났던 대한민국의 1세대 밴드들, 더 나아가 시끄러운 밤을 열망했던 그 시절 청춘을 위한 일종의 위령제다.
<고고70>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허구, 즉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픽션이다. 야간통행금지로 밤이 조용하던 시절, 밤이 ‘좀 더 시끄러웠으면 좋겠다’는 병욱이 기획한 호텔 지하에서의 밤샘영업공연은 70년대 고고 열풍을 일으킨 실제적 사건이었고, 그 실제적 사건을 주도한 ‘데블스’ 역시 실제로 그 시절에 존재하던 밴드였다. 전작인 <사생결단>에서 치열한 취재를 통해 부산 뒷골목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마약거래의 실상을 영화에 그려낸 최호 감독은 <고고70>에서도 시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늦은 밤 고고클럽에 모인 청춘남녀가 밴드의 사운드에 맞춰 고고 댄스에 열중하는 광경은 그 시절의 풍속도가 된다. 시대에 갇힌 낭만의 유일한 출구는 어두운 밤에 울려 퍼지는 통금의 사이렌에 갇힌 지하실로 통한다. 갇혀버린 청춘남녀의 낭만이 지하에 자리잡은 고고클럽 ‘닐바나’에서 열기를 더할 때 70년대는 가장 뜨거운 시절로 재현된다.
하지만 역시 암울한 시대에서 쿨하게 살기란 쉽지 않다. 퇴폐의 온상으로 규정 당한 고고클럽은 폐쇄되고 ‘몰지각한 땐스광은 처벌’하겠다는 엄포가 내려진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도 더욱 심해진다. 종래엔 퇴폐의 아이콘인 밴드멤버들 또한 형사들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한다. 밤은 다시 조용해진다. 멤버의 죽음을 통해 구체화된 불화로 해체의 수순을 밟았던 어제의 영웅들이 고초의 현장에서 다시 대면한다. 무대 위에서 열정을 노래하고 낭만을 외치던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비명을 지르고 온몸에 피멍을 새긴다. 경제 부흥이란 마초적 슬로건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낭만을 노래하는 청춘은 뭇매를 맞고 비틀거린다. 썩어빠진 정신을 차리게 만들겠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그 매질은 낭만에 잠재된 자유의지를 꺾기 위한 방편이다.
결국 이 영화는 그 모든 거짓된 논리에 구속되어 청춘을 상실한 70년대의 행진가다. <고고70>의 하이라이트이자 영화에서 발생한 카타르시스의 배출구 역할을 하는 마지막 콘서트 씬은 가히 폭발적이다. 총 10대의 카메라와 국내 굴지의 촬영감독들을 동원했다는 이 문제적 장면은 생생한 음의 질감을 형체로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평할만한 성과다. 무엇보다도 조승우와 함께 데블스의 멤버를 연기하는 이들이 실제 밴드와 뮤지컬 배우로서 경력을 자랑하는 무대 위의 주인공들이란 점은 이 영화의 무대가 뿜어내는 에너지의 구심점이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잘 드러내는 지점이다. 다소 연출적인 흐름이 덜컹거리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고고70>은 나름대로 음악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시대를 사유하고 낭만의 혈기를 추스르는데 성공한다. 하수상하던 시절에도 낭만은 그렇게 잡초처럼 자라났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한번 더 물어야 한다.
요즘의 낭만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가? 시끄러운 밤을 되찾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노래하는가? 최루탄을 씻어내는 영화 속 소방호스의 물세례와 달리 지난밤 물대포에 맞선 청춘과 노래는 함께 했을까? 오늘날 유통되는 낭만은 과연 진심을 소비하고 있는가? 원어도 모르고 외쳤던 그 당시 ‘쏘울’은 투박하지만 자유를 갈망했다. 오늘날 매끄럽게 포장된 노래들은 진정 '소울'을 담고 있나? 지금 자유로운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며 음악을 소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