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71명의 학도병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했다는 포항에서의 실제 전투를 극화한 <포화속으로>는 초반부터 현장감 넘치는 시가전 신을 연출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만 같다. 하지만 사실감 넘치는 전투신을 목격하기 보단 ‘전쟁 화보’를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다. <포화속으로>는 재현보다도 포장에 능한 작품이다. 물량공세를 퍼붓는 전장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좀처럼 긴박감이나 비장함을 발견할 수 없는 건 그 덕분이다. 캐릭터의 비장함도, 전쟁의 참혹함도, 하나 같이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포화속으로>는 전쟁의 껍데기를 두른 마초 화보 영화처럼 보인다.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반공영화라도 만들 심산이었을까. 그렇다면 북한군 전차에 파란색 매직으로 ‘1번’이라도 적어놓았다면 보다 효과적이었을 것을.

Posted by 민용준
,

<시크릿> 단평

cinemania 2009. 11. 20. 15:31

아내가 살인했다. 아니, 살인한 것 같다. 형사인 남편이 살인현장에서 발견한 물증들은 정확하게 아내를 진범으로 겨냥하고 있다. 대학동기인 동료형사에 대한 불리한 증언마저 고지식하게 해낼 수 밖에 없었던 원칙주의자 형사는 남편으로서 기로에 선다. 남몰래 물증의 은폐와 훼손을 감행한다. 그러나 수사가 거듭될수록 은폐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증거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그리고 도무지 돌아설 수 없는 일이다. <세븐 데이즈>의 각본을 쓴 윤재구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시크릿>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공공적인 윤리에 발붙여야 할 이를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얹어놓은 뒤 벌어지는 개인적 갈등을 다룬다. 윤리적 죄의식에 등돌린 채 개인적 불행에서 헤어나기 위해 내달릴 수록 상황은 진창으로 떨어진다. 가치관의 갈등을 느끼는 인물의 심리는 <시크릿>에서 전반적인 긴장감을 직조해내기 위한 궁극적 핵심과 같다. 동시에 빠르게 나열되는 컷과 숏을 통해 정보량을 증가하는 <시크릿>은 단서들의 교차와 충돌을 통해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가는 스릴러다. 일단은 그렇다.

 

<시크릿>은 인공적인 영화이자 그것을 애써 가리지 않는 작품이다. 말끔한 슈트를 차려 입은 형사의 옷 매무새부터 시작해서 끝없이 단서를 벌려나가는 내러티브의 형태까지, 영화는 좀처럼 현실을 끌어안을 생각이 없다는 듯 모든 것들을 연출적 시공간으로서 치장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스릴러로서 단서를 벌려나가는 이야기가 딱히 인상적이지 않을 때, 이 모든 건 허세가 된다. <시크릿>은 기본적인 비밀의 깊이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그 수면 위에 단서를 마구 흩뿌린다. 사연의 단초는 쓸만했다. 도입부의 몽타주도 꽤나 인상적이다. 문제는 그 사연의 설계다. 비장한 표정으로 자꾸 패를 던지는데 그 결과가 초라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비밀은 여간 해서 모른 체하기 어렵고, 결말부에 다다라 영화가 제 입으로 설명하는 비밀의 정체란 구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 끝에 매달린 사족은 명백한 낭비다. 허물처럼 벗겨지는 단서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의 정체란 정작 허망하다. 감춰야 할 것은 제대로 감추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것들만 드러낸다. 비범한 척 패를 돌리지만 결과적으로 뻥카 같은 반전 앞에 허세로 몰락하고 만다.

Posted by 민용준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렬로 늘어선 폰(pawn)을 전진시킨다. 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동선이 확보된다. 그 사이를 비숍(bishop)과 나이트(knight), 룩(rook)이 파고들어 적진을 유린한다. 결정적인 순간, 순식간에 퀸(queen)이 적의 폐부로 돌진한다. 상대말을 하나씩 쓰러뜨리고 때론 자신의 말을 미끼로 던져 허를 찌른다. 멀리 선 킹(king)을 향해 포위망을 형성하고 동선을 조인다. 더 이상 오갈 때 없는 적진의 킹을 쓰러뜨리며 외친다. 체크메이트(checkmate).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