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의 작은 마을 무스레이크를 지나던 트럭에서 나무 상자 하나가 눈 쌓인 길에 떨어진다. 길을 지나던 소녀 린다가 호기심에 상자를 열어보곤 그 안에 있던 파란 앵무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추위 탓인지, 두려움 탓인지, 몸을 웅크리던 앵무새가 소녀의 손길 앞에서 평정을 되찾는다. 블루라는 이름을 얻게 된 앵무새는 그 소녀가 어른이 되기까지 그 곁에 자리하며 편안하고 안락한 애완용 새로 길들여진지 오래다. 하지만 블루는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루에 있다는 암컷 마코 앵무새 쥬엘과 함께 지구상에 단 한 종 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 마코 앵무새라는 사실. 이를 전해 듣게 된 린다는 고심 끝에 마코 앵무새의 멸종을 막고자 블루를 데리고 브라질 행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블루가 만나는 건 블루와 한 쌍을 이룰 쥬엘만이 아니다.
픽사와 드림웍스의 양강 체제로 이뤄진 오늘날의 애니메이션 월드에서 호시탐탐 틈새공략을 노리고 머리를 드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있다. 지난 해 <슈퍼배드>를 내세우며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그 중 하나. 하지만 이에 앞서서 20세기 폭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아이스 에이지>시리즈를 성공시킨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리고 <리오>는 바로 그 블루스카이 스튜디오가 꺼내든 새로운 카드다. <리오>의 기획 전략은 <아이스 에이지>와 흡사하다. 고대 빙하기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 풍경 안에 특유의 개성이 넘치는 동물 캐릭터들의 활약상을 그린 <아이스 에이지>와 마찬가지로 <리오>는 축제 활기로 가득한 리오 데 자네이루의 분위기 속에서 생동감 넘치는 동물 캐릭터들의 활약상을 채워 넣는다.
대부분의 성공적인 애니메이션들이 그러하듯이, <리오> 역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동물 캐릭터가 주를 이룬 어느 애니메이션들과 같이 <리오>는 저마다의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캐릭터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도 의인화된 행위와 언어를 이식하며 어드벤처의 활기를 구현해낸다. 비행하지 못하는 마코 앵무새 블루가 짝짓기를 위해서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제 짝을 찾아 리오 데 자네이루에 도착해 벌이는 모험은 사실상 블루의 혼자 날기, 즉 홀로서기를 위한 필연적 여정과 같다. 그 과정에서 병풍이 되는 리오 데 자네이루의 풍경은 그 자체로 볼거리를 이루는 동시에, 위트 있는 활력을 채우기 위해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다채롭게 영화를 장식한다. 특히 극 중반부에 쥬엘과 함께 비행( 아닌 비행)을 하는 블루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거대 그리스도상을 비껴가며 리오 데 자네이루의 풍경을 부감으로 펼쳐 보이는 모습은 장관의 엔터테인먼트다.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완성도라 치켜세울 수는 없지만 <리오>는 자신이 지닌 최고의 장점을 최대로 극화시킬 줄 아는 이들의 최상품이라 할만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고대 빙하시대의 설원을 현대적인 감각의 애니메이션 소재로 차용한 <아이스 에이지>가 그러했듯이, <리오> 역시 세심하게 창작된 캐릭터들이 저마다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해내며 엔터테인먼트적인 흥미와 활기를 배가시킨다는 하나의 영화적 목표로 도달해나간다. 무엇보다도 소소한 뒷골목부터 화창한 해변까지 리오 데 자네이루의 곳곳을 그려낸 <리오>의 풍광은 여행 욕구마저 자극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너무 착해서 합의적인 혐의마저 느껴지는 결말은 조금 아쉽지만 신나게 이륙해서 감동적으로 착륙하는 <리오>가 기술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보는 이의 안구를 정화시키고, 마음을 풍요롭게 채우는 애니메이션이란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등장 자체만으로도 눈에 띄는 ‘앵그리 버드’의 출연은 이를 눈치채는 이들을 위한 반가운 서비스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잘 키운 캐릭터 하나면 시리즈가 보장된다. 특히 캐릭터의 매력이 중시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드림웍스가 자사의 프랜차이즈 캐릭터들을 우려먹으며 시리즈를 거듭해나갈 수 있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슈렉3>, <마다가스카2>와 같은 기대 이하의 속편을 공개하며 도태되는 드림웍스의 작품들이 증명하듯 단지 잘 나가는 캐릭터의 인기 하나만으로 시리즈를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은 망상에 가깝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캐릭터의 매력도 함께 닳고 닳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이하, <아이스 에이지3>)는 의미 있는 속편이다. 의미 있는 애니메이션을 창작해내는 픽사의 정반대의 영역에서 나름의 의미를 추구했다 해도 좋을 만한 <아이스 에이지3>는 순수 엔터테인먼트의 야심으로 점철된 코믹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두 편의 전작이 보유했던 캐릭터들의 매력이 고스란히 보존되는 동시에 새로운 캐릭터를 수혈하며 새로운 스토리를 보충한다. 물론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이스 에이지3>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하러 가는 이들의 모험담에서 가족주의적 서사는 지극히 뻔한 사연에 불과하다.
그 뻔한 바탕에 특별한 묘미를 새겨 넣는 건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유머와 시각을 공략하는 이미지다. 특히 디지털 3D로 제작된 이번 작품은 입체적 영상의 묘미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노골적인 이미지가 곳곳을 메우고 있다. 또한 빙하기 동물 캐릭터들의 입심 좋은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은 쏠쏠한 오락적 묘미 그 자체다. 특히 새로운 시리즈에 걸맞게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벅(사이몬 페그)은 기존의 캐릭터와 함께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사연에 어울릴만한 필연적 매력을 발생시킨다.
순수한 오락물이라는 측면의 의미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가치가 없다고 평할 수 있는 <아이스 에이지3>는 말 그대로 자신의 의도 자체를 명확하게 관철시키는 작품이다. 세 편의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가운데서도 좀처럼 도태되지 않는 오락적 감각은 분명 이 시리즈가 지닌 최고의 매력이자 동시에 이 시리즈의 존재 이유를 위한 설득적 가치에 가깝다. 전작들로부터 물려받은 순수 엔터테인먼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새롭게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최소한 자신의 장기가 녹아 내리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매력으로 더욱 두터워진 시리즈란 점에서 미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