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스타를 꿈꾸며 무대에 오르던 폴 매든스(마틴 프리먼)의 꿈은 과거로 흩어진 지 오래다. 한때 같은 꿈을 꾸던 친구 고든 셰익스피어(제이슨 워킨스)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의 성탄극 기획자로 호평을 얻었고, 역시 함께 무대에 오르던 애인 제니퍼(애슐리 젠슨)는 새로운 꿈을 좇아 할리우드 제작사로 떠나간 지 오래다. 평범한 마을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별 일 없이 살던 매든스는 어느 날, 급작스럽게 떠맡겨진 성탄극 감독직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성탄극의 조력자로 등장한 파피(마크 우튼)의 돌발행동에 울화를 참지 못한다.
제목만으로도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임을 광고하고 있는 듯한 <크리스마스 스타!>는 아이들의 성탄극 준비를 주제로 연출된 일종의 소동극에 가깝다. 최소한의 인과를 빨랫줄처럼 길게 늘어뜨린 뒤, 돌발적인 사건들을 주렁주렁 널어놓는 이 영화의 서사적 형태에 걸맞은 감상이란 논리적인 개연성보다도 돌발적으로 뛰쳐나오는 상황들을 거듭 수습해나가고 이로 인해 불거져나가는 후속적인 사건의 연속을 주시해야 하는 쪽에 가깝다. <크리스마스 스타!>의 스토리는 마치 도로 위로 갑작스럽게 뛰쳐나오는 야생짐승들을 피해가는 아슬아슬한 주행을 떠올리게 만들만한 것이다. 사연의 진전에는 긴밀하게 밀착된 근거가 부족하고 단지 그 상황만이 제시되며 이를 통해 극은 굴러간다.
물론 이를 <크리스마스 스타!>의 핵심적인 단점이라 지적하는 건 마땅치 않다. 이는 사실 <크리스마스 스타!>의 서사가 치밀한 서사적 개연성을 요구할 만한 사연을 지니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다시 한번 간단히 정리하자면 <크리스마스 스타!>는 자신의 꿈을 상실한 어느 어른이 예기치 못한 여정에 밀려들어가 뒤늦게 자신의 삶을 회복해나간다는, 일종의 크리스마스 동화처럼 기획된 성장담과 같다. 다만 덩어리의 조각처럼 나뉜 서사와 서사의 간극을 유연하게 연결할 만한 접착제를 마련하지 못한 채 사건을 나열하는, 즉흥극과 같은 느낌의 이야기랄까. 결과적으로 사건 자체로서의 흥미가 대단하다면 그 과정의 논리는 어느 정도 무시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 스타!>는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마스 스타!>가 찾은 해법은 급작스런 사건의 마련과 이 사건을 더욱 큰 사고로 연결하는 돌발적인 성향의 인물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사고를 일으키는 인물의 행동이 딱히 큰 자극을 발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탄극 감독 직책을 맡게 된 매든스가 조력자로 임명된 파피의 등장과 함께 겪게 되는 소동극들은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사건으로서 작동하기 보단 이야기 자체의 개연성 결함을 보다 부각시키는 단점으로서 극대화되는 인상이다. 이는 이 영화가 서사적인 결함을 선택한 것이라기 보단 서사적인 결함을 스스로 진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단점을 품고 있는 이 영화에도 일말의 장점은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소동극답게 영화는 천진난만하며 나름대로 소란스럽다. 이 자체의 활기를 감상적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줄 수 있는 관객에게 <크리스마스 스타!>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무난한 시즌용 영화 정도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런 영화적 성격은 해피엔딩을 그리는 이 영화의 무리수조차도 낭만적이라 이해시킬 만한 여력을 낳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말 그대로 이 모든 부연은 모를 일이다. 아쉽지만 착하다 하여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이 세상의 논리가 아닌 것이니까. 누구나 다 착한 이의 민폐 앞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성인이 아니듯이, 심심한 영화에 너그러워질 수 없는 것도 관객의 기본적인 심리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그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디지털 캐릭터의 꿈을 꾼다. <폴라 익스프레스>이후로 디지털 캐릭터와 3D비주얼에 올인 중인 로버트 저메키스는 북유럽 영웅 서사시를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한 <베오울프>에 이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을 디지털 부호로 재생시킨다. 지독한 구두쇠로 악명을 떨치는 스크루지(짐 캐리)가 자신이 혐오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7년 전 사별한 동업자 말리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로 3명의 유령을 만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게 된다는 플롯은 저메키스를 통해 환상적인 디자인을 입고 재생된다. 배우의 실제적 외모를 스크린의 디지털 캐릭터에게 이양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베오울프>의 편집증적인 시도와 달리 <크리스마스 캐롤>은 디지털 캐릭터의 특성 안에 실제 배우의 외모를 함몰시켜버린다.
전자가 디지털 부호를 통해 현실을 가상에 안착시키기 위한 극사실적인 전이적 실험이었다면 후자는 디지털 부호를 통해 현실적 형태를 지워내고 새롭게 창조된 가상적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 변환적 실험에 가깝다. 전자가 재생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을 활용했다면 후자는 창조를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을 활용한 셈이다. 이는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 만한 성공적 방식이다. 디지털 캐릭터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조차도 음울한 영화의 톤에 어울리는 효과처럼 인식될 정도로 <크리스마스 캐롤>은 허구적인 가상성에 어울리는 디지털 캐릭터의 음산함을 구축하고 이미지의 입체적 환상성을 적절히 활용한다. 다만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3D비주얼이 필수적인 의상인가를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때때로 과욕적 활용처럼 보인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때때로 입체적 이미지로서 탁월한 감상을 부여할만한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그 전체적인 형태가 과도한 시각적 피로감과 맞바꿀 만큼의 기회비용을 설득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로버트 저메키스의 이상이 단순히 <크리스마스 캐롤>에 대한 맞춤형 효과로서 3D 비주얼과 디지털 캐릭터를 활용했을까, 라는 의문도 동원될 필요하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실험은 여전히 과도기이며 때때로 그것이 집착을 넘어서는 발전적 지향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답하기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 도전적 의지를 존중할 수 있는가, 라는 지점에서 로버트 저메키스의 꿈 역시도 판단가치를 얻을 만한 산물인 셈이다. 물론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눈에 띄는 건 짐 캐리다. 그는 디지털 캐릭터와 3D비주얼의 숲 속에서도 유효한 아날로그적 기본을 설득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은 진보보다도 답보란 측면에서 유효한 몽상가의 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