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한 도시의 삶이 버겁다고요? 매일 같이 단조로운 일상이 지겹나요? 일단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좋겠군요. 하지만 당장 시간도 없고, 막상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영화라도 한 편 보세요. 그 영화가 당신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영화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대사로, 음악으로, 그리고 풍경으로, 관객의 뇌리에 서로 다른 흔적으로 깊게 각인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찰나의 풍경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현실을 벗어난,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당신이 발 딛지 못했던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꿈꾸던 당신, 떠나라. 스크린 속 그 풍경으로. 극장에서 만끽했던 환상을 당신의 현실에서 만날 차례다. 머뭇거릴 당신을 위해 여기 몇 가지 좌표를 마련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오스트리아 비엔나 잘츠부르크
“도레미파솔라시, 도! 솔! 도!” 7음계를 이용한 ‘도레미송(Do-Re-Mi)’만으로도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5년, 전세계적으로 개봉된 이 고전 뮤지컬은 천진난만한 동심과 애틋한 로맨스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발랄한 음표들이 귀를 사로잡는 가운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다채로운 경관이 호화롭기 짝이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의상이나 다름없는 그 장관은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잘츠부르크에서 빌려온 풍경들이다. 볼프강 호수의 시원한 전경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호헨잘츠부르크요새가 올려다 보이는 카피텐 광장과 잘차흐강을 건너는 모차르트 교각,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미라벨 궁전의 정원 등, 잘츠부르크의 고풍스러운 정경 곳곳을 누비며 밝은 음색을 채워 넣는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 대부분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영화의 흥행 이후로 늘어난 관광객들을 위해 현지에서 운영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흔적들을 수집해나간다면 더 좋은 의미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 특히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연습하던, 알프스를 병풍처럼 두른 몽크스산에 오른다면 씩씩한 걸음을 옮기며 노래하던 아이들처럼 절로 마음이 순수해질 거다.
<브로크백 마운틴> 캐나다 알버타 로키 산맥
울창한 숲과 험한 산세 아래 양떼를 지키기 위해 야영하던 두 명의 카우보이 잭과 에니스는 어느 날, 감정의 선을 넘는다. 산속이라 시차가 커서 밤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추운 야영지에서 모닥불로 손을 녹이고 좁은 텐트 안에서 뒤엉키듯 잠을 청하던 두 사내는 스스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애틋한 감정이 줄기처럼 자라남을 직감하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 금기적인 로맨스의 증인이 되는 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캐나다 알버타의 로키 산맥이다. 사실 동명원작소설의 작가 E. 애니 프루가 쓴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고, 미국 와이오밍의 빅혼 마운틴을 모델 삼아 글을 써내려 갔다고 밝혔다. 제작사는 빅혼 마운틴 주변에서 촬영을 시도했으나 여건상 포기한 뒤, 촬영지 선택에 난항을 겪다 비로소 알버타를 찾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험준하고도 풍요로운 로키 산맥의 풍광은 결말에 다다라 진한 여운을 남길 영화적 감수성을 깊고 너르게 채우는 원천이나 다름없다. 양떼를 몰다 설산이 내려다 보이는 산턱에서 한낮의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깊은 밤에 찾아온 산의 한기를 몰아내며 모닥불을 피운 채 따뜻한 잔에 손을 비비던 두 남자의 추억은 그 인상적인 풍경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감정적 여운으로 거듭난다. 만약 트래킹과 스키를 즐기는 이라면 그 만년설의 절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가을> 뉴욕 센트럴파크
굳이 뉴요커의 꿈을 꾸지 않았다 해도, 뉴욕의 명소들에 대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들어봤을 게다. 사실 뉴욕을 말한다는 건 식상한 일임에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언제나 뉴욕을 그리는 영화들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회자될 수 밖에 없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을 소재지로 둔 너무도 많은 영화 가운데서도 <뉴욕의 가을>은 제목이 직시하는 도시와 계절의 풍경을 풍만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맨하탄과 브룩클린, 퀸즈,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까지, 뉴욕의 전경을 부감숏으로 포착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그 이후로 뉴욕에 배어든 가을의 흔적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뉴욕의 가을>의 두 주인공 윌과 샬롯의 만남이 시작되는 센트럴파크는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가을의 향연 그 자체다. 세계 최대의 공원으로 꼽히는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파크는 전세계 인종의 교차로라 해도 좋을 뉴욕의 중심에 자리한 뉴요커들의 안식처이자 쉼터이다. 삭막하고 번잡한 도시의 체증을 피해 잠시나마 안식을 부여한다. 그리고 영화처럼 센트럴파크를 거닐다 보면 운명 같은 연인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그네들 역시 센트럴파크에서 마주한 건 그저 영화 속 우연일까, 운명일까? 적어도 후자의 낭만을 부정할 이유는 없을 거다. 그리고 그게 당신의 삶이 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고.
<맘마미아!> 그리스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코펠로스 섬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가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다. 영화 <맘마미아!>가 동명의 원작 뮤지컬보다 특별할 수 있는 건 스크린에 펼쳐진 그리스 제도의 그림 같은 풍경들 덕분이다. 촬영에 앞서 한 달 전부터 제작진은 <맘마미아!>의 무대가 될 공간을 찾기 위해 그리스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을 찾아냈으며 대부분의 바닷가 신을 거기서 촬영했다. 특히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진경의 핵심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여백처럼 두른 채 붉은 지붕과 하얀 벽으로 이뤄진 집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스코펠로스 타운의 주택가를 비롯해 서쪽으로 22km 떨어진 카스타니 해변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봤던 그 모든 풍경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결혼식 신을 위해 100m 높이의 암벽 위에 재건한 예배당도 여전하다. 눈을 정화시키던 스크린 너머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당신은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인생의 승자라 믿어도 좋다. <맘마미아!> 속 그 노래처럼, ‘The winner takes it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