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한 언론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을 때 이를 둘러싼 총체적인 매커니즘에 관해 취재해서 긴 기사를 썼던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뒤늦게 마지막으로 강호순의 얼굴 공개에 탑승한 MBC 보도국 관계자로부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언론 입장에서는 위법성보다도 기사로서의 의미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불법적인 보도가 면책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법률적 판단과 무관하게 언론 입장에서 기사적 가치를 판단하고 보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JTBC <뉴스룸>이 성완종 회장의 발언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한 것도 이런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결국 방송의 보도윤리란 일반적인 사회적 윤리와 완벽하게 동일한 궤에 놓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그것이 정보원의 엠바고를 무시할 수 있는 완벽한 논리일 순 없겠지만 알 권리를 바탕에 둔 보도윤리를 중점에 두고 보도방침을 해석하고, 결정하는 뉴스 관계자의 기류를 판단할 때 참고할만한 사항은 되겠다.
이번 사안이 향후 <뉴스룸>의 행보에 어떤 타격을 입힐지는 모르겠으나 <뉴스룸>이, 본질적으로 손석희가 십자가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 된 건 확실해 보인다. 아마도 이런 판단을 내린 손석희도 잘 알고 결정한 사항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정말 멍청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다.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 그만큼 손석희는 녹음 파일 공개가 언론으로서의 직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건 손석희의 직업정신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향하는 활시위가 될 것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뉴스룸> 보도국이, 손석희가, 사회적 윤리를 배반했다고 논할 이들을 정서적으로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인데 그 국면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겠다. 그리고 그만큼 막중한 사안이라 판단했을 손석희의 믿음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결국 아무도 모를 것이다. 손석희의 판단에 온전히 동의할 순 없지만 나는 언론인으로서 그가 내린 판단은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선으로 그의 자리를 지켜볼 것이다.
생이란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손쉽게 구분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들은 괴롭고 비루한 일상을 통해서도 이어지는 생을 그린다. 쉽게 꺾이지 않는 생의 가능성을 응시한다.
멕시코 시티에서 태어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건 17세 무렵이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역선의 물류 창고에서 자고
바닥을 청소하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다른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남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대단했다. 어떤 모험심을 가진, 매우 어린 시절이었다. 수많은 이웃들을 소개해주는 친구가 생겼고, 끝내주는 경험을 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모임을 보면서 감탄했다. 탐험을
하는 내게 있어서 정말 쿨한 일이었다.” 직접적으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 <비우티풀>(2010)은 이
당시에 목격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양한 출신 성분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광경을 목격하고 체험했던 여정이야말로 그의 영화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이 세계의 너비를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고향인 멕시코 시티를 배경으로 둔 이 영화는 각자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세 인물의 생을 세 개의 시점으로 나열하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의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찌든 때처럼
거리에 눌러 붙은 폭력성을 묘사하고 퍼즐 같은 서사 구조를 지닌 덕분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곤잘레스 이냐리투에게 폭력은 허구적인 소품이 아닌 현실의 언어였다. “나처럼 매일같이 거리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이 죽는 도시에서 산다면, 폭력과 죽음은 더 이상 재미있는 일이 아닐 거다. 폭력에는 그에 응당한 결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만약
당신이 폭력을 구사한다면, 그 폭력의 결과는 당신에게 돌아올 거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초기작인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2003), <바벨>(2006)은
서사적으로 유사한 형식성을 취하고 있다. 세 부류로 나뉜 개별적인 삶과 그 일상이 부득이한 이유로 타인의
삶과 충돌하고 끝내 이 세계를 에워싸는 사건으로 확장된다. 세 작품은 동일하게 서사를 파편처럼 나열하고
퍼즐 구조의 서사로 진전된다. 다중적인 시점을 통해 서사의 확대와 증축을 꾀하며 입체적 감상을 유도한다. 이처럼 유사한 서사적 형태를 지닌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우연과 필연을 통해 진전되는 관계의 층위와
현실적인 생의 너비를 체감하게 만드는 관성이다. 어느 개인의 경험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이 세계라는 물리적 너비를 포괄할 수
있는 생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만든다.
<비우티풀>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라는 감독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다중적인 시점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서사를 지닌 전작들과 달리 <비우티풀>은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정극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수미상관의 구조로 이뤄진 이 작품은 생과 죽음의 양면성을 유려한 슬픔과 환희로 승화시키며
시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감상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왜냐면 사실 <비우티풀>은
굉장히 참담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바르셀로나의 빈민가에서 힘겹게 두 자식을
키워나가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둔 이 영화는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가는
이야기다. 가난과 고통 그리고 배신과 죽음이라는 어둡고 험난한 단어들로 점철된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말할 수 있는 건 죽음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생의 가치를 시적인 정서로 담아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말처럼, “<비우티풀>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영화다. 삶을 향한 찬가다.” 그
비극적인 생의 마감을 지켜보면서도 그토록 평화로운 감상을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그 생이 어떤 종착만은 아닐 것이란 믿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마치 영적인 기적을 목격하는 듯한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그 영화에 담겨있다.
사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는 하나 같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 세계의 단면들을 수집해 오면서도 생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 마치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라고 외쳤던 니체의 격언처럼 그렇다. 다만 이 거대한 비극의 도가니 속으로 내몰리는 인간들의 군상이 어떤 구조 속에 놓여있는가를 통해서 이 삶을
비극으로 내모는 인과와 심리를 제시한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로부터 괴로운 심정을 얻는다는 건 그만큼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괴로운 서사의 끝에서 되레 감상적 치유를 길어 올릴 수 있는 건 결국
그의 영화가 서로의 통증을 분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이 세계에 대한 영적인 믿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버드맨>(2014)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증언과도 같다.
대략 5년 전, 자신이 구상했던 어떤 이야기의 조연 캐릭터를 모티프로 개발된 <버드맨>은 한때 ’버드맨’이란 슈퍼히어로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어떤 배우의 재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버드맨>은 단순히 어떤 배우의 연기적 재기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다. 곤잘레스 이냐리투도 “솔직히 그런 주제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자아가 우리를 끌어올려줄 수 있지만 순식간에 우리를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에 힘을 내주고 휘둘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버드맨>은 한 퇴물 배우가 자신을
파괴하는 망상과 세간의 비웃음으로부터 삶을 회복해나가려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은 때때로 우스꽝스럽다
못해 신랄한 블랙코미디 형태로 묘사되는데 이는 기존에 곤잘레스 이냐리투 영화와 이질적인 감상적 온도를 전달한다.
동시에 명배우들이 시종일관 장대비처럼 쏟아내는 대사량과 그 대사에 세찬 리듬감을 가미하는 드럼 솔로,
그리고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카메라 워크 등 전작들에 비해 보다 화려해진 테크닉들로 영화의 기교적인 밀도가 한층 높아진 인상이다.
무엇보다도 <버드맨>은 보기 드물게 유머러스하고 신랄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블랙코미디이지만 어느 생에 대한 경의를 품은, 그의 다섯 번째 찬가다. 어떠한 예측도 뛰어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타인들에 의해 손쉽게 실패라고 손가락질 받는 누군가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는,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생의 철학으로 비상한다.
“내 영화들은 내 자신의 연장선이다. 일종의 내 생명과 직결된
경험의 증거들, 매우 드문 선행과 매우 많은 한계들과 함께.”비참한 삶의 형태 속에서도 결코 죽일 수 없는 생의 가능성.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건 결국 이 세계의 너머가 아닌 자기 자신과 우리 생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것이다.
<버드맨>의
결말에 대하여
아마도
<버드맨>을 보게 된다면 그 결말에 대해서 어떤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엠마 스톤의 ‘빅 아이즈’를
통해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 결말은 원래 예정됐던 결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의 촬영이 중반에 다다랐을
즈음 그 결말이 정말 최악이라고 느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결국 각색가들과 함께 새로운 결말에 골몰했고,
결국 지금 형태의 결말을 완성했다. 그는 지금 형태의 결말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했고,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본래의 결말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을 아낀다. “원래의 결말에 대해선 결코 말하지 않을 거다. 매우 황당한 것이니까. 정말 나쁜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결말
또한 황당하다고 느낄 관객은 존재할 거다. 이쯤 되면 어떤 결말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 보면 안다.
이수혁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먼저 뛰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속도를 높여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좀 더
잘 달릴 수 있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촬영 준비가 끝난 이수혁이 카메라 앞에 섰다. 모델로서 화보 촬영을
숱하게 해왔던 그가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화보의
컨셉트 자체가 다르기도 하고, 배우로서는 좀 더 절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사실 이수혁은 조금 달라졌다. 언어 그대로 다르게 보인다. 모델 이수혁으로 불릴 때와는 인상이 달라졌다. 살이 붙었다. 체격도 좋아졌다. 스스로 노력한 결과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살을 찌운 모습이 더 평범해 보일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배역에 접근할 기회도 커지는 것 같다. 일단
팬들이나 관계자들이 이런 변화를 좋아해주시니 열심히 부응할 따름이다.” 타고난 남다름은 재능이다. 하지만 얼굴과 육체를 도화지 삼아 채색하듯 캐릭터를 표현해내야 하는 배우에게 있어서 평범한 인상을 연기해내는
건 실력이다. 이수혁은 그걸 알았다. 살을 찌워서 날카로운
인상을 보다 무디게 다듬는 것도 배우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스스로 배우가
돼가고 있었다.
지난 2월 3일에 종영된
미니시리즈 <일리 있는 사랑>에 출연한 이수혁은
‘김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수혁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 팬들이 생겨난 건 인상적인 작품에서 맡은 역할을 인상적으로 소화해낸 덕분일
것이다. “감정적으로도 깊게 몰입해야 하는 캐릭터였고,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가운데 촬영 분량이 제일 많았고, 감정적으로도 깊게 몰입해야 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힘든
점도 없지 않았다. 시원섭섭하면서도 쉬고 싶은 마음?” 이수혁은
담담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배우로서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었고,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생긴 거 같다.
내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지.” 물론 그만큼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다. 이수혁이 연기한 김준은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다. 단지
마음 속으로만 흠모하는 게 아니라 남편과 이혼하게 만드는 남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지탄 받을 수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김준이란 인물은 미워할 수 없는, 미워하도록 만들어선 안될
인물이다. 그건 <일리 있는 사랑>이란 작품이 떠안은, 이수혁을 통해서 풀어야 할 숙제였다. “어떤 사건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성장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보여주면서 작품이 공감을 얻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
면에선 사건 자체가 명확하고, 준이의 변화도 명확했으니 최대한 잘 해보려고 했다. 사실 대본상으로 봤을 때 술 먹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소리 지르는 상황은 말이 안되지만 준의 입장에선 그런
상황에 공감이 됐다. 아마 공감할 수 없었다면 못했을 거다. 내
입장에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게 되고 설레는 과정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께서 선을
잘 그어주셔서 그걸 믿고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어느덧 모델 이수혁이 아니라 배우 이수혁으로 불리게 된지 6년이 흘렀다. 배우라는 이름이 그에게 얼마나 익숙해졌을까. “정확히 모르겠다. 조금 가까워진 거 같긴 한데 내 스스로를 평가할 입장이 되려면 아직 먼 얘기인 거 같고.” 그래도 확실히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흥미는 늘어가고 있다. “예전보단
현장에 있는 게 편하고 현장에서 재미를 찾게 되는 거 같다. 기본적으로 배우는 폭이 커지는 편인 거
같고.” 이수혁은 종종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꿔왔다고 말해왔다. 간혹
‘모델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 즉 배우가 되기 위해 모델이 된 건 아닌가라는 물음이 던져지기도 했지만 이수혁은 “기분 나빠할 필요도, 신경쓸 필요도 없다”고 여겨왔다. 오히려 ‘모델
출신 배우라는 경력을 갖고 가고 싶은 마음’이 선명하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 모델로서 열심히 활동했으니까. 패션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거
같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최대한 모델로서도 무대에 서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모델 출신 배우의 전성기라 해도 좋을 시대다. 2011년에 방영된 8부작 스페셜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이수혁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성준, 김영광, 김우빈, 홍종현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은 지금 가장 ‘핫’한 배우들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님한테 죄송하다. 난장판이었으니까. 대부분
작품 경험도 없었고. 그래도 감독님께서 좋은 눈을 갖고 계셨던 것인지 몰라도 거기 나왔던 친구들도 모두
다 잘됐고,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 부러울 때도 있고, 자극이 될 때도 있고, 무엇보다도 무슨 일이 있어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건 좋다. 친구들이 잘돼서 기분이 좋다. 그만큼
모델 출신 배우들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사라진 거 같고.”
배우 이수혁을 보다 널리 알린 건 <뿌리 깊은 나무>였다.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작품에 출연하면 배우의 인지도도
함께 올라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다만 그게 영원하지 않을 뿐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잠시 겪게 되는 일 같아요. 그러니까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관심을 유지할 수 있겠죠.” 일시적인 훈풍에 녹지 않고 냉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수혁은 지금 욕심이 난다.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맡았던 캐릭터보다 평범한 타입이었고,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을 지닌 역할이라 좋았다. ‘배우 이수혁이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거 같고, 나 스스로도
이런 역할을 해도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편으론 후회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약간의 후회를
느꼈다고 한다.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커서 일을 너무 가려 했던 것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는 후회 정도?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도
있는데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그래서 지금은 되는 대로 해보고 싶다. 그만큼
고민하는 거지. 이렇게 화보도 찍고.”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수혁에게 있어서 지금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라는 꿈을 품게 됐을까? “어릴 때 아버지와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직접 만들거나 영화에
나오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결국 그는 배우가 됐고,
그 시절에 보고 자랐던 꿈은 배우로서의 자산이 됐다. “최대한 내 느낌을 표현해내는 게
좋다. 그런 면에선 어린 시절에 본 영화들이 나름대로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최대한 더 많이 보고, 느끼려 한다.” 물론 그는 스스로가 대단한 씨네필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예술영화를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그냥 거의 가리지 않고 본다. 그래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하기가 어렵다. 영화 좋아한다고 말하면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꼭 물어보니까.” 다행히도 그에게 좋아하는 영화에 관한 질문은 하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수혁은 스스로를 구체화시키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다. “생각은 항상 바뀔 수 있고, 진심이 잘못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터뷰는 조금 조심스럽다.” 하지만
올해 스물여덟 살인 이수혁이 내년 즈음에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받을 질문 하나는 확실하다. ‘서른을
앞둔 심경은?’ 그렇다면 ‘서른 즈음에’가 아니라 ‘서른 이후에’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30대가 되면 내가 원하는 상황이 돼있지 않을까? 훨씬 여유로워질 거 같아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일을 하는 건 30~40대에
멋진 남성이 되기 위해서지. 그러니까 일단은 열심히, 많이
해보는 게 답인 거 같다. 지금이 그런 시기인 거 같고.” 그렇다. 나아갈 방향은 명확했지만 속도를 내는 법을 몰랐다. 지금 이수혁은
드디어 페달을 밟으려 한다. “욕심이 생기기도 했고, 약간의
조급함도 생긴 거 같다. 성과를 느끼니까 자신감도 붙고, 재미도
느끼는 것 같고, 그러니 어찌됐든 일을 많이 할 거라는 거지.”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열린 결말이었다.
줄기차게 소개팅을 하는데도 만날 남자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요즘 남자들 속을 도통 모르겠단다. 만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썸 타는 남자들이 늘었다. 이유가 뭘까?
언젠가부터 A군은 심심찮게 괜찮은 레스토랑을 물었다. 소개팅 때문이라고 했다. 한 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소개팅을 했다. 어차피 같은 여자를 매주 만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열심히 장소를 옮겨 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장소가 중요하니까.” 너무 당연해서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하지만 곧 삼면에서 불어오는 냉기 같은 멘트에 정신이 맑아졌다. “나도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면 질리거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하면 최소한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여야
할 거 아니야.” 유레카! 그렇다.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니 손실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언제부턴가 남자는
소개팅의 기회비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식사라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종의 진화다.
사실 이미 기회비용을 이용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심심하니까 소개팅할
때도 있어. 특별히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다기 보단 특별한 계획도 없는데 소개팅 제안이 들어오면 그냥
나가는 거야. 맛있는 것도 먹고, 그냥 놀다 들어오는 거지.” B양의 말처럼 어떤 여자들에게 소개팅이란 킬링타임무비 같은 것이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여자에게 계산을 시키는 남자를 만난다는 건 벼락을 맞을 확률과 비례할 것이니 나갈 준비만 하면 된다. 그래서
여자들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라도 두세 번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 남자들은 계산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여자들에게 애프터 신청은 중요하다. 소개팅에서
애프터 신청을 받지 못한다는 건 치욕적인 일이란다. 하지만 요즘 남자들은 예전 같지가 않다. 대부분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매너 모드는 유지한다. 하지만 헤어지면
꺼진 전화기처럼 울리질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은 여자와의 관계를 한 발 이상 내딛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은 여자에게 돈도 쓰고, 시간도 쓰는 건 한번이면
족하다는 거다. 남자의 애프터 신청은 더 이상 매너가 아니다. 확실한
투자다. 어차피 소개팅 기회는 차고 넘친다.
“소개팅에서 만났을 때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콧대가
높다.” C양이 말한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키가 크고, 나이는
적당하고, 학벌도 좋고, 직장도 좋고, 얼굴은 그냥 못 볼 정도만 아니라면야. 왜 얼굴보다 키일까? “키가 큰 남자는 대부분 잘 꾸며놓으면 괜찮아지거든. 얼굴도 잘
생기면 좋고.” 하지만 요즘 그런 남자들은 이미 자신의 몸값을 안다.
시간은 남자의 편이다. 30대 여자들은 소개팅 시장에서 30대
남자들보다 단가가 낮게 책정된다. “원래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기보다 더 나은 수준의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30대가 넘어가면 점점 자기랑 비슷한
수준의 남자랑만 결혼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니까.” 30대 이후의 미혼 남자들이란 결혼 시기를 놓쳤거나
결혼이 절실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한쪽은 매력이 없고, 한쪽은
믿을 수 없다. 고로 이상적인 남자를 찾기가 어렵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라고
D군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어제 한 일을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어도 여자는 만난다는 사실을. “사실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여자는 많지. 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는 정말 없다니까. 그냥 요즘은 섹스하려고 여자 만나는 거 같아.” E군은 잘 생기고, 키도 컸으며 결정적으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자가
많았다. 혹자는 이게 무슨 된장녀 아메리카노 원샷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지하철 3호선 타고 다닌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남자의 말에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도 외제차 키를 무심하듯 시크하게 테이블에 올려놓은 남자 옆에 앉는 법이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돈도 많아 보이는 남자가 매너도 좋으니까
끌리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체크인과 체크아웃 시간이 정해진 호텔 같은 남자라서 안타까울 뿐이다. 룸서비스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의 원나잇에 투숙한 뒤 새로운 방을
찾아야 한다. 제로섬 게임이다. 자신이 머물 방을 찾아야
하는 여자는 반복되는 패턴이 지겹고, 방에 새로운 여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남자는 자신의 욕망이 허망하다.
100세 시대라는데, 인생은
길어졌지만 서로가 어떤 사람인가를 천천히 알아갈 만한 인내심은 줄었다. 여유가 사라졌다. 적자생존의 진화 과정을 거친 동물적 본능으로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고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선택을 위한 인내심은 증발하고 만남과 이별의 패턴에 대한 익숙함만 남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소개팅을 아무리 해도 남자를 만날 수가 없다니. 소개팅을 하러 나갔는데 음식에 반해야 한다니. 여자들은 성에 차는
남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콧대가 너무 높다고 말한다. 덧셈, 뺄셈 수준이었던 남자들이 언젠가부터 미분, 적분 수준으로 진화했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를 만나는 게 쉬워졌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기는 역시 어렵다고 말한다. 왠지
이 여자보다 더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투자한 자리인데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게 도리다. 그리고 여자를 만나지 않아도 놀 사람은 많다.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도 적지 않다. 플레이보이들이 넘친다. 남자들끼리 모여서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도 지겹진 않다. 여자에게
쓰던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기회비용은 많다.
“아무래도 요즘 남자들은 박력이 줄어들었지.” 여자의 입에서 발음된 게 아니다. F군은 계속 발음했다. “사실 여자들도 이젠 남자한테 기댈 필요 없잖아. 나름대로 사회적
지위가 생긴 여자도 많고. 그만큼 남자들이 여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줄어든 거 아냐. 그러니까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그러니까 계속 썸만 타는 거지.” 일리 있는 말이다. 터프가이의 시대는 끝났다. 화끈했던 남자들은 맹탕이 됐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사랑은 쟁취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라고. 나를 보고 자꾸 웃어주는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착각하던 남자들은 그녀의 미소를 닮은 매너로 여자들을 착각하게 만드는 법을 익혔다. 썸 태우는 기술을 익혔다. 경제적인 우월감을 창처럼 휘두르던 남자들은
이제 썸이라는 방패 뒤로 숨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우월한 존재여야 했다. 그
수단은 경제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남자들의 경제력은 여자를 압도하지 못한다. 그만큼 비슷한 여건을 지닌 또래 여성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남자들도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점할 수 있는 어린 여자들을 살피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남녀의
관계가 평등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남자들의 지배력이 떨어진 건 여자들의 지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페어플레이가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보다 명확해진다. 남자가 계산하는 게 당연하다는 암묵적 룰도 깨져야 한다. 페어게임을
원한다는 신호는 분명 매력적일 거다. 뺨 맞은 재벌 2세처럼
‘이런 여자 처음인데’라는 인상만 줘도 일단은 성공이다. 남자는 단순하다. 그러니 알려줘야 한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 역시 이 관계에 있어서 동등한 투자자임을 어필해야 한다. 같은 출발선 위에 서 있는 존재임을 깨우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남자가 당신의 지갑을 사랑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썸’을 타고 말지.
데이비드 에이어의 남자들은 언제나 방아쇠를
당긴다. 흉악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들의 사투를 그린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닮은 거리에 두 발을 디딘 남자들의 생을 장전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우직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세계관 속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총을 들고 사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대부분은 LA라는
거대한 도시의 그늘 속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범죄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특성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과 상당부분 연결돼 있다. “나는 LA 남부에서 자라면서 ‘고대 LA경찰
시절’이라고 일컬었던 그 시절의 경찰들로부터 항상 달아나야 할 짓을 일삼곤 했다.” 본래
에이어가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의 소도시였지만 유년시절에 세상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LA 남부의 가난한
친척집에 맡겨졌고 그 험한 거리에서 빛보단 어둠에 익숙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런 그가 LA를 배경으로 둔 범죄물에 천착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유년 시절의 질풍노도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LA경찰은 다른 기구다. 80년대나 90년대의 경찰조직이 아니다. 현재 그 인근의 치안상태가 반영된 조직이다. 조직이 진화해왔으니
영화도 그런 사실이 반영돼서 진화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각본가로서 활동했던 시절에도 그는 LA의
흉악한 단면을 마주한 경찰을 소재로 둔 이야기에 천착해왔다. <트레이닝 데이>(2001), <다크 블루>(2002),
<S.W.A.T. 특수기동대>(2003)를 통해서 저마다 형태가 다른 LA경찰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가
호흡을 맞춘 <트레이닝 데이>는 그에게 상당히
절실한 작품이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일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전혀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 썼다.” <트레이닝 데이>는
데이비드 에이어가 감독의 지위를 확보한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한 경력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의 연출작들
가운데 <트레이닝 데이>의 중력 안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하쉬
타임>(2005),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 제이크 질렌할과 마이클 페냐가 듀오로 등장하는 <엔드 오브 왓치>(2012)는 총격이 난무하는 위험한 거리를
누비는 LA경찰을 소재로 두거나 그와 깊게 연관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스트리트 킹>은 LA경찰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게 되는 처지로 몰린 어느 경찰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가장 근접한 관점의 이야기를 끌어안았다. 한편 <하쉬 타임>과 <엔드 오브 왓치>는 무법 천지 같은 LA의 흉악한 풍경 속에서 차를 타고 누비는 두 남자의 동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유사한 시점을 담아낸다. 무엇보다도 세 작품은 <트레이닝 데이>의 누아르적인 결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면모는 에이어의 또 다른 연출작인 <사보타지>(2014)와 <퓨리>(2014)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엔드 오브 왓치>는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감독의 경력 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인칭 시점의 캠코더 촬영 컷을 가미하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LA경찰
두 사람의 동선을 부지런히 쫓으며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제복을 입고 경찰서와 순찰자, 거리를 오가는 두 경찰과 그 주변부를 살피는 카메라는 LA경찰의
실제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듯한 체험적인 쾌감과 긴장감을 도모한다. 극적인 형태의 기존 작품들과
형식적으로도 차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면모가 있다. 그저 그런 범작 취급을
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대단한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던 <엔드 오브 왓치> 이후 에이어가 발표한 <사보타지>는 최정예 마약검거 특수부대가 미궁의 음모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린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전작에 대한 평가와 완벽하게 대비를 이룰 정도로 혹평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발표된 <퓨리>를 통해서 에이어는 다시
한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퓨리>는 영화의 배경만으로도 데이비드 에이어의 경력 안에서 이질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다. LA의 골목을 전전하는 경찰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치달은
독일 전선에서 탱크에 몸을 실은 미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하지만
<퓨리>는 데이비드 에이어의 호기심을 당길만한 세계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등 수많은 친인척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나
또한 해군에서 복무했고. 그래서 전쟁이란 내게 항상 사적인 소재이자 가족사 같은 것이었다. 전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언제나 이분법적이고, 도덕적인 명분이 있는
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건 선악의 대립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참호에서 싸우는 사내들에겐 잔혹한 일이었다. 전쟁은 매우 암담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로 닿았지만 거기엔 사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대가가 있었다는 것을.” 에이어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퓨리>를 참혹한 전쟁물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격상시켰다.
사실 에이어가 연출해온 LA 배경의 범죄물 속에서 경찰들이 감당하는
긴장감은 전장의 그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퓨리>는
에이어가 줄곧 그려왔던 두려움의 세계를 보다 사실적인 비극 안에 세워 넣고 밀어가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는 에이어가 그린 새로운 풍경일
뿐 일관성 있는 감정을 담아낸 세계관이다. 게다가 <퓨리>는 에이어의 초기 각본작이었던 <U-571>(2000)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작품이며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인 잠수함 한 대와 탱크 한 대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작가의 인장을 재확인시킨다. 물론 <퓨리>의 최후반부 전투신이 지나치게 과장된 무리수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지만 <퓨리>가 발하는 휴머니즘의
감동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퓨리>는 LA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안에서 맴돌던 에이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고 완결해냈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성취로 여겨질 만하다. 물론 <퓨리> 역시 총을 든 사내들의 세계관이란 점에서 에이어의
세계관은 여전히 같은 동심원 속에 놓여있다. 그는 전장 속을 누비는 사내들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는
걸까?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이다. 매우 진지하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당장 그는 2016년 개봉 예정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매달릴 예정이다. DC코믹스물 원작인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와 대립하는 악당들, 즉 슈퍼 빌런들이 정부 산하에서 죄를 탕감받는다는 명목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흉악한 범죄물의 세계를 비추던 데이비드 에이어의 카메라가 재생시킬
코믹스의 세계관이라니, 사뭇 궁금하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위기의 남자들
데이비드 에이어의 영화 속에선 항상 위기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하쉬 타임>의 짐 데이비스(크리스찬 베일)은 LA경찰을
꿈꾸지만 낙방한 뒤,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되고 점차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마저 파괴할만한 혼돈으로
빠져드는 불나방 같은 남자다. <스트리트 킹>의
톰 러들로(키아누 리브스)는 오발로 인해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홀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사지로 뛰어들지만 정작 음모의 덫에 갇힌다.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 테일러(제이크 질렌할)와 마이클 자발라(마이클 페냐)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즐기듯 수행하는 경찰 파트너이지만 히스패닉 갱들로부터 조여오는 위협을 느낀다. <사보타지>의 존 브리처 와튼(아놀드 슈왈제네거)은 특수부대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갑작스러운 팀원들의 죽음을 통해 정체불명의 위기를 느낀다. <퓨리>는 단 한대의 탱크를 둘러싼 독일군들을 맞이하는
탱크 안 미군들의 긴장감을 결연하게 그린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혹은 그 경계에 놓인 남자들이 주사위를
굴리듯 방아쇠를 당긴다.
김고은은 지난 3년 동안 다섯 편의 영화를 촬영했다. 그 중 세상에 공개된 건 단
두 편뿐이었다. 아직도 보여줄 것이 훨씬 많다는 말이다.
“벌써 세 번째네요!” 그렇다. 김고은의 말처럼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데뷔한지 3년 남짓한 배우와 3년 사이에 세 번을 만났다는 건 배우를 인터뷰하는
업을 지닌 입장에서도 잦은 경험은 아니다. 그리고 배우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선
흥미로운 일이다. 1년여 만에 만난 김고은은 예전보다 자주 웃는 것 같았고, 능청스러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뜬금 없는 말도 했다. “요즘 ‘멍청 바이러스’에
걸린 거 같아요. 단어도 잘 생각나지 않고, 확실히 예전보다
횡설수설하지 않아요?” 나는 그냥 조금 신중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멍청 바이러스라는 게 요즘 유행하는 단어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고은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짜 있대요.’라고 답했다. 뭐, 그랬다.
배우 김고은의 마지막 족적은 작년 3월에 개봉했던 <몬스터>였다. <은교>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었다. 지난 1년여 동안 배우 김고은이 사라진 건 그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김고은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절로 기억될만한 한 해를 보냈다.
이미 두 편의 영화 촬영은 완료됐고, 영화 한 편의 크랭크업을 앞두고 있다. 나름대로 꾸준히 제 발을 내딛고 있었다. 3년 전, <은교>를 통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김고은은 꾸준히
작품에 그 이름을 걸어왔다. <은교>를 통해 심상치
않은 가능성을 인정 받은 그녀는 냉혹한 살인마와 맞서는 소녀 김복순을 연기한 <몬스터>를 통해 악착 같이 몸을 내던지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범상치 않은 인상을 이어갔다. 그런 김고은의 차기작을 기다린다는 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고려 무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협녀: 칼의 기억>은 흔한 시대극이지만 국내에서 보기 드문 무협극이기도
하다. 촬영 기간만 7개월이었던 이 영화를 위해 김고은은 1년 가까이 ‘검아일체’의
생활을 하며 부모의 복수를 갈망하는 젊은 여검객 설희로 분했다. “와이어 테스트는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재미있었고요. 자신감도 생겼죠. 나중에
후회했어요. 와이어 액션을 위해 하네스라는 걸 착용해야 하는데 그걸 입고 몇 시간만 있어도 어깨에 산을
얹는 느낌이 되거든요. 테스트 때 잘할 수 있겠다는 인상을 심어준 덕분에 7개월 내내 힘들었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고은은 와이어 액션신의 90% 이상을 직접 소화해냈다. <차이나타운>을 통해 동시대를 돌아온 그녀는 불운한 유년시절을 지나 범죄조직의 그늘에서 자란 일영이란 여성을
연기했다. 기존에 김고은이 연기한 역할들과 달리 상당히 내성적이고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이다. “일영이는 굉장히 정적인 아이에요. 그래서 감정 변화가 아주 살짝
나타나기 때문에 그 미세한 감정선을 놓치면 끝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촬영장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감독님과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김고은은 두 영화를 통해 각각 전도연과 김혜수와 같은 톱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단한 선배님들과 함께 한다는 건 꿈 같은 일이었죠. 존경해왔던
이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건 감동적인 일이에요. 그만큼 열심히 하려고 했고요.” 겸손한 말이다. 그녀는 단순히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함께 이름을
올린 게 아니라 두 작품에서 주요한 감정선을 책임지고 있다 해도 좋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는 지금
김고은이란 젊은 배우가 어떤 기대감을 자아내는가를 가늠하게 만든다. 물론 연기 경력에 비해 매번 만만찮은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점에선 개인적인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김고은도 그만한 각오가 필요함을
알았다. “욕심이 난다고 해서 다 할 순 없죠. 저보다 이
역할을 더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할 순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역할을 맡았다면 최소한 그 역할은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해야죠. 그래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지만 그래야 치열하게 노력할 수
있어요.” 자기 재능을 밑천 삼아 얻어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연기를 하면서 희열을 경험하면 쉬지 않고 연기만 하고 싶어져요. 그런데 좀 쉬면서 하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니까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한 선배님께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냐’고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부럽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곤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좋아하는 것도 결국 일이 되면 언젠가 지칠 수밖에 없나
봐요. 저는 너무 빨리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해 <차이나타운>의 촬영을 끝낸 뒤 김고은은
한동안 무기력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 해에 촬영장에서 보낸 시간만 9개월이었다.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난 변호사>의
촬영을 마치고 잠시 쉴 계획이었지만 오는 3월에 크랭크인되는 영화에 출연을 결정했다. “할머니와 손녀의 얘기인데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제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할머니와 함께 6년째 살고 있거든요.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니까, 이 작품을 통해 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중에 그럴 기회가 또 올지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자신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내고 싶은 작품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김고은은 올해로 스물다섯 살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것도 좋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란 말이다. 그녀는 여느 20대처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마음이 내키면 혼자서도 노래방을 찾을 정도라고 한다. 아무래도 김고은이란 배우를 안다는 것과 김고은이라는 사람을 아는 건 분명히 다른 맥락일 수밖에 없다. 그녀 역시 일찍부터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살아왔다. 그래서
꾸준히 써온 일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김고은에 대한 보고서나 다름없다. “일기 속의 나는 솔직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시간이 지난 뒤 일기를 보면 ‘그때 내 감정이 이랬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렇게 나란 사람을 이해하게 돼요.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스스로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질문하곤 했거든요. 다이어리를 보면 그때마다 정의가 다 다른데, 굉장히 다양한 면모를 지닌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정말 웃기죠.” 그녀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사실 커피가 맛있지 않은
사람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커피가 맛있다고 하고, 테이크 아웃잔을 들고 다니는 게 멋있다고 느껴지면
어느 순간부턴 커피 맛을 안다는 게 멋있게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러면 결국 커피가 맛있다고 느껴버릴
수 있죠. 그런 외부적인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짜 나는 정말 어떤 사람일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물론 김고은의 일기장을 살펴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알 수 있겠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확실한 건 그녀가 코미디물에도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배우로서 긴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또한 체감한다는 사실이다. “체력이 약하면 현장에서 죄인이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젠 몸
관리도 하려고요. 다들 그러잖아요. 좋을 때 관리해야 한다고. 생전 챙겨 먹어본 적 없는 비타민도 주문해서 먹고 있어요.” 사실
스물다섯 살은 비타민보단 연애에 관심이 많아야 하는, ‘호애시절’ 아닌가. “남의 연애사에 관심 갖는 거 아니에요!” 김고은이 잘라 말했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막 뚜껑을 딴 사이다처럼 청량한 웃음이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멍청 바이러스’가 생각났다. 검색을 해본 뒤 새삼스레 그 표정이 떠올랐다. ‘진짜 있대요.’ 거짓말 같아서 다시 한번 스마트폰을 들여다 봤다.
울컥했다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무한도전>의 ‘토토가’가 잠자던 90년대의 감성을 건드렸다. 90년대 대중음악이란 지금 어떤 의미인가. 90년대 대중음악을 듣고
자란 세 사람이 모여 썰을 풀었다.
민용준(이하
‘민’)다들 <무한도전>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어떻게 봤나?
김형석(이하
‘김’)재미있게 봤다. <무한도전>의 힘을 재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배순탁(이하
‘배’) <무한도전> 다이어리는 특별히 홍보도 안 하는데 100만권이 팔린다더라(웃음). 사실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 대부분은 2000년대 이후의 세대에겐 잊혀져 버린
가수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일부로 그런 가수들만 섭외한 건지, 그런 가수들만 섭외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기획의 승리라고 본다. 개인적으론 내가 그 노래를 다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
민 뇌가 좀 더 싱싱할 때 들어서인지
몰라도 가사가 저절로 기억나서 따라 부르게 되는 게 신기했다.
배 윤도현이 <나는 가수다>에서 소녀시대 노래를 부를 때 가사가 외워지질
않아서 미치겠다고 했다. 확실한 건 요즘의 가요들과 달리 90년대의
가요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 ‘토토가’ 이전에도 90년대를
조명하는 기획이 있었다. <응답하라 1997>이나 <응답하라 1994>가 대표적이고, <나는 가수다>도 90년대에
발을 걸친 인상이었다. 작년에 발매된 김동률의 신보도 9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건드린 것 같다. 이적이나 윤상 같은 90년대
싱어송라이터가 다시 주목을 받는 과정도 그렇고.
배 사이먼 레이놀즈라는 음악 평론가가
쓴 <레트로 마니아>라는 책이 있는데 레트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음악에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가’란 식으로. 아무래도 레트로라는 게 과거의 소스를 재생시키는 거니까 먼 과거를 지나 가까운 과거가 레트로의 차례가 됐다고
봐도 될 것 같다. 80년대가 레트로의 대상이 됐던 시대를 넘어서 이젠 90년대가 ‘핫’해질 순서가
된 거 아닐까.
민 90년대 대중음악이란 것이 추억을 넘어 열광의 대상이 되는 인상도 있다. 그건
레트로와 조금 다른 현상 같다.
배 모든 세대마다 자기 세대만의
사운드트랙이 있겠지만 90대는 음악산업이 정점을 찍었던 해이니까 다른 시대에 비해 추억의 밀도가 훨씬
높을 수 있다. 아마 시절을 추억하는 수단이 음악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30~40대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지금의 10대나 20대는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게임이 될 수도 있고.
김 생각해 보면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음반시장이 망가진 원인으로 핸드폰을 꼽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많이 하니까 상대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식이었지.
민 90년대에 대중가요라는 것이 대중문화 안에서 가장 큰 광장 역할을 했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세대들이 ‘토토가’를 통해 어떤 추억의
연대를 경험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음악의 소비는 활발하게 이뤄진다. 다만 음반이라는 물리적 형태의 소유가 아니라 음원의 거치 형태라는 점이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배 아무래도 경험은 물성을 통해서
극대화된다고 본다. 만지는 개념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는 음반이라는 음악적 물성을 간직한 마지막 시대였던 것 같다. 음반이라는
물성을 경험해보지 못하는 이상 음악이라는 그리움 자체가 형성되긴 어렵지 않을까.
민 ‘토토가’ 이후로 90년대가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는 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배 부분적으론 동의할 수 있다. 모든 지표들이 그걸 증명해 주니까. 90년대는 대중음악이 문화 소비의
패권을 차지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그 패권이 영화로, 게임으로, 스마트폰으로 넘어갔지.
김 요즘은 음악을 통한 부가사업들이
보다 중요하다. 패션, 스타일, 마케팅,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로 기획된다. 90년대는 음악 자체가 주된 소비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음악이란 본질에 충실했던 시대였다.
배 사실 ‘토토가’에 나왔던 음악들도 90년대 대중음악신 안에서 일부가 되는 음악이었단 사실이 중요하다. 게다가 90년대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TV로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였다. 고인이 된 신해철의 넥스트가 공중파 가요 프로에서 프로그레시브록을 연주하는 시대였다. 발라드나 댄스음악이 공존했고. 그런 면에선 확실히 회자될만한 가치가
있다.
민 사실 90년대에도 댄스 음악 일변도라 들을 음악이 없다는 비판이 상당했다.
배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은 90년대에 큰 족적을 남긴 가수들이지만 아마 김건모나 엄정화 정도를 제외하면 당시에 진지하게 음악을 듣던 이들에게
대부분 욕을 먹었을 거다. 립싱크 논란도 심했고. 그런 면에서
90년대는 저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엉망이란 식의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민 90년대 음악이 향수가 된 건 그 시절의 음악 소비를 주도했던 세대가 나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문화 소비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는데 ‘토토가’를 통해 자리를 찾았다는 감격이 서럽게
다가오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다.
배 지금의 30대, 40대가 대부분 그랬을 거다. 잠재돼 있던 문화 소비 욕구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고 할까? ‘토토가’
다음날 음원 차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식으로든 소비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그런데 주영훈 씨가 100억을 벌었다는 기사가 나온 건 진짜 어이
없더라(웃음).
민 음원 수익 분배 구조에 하등의
관심도 없으면서 기사를 쓴 거 같더라. 그냥 약 판 거지(웃음). 음원 수익이 작곡가에게 돌아가는 게 정확히 몇 % 정도인가?
김 한 4%? 90년대엔 음반이 100만장 팔리면 40~50억 정도 매출이 나왔는데 이젠 다운로드 100만 건이면 1억 수준일 거다. 게다가 스트리밍은 거저 주는 꼴이라 다운로드 수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아이튠즈를 통해 290만 건이 다운로드돼서 얻은 수익이 28억
정도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국내에선 360만 건 정도가
다운로드됐는데 싸이에게 돌아간 수익이 6000만원 정도였다더라. 나는
내가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김 가장 큰 문제는 투자하는 회사에서
유통을 하고, 제작도 하고, 음원 판매 사이트까지 운영한다는
거다. 게다가 미디어까지 갖고 있고, 정상적일 수 없는 구조인
거다.
배 완벽한 갑인 거지. 슈퍼갑.
민 음반시장에서 음원시장으로 넘어오면서
고착된 상황이다.
김 음악종사자들이 발 빠른 대처를
못했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들은 기업에 있고, 음악은
‘쟁이’들이 하니까(웃음). 물론 회사에서도 할 말은 있다. 망도 깔고, 시스템에 투자한 돈이 얼마이고. 하지만 문화사업이 1~2년 보고 가는 게 아니지 않나. 최소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적절한 수익이 배분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 정도는 가능해야 되는데 그런 개념이
전혀 없다.
배 그러니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돌만 육성되는 거고, 다양성이 존재할 수 없는 시장이 된 거다. 그런 면에서 90년대는 음악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졌다는
면에선 괜찮은 시대였던 것 같다. 2000년대 이후론 그게 완전히 무너졌으니까.
김 심지어 당시엔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
팀도 해체됐다. 지금은 듣기 좋거나 재미있으면 그냥 잘 넘어가는 것 같고.
민 그런데 팀 해체는 좀 가혹했던
거 같다.
김 그만큼 아티스트의 양심에 대한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진 시대였던 것 같다. 창작자가 표절을 했을 때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는 물질적 개념보단
창작자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윤리적 가치관이 대중에게도 절대적이었던 거지. 대중음악이 그만한 가치를
존중 받았던 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민 그러고 보니90년대 대중가요는 싱어송라이터의
시대였던 것도 같다.
배 국내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게 90년대였다. 가수가 직접 작곡, 작사에 참여한 곡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자기 음악을 직접
만들려는 아이돌이 많아진다는 건 긍정적인 거 같다. 단순히 기획사의 인형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샤이니의 종현 같은 친구와도 대화해보면 음악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김 90년대처럼다시 싱어송라이터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아이돌도 아티스트로 변모하길 원하고. 미국도 10년 전엔 백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아이돌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크리스 브라운 같이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대세다.
민 90년대 아이돌과 지금의 아이돌의 차이는 그런 후천적 욕망에 있는 것도 같다.
김 사실90년대엔 프로듀서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지금은 기획사만의 색깔이라는 게 있지 않나. JYP는
섹시, YG는 힙합, SM은 팬시. 어쨌든 자기 색깔이 분명하니까 팬덤도 그렇게 형성되고 ‘안전빵’ 장사도 가능하다. 그런 색깔은 아티스트 개인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기획해야 한다. 그래서
프로듀서가 필요한 거다.
배 결국 그런 시스템이 90년대로부터 잉태됐다는 게 중요하다.
김 그래서 3대 기획사의 수장 중 두 사람이 90년대 음악신에서 배출된 사람이란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90년대엔 보편적으로 타당한 노래를
좋아했다. 내가 들어도, 네가 들어도 슬픈 노래. 지금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추앙 받는 시대다. 1:1의 문화인
거다. 예전엔 미국의 문화, 유럽의 문화란 식으로 구분했다면
지금은 그냥 싸이의 문화가 인정받는 거다.
배 확실한 개성이 요구된다.
김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한테
좋아하는 가수를 물어보면 빅뱅을 많이 답한다. ‘자기들만의 음악이 있어서’라는 게 이유다. 최소한 애들도 나름의 기준으로 아이돌을 판단한다는 거다. 아이돌이
난무하다 보니 소비자의 관점이 진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 ‘토토가’는 90년대 음악의 상품성을 창출하는 매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선 괜찮은 쇼케이스였다.
배 아마 제작진도 이 정도로 흥할
줄 몰랐을 거다. 거의 장난처럼 시작된 기획이지만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김 미디어의 역할이 그거다. 가치를 부여해서 진열대에 올려 놓는 것. 대중들은 능동적이지 않다. 소수 매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동적이다. 그걸 미디어가 건드려줘야
한다. DJ 정권 시절에 음원 수익 배분 구조를 국가에서 결정해버렸는데 실질적으로 음반시장 붕괴 이후엔
국내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수익이 거의 사라졌다. 당장 먹고 죽을 것도 없어졌다. 그나마 돈벌이가 되는 아이돌을 양산해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고, 가요프로그램에서 20팀 중에 18팀이 아이돌로 채워지는 상황이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K팝이 롱런하려면 결국 다양성이 중요하다. 마이클 잭슨이 좋아서 미국 팝을 들어봤는데 다 마이클 잭슨 같으면 계속 들을 이유가 없지 않나. 결국 다양성을 끌어내야 한다. 생각해보면 90년대는 음악적 다양성이 폭발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민 음반과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건 정말 다른 경험인 거 같다. 발품을 팔았다는 보상심리가 생기고, 이
음반의 기회비용을 생각했을 땐 그만큼 열심히 그 음반을 소비해야 한다는 심리가 동원된다. 감상의 밀도가
달라진다고 할까. 음원을 통해 음악을 듣게 되면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상실되는 것 같다.
김 최근 삼성에서 ‘밀크’라는 음원서비스를
새롭게 공개했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클릭하면 알아서 노래들을 선곡해준다. 이제 내 컨디션만 알려주면 알아서 음악을 골라준다. 그렇게 편안함에
중독되는 거다. 그러면 결국 내 자아가 사라질 것 같다. 편리한
일이지만 사소한 불편함을 삭제했을 땐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가능성도 같이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
배 몸을 움직여서 뭔가를 해야 경험이든, 영감이든 발생하는 법인데 그런 몸의 움직임이 계속 지워지는 세대에겐 음악에 대한 기억도 얕아질 수밖에 없다. 내 몸을 움직여서 음악을 득템하는 과정들이 대부분 삭제되니까 음악에 대한 추억 자체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의 10대에게 음악과 연관된 자신의 이야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민 90년대의 음악 소비가 대화나 접촉 같은 아날로그 방식이었다면 21세기의
음악 소비는 데이터 송신의 디지털 형태로 이뤄진다. 음악을 듣는다는 본질적 경험은 동일하지만 그 과정의
형식과 소유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기억의 유효기간도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토토가’가 어떤 불씨를 살린 측면은 있는 것 같다. 그걸 꼭 활활 타오르게 만들 의무는 없지만 이왕
살린 불씨라면 최대한 지펴보는 것도 의미는 있겠다. 최소한 유의미한 오락거리 하나는 발굴했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이고.
김 어차피 90년대 음악이 주류가 될 순 없지만 비주류가 된 음악을 재조명했다는 건 분명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대에 대한 가치를 조명하는 시도가 거듭 이뤄져야 한다. 후세대가
봤을 때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그게 유산이 되는 거니까.
배 우리도 ‘토토가’를 빌미로 90년대 이야기를 하려고 모였지만 요즘 얘기도 많이 했다. 결국 90년대라는 화두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단 말이다. 그런 움직임이 더 활발해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90년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과거다. 70~80년대도 소중하지만
지금과는 너무 먼 시대가 돼버렸으니까 90년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같다.
김 90년대를 직접 겪은 사람들에겐 90년대가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청소년들이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를 우리가 지켜보는 상황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겪는 현실로서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할 거 같다.
카메라 앞에 선 이민기와 여진구는 유쾌하게
웃고, 떠들고, 소리쳤다.
열두 살이란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마치 함께 하니 무서울 것이 없는 친구 같았다.
이민기와 여진구를 만난 건 지난 8월의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과의 만남은 이미 반년전의 일이란 말이다. 그 당시
두 사람은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촬영을 막
마친 뒤였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서
조우한 스물다섯 청춘의 혈기왕성한 탈출극이다. 사실 띠 동갑인 이민기와 여진구는 카메라 앞에서 슛이
들어가는 순간 둘도 없는 동갑내기 친구가 됐다. 이제 막 30대의
문지방을 넘어선 배우와 20대의 문턱에 다다른 배우의 만남이란 생각은 손쉽게 지워졌다. 마치 2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처럼 유쾌하고 개구진 활기를
스튜디오에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테이블 앞에 앉은 두 사람의 목소리는 각기 진중했다. 각자의 시절에 어울리는 무게의 고민이 발음되어 귓바퀴로 감겨 들어왔다. 물론
우울하진 않았다. 해가 막 저물 즈음 시작된 촬영과 인터뷰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문장을 써내려 가는 지금은 12월의 겨울이다. 이제야 비로소 이민기와 여진구가 함께 달궜던 지난 여름의 기억을 전한다.
이민기,
Never Stop
30대의
문턱은 확실히 지났다.
<내 심장을 쏴라>까진
나의 20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로 20대를 마무리해서 좋았다. 내가 연기한 승민이와 같은 스물다섯 살에
원작을 읽었는데 그 시절에 좋은 메시지를 준 책이다. 그래서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참여할 수 있길 바랬다. 더 늦기 전에 이런 영화를 만난 걸 고맙게 생각한다.
<몬스터>와 <황제를 위하여>로
연이어 극악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전까지의 이미지와 완전히 상반되는 인상이었는데 그런 과정을 관통하고
나서 얻은 것이 있을까?
내게 있어서도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내게 그런 표정이 있는지, 그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해봐서 알았던 거지. 써보지 않으면
모를 감정이니까. 연기가 아니면 일상에서 써볼 일도 없는 감정이고. 흥행의
성패를 떠나 배우로서 확실히 영향을 받게 된 영화들이다. 그 직후에 승민이를 만나서 더욱 애잔한 마음으로
빠져들었다.
승민이가 극악한 캐릭터들의 탈출구가 된
걸까?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내게 주는 감동이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흔들리는 부분에 대한 고민과의 접점이 많았다.
고민이라면?
배우란 직업이 내가 사는 삶의 일부여야 할 거 같은데 반대로 배우라는 일에서 벗어나면 내 삶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내 인생이 넓어졌으면 좋겠는데 직업을 벗어나면 내 인생이 작게 느껴지는 거지. <내 심장을 쏴라>에서 ‘내 시간 속에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것. 그게 나한텐 삶이고 사는
거다. 난 죽고 싶지 않다’라는 대사가 내겐 와 닿는 거다.
승민처럼 나름의 결핍을 느끼는 건가?
연기를 하지 않는 순간의 나 자체가 결핍이다. 연기를 할 땐 좋다. 내가 할게 분명하니까. 그런데 작품을 떠나면 뭘 위해 사는지 잘
모르겠다. 단지 다음 작품을 위해서? 그런 면에서 승민이가
와 닿았다.
그런 생각은 얼마나 지속됐나.
길진 않았다. 예전엔 작품을 해내기 바빴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충족되지 않음을 느꼈다. 20대 중반쯤에 이명세
감독님께서 이런 얘길 해주셨다. “쉬는 것도 잘 배워야 된다.” 쉬면서
충전 잘하라는 의미쯤으로 여겼는데 언젠가부터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
해법도 알게 됐나?
20대 초반에 지닌 에너지와 지금의 에너지는 다르다. 에너지 넘치는 20대엔 다양한 것에 빠져들었다면 이젠 내 길을 알고자
하는 게 명확해졌다. 아무래도 20대 시절보단 에너지가 약해졌으니
내 시간을 잘 써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실제보다 어린 나이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어땠나?
회춘하는 기분(웃음)? 사람이
확실히 감정의 지배를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런 정신 상태가 되니까 신체적인 느낌도 어려지는 거 같더라.
나이보다 젊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건
아직 괜찮은 일일 거 같다
결국 자기 무기가 되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마흔이 됐는데 스물다섯 같은 느낌이 나면 안되잖아. 반대로 스물다섯에 마흔 같은 느낌이 나도 이상하고.
상대배우가 남자일 때와 여자일 때의 차이가
있을까?
<황제를 위하여>에서 (박)성웅이 형이랑 할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남자끼리의 소통이 편한
지점이 있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사고의 패턴이 비슷하니까. 그런데
막상 남자배우랑 하다 보면 여배우가 그립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웃음).
띠동갑인 후배와 호흡을 맞추며 느낀 건?
내가 봤을 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세상의 위치로
보면 어른이니까 가끔 어른이라고 착각하는 거다. 그런데 진구가 종종 ‘나중에
어른이 되면’이라고 할 때마다 깨달았다. ‘아직 나 어른
아니지.’ 그러면서 ‘그때 내가 그랬지’란 식으로 떠오르는 과거들이 생겼고, 어느 순간 그때로 돌아간 거
같았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기억나더라.
승민과 수명은 대비적인 캐릭터이지만 결국
서로를 위한 성장판 노릇을 한다.
<내 심장을 쏴라>는
궁극적으로 진구가 연기한 수명이의 성장드라마다. 수명이를 성장시키는 건 승민이다. 관객은 수명이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보게 될 거다. 승민이의 액션에
수명과 관객들이 리액션하는 셈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명이가 액션을 하고, 승민이가 리액션을 하는 구도로 변한다. 수명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장한 수명이가 승민이도 성장시킨다. 나는 승민이와 수명이가
기본적으로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승민, 수명,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히는 이름이지만 ‘ㅅㅁ’이라는 자음의 공통점도 있다. 다만 승민이는 자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외향적인 편이고, 수명이는 솔직하게 다 드러나는데 자기 안으로 숨으려 한다. 그렇게 다른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의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을 오래 전에 봤다고 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일까?
‘많이’라는 기준은 모호하고
좋아한다고 얘기할 순 있겠다. <내 심장을 쏴라> 촬영하면서도
다섯 권은 읽었으니까.
많이 읽었네.
전주에서 할 일이 워낙 없더라(웃음).
진구랑 한잔 할 것도 아니고. 다만 책을 일처럼 읽진 않는다. 내가 지닌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인데 지치게 해버리면 책이 싫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책을 읽기 피곤하면 덮고 영화를 본다. 영화는 틀어놓고 보면
되니까. 하지만 영화만 보면 살짝 게을러진 기분이 든다. 그럴
땐 책을 본다.
끊임없이 책이나 영화를 봐야 하나.
불안한 거지. 주어진 시간 안에 가능한 만큼 쌓아야 하니까. 사실 봤다고 해서 다 기억나는 건 아니다.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그 노력과 시간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다.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축적될 거다. 영화를 세 편 봤으면 여섯 시간을 쓴 건데 그 여섯 시간은 최소한 내게
남아있을 거다. 다만 일과 무관한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 온전히
날 위한 것이랄까. 그게 옛날엔 음악이었는데 앨범을 내고 일이 되니까 어쩔 수 없더라(웃음).
여행은?
20대 초중반엔 혼자 여행하는 게 좋았다. 타던 오토바이도 팔아서 여행 가고 그랬으니까. 낯선 곳에서 얻는
새로운 경험이 주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반복되니까 단기간의 여행으로 느낄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해지더라. 더 새로운 걸 느끼려면 오래 머물러야 했다.
그렇게 여행을 하니 점점 외부의 자극보다 내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더라. 하지만 내게 집중하다
보면 결국 외롭다.
그래서 영화와 책으로 여행을 하는 건가.
빨리 여행을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할지도.
연애를 해야겠다.
가장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
언제 갑자기 파파라치컷에 찍히는 거 아닌가.
그러면 이제 막 시작했나 보다 생각하면 된다(웃음).
이 인터뷰가 공개될 즈음엔 한 해가 다
지나갔을 거다.
인터뷰는 기록이란 점에서 좋다. 옛날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옛날에
이런 생각을 했구나 깨닫게 된다. 변화가 느껴진다. 평소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래서 좋다.
여진구,
Keep Going
<화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좋은 평가도 많이 얻었다. 칭찬 듣는 기분은?
감사하면서도 부끄럽다. 혼자 잘해서 그리 된 게 아니니까 옆에서 도움
주신 분들이 생각난다.
좋은 평가를 받은 만큼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거다. 부담되진 않나?
부담보단 약간의 책임감을 느낄 때는 있다. 전보단 나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책임감. 그래서 다시 칭찬을 받게 되면 그만큼의 책임감을 더 느낄 거라 생각한다. 만약 냉철한 비판을 받게 된다면 그 역시 가슴 속에 깊게 담아두고 생각하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은 봤나?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소설을 읽었다.
정유정 작가가 현장을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이야기한 건 없었을까?
수명이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다고 했더니 작가님께서 “그냥 수명이란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내겐
뭔가 숙제 같은 말이었다. 똑똑하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감사했다. 많은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하나의 포인트를 짚어주시니까
그걸 두고 많이 생각하게 됐고, 그로부터 다양하게 유추할 수 있는 수명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맡은 수명은 무려 스물다섯 살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게 두려워서 내면으로 기어들어가는 인물인데 연기하면서 우울하진 않았을까?
사실 나와는 다른 캐릭터라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촬영장 안에선
조금 우울할 때가 있었지만 촬영장을 벗어나면 크게 느낄만한 변화는 없었다. 나는 오히려 이민기 선배님이
연기한 승민 쪽에 가까운 성격이기도 하고. 나는 원래 밝은 편이다.
사실 좀 과묵해 보인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낯은 조금 가리지만 친해지면 서슴없이 밝아진다.
이민기 씨와는 띠동갑이라던데, 캐릭터상으론 동갑이다.
아무래도 내가 후배이니까 먼저 가서 인사를 드려야 되는데 낯을 너무 가리는 편이라 걱정했다. 동갑내기로 나오니까 친해져야 할 거 같은데 가능할까 싶었다. 역시나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형이 먼저 다가와서 편하게 하라고, 마음 놓고 반말하라고 말해주셨다. “너랑 있어서 내가 많이 젊어진 것 같아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같이 있다 보면 형이 나를 동생으로 봐주는 게 아니라 친구로 받아주는 거 같아서 고마웠다.
그런 어른들과 어울리다가 학교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친구들과 지내는 건 그냥 재미있다. 같이 장난치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아! 이해할 수 없는 게 딱 하나 있었다. 한창 아웃도어 브랜드 패딩이 유행한 적 있지 않았나. 그게 왜 학교에서
유행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추워서 입는 건 이해한다. 촬영
현장에서도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패딩을 입고 있고. 하지만 그 등산용 패딩이 유행감은 아니었던
거 같다(웃음).
만약 영화에서처럼 어딘가에 갇힌다면 적극적으로
싸울 것 같나.
승민처럼 옆에서 봐도 답이 없다 싶을 정도로 맞서진 못했을 거 같다.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하면서 붙지 않았을까.
스무 살이 넘으면?
운전면허증은 따고 싶다. 상황이 된다면 간단하게 여행도 가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 배낭여행 정도. 되도록이면 많은 걸 경험해보려 한다. 간접적인 경험도 중요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다.
수명이란 인물에게서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없었나.
항상 왜 숨으려고만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모든 방면에서 자신을 숨겨야 했을까 싶더라.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많이 얘기했다. 다른 부분은 어느 정도씩은 이해가 되는데 그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 자기 주장이 확실한 편인가.
옳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친구들하곤 뭐하고 놀까?
평범하다. 운동하거나 게임하거나.
운동도 좋아할 것 같다.
여럿이서 같이 하는 건 좋아하니까.
잘하는 편인가.
남들보다 월등한 건 아닌데,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팀을
짤 때 두세 번째로 선택 받는 정도?
액션 연기에 관심은 없나?
가끔 히어로물 보면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쉽게 상상은 안된다. CG가
많이 들어가니까 없는 것도 있다고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데 저 배우들은 어떻게 저리 잘할까 감탄한다.
<내
심장을 쏴라>에선 주로 맞는 쪽인데.
맞는 것도 재미있다. 몸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내년이면 고3이다. 대학 진학은?
하고 싶다. 대학생활을 통해 얻는 감정도 있을 거 같고.
가고 싶은 학과는?
뚜렷하게 정하진 않았다. 연기에 도움이 되는 학과를 가고 싶지만 좀
더 여러 가지 길을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
주변에선 당연히 연기학과에 진학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아무래도 그렇다.
연기 외에 관심 있는 분야는 없나.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 촬영할 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악기 하나
배워두면 혼자서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어릴 땐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많지 않나. 연기도 그 중 하나였다. 부모님께선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건 해보라고 하시는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셨다. 아무래도 어릴 때니까 지금처럼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보단 영화나 TV에
나가보고 싶단 생각이 컸을 거다.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
가끔 한다. 물론 배우로서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배우가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볍게 생각해본 정도?
진로에 대해 부모님과 특별히 상의해본 적은?
일단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진로가 뚜렷하게 정해진 부분이 있다 보니 심각하게 얘기할 일은 없었던 거 같다. 그냥 배우로서 뭔가를 더 해봐야 할지, 자기 계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
불안할 때는 없나.
그에 대해선 확실한 대답을 얻었다. 내가 매진하는 만큼 이 일이 나를
배신하진 않을 거 같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나 역시 이 일에 해가 되는 짓을 하지 않을 것 같고. 지금처럼 열심히 연기하고, 연기하는 걸 좋아하다 보면 계속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궁금한 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나.
되도록이면 많은 이야길 들어보고 판단한다. 내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을 더해서 내 역할에 어울리는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어필할 수 있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많다. 아직 해보지 못한 역할이 워낙 많으니까. 지금 나이에 어울리는 하이틴 멜로를 찍어보고 싶고, 운동선수 역할도
해보고 싶다. 악역도 해보고 싶고.
클라라라는 이름이 익숙해진 건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클라라라는 발음하는 것 너머의 클라라는 아직 낯선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클라라가 대답했다.
본명이 이성민인가?
사실 클라라가 본명에 가깝다. 내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부터 썼던 이름이고, 가족들도 클라라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성민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보다 클라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게 심적으로도 편할 거 같다.
맞다. 그냥 나 자신으로 활동하고 싶어서 선택한 이름이 클라라였다. 사실 8년간의 무명 시절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걸 억누른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표출해보자는 의미에서 2012년부터 이성민 대신 클라라로 활동했다. 그런데 클라라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됐다.
클라라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일단 이성민이란 이름 자체를 아무도 못 외우더라. 얼굴과 매칭도 안 된다고(웃음). 오디션에서 감독님들로부터 이름 바꾸란 말도 많이 들었다.
아이돌 이름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래서 이성민으로 활동했다.
<워킹걸>의 크레딧엔 어떤 이름이 올라갔나?
클라라. 이성민은 이제 없다(웃음).
<워킹걸>에서 섹스용품점 사장을 연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어울린다.
어떤 면에서?
섹스어필한 이미지 자체만으로.
감사합니다(웃음). 일단 여자로서 칭찬으로 들린다. 그런 매력이 있는 건 장점이니까. 캐릭터와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 게 배우 입장에서도 좋고. 물론 연기력도 좋단 이야길 듣게 되면 더 좋겠지.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선 부담스럽진 않나?
어차피 선입견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을 텐데.
괜찮다. 그런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절반이라면 반대로 생각하는 분들도 그만큼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소위 말하는 ‘멘탈갑’이다.
완전 갑이지(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보다 정확하겐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형성된 계기가 있을까?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 도쿄 호텔에 있었다. 혼자 여행을 갔는데 호텔이 무너지는 줄 알았고,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그 뒤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 시간도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모든 게 소중해지더라. 그 이후론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편인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싫다. 얼굴 찡그리고, 기운 없어지고, 신경질 내고, 결국 자기 손해잖아.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 나부터 편해지고 남에게도 나쁜 인상을 보일 필요가 없어진다.
작년에 했던 프로야구 시구가 경력의 발판이 됐다.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까?
시구를 하면 보통 ‘실검(실시간 검색어)’에 뜬다. 그래서 나를 알릴 순 있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공도 잘 던지고,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의상도 준비해야겠다고. 관중석에선 내가 손가락보다 작게 보일 텐데 어떻게 입어야 눈에 띌까 고민했다. 게다가 옷에 따라 던지는 폼도 다르게 보일 수 있고.
하지만 레깅스 덕분에 나름 잘 던진 시구가 묻혔다.
조금 서운하긴 했다(웃음). 사실 경기 3일 전에 갑자기 대타로 섭외된 거라 준비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연습하면 될지 물어보니까 다들 한 시간 전에 경기장에 가면 선수가 가르쳐줄 거라고만 하더라. 평생 공을 던져본 적 없는데 한 시간만 배워서 어떻게 해. 수소문 끝에 선수 한 명을 섭외해서 배웠는데 지금까지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가?
운동은 좋아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좋다.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그런 게 재미있다.
승부욕은?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보단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한가지 일을 두고도 다방면으로 생각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인데 튀려고 애쓴다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을 거 같다.
그 시구 이후로 1년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그 뒤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해주는 팬이 생겼다.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니까 진심이 통한 거 같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적성에 맞나?
예전엔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렇다. 요즘은 일이 많고 피곤함에도 재미있게 느끼는 걸 보면 확실히 적성에 맞다.
배우가 되려고 생각한 계기는?
우리 엄마. 미국에 있는 동안 한인 축제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SM과 JYP 관계자에게 명함을 받았다. 이를 엄마에게 말하니까 이 참에 한국에 가서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하셨다. 엄마는 원래부터 내가 배우로 활동하길 바랐다. 어릴 때부터 끼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조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때 엄마를 따라 다시 한국에 왔다.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고.
스위스에서 태어났다고.
맞다. 두세 살 무렵 한국에 왔다. 당시 아빠는 ‘코리아나’ 활동으로 바빴고 엄마는 아빠 내조로 바빴다. 그래서 부모님과 산 기억은 별로 없다. 친가, 외가를 전전하면서 자랐으니까.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처음으로 같이 살았는데 6학년 때 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무래도 그 덕분에 자립심이 생겼나 보다.
TV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안 좋아진다면서 우는 모습을 봤다.
그냥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항상 있었기 때문인 거 같다. 사춘기 시절의 서운함, 외로움, 허전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 손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동딸이라 혼자 자란 탓인지 애도 많이 낳고 싶다.
<패션왕 코리아 2>에 최범석 디자이너와 함께 조를 이뤄서 출연했는데.
1등한 것 좀 써달라. 소문이 너무 안 났다(웃음).
시작부터 우승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정말 우승했다.
그 동안 워스트 패션으로 많이 선정됐다. 그런데 <패션왕 코리아>에서 우승한 거니 패션킹이 된 거 아닌가. 그 자체가 뿌듯하다.
미국에서 패션학과에 입학했는데 졸업은 못했더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선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공부는 언제든 하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지만 연예계에서의 기회는 늙으면 없어진다고, 한창 예쁠 나이에 데뷔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 인생에서 큰 문을 열어준 셈이다.
무명 생활을 하면서 후회되지 않던가.
후회됐지. 졸업하고 와도 스물세 살이었으니까 늦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런데 처음엔 운이 좋았다. 한국에 오자마자 한 시계 브랜드의 얼짱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해서 CF모델로 활동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리고 작품도 하고 계속 바빴다. 그래서 후회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데뷔한지 5년이 지나갈 때도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만큼 쌓아온 것마저 잊혀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다가 8년이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10년 채우자고 마음 먹은 뒤 이름도 클라라로 바꿨다.
올해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에 서고 싶다고 했는데, 꿈을 이뤘다.
말은 계속 내뱉어야 하나 보더라. 스스로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일부로 소문을 내고 다녔다. 불러달라고(웃음). 아무래도 <워킹걸>이 있으니까 가능했겠지. 사실 2013년에 <라이크 어 버진>이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레드카펫을 구경했는데 ‘내년엔 꼭 서야지’라고 다짐했다. 정말 꿈이 이뤄지니 너무 좋았지.
배우로서 배우들을 구경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닐까?
눈치를 안 보는 편이다. 눈치 보면 하고 싶은 걸 많이 못하게 되고 그럼 인생이 재미없어진다. 하고 싶은 건 해야 된다.
그래도 용기가 필요한 일 같다.
어떤 면에선 슬픈 일이지. 그런데 직접 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 더욱 레드카펫에 서고 싶다는 생각?
혹시 조언은 잘 듣는 편인가?
좋아한다.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새길 건 새기고, 거를 건 거르고, 이건 다 내 몫이다. 악플도 다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욕만 빼고(웃음). 하지만 욕도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노출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있다. 배우로서 제대로 증명한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증명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질 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킹걸>이 중요해 보인다. 일단 난희라는 캐릭터는 겉으론 프로이지만 허당에 가까운 쑥맥녀다.
섹스용품점 사장 역할을 선뜻 선택한 게 의아하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난희는 내면을 보면 매력 있는 캐릭터다. 겉으론 과감해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사랑도 못해봤고, 가족에 대한 아픔을 지닌 여자다.
섹스용품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었을 텐데.
그냥 구경 정도? 익숙해지고 잘 어우러질 정도로(웃음)?
어떻게 어우러진 건지 궁금하다(웃음).
영화를 보면 안다(웃음).
항상 웃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지만 사람 마음이 항상 그럴 수만은 없다. 그런 괴리를 느낄 때는 없나?
당연히 있다. 로봇이 된 기분이나 기계처럼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 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보는 사람도 행복하고, 그래야 나도 대중들에게서 행복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 ‘Fear’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그전에 ‘하우스룰즈’와 ‘Invitation’이란 노래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는데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팬미팅을 준비하면서 분위기를 업 시켜줄 DJ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하우스룰즈의 서로 씨가 왔더라. 팬미팅이 끝나고 인사하면서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했더니 곧 하우스룰즈의 신곡이 나오니까 피처링을 해달라는 거다.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좋다더라. 그래서 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런데 음악프로그램에서 출연 섭외가 왔고,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수락했다. 무대에 서니까 떨린다기 보단 너무 즐거웠다. 시구할 때도 그랬다. 나는 즉각적인 호응에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 것 같다. 이번에 발표한 ‘Fear’는 미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뮤지션의 제안으로 하게 됐는데 힙합이라 좀 고민했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게 좋아서 결정했다. 그런데 중국 뮤직비디오 차트에서 12위를 했다고 해서 좀 놀랐다.
중국에 알려질 계기가 있었을까?
중국에서 <응급남녀>의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 최근에 중국에 다녀왔는데 다들 내 이름도 알더라. 너무 신기했다. (송)지효 언니와 최진혁 씨가 팬미팅을 다녀왔단 이야긴 들었지만 나는 모를 거라 생각했으니까. 기회가 되면 중국 활동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새로운 계획은?
1월 중엔 홍콩에서 영화를 찍는다. 단편인데 홍콩필름페스티벌 초청작이다. 처음으로 영어 연기를 한다. 1월 중엔 미국에서도 미팅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액션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다.
일찍이 <리큐에게 물어라>라는 일본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해외 활동 기회가 심심찮게 찾아온다.
여러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다. 아빠가 유럽에서 활동했던 것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놀라운 경험을 하나씩 하게 되면서 꿈도 갖게 되고 더욱 열심히 살게 된다. 목표가 점점 커진다.
어떤 결과에 대해 기대하게 되는 건가?
항상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결과에 연연하면 선뜻 나설 수 없으니까 이 순간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 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 뭐든 시도할만하다. 나라는 콘텐츠를 쌓는 거다. 다양한 매력이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지 않으면 대중들은 모르는 거니까. 무엇보다도 스스로 내 모습을 찾아가는데 흥미를 느낀다.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그래서 누구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하지만 요즘 극장은 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영화 이상의 체험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다. 극장부터 골랐다. 코엑스 메가박스에 새로 단장한 프리미엄 상영관 ‘부티크 M’을 찾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예매사이트에 접속해서 영화를 고르고, 두 좌석을 선택한 후 결제를 했다. 5만원이 결제됐다. 그러니까 영화 티켓 두 장의 가격이 무려 5만원이다. 티켓을 금으로 만들었나? 종이였다.
상영관 이름이 스위트룸이라고 했다. 흔한 극장 상영관처럼
1관이라고 부르는 대신 101호라고 했다. 상영관이
아니라 호텔룸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호텔식 서비스를 지향했다.
넓고 편안한 리클라이너 체어에서 다리를 쭉 뻗고 거의 눕다시피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에비앙 생수를 웰컴 드링크로 제공한다. 입구에서 무릎담요를 나눠주고 자리엔 슬리퍼도 놓여있다. 룸서비스도 가능하다. 영화 시작 전에 좌석 측면에 있는 벨을 누르면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팝콘이나 나초 대신 피자를 주문했다. 화덕에서
구운 조각피자로 유명한 ‘피자리움’이 입점해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와인도 판다. 그뿐만이 아니다. 홍대 부근의 유명한 커피 전문점인 앤트러사이트를 비롯해 타발론 티, 오설록
아이스크림도 상시 판매한다. 어쨌든 2시간 30분에 달하는 영화를 보면서 리클라이너 체어의 안락함을 실감했지만 동시에 영화가 재미없다면 숙면을 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있었고,
잠들 일은 없었다.
부티크 M과 같은 상영관이 낯설게 느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유사한 형태의 프리미엄 상영관은 존재해 있었으니까. CGV 골드클래스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CGV에선 일찍이 식사와 영화관람을 연동해서 즐길 수 있는 ‘시네 드 셰프’와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다. 롯데시네마 역시 샤롯데라는 프리미엄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메가박스
부티크 M은 후발주자다. 이미 존재하는 프리미엄 상영관 시장에
뛰어든 건 지금의 시장에서 유효한 기획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메가박스에선 지난해부터
다양한 형태의 상영관을 기획해왔다. 과거의 자동차 극장을 연상시키는 드라이브 M과 건물의 옥상에 설치된 텐트와 캠핑 의자에 앉아 야외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글램핑 상영관인 오픈 M이 눈에 띈다. 둘 다 영화 관람 외적인 경험을 서비스한다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특히 가족 단위 관객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띄는데 어린 유아가 있는 부부가 쉽게 극장을
찾지 못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유용한 서비스처럼 보인다. 바비큐나 와인, 맥주와 함께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전통적인 영화관의 관습에서
벗어나 영화 관람과 동반할 수 있는 체험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21세기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입맛을 돋우는
음악처럼, 영화 또한 감각적 소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CGV에선 멀티플렉스 대신 컬처플렉스란 언어를 동원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했다. 컬쳐플렉스는 영화뿐만 아니라 외식이나 쇼핑, 문화체험
등 영화 외적인 다양한 경험과 연계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성의 연계나 확장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CGV청담시네시티엔 다양한 식당과 커피 전문점,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
층층마다 자리해있다. 기존의 골드클래스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더
프라이빗 시네마’와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 형태로 제작된 커플석만으로 상영관 좌석을 채운 ‘스윗박스 프리미엄’과 같은 상영관은 영화 관람에서 서비스의 형태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변한다. 롯데시네마 역시 새롭게 문을 연 롯데월드몰의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 ‘시네
파크’라는 광장 형태의 공간을 마련했는데 이는 영화 이외의 문화적 체험을 전달하려는 다른 극장들의 정책과
유사하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체험적 다양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흐름은 극장산업의 화두인 셈이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볼 것인가라는 선택권이 넓어졌고, 관객들은 기꺼이 고민하고 선택하며 기다린다. 이를 테면 최근에 화제가 된 <인터스텔라>의 아이맥스 열풍이 그렇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길 고집하는 배경엔 ‘좀 더 큰 화면에서 보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욕망을 넘어서 ‘두 영화를 관람하는 최적의 관람 방식이
아이맥스 상영관이기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영화가 주는 감각적 체험을 최대한 극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영화관람이란 행위를 엔터테인먼트적인 체험으로서
보다 확실하게 소비하길 원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D 상영 방식의 일반화 또한 궤를 같이
하는 사례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의 전세계적인 흥행 이후로 디지털 상영관이 확대되고 3D 상영이
영화 상영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정착해 버린 건 어떤 체험을 계기로 관객들의 감각적 경험이 확장되고 정착된 덕분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 감각에 대한 수요는 새로운 체험적 방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체험의 확장을 통해 훈련된 감각을 고스란히 체감하길 바라는 관객의 정착이 극장 상영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입체적인 사운드로 청각적 체험을 극대화시킨 돌비 애트모스 음향 시스템도 장착된 상영관을 선호하는 관객이 늘어나고, 개인 좌석마다 설치된 헤드셋을 통해서 영화 사운드를 홀로 독점하는 상영관이 출현한 것도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통한 학습효과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음향에 따라서 좌석의 진동을 체감하도록 하는 비트박스관과 오감을
자극하는 4D 상영관의 공감각적 체험 또한 다르지 않다. 특히
4D는 기존의 영화관람 형태를 롤러코스터적인 감각적 엔터테인먼트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영화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 다양한 감각적 체험이 가능하다는
학습효과를 얻었고, 그런 시장의 수요를 파악한 극장은 진화하고 있다.
21세기의 극장들은 영화의 관람방식을 다양하게 세분화하고, 영화 관람 외적인 서비스의 확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극장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서 역할을 견인해왔다. 동일한 티켓 가격으로 각기 제작비가
다른 영화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이기도 했다. 그만큼
극장 산업이란 대중의 기호에 민감한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 극장문화의 변화란 결국 대중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과거와 달리 이제 영화는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됐다. 또한 IPTV를 통해서 한동안 부재했던 영화의 2차 판권 그러니까 홈 씨어터 시장이 순식간에 정착됐다. 영화란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됐다. 그만큼 극장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야 하는 건 필연적이다. 커다란 스크린만으로 극장의 경쟁력을 논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관객들은
이제 보다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영화 그 이상의 영화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