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쑤시개 꼬나 물고 바바리 코트 휘날리며 쌍권총 손에 들고 폭풍 킬샷 날리던 주윤발의 <영웅본색>은 홍콩 느와르의 전설이다. 하얀 비둘기 날리며 홍콩 느와르의 간지를 창출해낸 오우삼의 <영웅본색>은 홍콩이라는 지정학적 입지를 특유의 장르적 분위기로 승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작품이었다기 보단 그 시대적 공기와 함께 호흡함으로써 얻어진 훈장과 같은 장르나 다름없다.
1986년작인 <영웅본색>은 오늘에 이르러 분명 낡은 추억과 같은 유물이나 그것이 자신의 시대 안에서 이룬 성취는 분명 간과할 수 없는 매력임에 틀림없다. 오우삼의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송해성의 <무적자> 속에 담긴 <영웅본색>의 흔적이란 그래서 조금 낯설다. <영웅본색>의 캐릭터 구도를 이어받은 새로운 얼굴들, 그리고 그들이 펼쳐 보이는 유사 이미지의 액션은 <영웅본색>에 빚진 것임에도 그 뉘앙스와는 조금 동떨어진 것들처럼 보인다.
<영웅본색>이 그러했듯이 <무적자> 또한 범죄 조직의 비정함에 맞서는 수컷들의 의리를 앞세워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액션 느와르를 표방한 작품이다. 팽배한 물질주의와 대륙으로의 반환을 앞둔 공황적 심리가 어지럽게 뒤엉킨 홍콩의 입지를 사내들의 느와르적 정서로 연동한 <영웅본색>은 시대에 깃든 아이러니한 정서를 낭만적인 기운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자신만의 멋을 입힌다. <무적자>는 탈북자라는 신분과 부산이라는 지정학을 통해 <영웅본색>의 국산화를 시도하고 보기 좋은 젊은 배우들의 캐스팅을 통해 혈기를 보충한다.
<무적자>는 스토리텔링의 흐름 안에 있어서 눈에 띄는 결점이 발견되는 영화가 아니다. 인과관계는 적절하며 관계 설정의 변주와 갈등의 양상에서도 큰 흠이 드러나지 않는다. 부산을 근거지로 연출한 느와르적 풍광도 근사하다. 다만 그 내러티브의 흐름을 흔드는 울림이 약하다. 강한 의리와 애틋한 형제애로 묶인 원작의 인물들이 펼쳐내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무적자>의 인물들은 감정의 이입을 이끌어내기 보단 그 감정적 상태를 거듭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것만 같다. 다단한 플롯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선을 구축했으나 감정의 진전이 더디고 끝에 다다라 닿는 폭발력이 약하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기능적으로 나쁘지 않다. 다만 그것이 말 그대로 기능적인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정서적 공감대를 이룰만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다고 할까. 젊은 배우들의 갈등과 이해로 도모되는 <무적자>의 감정선은 강렬한 혈기가 존재하나 이를 녹록하게 묵혀줄 관록이 눈에 띄지 않는다. 표독스러운 눈빛과 멋스러운 자태가 공존하지만 그것들을 진짜로 승화시킬 내공이 부재한다. 나름대로 대단한 물량공세를 자랑하는 피날레의 액션신은 나름의 볼거리를 이루지만 그 상황 위를 날고 뛰는 인물들의 감정선은 객석과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정서적 연대에 빠져드는 것 같다고 할까. 이미 낡은 것이 된 원작의 영광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무적자>는 딱히 인상적인 작품이 아니다. 원작의 본색은 물론 자신의 본색조차 얻어내지 못한 범작에 불과하다. 존경심을 표하기 이전에 자립심부터 챙기고 볼일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