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경험한 뒤 가족과 함께 휴가지를 찾은 젠(캐서린 헤이글)은 그곳에서 만난 훈남 스펜서(애쉬튼 거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즐기던 젠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남편이 전직 스파이였으며 자신의 평범한 이웃들이 그의 목에 걸린 거액의 현상금을 노리고 킬러의 본색을 드러내며 그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것. 평범한 일상을 갈망하던 남자와 진정한 사랑을 꿈꾸던 여자의 평화롭던 삶은 그 삶을 파괴하려는 모종의 무리들의 습격을 통해 만신창이가 되고 끝없이 쫓기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스파이와 사랑에 빠진 여인이라니, 본드걸이 아니고서야 이 억센 팔자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덕분에 최근에 개봉된 <나잇 & 데이>의 다른 버전처럼 보이는 <킬러스>는 대단한 신선도를 자랑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여전히 유효한 설정을 밑그림으로 삼아 캐릭터의 매력과 액션을 채색하고 결국 재기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완성을 꿈꾸는 작품이다.
사실상 이 영화의 축은 두 배우가 연기하는 남녀 캐릭터다. 실제로 영화는 마치 이를 의식한 듯, 엄밀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이를 의도하고 기획한 듯 두 배우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캐릭터에 반영한다. 백치미스럽지만 귀여운 여인 젠과 로맨틱하면서도 섹시한 훈남 스펜서는 캐서린 헤이글과 애쉬튼 커쳐라는 배우들의 매력을 고스란히 승계한 캐릭터로서의 결과물 그 자체다. 동시에 두 배우가 이루는 리액션이 주가 되는 이 영화에서 두 남녀 배우의 캐스팅은 코미디라는 장르적 자질을 이뤄내기 위한 최상의 조합으로서의 선택됐다는 의도 또한 빤히 보일 정도다. 종종 과감한 액션신을 소화하기는 하나 기본적인 바탕은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영화가 어느 한 부분도 특별한 구석이 없다는 점이다. 첩보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를 아우르는 이 영화의 모든 요소는 장르적 컨벤션이라 일컫기조차 망설여지는 아류적인 찰나들의 수집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단지 새롭다, 신선하다, 라는 발견의 가치에 해당되지 않아서가 아닌, 말 그대로 그 장르적 기본기 자체가 적당히 즐길 만한 수준이라 인정될만한 최소한의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결함은 지나치게 손쉽게 위기가 비롯되는 설정을 묘사한다는데 있다. 내 주변에 머무는 모든 이웃들이 사실 내 현상금을 노린 킬러들이었다는 설정은 최소한 이 영화의 묘사 방식 안에서 과하다. 특별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이야기의 얼개는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의도하는 모든 장치들을 과오처럼 치장됐다고 이해하게 만든다.
물론 <킬러스>를 완전히 볼품 없는 영화라고 말하는 건 박한 일이 될 게다. 하지만 최소한 상업영화라는 기준 안에서 일종의 재미를 추구하는 관객에게 있어서 큰 만족감을 부여하기 힘든 이 결과물에게 호의를 보이기란 쉽지 않다. 단지 두 배우를 보는 재미 정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모를까. 재기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혹은 박진감 넘치는 첩보 액션에 대한 기대감은 이 영화의 물량공세만큼이나 죽은 재미의 물량공세로 인해 실망감으로 치환될 가능성이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