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인형이다. 다만 순수한 동심을 배려하기 위해 태어난 인형이 아니다. 그녀는 성인 남성을 위해 마련된 인형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설명하자면 성인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성인 용품이다. 흔히 말하는 섹스돌(sex doll)에 가까운 공기인형(air doll)이다. 물론 인형에게 운명이나 인생이란 단어는 마땅치 않다. 그렇기에 인형의 용도를 가혹하다 설명하는 것도 마뜩찮은 일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공기인형>에서의 인형만큼은 운명이나 인생이란 단어를 동원해야 한다. <공기인형>은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된 인형에 관한 영화이므로. 이는 <공기인형>이 묘사하는 세계의 정서 안에서 분명 역설적인 감상을 부를 만한 것이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마음이란 것 자체를 담아낼 수 없는 텅 빈 그릇이 된 인간들의 세계에서, 되레 마음을 얻게 되버린 인형의 운명이라니, 분명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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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움직임이 구사되지 않는, 타격감이 없는 성룡영화라니 생소하다. 액션 장면은 있다. 하지만 그 액션 장면에서 성룡은 우리가 아는 성룡이 아니다. 그냥 마구 휘두르고 얻어 맞기도 한다. 액션 활극이 아닌 사실적인 느와르 안에서 성룡의 위트는 전혀 구사되지 않는다. 그 진지함만큼이나 진중함도 대단하다. <신주쿠 사건>은 살벌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도쿄의 비정한 정서를 온전히 체감하는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의 도쿄 생존기다.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한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넘치던 90년대 도쿄 신주쿠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희망과 절망을 가로지르는 불법이민자들의 저항과 애환을 핏빛으로 투영한다. 성룡과 판빙빙을 비롯한 중화권 배우들과 타케나카 나오토를 비롯한 일어권 배우들은 제 역량을 다함과 동시에 그 조화가 자연스럽다. 사실적인 신체훼손 장면이 연출되는 등 폭력의 수위가 높지만 그 무거운 정서가 캐릭터의 공포와 분노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활극적 액션을 연출하지 않고 온전히 표정만으로 승부하는 성룡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연륜과 관록이 넘치는 성룡의 표정은 비정한 느와르의 내면을 탁월하게 대변하는 창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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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목소리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어지럽게 뒤엉킨 아래, 인공적으로 반짝이는 스팽글(spangle) 도시가 펼쳐진다. <도쿄!>의 오프닝은 미쉘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까지, 됴쿄를 바라보는 세 이방인들의 시선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시선을 집약한다. 반짝거리는 빌딩 숲 사이를 가득 메운 갖가지 소음들로 들어찬 도시의 풍경 속에 숨어들어간 듯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형체. 발들일 틈 없이 빽빽하게 보이지만 한편으론 기이하게 텅 빈 풍경. 인공 도시 안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의 단상들이 어렴풋이 어른거린다. 가늠할 수 없는 세 감독의 옴니버스 <도쿄!>는 이처럼 뚜렷한 형체가 짐작되지 않는 거대한 실체를 구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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