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의 하버 아일랜드에서 한 여인이 실종됐다. 이를 수사하기 위해 연방보안관이 파견된다. 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섬은 평범한 곳이 아니다. 그 섬은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살인을 저지른 악명 높은 죄수들이 수감된 정신병원이 있는 ‘살인자들의 섬’이다. 그리고 연방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척(마크 러팔로)은 바다를 건너 그 섬으로 간다. 그들 뒤로 폭풍우가 밀려온다.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영화화한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각인시키는 작품이다. 원작에서 열거된 사건의 가지를 쳐내며 서사의 부피를 줄였으나 그 중량감을 유지함으로서 보다 밀도를 높인다. 사건을 수사하는 연방보안관 테디를 축으로 서사를 밀고 나가는 가운데, 그 틈새마다 특정인물과 연계된 모종의 과거와 내면적 심리가 잠입하듯 들어선다. 그 위로 유화적인 색감의 대비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뱃고동 소리처럼 울리는 배경음은 중후한 심리적 격양을 조장한다. 무엇보다도 <셔터 아일랜드>의 핵심은 미궁과 같은 서사다. 서사의 꼬리를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관객의 입장이라면 끊임없이 그 꼬리에 매달리는 의혹의 너비에 잠식당할 수 밖에 없다.
테디의 시점을 통해 전반적인 세계관이 조명되고, 테디가 바라보는 현실의 나열 속에서 그의 내면적 기저에 자리한 과거가 몽환적으로 재현되는 가운데, 그 중심에 놓인 테디의 개인적 심리가 현실의 표면 위로 떠오른다. <셔터 아일랜드>는 현재와 과거를 반복적으로 오가되 뒤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시제의 층위를 형성한다. 현재와 과거는 나란히 자석의 양극처럼 붙어서 나열되지만 척력이 작용하듯 거리감을 두고 있다. 테디의 시점을 통해 서사가 중계되는 가운데, 그 현실을 갈라넣듯이 테디의 전사와 심리적 내면이 몽상과 착시의 환영적 이미지로서 삽입된다. 장르적인 논리나 서사적인 인과를 기대하며 정보의 추이를 좇던 관객에게 그 이미지의 출현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표면적인 사건 위로 유령처럼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이미지들은 어떤 징후를 예견할 뿐, 좀처럼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현실의 의혹이 눈덩이처럼 몸을 불리고, 서사의 도처에서 매복한 플래쉬백의 환영은 비선형적인 의혹을 지속적으로 증축해 나간다. 서사적인 진전 위로 부유하는 의식의 흐름이 감상의 층위를 형성하고 현실 위로 어른거리는 몽환의 이미지를 동원해 인물의 기저에 자리한 트라우마의 실루엣을 흘려보낸다. 우아하게 치장된 판타지의 이미지는 종종 인물의 내면에 자리한 통증을 환기시키고 슬픔을 흘려보낸다. 이는 <셔터 아일랜드>에 유려한 멜로적 감수성을 부여하며 서사의 미로에 지표를 세워넣는다.
<셔터 아일랜드>는 모든 것이 연극적이고, 인위적이며, 조작되고, 계산된 영화다. 영화의 표면에는 끊임없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징후와 복선들이 떠다닌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 징후와 복선에 노출될 뿐, 선뜻 답변할 엄두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결말부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그 모든 것이 어떤 의미를 동반하고 있었는가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접근하는 낯선 이에 대한 경계처럼 관객은 낯선 징표를 수집하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 어떤 확신도 지닐 수 없다. 관객들은 그 과정에 맞서야 한다.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켜켜이 축적되는 의심과 싸우고 인내해야 한다. 마틴 스콜세지는 (스스로 존경을 바치는 히치콕의 그것처럼) 맥거핀을 동원해 착시를 일으키지만 그 지난한 여정의 끝을 반전이란 수식어로 붕괴시키지 않는다.
사실 원작을 먼저 접한 이에게 <셔터 아일랜드>의 의도는 명확하게 이해될만한 것이다. 그 비선형적인 서사가 장르적 추리를 부추기거나 감상자에게 참여의 여지를 열어놓지 않고 있음을, 혹은 그것이 착각으로 거듭날 것임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폭풍우를 몰아치기 위해 먹구름이 짙은 형체를 넓혀가는 것처럼, 모든 의혹이 해소되는 결말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징조와 암시로서 의혹을 벌려나간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라 짙게 드리운 물음표는 느낌표처럼 쏟아져 내린다. 결말에 다다라서야 영화가 장치한 모든 디테일들이 되새김질된다. 마틴 스콜세지는 원작의 형태를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양식적 노하우를 극대화시키며 텍스트를 효과적인 이미지로 치환한다.
행간에 묻힌 암시는 이미지를 통해 극대화되고 더욱 은밀해진다. 무엇보다도 원작이 발생시키는 충격을 고스란히 제 것으로 승화한 결말은 그 끝에 다다라 보다 비범한 철학으로 나아간다. 이는 딜레마로 매듭지은 원작의 여운을 보다 비장한 존재론적 질문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명확하고 비범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망상에 매몰된 채 살아가던 인물은 자신이 환기한 현실을 통해 얻어낸 깨달음을 실행한다. <셔터 아일랜드>는 마틴 스콜세지가 거장으로서 끊임없이 녹을 닦아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역작이다. 그리고 훌륭한 배우들은 거장이 던지는 비범한 질문으로 관객을 인도하고 있다. 괴물로서 현재를 살 것인가, 선량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삶과 죽음 안에서 존재의 가치는 어디로 기우는가. 어쨌든 폭풍은 지나갔고, 다시 한 번 삶은 돌아왔다. 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남자는 거기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과연 여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