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세상이 텅비었다. 인적이 없는 거리에는 죽은 듯이 고요한 열기만 가득하다. 해가 저문 뒤, 도시의 밤은 분주해진다. 세상이 어두워진 뒤에서야 사람들은 거리를 활보한다. 하지만 그 거리를 채운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그 사람들이 아니다. 2019,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 대부분은 어둠 아래 사는데 익숙해진지 오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은 그들의 피를 원하는 뱀파이어들에게 사냥당한 뒤, 혈액은행에서 사육당하는 운명에 놓이거나 이를 피해 달아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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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비고 모텐슨)와 그의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은 황량한 풍경에 둘러싸인 채 남쪽으로 내려간다.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게 아니다. 세상은 끝났고, 그 끝난 세상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더 이상 공존을 꿈꾸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이고 경계해야 한다. 인간이 건축한 문명의 이미지들은 새로운 약육강식이 도래한 묵시록의 밀림을 황폐하게 치장한다. 그 사이에서 남자는 오래 전 사별한 부인(샤를리즈 테론)을 꿈꾼다. 이토록 피폐한 현실이 도래하게 된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건 오로지 꿈의 환각이다. 꿈에서 과거를 보는 남자는 현실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선악의 구별조차 무의미한 세상에서 선한 이가 되겠다고 남자는 아들에게 다짐한다. 스스로를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 설명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말의 빛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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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의 신화, 아니메의 전설, 오타쿠의 복음. 신도적인 팬덤에 둘러 쌓여 끊임없이 복기되고 해석되는 묵시록 <에반게리온>은 그 이름에 얽힌 수많은 언어만으로도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단순히 작품의 개별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신드롬으로서 이미 하나의 거대한 세계임을 증명했다. <에반게리온>의 매력은 그 세계관의 너비를 짐작할 수 없는 비정형성에 있다.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형태 안에 잠재된 성장담, 그리고 오타쿠 문화의 총아적 이미지까지, 그 모든 요소가 그것을 해석하고 독해하는 이들의 세계관 안에서 거듭 확장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재생산시킨다는 점에서 <에반게리온>은 진화하는 유기체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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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쉐인 액커는 이를 통해 팀 버튼과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었고 자신의 세계관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획득했다. 서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자체가 생략됐으며 캐릭터의 대사조차 동원되지 않는 탓에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관이지만 폐허와 같은 이미지 위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캐릭터들의 탁월한 액션신이 담긴 11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에 대사를 입히고 세계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암시를 동원한 80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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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되는 건 비단 소설, 공연, 음악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개봉된 <히트맨>을 비롯해 너무도 유명한 <툼 레이더> <레지던트 이블>과 같은 사례처럼 오늘날 롤플레잉 게임(RPG)도 영화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출처가 되고 있다. 특히 자극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이미지에 몰두하고 있는 오락영화의 경향 속에서 어떤 게임들은 충분한 매력을 구가할만하다. 동명의 게임을 모티브로 한 <맥스 페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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