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이 유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10.20 <도쿄!>도쿄라는 유령에 관한 세 가지 시선
  2. 2008.05.31 봉준호 감독 인터뷰
  3. 2008.05.29 이상일 감독 인터뷰

군중의 목소리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어지럽게 뒤엉킨 아래, 인공적으로 반짝이는 스팽글(spangle) 도시가 펼쳐진다. <도쿄!>의 오프닝은 미쉘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까지, 됴쿄를 바라보는 세 이방인들의 시선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시선을 집약한다. 반짝거리는 빌딩 숲 사이를 가득 메운 갖가지 소음들로 들어찬 도시의 풍경 속에 숨어들어간 듯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형체. 발들일 틈 없이 빽빽하게 보이지만 한편으론 기이하게 텅 빈 풍경. 인공 도시 안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의 단상들이 어렴풋이 어른거린다. 가늠할 수 없는 세 감독의 옴니버스 <도쿄!>는 이처럼 뚜렷한 형체가 짐작되지 않는 거대한 실체를 구상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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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영화가 많을 텐데, 인터뷰까지 하느라 바쁘시겠군요.
영화들이 계속 있지만, 그 사이마다 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영화는 계속 봐야 하는 거니까.

오늘도 봤을 텐데.
매일 두어 편씩 보고 있죠.

심사위원으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될 때, 평소에 영화를 보는 시선과 차이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을까요?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서 채점을 한다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저도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이전에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죠. 미장센 영화제 당시 모토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심사기준? 우리 그런 거 없고, 자기 꼴리는 대로 가면 된다.(웃음) 이거였는데, 지금도 그런 기준을 마음 속으로 변함없이 갖고 있어요. 물론 공식적으로 오피셜(official)한 척하기 위한 심사기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인엣지(inside edge), 아웃엣지(outside edge) 가지고 채점하는 피겨스케이트 심사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 심사위원에게 객관성이란 건 사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 자신을 영화적으로 가장 새롭고 참신한 느낌으로 흥분시키는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심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감독님을 흥분시키는 영화란 주로 어떤 영화인가요?
되게 사소해도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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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합니다.
전 이상하게 주인공이건 누구건 어떤 인물이 길이든 어디를 뛰어가면 왠지 이상하게 가슴이 막 뛴다고 할까요. 사람이 막 뛰어가면 카메라가 또 따라가겠죠. 뛰어가는 사람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테니까. 어쨌든 영화의 스토리나 앞뒤 맥락을 떠나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벌렁벌렁하면서, 그 영화가 좋아져요.(웃음) 예를 들면 트뤼포의 유명한 <400번의 구타>에서도 보면 고요하게 달리는 장면이 길게 나오잖아요. 그거 봐도 마음이 되게 이상하고, 어제 또 호텔 로비에서 보니까 전주영화제 게스트인 드니 라방이 도착했더군요. 차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옛날에 출연했던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보면 엄청난 달리기 장면이 있잖아요. 컬러풀한 펜스 옆으로 막 지나가는, 그 때 아마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그 장면도 추억처럼 이렇게 떠오르네요. (뛰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저를 흥분케 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찍었던 영화에도 대부분 뛰는 장면들이 있기도 했고.

달린다는 이미지가 감독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나 봅니다.
모르겠어요.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 돼서 그러나.(웃음) 사실 저는 잘 뛰지 않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잘 안하고 뛸 일도 별로 없는데, 그래서 왠지 마음만이라도 뛰고 싶나 봐요. 지금 경쟁작 12편을 다 봐야 되는데 그 중 네 편을 봤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 세편에 뛰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한 편은 특히 아름다운 뛰는 장면이 있었어요. 심사 중이니까 (작품명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영화의 그 장면이 지금 머리에 되게 아른아른 거리네요.

아까 말했던 드니 라방은 레오 까락스 감독님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출연했었죠.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죠. 이번에 <도쿄!>옴니버스에서도 또 주인공을 했어요. 드니 라방이.

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에 말씀이시죠. 이번에 <도쿄!>덕분에 레오 까락스 감독님도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옴니버스를 찍을 때, 감독들 세 명의 스케줄이 다 달랐어요. 제가 제일 먼저 여름에 찍었고, 가을 겨울에 미쉘 공드리랑 레오 까락스가 각각 찍어서 도쿄에서 같이 촬영이 겹친 적은 없었죠. 그런데 홍보용 사진 찍는다고 해서 세 명의 감독이 딱 하루 모인 적이 있었어요. 스케줄이 아슬아슬하게 맞아서 간신히 성사된 건데 그 때 잠깐 봤어요. 말이 되게 없으시더라고요. 공드리는 되게 수다쟁이고, 덕분에 저랑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사실 감독님을 포함해서 나머지 두 감독님의 영화적 면모를 생각해보자면 세 분의 조합으로 이뤄진 <도쿄!>라는 작품의 이미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엄청 다 제 각각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게 옴니버스의 재미 아닐까요? 세 명이 세 파트로 갔는데 비슷하면 좀…그리고 이제 각자 개성이 강하고 다른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거나 이런 옴니버스가 베스트일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지금은 잘 몰라요. 다른 두 분이 어떻게 찍었는지 시나리오조차 못 봤기 때문에. 이번에 칸 영화제에 가야 저도 이제 볼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제 영화의 프리미어인데도, 남의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하군요. 옴니버스라는 게 기분이 묘하네요. 다른 사람 파트는 못 봤기 때문에, 공드리나 레오가 또 어떻게 했을지.

이번에 <도쿄!>에서 감독님께서 만드신 <흔들리는 도쿄>의 캐스팅도 인상적입니다.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를 함께 캐스팅한다는 게 만만한 일도 아니었을 것 같고요.
운이 좋았죠. 둘 다 일본에서 정말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웃음) 사실 근데 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수락한 처음부터 카가와 테루유키는 이미 머리 속에 있었어요. 히끼꼬모리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란 점에서도. 카가와 작품을 예전에도 몇 번 봤지만 칸 감독주간에서 봤던 <유레루>가 결정적이었죠. 2006년에 <괴물>로 칸 감독주간 갔을 때, 같은 섹션에 <유레루>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유레루>감독인 니시카와 미와를 제가 알고 있었어요. 2003~4년경에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유레루> 이전에 찍었던 작품들도 굉장히 잘 찍었었어요. 데뷔작인 <산딸기>도 성찰적이면서도 좋았고요. 그래서 <유레루>를 기대했었는데 보고 나니 영화도 물론 좋았지만 카가와 테루유키한테 아주 반했죠. 그래서 <흔들리는 도쿄> 처음 준비할 때부터 카가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캐스팅이) 잘 됐어요. 아오이 유우는 저뿐 아니라 어떤 감독들이나 일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배우인데 사실 반신반의했었어요. 과연 될까 싶어서. 스케줄을 이미 카가와 테루유키에게 맞춰놓은 상태에서 (아오이 유우의) 캐스팅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게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카가와 테루유키도 거의 1년 스케줄이 다 나와있는 상태에서 비어있는 블록을 잡아 촬영일자를 잡은 건데, 거기에 또 아오이 유우를 맞춰야 되니까. 게다가 사실 아오이 유우는 더 바쁜 사람이고. 근데 아오이 유우 쪽을 처음 만났을 때, 아오이 유우 측에서, <살인의 추억>을 일본 개봉 당시 봤고 너무 좋아한다. 작품은 꼭 하고 싶다. 근데 스케줄이 조금 복잡하게 됐다, 그래서 한번 성사가 안됐었어요. 그래서 몇 달 지나고, 다른 여배우를 누구로 가야 하나 이렇게 찾아보고 있는 단계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훗!’ 쾌재를 불렀어요.(웃음) 제가 원하던 대로 돼서 기뻤죠. 그리고 다케나카 나오토라고, 경력이 더 오래됐지만 일본의 오달수 씨라고 할까요. <쉘 위 댄스>에서 열연을 펼치시기도 했죠. 감독이시기도 하고. 아무튼 그 분께도 말씀 드려봤는데, 그분께서는 한국영화 팬이셨어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좋아하시고, 제 영화도 세 편 다 보셨고 좋아하신다고, 한국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수락하셨죠. 그래서 세 명의 배우가 전부다 바쁜 사람들인데 캐스팅하게 됐어요. 다 잘 돼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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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도쿄> 中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

<도쿄!>는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찍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로케이션의 문제보다도 언어가 관건이었죠. 영화의 대사가 일본어라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디렉팅을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요. 통역이 있긴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까, 약간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좋은 경험이 됐어요. 재미도 있었고. 외국어로 연출할 수 있겠구나, 이게 이번에 제 개인적으론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재미 씨라고, 이제 뛰어난 통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정, 배우의 감정이 말로서 표현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느낌이나 뉘앙스라는 만국공용어가 존재하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자기의 슬픔을 일본말로 표현하건, 불어로 표현하건, 영어로 표현하건, 한국말로 표현하건 그건 결국 슬픔이 되더라고요. 그걸 깨닫게 되니까 어느 순간 되게 수월해졌어요. 비록 낱말들은 못 알아듣지만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이건 NG다, OK다, 라는 것에 대해서 나중에 점점 느낌이 쉽게 왔고, 배우들도 저와 의사 소통하면서 마음이 잘 통하는지 제 결정에 따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는 게 큰 수확이었어요.

시스템의 차이도 많이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타이트하죠. 한국은 보통 장편영화를 3~4개월 안에 찍는데, 일본은 한달 반에서 두 달, 대작이라 해도 2달 반 정도에 끝내죠. 스케줄이 되게 빡빡하고, 빨리 끝내는 편이에요. 대신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타입이고, 촬영 중간에 좀처럼 쉬질 않아요. 일주일에 6일이건, 7일이건 쉬는 날 없이 막 가요. 스텝들이 월급제 계약식이라서 제작비 측면에서 촬영 기간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한국도 이제 작년에 단체협약이 성사되고 나서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있죠. 한국도 아마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다 장단점이 있겠고요. 일본 스텝들의 직업적인 숙련도나 집중력은 되게 뛰어났어요. 하드 하게 단련이 잘 된 덕분인지.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의 직업 조감독과 일을 했었는데, 작품 경험한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래서 조감독에 대해 다른 스텝들의 리스펙트(respect)나 권위도 장난이 아니었죠. 그 조감독도 그에 걸맞게 책임감이 강하더군요. 이 현장을 자기가 진행시킨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 강하고, 그만큼 아주 정교하게 시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대신 약간 답답한 면이 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쉽게 돌파할 수 있을 일인데 왜 저렇게 걱정을 할까 싶은 것들. 같은 일을 되게 어렵게 한다고 할까요. 좋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들겨본다, 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기엔 왜 저런 걸로 에너지를 낭비할까, 싶은 소심해 보이는 측면이기도 하죠. 각각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짚고 나가는 편인가 봅니다.
아주, 매우 그래요. 그래서 믿음직스럽고 안정감은 있는데, 만약 얘네들이 내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급격하게 변화를 줄 때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특히 한국 현장에서는 그런 변동성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감독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뀐다던가. 그리고 그런 걸 순발력 있게, 탄력 있게 따라오는 게 한국 스텝들의 힘이죠. 사실 일본에서 제가 갑작스럽게 테스트를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있어요.(웃음) 저는 제가 직접 콘티를 세밀하게 그려서 제시하는 편인데 스토리보드가 그렇게 있으니까 일본 스텝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몇몇 순간에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면서 어떻게 되나 한번 살펴봤죠. 나름 잘 따라오려고 하더라고요.

시장조사를 했다고 봐도 되겠네요.(웃음) 방금 말씀하신 대로 감독님은 콘티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리기로 소문났던데, 아무래도 완벽하게 이미지 구상을 마친 뒤에 카메라로 그것을 완전히 재현하고 싶어하는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간이나 카메라 워크, 카메라의 위치나 프레임들, 이런 건 실제로 미리 세밀하게 준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정해진 촬영장소에서 제대로 관찰한 후에, 콘티를 그리죠. 머릿속으로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인 콘티를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죠. 다만 그런 화면 속에 배우가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변화는 필요하다고 봐요. 배우와의 작업에 있어서는 순간순간적인 감정이나, 현장에서의 느낌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인데요. 배우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즉흥 연기 같은 걸 잘 구사하면 되게 좋아하는 편이죠. 드라마나 스토리, 캐릭터의 본질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그런 걸 기대하는 쪽이고요. 오히려 현장에서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하죠. (배우들과) 같이 대사도 많이 고치고.

작품마다 공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점도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아파트 지하에서 서스펜스가 발생하고, 평온한 이미지의 농촌에서 살인의 스펙터클이 형성되고, 그리고 한강에서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보면 괴물이 나오기에는 가장 썰렁한 장소이기도 하죠.(웃음)

작품마다 일반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공간성 이전에 뭔가 어색하고 안 어울리게 같이 뒤섞여 있는 것들이 있죠. 어떻게 보면 악취미이기도 한데,(웃음) 그런 부조화된 상태라던가,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되게 심각하고 장중해 보이는 장소에서 사람은 오히려 되게 조잡하고 뻘쭘한 짓을 한다거나,(웃음) 반대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늘 지나가며 보던 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거나. 한강이란 어쩌다 휴일에 가서 오리배나 타는 곳인데 어이없이 거기서 괴물이 활보를 한다거나. 사실 되게 생경한 것들이죠. 예를 들어 울산에 있는 오래된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분위기도 그럴싸하겠지만 이건 뭐, 자전거 빌려 타던 한강 다리 밑에서 (괴물이) 나오니까 뜨악해지는 거죠. 그런 이상한 부조화를 제가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게 한국식 장르영화의 리얼리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한국영화 사이에서, 그러니까 (미국과) 한국현실 사이에 갭이 크잖아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도 한때는 그게 사실적인 리얼리즘이었는데 그게 이제 장르의 컨벤션(convention)으로 오랜 세월 흘러오다 보니 굳어버린 거죠. 중절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쓰는 갱스터가 미국의 과거에, 1930년대 금주법 실행 당시엔 실제로 있었던 거잖아요. 근데 그게 하나의 장르가 되고 컨벤션과 클리셰(cliché)가 된 건데, 우리는 한국현실에 살면서 애초에 그런 미국적 리얼리티가 없이 장르만을 봐왔잖아요. 그 갭 자체가 영화상에 적용돼 들어가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 영화가) 약간 웃기면서도, 생경하고 특이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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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이동 경로나 진행 방향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의 양상도 다른 것 같습니다. 수직적인 이동이 야기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발생하지만 수평적인 상황에서는 처연함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괴물>을 예로 들면 현서(고아성)가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수구에서 탈출하려 안간힘을 쓸 때는 긴장이 발생하지만 희봉(변희봉)이 괴물과 맞서다 죽는 한강고수부지 씬에서는 처연함이 묻어납니다. 남일이 빌딩에 올랐다가 탈출하는 수직적 상황도 그렇고, 결말부에 강두가 괴물을 저지하는 상황도 수평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약해보자면 수직과 수평이라는 이미지에 어떤 의미부여가 있었던 건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게 까지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웃음) 사실 제가 수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있어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아파트는 수직적인 공간이었죠. 그래서 수평적인 복도에서 현남(배두나)과 윤주(이성재)가 쫓고 뛰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고, 옥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깊숙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괴물>은 명백하게 현서가 수직적인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거니까, 수직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불과 몇 미터의 높이를 올라가지 못해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공포와 긴장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수평이 어떤 감정과 연결됐다고 저는 크게 인식 못했는데 말씀하신 걸 듣고 나니까 <괴물>의 변희봉 선생 장면이나, 특히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박노식) 현장검증에서 아수라장에서 마무리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거기서 보면 고속촬영으로 흐르는 씬에서 논의 흙탕물이 막 튀고 사람들이 모두 뒤엉키죠. 그런 인간군상들이 어떻게 보면 약간 웃기기도 하면서도 처연하고, 우린 다같이 못난이 들이야, 잡혀온 사람들이나, 형사들이나 다같이, 그런 측면에서 처연하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아요. 사실 난 잘 몰랐는데, 그랬던 거 같네요.(웃음)

아무래도 <괴물>은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비용대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최대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그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괴물 샷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시나리오에 다 있는 장면이지만 단지 백 몇 십여 숏(shot) 안에 무조건 다 표현해냈어야 하니까 괴물 샷을 예산 때문에 줄여나가야 했죠. 그런데 그게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다 겪는 일이더라고요. 이안 감독의 <헐크>메이킹을 보면 스토리보드상 CG샷이 4백여 개 정도되는데 이거 백여 개 정도를 줄여야 된다고 프로듀서랑 시각효과 감독이 이야기하면 이안이 영어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눈만 깜빡이는 장면이 있어요.(웃음) 그런 걸 보면서 위안 삼았죠. 동시에 조금 좋게 생각하면 그런 현실적 한계가 저의 창의력을 자극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괴물이 카메라엔 안 잡히지만 같은 공간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유지시키면서 공포감, 긴장감을 유발시켜야 되니까 그런 연출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더 쥐어짜게 되고,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괴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사람들 뒤엉키고, 컨테이너 박스가 이렇게 흔들리고. 그건 CG샷이 아니고 그냥 컨테이너 박스만 뒤에서 기계로 흔든 건데, 관객은 머릿속으로 그 안에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 안의 지옥의 아수라장을 예상하는 거잖아요. 그런 긴장감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었죠. 오히려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괴물>이 순 제작비만 백억이 좀 넘은 영화니까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대작내지는 블록버스터라고 말하지만 특수효과를 비롯해 찍어내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정말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때보다 저는 더 많은 압박을 느꼈어요. 그 와중에 무사히 끝난 게 다행이긴 한데, 사실 예산이 두 배나 세배로 더 풍족했었더라면 만약에 어떻게 됐을까, 약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긴 했죠.

해외에서 감독님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감독 제의도 심심찮게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제작비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경우도 있을 법 한데요.
영화의 탄생 때부터 있었던 얘기지만 제작비의 지원이 클수록 그에 상응되는 더 많은 간섭이 있죠. 저는 다행히도 좋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한번도 간섭 받은 적 없이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극장에서 개봉한 제 세편의 영화들은 다 디렉터스 컷일 수 있었고요. 촬영에서건, 편집에서건, 별다른 큰 압박을 받거나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게 저의 행운이었다고 봐요. 내가 내 영화를 100%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저로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이번에 <도쿄!>도 100% 저의 컨트롤로 완성한 영화인데 그게 충족이 된다면 해외에서도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근데 만약 그런 점이 잘 보장되지 않는 작업이라면 수천억, 수조를 줘도 별로 의미는 없는 거 같아요. 사실 미국 할리우드에 제 에이전시(agency)가 생긴 덕분에 할리우드 스크립트 시나리오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고, 이런 저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경우도 있었어요. 일본에서도 장편 영화 제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제가 이미 하기로 한 프로젝트들도 일단 있고. 물론 이번에 <도쿄!>의 <흔들리는 도쿄> 30분 짜리를 짧게 경험해본 것처럼 지금은 조심스럽게 짚어보고 있는 상황이라, 선뜻 뭐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외국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같아요.

사실 전주국제영화제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2004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플루엔자>라고. 2004년이었죠.

그 작품이 유일하게 감독님이 디지털카메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한데요. 같은 방식의 장편영화를 찍어볼 계획은 없을까요?
지금의 트렌드나 산업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부분을 떠나서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말해보자면 사실 저는 필름광이에요. 필름으로 찍힌 사진을 좋아하죠. 물론 편하니까 디카를 쓰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 필름으로 사진도 찍고 그래요. 필름에서만 전해지는 이상한 화학적 느낌과 그 맛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네거티브한 질감 같은 것 말입니까?
예. 그래서 어떻게든 저는 필름을 써보려고 버티는 쪽이 될 거 같아요. 물론 마이클 만 영화에서의 HD는 아름답고 박력 있는 느낌을 주긴 하죠. 요즘은 배급의 경제논리로 디지털 상영도 많이 하지만 전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스크린의 느낌도 좀 싫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 그래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 게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인데 HD로 촬영했더라고요. 바이퍼 카메라로 찍었는데 화면의 품격이나 느낌들이 정말 좋았고, 저 정도가 나올 수 있다면 HD도 해볼 만 하겠다 싶었어요. 중후한 살인 사건 영화임에도 화면이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하여튼 그 느낌이 독특했어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죠. 라이팅(lighting)이나 시각 효과 자체도 뛰어났던 거 같아요.

<이공> 프로젝트 당시에 다른 감독들이 디지털 촬영으로 갔던 것과 달리 혼자 16mm필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애정 때문이었습니까?
그 때는 이제 몇 가지 사정이 있었죠. 그 때 제가 6분짜리 원씬 원테이크를 찍었잖아요. 어두운 다리 밑에 있는 매점 앞부분에서 찍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이게 다 원테이크다 보니까 큰 노출 변화나 밝기 변화가 생기는데 그걸 디지털 6mm카메라로 하자니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반칙을 좀 했죠. 디지털 프로젝트인데 저만 16mm필름으로 찍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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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세 작품에 등장했던 캐릭터 중 특별히 개인적으로 애정이 컸다고 할만한 캐릭터가 있을까요?
다들 애정이 가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지금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한 명은 <괴물>에서의 현서, 고아성 양이네요. 모든 가족이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오브젝트(object)가, 그저 단순히 대상이 될 수 있는 캐릭터인데도 걔는 거기서 더 약한 애를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잖아요. 결국은 끝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보호하고 끝내 자기 아버지에게 인계한 셈이죠. 왠지 현서 생각이 나네.

세 작품은 인물들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강아지나, 범인이나, 현서나. <플란다스의 개>처럼 강아지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진범을 잡지 못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 결국 진범을 찾지 못하는 것이나 <괴물>에서 살아있는 현서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결국 인물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해소되지 못한다는 맥락적인 공통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뭐가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네요.(웃음) 항상 빗나갔군요. 제가 좀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웃음)

어쩌면 그게 감독님께서 인지하시는 현실적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서민이란 점도 그래서 왠지 의미심장해 보이고요.
사실 살다 보면 참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죠. ‘쿵따리 샤바라’가사에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란 가사도 있듯이,(웃음) 되지 않을 때가 되게 많은 거죠. 진짜 그렇죠. 월트 디즈니 영화를 보면 모든 것이 안락하게 봉합되면서 끝나는데 사실 그렇게 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뭔가에 실패하거나 어긋나는 게 우리 삶에 가까운 모습이니까 오히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때론 좀 씁쓸하거나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오히려 그게 위로 받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도 저랬었지. 그렇지만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어. (<괴물>에서) 강두(송강호)도 딸을 못 구했지만 세주(이동호)와 함께 밥을 꾸역꾸역 먹잖아요. 산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게 한편으로 슬프면서도 약간의 낙관성인 거 같고.

비약이 될 수도 있지만 감독님의 정치적 자의식이 개입된 측면이라고 생각해봐도 될까요?
<괴물>이 괴수장르다 보니까 장르 전통에 맞게 직설적이고 썰렁한 정치풍자를 많이 하긴 했지만 정치 이전에 더 큰 생활, 내지는 삶의 영역인 거 같아요. 사소한 게 안될 때도 많잖아요. 짬뽕시켰는데 자장면 나오고.(웃음) 거대한 정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속상하지만 배가 고프면 자장이라도 먹어야 되는 거죠.

<괴물>은 분명 진보적인 메시지를 품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300만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했죠. 단순히 그 머릿수를 개개인의 정치의식으로 온전히 치환하는 건 무리겠지만 정말 많은 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감독님에게 어떤 아이러니한 단상을 줄만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괴물>에 의도적인 풍자나 메시지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건 여러 가지 맥락이 있을 것 같아요. 가까운 지인의 말로는 어린 초등학생 딸래미가 자기 아빠랑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손잡고 나오면서, 아빠도 내가 어디 잡혀가면 저렇게 해줄 수 있어? 이랬다더군요. 그 아이 입장에선 그런 면이 두드러져 보였을 테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득표수를 보면 1100만 표 정도되더라고요. 근데 방금 1300만이라고 말씀하신 얘기를 들어보니까 티켓 구매수가 득표수보다 많았군요. 물론 그래서 <괴물>이 잘 났다는 게 아니라.(웃음) 어쨌든 정치적인 투표행위,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는 문제와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다른 거 같아요. 영화는 다층적으로 받아들이는 거기 때문에. 변희봉 선생님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는 거고, 미국에 대한 풍자나 정치적인 서브 텍스트들을 민감하게 보는 대학생이나 지식인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내 아빠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울고 웃으면서 보는 꼬마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거니까. 영화가 <화씨9/11>같은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처럼 어그레시브(aggressive)한 직접적인 정치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특히나 극영화들은 대중의 정치적 성향과의 함수 관계 같은 걸 쉽게 짚어볼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훨씬 혼란스럽고 복잡한 문제겠죠. 일단 <괴물>이 약간이건 많이건 진보적인 성향의 풍자를 담고 있고, 그 영화를 1300만이 봤지만 그 다음해에 바로 보수적인 성향의 정권에 1100만여 명의 사람이 투표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라는 논리를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훨씬 더 복잡한 레이어(layer)들이 있다고 보고요.

감상의 방향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살인의 추억>처럼 <괴물>도 절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결말부의 느낌은 좀 더 낙천적인 양상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괴물>은 현서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영화가 밥 먹으면서 끝나잖아요. 먹는 걸 계속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했고. 혈연관계가 아닌 괴상한 인연의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꾸역꾸역 밥을 먹잖아요. 낙관적인 면이 있었다고 봐요. 반면 <살인의 추억>은 어쩔 수 없이 어둠을 직시해야 하는 영화였죠. 단순히 제목은 역설적으로 추억이지만, 실제론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현재란 것이죠. 우리가 80년대에 이렇게 연쇄살인범 하나도 못 잡고 여자들을 보호도 못하고 줄줄이 죽이면서 이런 꼬라지로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안 그래, 이런 안도하는 관점에서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2003년 에필로그를 넣기도 했지만, 박두만(송강호)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스트 컷을.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어두운 시절이 있었고, 그렇다면 그 어둠을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 씻어낸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였죠. 만약 그걸 강하게 집중해서 봤다면 어둡고 막막해지는 느낌이 있었을 거에요. 좀 부담스러운 면이 될 수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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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과거나 허구를 통해서 현재와 현실을 환기시키는 셈인데, 그것이 감독님이 추구하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리얼리티, 사실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리얼리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어요. 그걸 추구하지도 않고요. 영화는 판타지라고 믿는 쪽이죠. 대신 한국현실과 판타지가 이상하게 충돌했을 때, 아까 말한 한강둔치에서 뛰어나오는 괴물처럼, 거기서 나오는 생경한 영화적 흥분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에요. 대신 내가 한국현실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목청 높여 메시지를 부르짖거나 발언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켄 로치나 올리버 스톤 영화처럼. 다만 제가 한국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다들 미쳤나 봐, 왜들 저러지, 너무 무서워,(웃음) 이런 공포감은 있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요? 누구나 힘들잖아요. 아마 한국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겠지만 제가 외국에서 못살아봤고 한국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저한테 사회나 시스템은 그냥 한국사회인 거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투영되는 거 같아요. 다만 제가 어떤 계몽적인 메시지를 던질만한 주의, 주장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제 자신의 생각에도 항상 회의를 품는 성격이기 때문에, 주장을 하는 데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고요. 그저 제가 한국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문이나 도저히 이해를 못할 부분, 막연한 공포감들이 영화에 반영되는 셈이죠. 사실 합동분양소처럼 집단 장례식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이 떼로 죽는다는 얘기니까 그것만으로도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데, 그 와중에 거기서도 누군가가 2487차 빼라고 막 소리지르고.(웃음) 사실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잖아요. 누구 차 빼달라는 거. 그게 웃기면서도 되게 슬프고 공포스러운 순간이죠. 그런 이상한 감정들이 한국사회에 용광로처럼 뒤얽혀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건 전 그걸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은 거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영화적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군요.
예!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이 시츄에이션(situation)들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이 많이 보이죠.(웃음) 모든 창작자들이 그렇겠지만 주변 현실에서 받는 자극이나 영감이 큽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타인의 창작물을 보면서 느끼는 자극보다도 제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나 주변, 한국 사회의 어떤 순간순간적 모멘트(moment)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죠. 개인적인 경험이나.

그런 순간적 자극을 기록해두기도 하나요?
그럼요. 특히 <플란다스의 개>는 소소한 일상적 디테일을 구성할 때 그런 걸 많이 활용했어요. 휴지를 백 미터 굴리는, 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장면 같은 경우도 실제로 해본 건 아니지만 제가 조감독 때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면서 했던 생각이에요. 조감독 때는 워낙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 애는 키워야 되고 생활은 쪼들리니까 맨날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는데 그럴수록 예민해지거든요. 돈이 없이 지내보면 알겠지만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살 때 용량 120㎖ 이렇게 써 있으면, 이게 120㎖ 맞는지, 안 맞는지 누가 알아, 누가 재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아니면, 0.5ℓ 함유? 이 자식들 0.4ℓ넣어놓고 이렇게 파는 거 아냐? 막 이렇게 예민하게.(웃음) 휴지도 보면 겉에 보면 100m라고 써 있는데, 진짜 100m맞아? 이게 과연? 이것도 돈 내고 사는 건데, 운동장100m 트랙 위에 쫙 펴볼까? 이런 상상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런 건 내가 봐도 너무나 쪼잔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웃기니까 그런 걸 공책에 적게 됐어요. 그러다 그 이상한 시츄에이션들이 이제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전주영화제가 끝나면 이제 <도쿄!>프리미어가 열리는 칸영화제로 가시겠군요. 이제 한국을 대표할만한 감독으로 꼽히고 있기도 한데.
김기덕 감독님이 대표할만한 분이죠.(웃음)

최근 영화주간지에서 조사한 영화인 파워리스트마다 감독 중에 가장 상위 랭커를 차지했다던데요.
그니까 그게 참 이상한 거에요. 사실 저를 규정하는 가장 명쾌하고 쉬운 방법은 영화 세편 찍은 감독이라는 거에요. 세 편밖에 못 찍었고, 계속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저의 유일한 꿈은 임권택 감독님이나 마뉴엘 드 올리비에라(Manuel De Oliveira)처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 게 제 유일한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걸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계속 하려는 것이기도 하죠. 지금의 파워리스트 같은 건 그저 형식적인 거 같아요. 제가 제작사나 영화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저 제가 찍고 싶은 스토리나 저를 흥분시키는 어떤 한 이미지나 장면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니까. 어쩌면 파워리스트에서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죠.(웃음) 만약 그래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봐야겠죠.

하지만 김혜자 선생님이 <마더>에 캐스팅됐다는 게 현재 그 파워를 증명할만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웃음)
김혜자 선생님과 접촉했던 건 <괴물>찍고 나서가 아니고요. <살인의 추억> 그 직후에 처음 연락 드린 거에요. 그니까 <마더>는 <괴물>전부터,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였고, 김혜자 선생님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프로젝트라서 배우가 먼저 정해진 상태에서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죠.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뵌 지는 벌써 4년이 흘렀네요. 선생님도 많이 기다리셨죠.

벌써 <마더>의 차기작도 정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0년도 쯤에 <설국열차>도 제작하실 예정이죠?
2010년이나 2011년쯤에 되겠죠.

아무래도 지금까지 감독님은 한국적 현실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아왔는데 <설국열차>는 원작만 봐도 범세계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새로운 도전이죠. 그 영화 찍고 나면 많이 늙을 거 같네요.(웃음) 정신과 육체를 많이 리프레쉬(refresh)하면서 잘 버텨야 할 텐데. 대작이 될 거 같아요. <마더>는 내용은 찐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 같고요. 아마 <설국열차>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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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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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고뇌한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서,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자신을 둘러싼 규정과 정해진 정답 대신 자신만의 삶을 갈구한다. 이상일 감독이 그려내는 젊음은 그렇다. <식스티 나인>처럼 깡있는 발랄함으로 내달리기도 하고 <스크랩 헤븐>의 주체할 수 없는 허탈감으로 내려앉기도 했다. 그리고 <훌라걸스>. 그곳에서 소녀들은 외친다. ‘내 삶은 내꺼야!’ 석탄처럼 어두운 갱 속에서 화려한 무대로 도약하고자 하는 소녀들의 몸부림이 그곳에 있었다.

치기어리고 대책 없음이 젊음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한다면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그래서 이상일 감독의 영화가 좋다. 하지만 거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식스티 나인>이, <스크랩 헤븐>이, 그리고 <훌라걸스>가 이상일의 목적지인가? 그는 야자키인가? 신고인가? 기미코인가? 그는 분명 아직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젊은 피가 어디로 솟구치길 원하는가? 내가 던지는 물음표는 그가 내미는 느낌표로 돌아왔고 그 사이에 맺힌 이상일의 고뇌가 알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터져 나온 수많은 알맹이는 단 한마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일.이다.’

한국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올 때마다 기분이 어떤가?
부산영화제 때문에 종종 왔었고 서울에 오게 되는 경우는 영화 홍보 때문이었다. 항상 일 로만 오게 되서 아쉽다.

민감한 질문 하나 하겠다. 간담회 때도 그리 달가워하진 않던데.
(웃음)얼굴에 드러나던가?

약간? (웃음) 재일 교포 출신 성분 때문에 한국을 찾게 되면 항상 그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솔직히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
예전에 한국에서 하인즈 선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사례를 보면 한국인들은 아마도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에게 관심이 많고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래도 나에게도 역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결국 그런 질문들은 그런 관심의 표출이라 생각된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것에 어떤 제약이나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혹시 그게 감독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 아닐까?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 그런 경험이 없는가? 영화와 무관했던 시절에라도.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조선학교를 다녀서 주변사람들이 모두 동포였기 때문에 그런 기억이 없다. 그 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이 된 이후로 출신성분은 오히려 내게 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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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다?
일단 외국인 출신이라 일본인들보다 주목을 쉽게 받게 된다. 남들과 다르다는 점은 그런 면에서 유리하다. 또한 나의 출신 성분은 이야기를 끌어내는데도 유용하다. 일본인들과 다른 출신이라는 것은 분명 내가 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고 다른 시선을 지니게 하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일본인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때도 있고 다른 각도로 보게 될 때도 있고. 아무래도 나의 출신 성분은 내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 같다.

첫 작품이자 졸업 작품인 <아오, 청>이 평단의 지지를 얻어 수상도 많이 했고 두 번째 작품인 <보더라인>도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고 괜찮은 평가를 얻어냈다. 이는 분명 감독이라는 네임밸류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을 법한데.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앞에 내놓는 입장이니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주목을 받을 필요성은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만든 성과물에 대한 최소한의 달성을 얻었다는 점은 중요한 일이다. 일본에선 감독 데뷔보다도 감독으로써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으려면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성과물이 필요하다. 그 성과물은 작품에 대한 평단의 평가든, 관객의 동원이든 어떤 형태로라도 자신의 작품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내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초기 작품들의 긍정적 반응들에 대한 연장선상이 되는 셈이고 그런 점에서 나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다.

작년 한해는 이상일 감독에게는 특별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훌라걸스>가 일본 아카데미에서 수상도 많이 하고 흥행도 어느 정도 이뤄졌으니 이상일이라는 이름이 감독으로서 확실히 각인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일본에서는 사실 영화감독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는 일이 거의 없어서 그 이상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칭찬을 듣게 되면 약간 우쭐해지는 스타일이라 스스로 들뜨는 기분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웃음)

겸손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웃음) 한국에서도 이상일이라는 이름이 감독으로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저 순수하게 기쁠 뿐이다.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모두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식스티 나인><훌라걸스>를 보면 그 젊은 세대가 존재하는 시간은 과거 60년대이다. 흘러간 과거를 통해 젊음이 이야기된다는 것은 조금 묘하다. 특별한 의도라도?
사실 60년대에 특별히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려보고 싶은 이야기나 다가가고 싶은 캐릭터가 그 시절에 존재했던 것뿐이다. 말 그대로 60년대가 내 영화의 시간배경이 된 것은 우연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현재를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조금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게 되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서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게 되는가?
부정적이라는 단어가 조금 부적절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동시대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자신이 좀 더 심각해지는 면이 있다. 일단 나 자신이 지금의 젊은 세대이고 이 세계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40여 년 전의 젊은이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경험하지 못한 하나의 판타지가 된다. 그래서 원래 젊은이들이 지닌 에너지나 열기, 어리석음 그 자체 본래의 성향을 그려보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 시절이 적합했던 것 같다. 결국 겪어보지 못한 과거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의 적절한 밑거름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부정적인 시선이 드러난 영화가 <스크랩 헤븐>이라고 봐도 되나?
글쎄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스크랩 헤븐>이 그런 이유에서 나온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훌라걸스>나 <식스티 나인>에 비해 <스크랩 헤븐>은 어둡고 무겁다. 초기작들도 그렇게 볼 수 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자신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성향을 자신의 내면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영화도 내안의 한 가지 감정을 투영한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의 상황에 맞는 감정이나 경험들, 혹은 이전부터 자신의 내면에 축적되어 지니게 된 여러 가지 것들이 하나의 영화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완성된 후에 그것을 들여다보면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반론이 생기기도 해서 다음에는 그것과 완전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결국 나 자신도 나에게 어울리는 색을 잘 모르겠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꺼려지는 일이다. 무엇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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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무모하게 소진시키기 보단 적극적인 의지로써의 소비를 꾀하는 것 같다. 그 의지가 관객에게 어떻게 읽히길 원하나?
사람의 삶은 다양한 선택의 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선택이 시작되는 것은 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여러 가지 선택을 할 때 그 개개인은 자신 스스로를 통한 선택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편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책임에 대한 각오도 해야 하고 그 선택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런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니 그런 의도가 읽혀지길 원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 기질을 드러낸다. 그것은 자신들의 의지가 무언가를 행하려고 할 때 기성세대로부터 비롯된 환경이나 가치관에 부딪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작용이 묘사되는 듯하다. 쉽게 말하면 세대 차이라고나 할까. 한국에서도 그런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곤 하는데 일본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단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하고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기성세대가 먼저 축적한 가치관들과 부딪치고 갈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건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이상한 것이다. 특히 내 영화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부분은 당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부분인 듯하다.

작년 일본 영화가 외화의 점유율을 많이 뛰어넘었다.
많이라.. 많이 까지는 아니고..조금. (웃음)

물론 이를 영화산업의 질적 발전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지만 분명 일본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무된 상황일 것이다. 이상일 감독 본인을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도 몇 년 동안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외화를 누르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은 영화산업의 위기론이 제기되는데 과열 투자로 인한 거품현상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오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자국영화가 사랑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현재 일본에서 흥행되는 작품들 중 필요 이상의 관심을 얻는 작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싶거나 사람들이 많이 봐주길 원하는 작품이 외면되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의 단순한 측면만을 보고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한국에서도 그런 고민을 품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최근 일본영화는 젊은 성향의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것 같다. 일단 이상일 감독의 영화도 그렇고. 젊고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 많은 덕일 수도 있고. 가벼운 소재로 특별한 감성을 주입하기도 하고 독특한 발상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소박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현재 일본 영화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은데.
그건 한국인의 시각이기에 일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읽어지고 매력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의 특색이 한국인보다는 일본인들에게 쉽게 어필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종종 한국 영화를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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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이?
현실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는데 영화를 기획할 때 제약을 받는 부분이 존재한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많이 되는 것은 질문처럼 젊은 배우들의 역량 덕분일 수도 있지만 뒤집어 말하면 젊은 관객층의 동원이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영화만 제작되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취향의 영화들이 기획되고 제작되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실적인 문제제기를 딱 부러지게 들이댈 수 있는 괜찮은 작품이 기획되고 제작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종종 한국영화처럼 심각한 현실적 단면을 들추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해보고 싶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헐리웃 블록버스터나 지브리산 애니메이션 우선이라고 들었다. 물론 작년 일본 영화의 자국 점유율이 늘었지만 이런 경향이 오래 지속된 것으로 안다.
그건 아마도 관객들이 요구하는 성향의 영화가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보인다. 현실적인 문제나 아픔보다도 자신과 무관할 수 있는 판타지나 자신이 손가락질 당할 필요 없는 긍정을 2시간동안 즐기고자 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이런 부분은 감독으로서 느끼는 고충이 아닐까 싶다.
결국 관객들이 원하는 성향에 따라 그들의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고 나의 문제제기를 작품 안에 잘 포함시켜가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관객의 만족과 나의 만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앞에서 일본에서 영화감독이란 위치가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자리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예전에 안도 마사노부가 감독과 함께 내한했을 때 자신에게 열광하는 한국 관객들을 보고 자국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놀라웠다는 소감을 밝힌 적도 있는데, 일본에서 배우든 감독이든 영화인이 일반인들에게 인지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
일단 개개인의 차이가 많은데 안도 마사노부 같은 경우는 그 배우의 인지도가 떨어진다기 보단 개인적인 소신에 의해 대중성이 높은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 영화보다는 TV에 자주 나오는 배우들이 대중들에게 쉽게 인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를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송강호가 인상적이라 했는데..혹시 <괴물> 봤는가?
물론 봤다.

방금 말한 두 편의 영화 외에 인상 깊은 한국의 영화나 배우들이 있다면 말해 달라!
<오아시스>. 설경구와 문소리.........너무 평범한 대답인가? (웃음)
좋은 영화는 누가 봐도 좋은 것 같다.

최양일 감독을 비롯해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재일교포 출신의 영화인이 5~6명 정도 있다고 말했는데 혹시 그들과 은연중 연대감이 생기는 경우는 없는가?
연대감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경우나 관계는 없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 친한 분은?
최양일 감독님은 몇 번 뵌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네. 감독 협회에 빨리 가입해!’라고 하신다. (웃음) 그리고 ‘어려운 일 있으면 이야기해’라고도 하시고. 하지만 크게 친분이 있는 사이까진 아직 아니다.

최근 최양일 감독이 국내에서 <수>라는 영화를 찍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영화를 찍어볼 의사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결정된 게 어떤 것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찍어야 될 필요성이 있는 작품이라면 꼭 찍고 싶다.

혹시 지금 기획되고 있는 작품이나 아직 기획되진 않았더라도 차기작에 대한 대략적인 구상이 있다면?
지금 기획 개발이 시작된 단계라 뭐라 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몇 가지 생각이 있긴 하다. 물론 노코멘트다. (웃음) <훌라걸스>의 성공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져서 기획 개발 과정에 그런 것을 많이 반영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이상일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이 엉뚱하거나 장난끼가 많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식스티 나인>의 야자키(츠마부키 사토시)처럼. 자신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주변에서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하던가?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일단 <식스티 나인>의 야자키는 사실 나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어떤 상황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오히려 내가 되었으면 하는 부러운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영화에서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모델로 해서 만든 캐릭터라든지?
사실 어느 한 캐릭터를 찍어서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캐릭터마다 조금씩 나의 일부분이 표현된 것 같기도 하고..어쩌면 <훌라걸스>에서 토요카와 에츠시가 연기한 기미코의 오빠가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듣고 보니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 종일 인터뷰 중인 것으로 아는데 <훌라걸스>가 한국에서 개봉하면 이 수고를 보답받길 바란다.
<훌라걸스>를 관람한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그럼 충분하다!

(무비스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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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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