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고 싶은 어제보다 더욱 소중한 오늘을 위한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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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코맥 매카시가 쓰고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카운슬러>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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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잘 만들어줘서 고마운 영화가 있습니다. <소원>이 그렇습니다. <소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그것도 끔찍한 실화이지요.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기획된 영화들은 그 현실을 담보로 삼아서 관객의 공분을 이끌어내고 소비하기 쉬운 형태로 기획되곤 합니다. 영화가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과 그 사건에 대한 인물들의 분노를 발화시켜서 관객들의 마음을 들끓게 만드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통증에 대한 공감은 쉽게 무마됩니다. 아마 당신은 그런 영화들 앞에서 여러 번 끓어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끓는 점을 지나면 증발하게 되는 법이지요. 그런 종류의 분노는 상영관을 나와서 쉽게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 분노는 당사자들을 위한 위로보단 영화적 소비를 권장하는 전략에 가깝기도 합니다. 일종의 스포츠 경기에서 비롯되는 흥분과도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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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단평

cinemania 2013. 10. 8. 01:42

1. 왕십리 아이맥스 3D <그래비티>를 봤다. 우주에 다녀온 기분. 우주 혹은 무중력 그 자체가 이길 수 없는 괴물 같다.

 

2.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광활한 시점숏과 적막함이 아이맥스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경이로운 무중력 세계의 신비를 순식간에 공포로 둔갑시켜버리는데 정말 숨이 막히고 어지러운 기분을 체험했다. 그 이후로 그 우주에 함께 떠 있는 듯한 기분.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대단한 서스펜스와 스릴을 부여하는데 이리와, 이런 건 처음이지, 라고 손짓하는 느낌이랄까.

 

3. <더 문>이 잠깐씩 생각나긴 했다.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광활한 우주에서의 고립감. 하지만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생생하게 이입시킨다. 덕분에 우주에 가보고 싶다는 기분이 짜게 식는 기분도. 결국 집 나가면 고생이다. 블록버스터급 '홈 스위트 홈' 교훈극이랄까.

 

4. <피라냐>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게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 싶겠지만 보면 안다.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미친듯이 달려들어서 온갖 것들을 해체하는데 딱 그런 공포심이 느껴진다.

 

5. 이만큼이나 광활한 시점숏은 본적이 없다. 이 영화는 직접적인 배우들의 시점숏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 배우들을 향한 카메라의 시선마저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지극히 '생물 같은' 시점숏이 활용된다. 실제로 가끔씩 배우들이 카메라를 고의적으로 의식하는 인상을 주는 컷도 등장한다. 어쨌든 덕분에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 '갇혀 있다'는 긴장감이 배가되는 느낌.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거대한 우주를 표류한다는 건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 갇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데 것인데 지금까지 경험하고 보고 들었던 그 어떤 공포스러움보다도 공포스러운 기분을 체험한 기분.

 

6.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한 영화들은 때가 되면 더러 등장하는데 그 발전을 영화적 표현력의 진화로 승화시키는 영화들은 아주 가끔 등장한다. <그래비티>가 그런 영화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그래비티>의 전후로 나뉠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표현적으로도 훗날 <그래비티>를 연상시킨다라고 할만한 영화들이 나올 것이다. 물론 아이맥스 상영 방식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도 이런 관점이 유효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일반 상영관에서 <그래비티>를 한번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7. <그래비티>를 통해서 경이로운 기술적 체험을 우선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지극히 영화적이라 더욱 놀라운 작품. 우주라는 거대한 괴물로부터의 탈출극이 장르적인 카타르시스를 책임지는 가운데서도 전형적인 휴머니즘과 멜로적인 감수성의 결정을 선사하며 영화적인 중력을 선사한다. 기술적 체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진보를 영화적 표현력의 진화로 끌어올린다.

 

8. 사운드 전략이 대단하다. 도입부에서 설명하듯 음파를 전달할 공기가 없는 우주의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적막함과 웅장함의 극단적인 음의 이동과 전개가 서스펜스를 촉진시키고 극대화시킨다.

 

9. <프로포즈>(2009)로 재기에 성공하며 그 해에 <블라인드 사이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했을 때, 정말 산드라 블록이 좋아졌는데 <그래비티>를 보면서 아, 정말 좋은 배우로 자리잡았구나 생각했다. <그래비티>의 조지 클루니를 보면서 <밀양>의 송강호가 생각났다. 산드라 블록을 지지하는 조연이자 영화적 장치로서의 임무에 완벽하게 복무한다. 실제 등장 배우가 온전히 둘에 불과한 이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는 생각보다 일찍 퇴장함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 복선을 세우고, 광활한 우주를 메울만한 감정선의 스케일을 넓히고, 방점까지 찍어낸다. 정말 훌륭한 배우다. 멋있다.

 

10.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3번 정도는 더 보고 싶다. 아니, 목격하고 싶은 것일지도. 지금이어야만 가능한 일은 해도 해도 아깝지 않다.는 기분이 짜게 식는 기분도. 결국 집 나가면 고생이다. 블록버스터급 '홈 스위트 홈' 교훈극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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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실패

cinemania 2013. 8. 26. 03:16

스티브 잡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아론 소킨이었다.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의 각본가 아론 소킨만이 스티브 잡스의 양면성을 근사한 스토리에 녹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무나 해서는 안될 이야기였다.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 자체의 유명세가 그것을 특별한 아이템처럼 둔갑시키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식상하다는 말이지. 이미 925페이지에 달하는 전기까지 출간된 마당에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천재적이었고 한편으론 괴팍하고 독선적이며 외로운 사람이었고, 이런 식의 블라, 블라, 블라는 곤란했다.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의 인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을 관통하고 그의 시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상 밖의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만 있다면 정말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건 이미 눈치챘겠지만 <잡스>가 그런 관점에서 실패한 영화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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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파이어>는 혁명이나 테러라는 단어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지만 혁명에 관한 영화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떤 시절이나 인물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여성의 인권이 길바닥의 깡통 같았던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둔 이 영화는 페미니즘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한 소녀들이 혈기를 발판으로 한데 뭉쳐 조직으로 거듭나고 점차 세를 규합하다 파국으로 닿는 과정을 그린다. 소녀들의 반시대적인 연대가 공격적인 행위로 나아가는 과정은 장악력 있는 교주 아래 모인 신도들의 맹신처럼 자라고, 근본주의적인 집단의 폭력적 특성과 유사하게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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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우리 그만 헤어져.” 아니, 너는 비빔밥 집에서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이유를 물었다. 달래도 봤다.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도 해봤다. 그런데 솔직히 이유를 모르겠더라. 언제나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널 위해서 희생했고, 배려했는데, 이건 배신이야, 배신! 슬픔의 끝에서 파도처럼 분노가 밀려왔고, 분노에 휩쓸려 나가다 보면 망망대해 같은 외로움이 펼쳐졌다. , 글쎄, 이소라 누나가 부른 것처럼 바람이 분다니까. 그리고 김동률이 노래합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 정말 어떻게 안될까. 그런데 결국 그녀가 돌아왔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있냐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그런데 이 노래가 이별 후 재회하는 노래였던가? 그걸 잘 몰라서였을까. 그 뒤로 우린 네 번 헤어졌고, 다섯 번째에서야 비로소 진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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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 they want director’s chair?

배우는 작품을 선택한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훌륭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이왕이면 훌륭한 작품을 선택하고 싶은 게 배우의 마음이다. 아니면 아예 스스로 만들어버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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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소프틀리>는 오바마의 연설로부터 시작된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2008년 부시 정권 말기에 공화당의 대선 후보 존 맥케인과 경합을 벌이던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 말이다. 그리고 영화가 이어지는 내내 조지 부시 미국 전대통령이나 오바마, 미국 전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과 같은 정치인들의 연설이나 발언이 심심찮게 귀를 파고 든다. 만약 당신이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는 하드보일드한 킬러물 정도를 예상하고 상영관을 찾은 관객이라면 이미 예사롭지 않은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기대가 빗나갔다는 예감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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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후기

cinemania 2013. 4. 1. 00:14

<지슬>,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둔 이 영화는 비극을 전시하며 공분의 엔터테인먼트를 판매하는 대신 관객을 증인석에 앉히고 당시의 정황을 묵묵하게 환기시킨다. 끔찍한 비극의 한가운데에 내몰렸음에도 얼마나 참혹한 상황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순진한 이들의 인상을 거듭 목격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암담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의외로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들이 적잖게 존재하지만 머리가 거꾸로 곤두서듯 질겁할만한 순간들 또한 가감 없이 나열되고 제시된다. 잔인하고 흉악한 이미지를 전시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정말 이 세계가 지나온 진짜 역사라는 절망감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흉악한 시절이 제대로 된 위로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참혹하다. <지슬>은 짐승의 계절로부터 물어뜯긴 이들을 위해서 그 후손이 직접 바치는 위령제다. 죽은 자도, 죽인 자도 말이 없고, 후손들만 운다. 언제까지 비극을 방치할 것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제주 4.3 사건도.

 

<지슬>의 영상은 컬러로 촬영한 뒤 흑백으로 전환했다는데 그 깊은 감도가 여전히 갈무리되지 못한 채 시대 속을 떠돌며 오늘까지 전전하는 시대의 영혼을 보는 인상이었다. 한편 거의 외국어에 가깝게 들리는 제주도 방언을 자막으로 읽는 기분이 묘했다. 제주도가 한 몸과 같은 영토임에도 외딴 방처럼 고립된 공간이란 느낌이 적잖게 들었다. 그런 곳에서 벌어진 참극이니, 얼마나 징했겠소. 사방팔방 이어진 광주에서도 그랬는데. 안 그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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