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감독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는 중의적인 제목이다. 그러니까 <죽여주는 여자>는 감탄사로 쓰이는 '죽여준다'와 동사로 쓰이는 '죽여준다'는 의미로 수식되는 여자의 삶을 그린 영화다. 먹고살기 위해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늙은 여성은 과거 자신과 거래한 전적이 있는 남성들이 갈망하는 죽음을 돕는다. 죽여준다던 그 여자가 정말 죽여주는 여자가 된 건 결국 남루한 노인들의 삶이 방치되고 외면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여러 모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되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버겁게 현실을 버티거나 버거운 내일을 지운다.

물론 <죽여주는 여자>를 목격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목도한 건 우울하고 괴로운 노년의 초상만은 아닐 것이다. 유쾌한 활기와 따뜻한 정감이 공존하는 영화 속 풍경에는 한국 사회의 여느 구석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표정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 다양한 생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군상들도 하나 같이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은 결국 죽음으로 수렴되는 여정이다. 다만 죽음이 다다를 때까지 살아간다는 것과 죽음을 향해 찾아간다는 것 사이에는 우주만 한 괴리가 있다. 결국 <죽여주는 여자>는 죽음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역설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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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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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금> 단평

cinemania 2011. 8. 23. 19:21

콘트라스트를 극명하게 높인 뮤비 질감의 영상. <푸른 소금>의 이미지는 모 카메라 광고만큼이나 쨍하다. 그만큼 단편적인 감상이 강렬해지는데 이는 유연하게 이어지기 보단 조각나듯 나열된 시퀀스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다. 마치 두 편의 다른 영화를 찍고 나서 어영부영 자르고 붙여서 한 편의 영화라고 우기는 것만 같다. 특별하다 말할 수 없으나 중심인물의 관계적 긴장과 이완의 흐름이 흥미를 당기는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 허나 감정의 전환이 성급하다 못해서 따로 노는 것마냥 신과 신 사이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적절하지 못한 문어체 대사들이 어색함을 남발하는 사이, 배우들도 어찌할 수 없는 캐릭터의 무능력이 영화를 루즈하게 깎아먹는다. 무엇보다도 낭비에 가까운 시퀀스들이 너무 잦게 눈에 띈다. 좀처럼 현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감정선이 깨알 같은 PPL적 이미지 속을 공허하게 유영하는 것만 같은긴 종합 CF 필름 같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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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1960년작 <하녀>는 분명 독보적인 걸작이다. 중산층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와 명예를 축적한 남성의 감춰진 욕망이 화근이 되어 또 다른 욕망의 포로가 된 채, 불순한 관계의 늪을 허우적거리고 이내 파국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김기영<하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며 그 특성은 현재까지도 유효할만큼 대단한 에너지를 품은 작품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허락된 내외적인 시야, 즉 관찰과 추리라는 방식에 각각 맹점을 만들어 넣는 저택의 구조적 활용, 인물의 내면 심리 묘사는 압도적이면서도 탁월한 서스펜스를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하녀>는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물질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 즉 시대적 리얼리즘을 서스펜스의 태반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보다 비범하다. 자신의 육체를 담보로 신분의 상승을 꿈꾸는 하녀의 욕망이 부유한 중산층의 억눌린 욕망의 삽입을 유도하며 보다 거대한 괴물같은 욕망을 잉태하고 영화는 무시무시한 광기의 에너지로 장악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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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음절의 경쾌한 제목처럼 홍상수의 <하하하>는 경쾌한 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잰 체하는 예술인과 지식인들의 속물적 근성을 벗겨내는 ‘생활의 발견’을 그려내는 홍상수의 ‘극장전’은 <하하하>에서도 거듭된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영화평론가, 감독, 작가들은 평론이나 연출, 창작을 한다고 할뿐, 그에 어울리는 행위를 보여준 적이 없다. 언제나 술을 마시고, 여자를 탐하며, 제 삶을 변명하거나 위장하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소소한 일탈적 행위가 하나 같이 인간적이란 변명으로 통용될 수 있는 까닭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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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상수 출연 전도연, 이정재, 서우, 윤여정 개봉 5월 예정

 

부와 명예를 축적한 남성의 어긋난 욕망이 하녀의 표독스런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평온한 중산층 가정에 불길한 전조가 감돈다. 치부처럼 드러난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의 포로가 되어 불순한 관계의 늪을 허우적거린다. 자본주의가 걸음마를 시작할 1960년대 무렵을 배경으로 어느 중산층 가정의 파괴적인 몰락을 그려나가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는 시대적 리얼리즘을 광기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독보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다. 자본의 유무가 권력의 우열로서 확장되기 시작하던 자본주의의 요람적인 징후는 <하녀>를 이루는 무시무시한 광기의 원천이자 소스나 다름없다. 하녀의 얼굴은 곧 시대의 숨은 욕망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육체를 담보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하녀의 욕망은 부유한 중산층의 빈곤한 정서와 밀착하고 질환적인 병폐에 가까운 욕망이 괴물처럼 자라나 삶을 집어삼킨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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