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을 보고

cinemania 2015. 11. 3. 11:53

<내부자들>을 봤다. 잘 알려진 대로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을 스크린에 옮겼다. 아무래도 원작을 직접 본 관객은 드물 거 같은데 원작과의 비교 선상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영화 입장에선 유리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원작과는 다른 형태로 완성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경유착과 밀실정치의 행태에 관한 르포르타주를 기반에 둔 원작 웹툰의 극사실적인 묘사는 영화 안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폭로극으로서의 쾌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사실적인 이미지로 적극 활용된 것 같다. 다만 원작의 극사실적 묘사는 그 자체를 본다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현실정치를 폭로한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영화에선 그런 사실적인 묘사가 극적인 쾌감을 극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장치에 가깝다. 원작에서 중요한 게 밀도였다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부피와 중량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원작에 비해 극적이고, 현실적인 타협을 최대한 수용했다. 이를 테면 결국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최대한 영리하게 보여주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달까.

뿌리 깊은 정경유착과 밀실정치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 대한 무기력한 수긍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선 <부당거래>의 묘사가, 폭력적인 하드보일드한 세계관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을 전복시킬 야심가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선 <신세계>의 정서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결말은 <베테랑>과 같은 싸가지 없는 권력 때려잡기 류의 쾌감에 가깝다. 그만큼 새롭고 참신한 작품은 아니지만 자기가 그린 세계관의 입구와 출구를 명확히 세우고 닫는 작품이란 점에서 평가될만한 가치가 있다. ‘물리고 뜯길수록 더 큰 괴물이 되는이들을 상대로 물리고 뜯기다 결국 더 큰 괴물이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내부자들의 악전고투를 그리는 과정의 기승전결이 단단하게 세워지고, 권력의 위엄 아래 잠재된 추잡한 민낯과 권력의 그림자 속에 기생하는 폭력의 본체 그리고 그 패악한 세계의 본질을 음흉하게 드러내는 대사들의 찰진 은유로서 폭로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그림자를 스펙터클하게 드러내는 묘사와 함께 이상적인 낭만이 가미된 결말의 쾌감은 상호보완적이다. 다만 이야기의 리듬이 잘 정리된 인상은 아니다. 덕분에 몇 차례 높은 파도를 타듯 기승전결의 흐름을 견뎌야 되는 느낌이라 그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낄 가능성도 존재할 것 같다. 개인적인 집중력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안일 수도 있겠지만 연출과 묘사의 세기에 집중한 인상이라 상대적으로 그런 감상적 흐름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이병헌의 연기는 그야말로 점입가경.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양아치 건달 역을 맡았는데 숱한 조폭영화 상의 유사한 역할들과 비교해도 이만한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 살기와 백치미를 양쪽 주머니에 차고 필요할 때마다 마음껏 꺼내 쓰는 느낌. 흥행 결과가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와 닿을 정도랄까. 물론 조승우와 백윤식도 확실히 배우 본연의 신뢰감을 수성한다.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 세계를 흔드는 밑바닥의 실체를 목도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건 결국 배우들의 그런 대단한 연기 덕분이다.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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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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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단상

cinemania 2014. 9. 29. 22:34

<제보자>는 상당히 괜찮은 영화였다. 힘 있는 이야기의 흐름도 좋고, 연출의 완급 조절도 탁월했으며 새삼스레 재확인하는 박해일의 연기력과 주변 캐릭터들의 호응도 상당히 좋은 영화였다. 국내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언론 영화 한 편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도 성과라면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두고두고 아쉬울 만한 기분이 남는 건 결말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결국 방송 보도를 통해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황들을 전달하고 신기루 같은 업적에 갇혀서 의심하지 못했던 사회를 각성시키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데 그 이후로 영화는 어딘가 안이해 보일 정도로 재빠르게 낙관적인 표정으로 도취된 방송국의 분위기 안에 매몰돼버리듯 영화를 끝내버린다. 사실상 황우석 사태의 핵심은 황우석이 스스로 자신의 사기 전과를 고백한 이후에도 그를 추앙하는 이들로 인해 끊임없이 불거지던 줄기세포 신앙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무조건적인 믿음의 방식은 그 이후로도 한국 사회 곳곳을 잠식하던 크고 작은 사건의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기이한 현상이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의 세월호 사태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제보자>는 부정한 사실을 폭로한다는 쾌감에 도취되어 진실을 웅변하지 않고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괴로운 싸움이 될 수 있는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그 맞은 편에서 선의 탈을 쓰고 사회를 유린하는 악인의 내면이 꼭 악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악인이라고 해서 악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라도 조건만 맞아 떨어지면 선인을 자처하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구태의연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딘가 안이한 결말이 되새김질 할수록 아쉽다.

 

<제보자>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 방송사 밖에서 촛불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보며 줄기세포의 존재를 추적하던 PD는 말한다. “처음으로 저 사람들이 무서워지려고 하네요. 진실을 말하면 모두 다 내 편이 될 줄 알았는데.” 황우석 사태 이후로 PD수첩은 3년 뒤 다시 벼랑 위로 내몰렸었다. 광우병 사태 당시였다. 진실이 드러난다 해서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는 자의 입은 아직도 외롭고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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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의 <타짜>가 해운대 앞바다였다면 강형철의 <타짜-신의 손>은 캐리비안 베이다. 인공 파도에 휩쓸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결국 인공 파도는 인공 파도다. 애초에 기획되지 않았던 속편이란 맹점과 한계를 그나마 강형철이 잘 메우고 이어낸 인상이지만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상. <타짜>의 캐릭터들이 차, 상, 마, 포 같아서 저마다의 파괴력도 있고, 차가 판을 휩쓰는 압도감과 마가 차를 삼키는 쾌감도 있었지만 <타짜-신의 손>은 '졸'의 향연 같아서 실력이 평준화된 선수들의 싸움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졸'전임이 뚜렷해 보여 김이 새는 지점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속편인지라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진 않아서 크게 아쉽진 않았지만 썩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러닝타임에 비해서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에선 본래 품었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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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단평

cinemania 2012. 11. 23. 13:41

강풀 작가의 <26>은 사연이 많은 소재를 장르적인 그릇에 담아서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서 호흡은 짧게 가져가야 하니 각색은 불가피하고, 실사화라는 표현적인 제한도 존재한다. 특별한 재해석 능력을 보여준다면 모를까, 원작의 의미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본전 찾기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26>은 그런 제약들을 뛰어넘은 영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긴 어렵다. 압축된 초반 서사는 성기고, 변주된 일부 캐릭터는 비효율적인 경우가 발견된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뜨거운 감정이 차고 넘친다. 어떤 식으로든 1980 5 18일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자유롭기 힘든 탓이다.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보기 힘들다. 보는 내내 울화가 치민다. 미치도록 죽이고 싶어진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기 힘들게 만드는 이 놈의 현실이 문제다. 영화 하나가 짊어진 사연이 뭐 이리 무겁고 언제까지 애달파야 하냔 말이냐.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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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냉정하다. 태건호(정재영)는 유능한 채권추심원이다. 그물을 던지듯 추심 대상자들을 포획하고 그들로부터 걷을 돈을 확실하게 건져낸다. 그가 냉정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채권추심원이 되어 남의 빚을 대신 받아내며 자신의 빚을 청산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빚보다도 무거운 간암 진단이 떨어진다. 누군가의 간을 기증받아야만 그는 삶을 연장할 수 있다. 채권을 추심하듯 간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찾는다. 한 여인이 그의 목숨을 덧댈 수 있는 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다. 차하연(전도연)은 정재계의 거물들을 상대로 한 탕을 노리는 지능적인 팜므파탈이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교도소에서 출감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출감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그녀의 간을 얻기 위해서는 그녀를 노리는 적들을 대신 헤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녀도 믿을 수 없다. 그 여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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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금> 단평

cinemania 2011. 8. 23. 19:21

콘트라스트를 극명하게 높인 뮤비 질감의 영상. <푸른 소금>의 이미지는 모 카메라 광고만큼이나 쨍하다. 그만큼 단편적인 감상이 강렬해지는데 이는 유연하게 이어지기 보단 조각나듯 나열된 시퀀스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다. 마치 두 편의 다른 영화를 찍고 나서 어영부영 자르고 붙여서 한 편의 영화라고 우기는 것만 같다. 특별하다 말할 수 없으나 중심인물의 관계적 긴장과 이완의 흐름이 흥미를 당기는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 허나 감정의 전환이 성급하다 못해서 따로 노는 것마냥 신과 신 사이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적절하지 못한 문어체 대사들이 어색함을 남발하는 사이, 배우들도 어찌할 수 없는 캐릭터의 무능력이 영화를 루즈하게 깎아먹는다. 무엇보다도 낭비에 가까운 시퀀스들이 너무 잦게 눈에 띈다. 좀처럼 현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감정선이 깨알 같은 PPL적 이미지 속을 공허하게 유영하는 것만 같은긴 종합 CF 필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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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익혀도 과거에 응시할 수 없고, 무예를 익혀도 나라를 훔칠 수 없는 신분. 인조반정의 피바람에 휘말려 역적으로 몰락한 자손으로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지만 시대는 그를 무기력하게 억누른다. 학문도 무예도 남이(박해일)에게는 덧없는 미망과 같다. 그래도 하나뿐인 여동생 자인(문채원)을 아끼는 그에게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의 아들인 서군(김무열)이 결혼을 허락해달라 간청한다. 그리고 여동생의 결혼과 함께 먼 길을 떠나려던 그에게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거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밀려든 청의 대군 앞에서 성문은 손쉽게 열리고, 평화롭던 마을이 삽시간에 비극의 불길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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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렇게 변한 지 오래 됐어. 들뜬 어조로 무례하면서도 심드렁하게 말을 뱉는 택시기사, 그리고 옆에 앉은 여자. 그녀가 바라보는 창 밖의 파주는 예전에 그녀가 자리하던 그곳이 아니다. 그건 그곳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그곳에서 보낸 시절로부터 멀리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욱하게 길을 메운 안개로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풍경에 내밀한 긴장감이 차오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연과 속내를 점치기 어려운 인물의 표정으로부터 호기심이 예민하게 출렁인다. <파주>는 시종일관 털이 곤두서듯 서늘한 적막을 유지하다가도 날카롭게 찌르고 거칠게 흔드는 찰나가 뒤늦게 고개를 들어올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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