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우리 그만 헤어져.” 아니, 너는 비빔밥 집에서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이유를 물었다. 달래도 봤다.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도 해봤다. 그런데 솔직히 이유를 모르겠더라. 언제나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널 위해서 희생했고, 배려했는데, 이건 배신이야, 배신! 슬픔의 끝에서 파도처럼 분노가 밀려왔고, 분노에 휩쓸려 나가다 보면 망망대해 같은 외로움이 펼쳐졌다. , 글쎄, 이소라 누나가 부른 것처럼 바람이 분다니까. 그리고 김동률이 노래합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 정말 어떻게 안될까. 그런데 결국 그녀가 돌아왔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있냐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그런데 이 노래가 이별 후 재회하는 노래였던가? 그걸 잘 몰라서였을까. 그 뒤로 우린 네 번 헤어졌고, 다섯 번째에서야 비로소 진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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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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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성 두보의 오언율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에서 제목을 빌린 <호우시절>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라는 의미를 지닌다. <호우시절>은 곧 호애()시절이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재회한 과거의 연인은 시간 속에서 낡아가던 기억을 현재에서 되새김질하며 다시 한번 로맨스적 예감을 꿈꾼다. ‘때를 알고 내린 좋은 비처럼 때를 알고 만난 좋은 인연을 그린 <호우시절>은 낭만적인 로맨스 멜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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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time loop 2009. 1. 24. 10:30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널 위해서야. 하지만 실상 상대방은 구속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상대를 위한 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위한 일이지.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때로 자꾸만 어긋나고 벌어지는 일이라면 차라리 참는 게 낫다. 그걸 몰랐던 건 아닐 거다. 막상 인식하지 못했을 따름이지. 감정이라는 건 언제나 충동적이다. 하지만 벌어진 상처는 통증을 유발한다.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생채기를 내는 실험은 무의미하다. 그 상처엔 어떤 의미도 없다. 난 굳이 그걸 하고야 말았던 것 같다.

 

세 번 정도 반복된 이별의 끝은 결국 다시 이별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후회가 물밀듯이 쳐들어와 날 쥐고 흔든다. 아침까지만 해도 예감할 수 없는 말이 저녁 즈음에 내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돌이킬 수 없는 말이라는 거 알면서도 하고 있었다.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었다. 때론 즉각적인 반응보다도 좀 더 시간을 갖고 감정을 삭힌 뒤 내뱉는 말이 현명할 수 있음에도, 난 그걸 모른 체했다.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명에 불과하다.

 

우린 너무 다른 것 같아요. 그 아이가 말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것 같다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단지 그 차이가 감내하기 힘들어졌다는 선언일 따름이다. 서로의 차이를 좁히기가 어렵다는, 이제 그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말이다. 대부분의 이별은 서로의 차이를 알게 돼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에서 비롯된다. 난 그걸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상대의 손을 잡지 않은 채 혼자 건너고 있었다. 뒤쳐진 상대는 점점 멀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따라잡을까, 아니면 포기할까. 그 때 앞서가는 상대는 뒤돌아와 그 상대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상대가 뒤돌아선 뒤에야 뒤를 돌아봤지만 생각보다 멀었다.

 

그 아이와 4번째 이별을 했다. 3번째까지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물론 어젯밤엔 잠이 잘 안 왔다. 생각이 많아지니 잠을 자기가 힘들다. 그리움과 함께 자조가 스며든다. 하지만 어떤 자포자기가 밀려온다. 그 아이에게 더 시간을 달라는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무기력해졌다. 아직도 그 아이에게 줄 사랑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접어야겠다. 그 아이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난 조급해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줄곧 의심해왔다. 제자리를 찾아가려 노력하는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줄 것처럼 얘기해놓고 주지 않는다 툴툴거렸다. 혼자 기대하곤 혼자 무너졌다. 그렇게 쓰러지곤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힘들었나 보다. 난 너무 빨랐고, 우린 벌어졌다. 그리고 헤어졌다. 안녕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멀어졌다. 누군가의 현재에서 영원을 기약했지만 결국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바스러질 운명이 됐다. 참 애석한 일이다.

 

이별이라는 거 실감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견뎌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인지 아직 확신이 들진 않지만 지금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겠다. 차마 염치가 없어서 말하진 못했지만 그 아이가 나름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나와 함께 나눌 시간이 없다는 게 종종 후회되길 바란다. 이기적이지만 그렇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거, 실로 무의미한 듯하면서도 간절해지는 일인가보다. 그렇게 신년의 소원을 빌게 됐다. 이런 소원을 빌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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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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