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는 추하다'라는 논조의 <조선일보>발 칼럼을 보았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지하철 앞자리에 앉아서 화장에 열중하는 여자 앞에 앉아있다 보면 민망하다. 목격하고 싶지 않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생면부지 여자의 화장하는 풍경을 목격할 이유는 없지 않나. 비슷한 예로 어쩌다 만원지하철에서 목격하게 되는 누군가의 스마트폰 문자 내용 같은 것도 있다. 나도 모르게 타인의 프라이버시 안에 발을 담궈 버리게 되는 상황의 난처함. 곤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추하다'라고 공적으로 발음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므로. 그 여자가 화장하는 것을 보고 내가 미쳐버린다 한들 그렇다. 그렇게 보기 싫으면 지하철 칸을 옮기던가.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는 추하다고 생각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다. 자유와 자유 사이엔 어떠한 우위가 없다. 평등한 일이다. '보기 싫다'라는 이유로 불가해한 타인의 행위를 억압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옳지 않다. 결코 동의할 수 없고,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할 대상이다. 지하철에서의 화장이 추하다는 그 마음보다 추한 것도 세상에 보기 드물 것이다.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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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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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햄123> 단평

cinemania 2009. 6. 5. 20:20

오후 1 23에 뉴욕 펠햄 역에서 출발해서 ‘펠햄123(one-two-three)’이라 불리는 지하철이 갑자기 구간 가운데서 정차하더니 차체마저 분리된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지하철 배차원 가버(덴젤 워싱턴)는 접속을 시도해보지만 좀처럼 응답이 없다가 곧 낯선 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원미상의 목소리는 지하철 납치를 알리며 인질과 거액의 교환을 요구한다. 협상이 시작된다. <서브웨이 하이재킹: 펠햄 123>(이하, <펠햄123>)은 이와 같이 지하철 납치를 소재로 한 범죄극이다. 하지만 하이재킹 액션물의 이미지를 기대한다면 배반감을 느낄 가능성이 농후하다. <펠햄123>은 뉴욕에서 벌어지는 납치범죄극이며 이는 명백하게 ‘9.11’을 연상시킨다. 사실 문제의 그날 이후 할리우드의 멘탈을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포스트 9.11’ 작품들은 벌써부터 낡았다고 인식될 만큼 지겹게 회자되고, 해석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펠햄123>의 포스트 9.11 탑승을 눈여겨볼만한 지점은 테러에 대한 공적 공포보다도 테러리즘을 대처하는 뉴욕 시민들의 심리적 이해와 행정적 대응의 현상태를 묘사한다는 점이다.

지하철을 납치한 라이더(존 트라볼타)는 국가를 상대로 테러의 대가를 요구하면서도 민간인을 협상의 중계자로 지정한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테러가 단지 공적인 정치로 해결되기 전에 개인의 공포를 거쳐 환기된다는 직설적인 심리가 더욱 적나라하다. 그것이 어떤 정치적 협상과 연동되는 위기이기 전에 인간적 생존과 직결되는 개인과 개인의 알레고리 안에 놓여있음에 접근한다. 거대한 재난을 공유했던 뉴요커, 더 넓게는 미국인들이 관계를 인식하는 심리적 변화를 예상케 한다. 개인의 희생과 양심적 고백을 요구하는 범인의 태도에 몸소 응답함으로써 무차별적인 희생을 방지하려는 시민의 태도를 묘사한다는 점이나 뉴욕 시민의 안위를 정치적 훼손의 분기점으로 이해하고 반응하는 공적 대응도 흥미롭다. 동시에 <펠햄 123>은 캐릭터의 심리적 대립구도를 통해 밀고 나가는 스토리의 결과가 궁금해지는 영화다. 토니 스콧의 오랜 동반자인 덴젤 워싱턴은 언제나 그렇듯 빼어난 연기를 보이고 존 트라볼타 역시 매력적인 악당이라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카리스마를 선사한다. 특유의 핸드헬드와 컷 편집을 동원하는 토니 스콧의 현란한 이미지는 <펠햄123>에서도 눈길을 끄는데 유효하지만 때때로 스타일리쉬의 강박을 인식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과정에서 증폭되는 흥미에 비해 허탈함이 선명한 결말은 분명 가장 큰 아쉬움이라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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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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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 지하철, 졸고 있던 승객 하나가 눈을 뜬다. 늦은 새벽의 지하철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그가 문득 옆 칸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서서히 옆 칸으로 통하는 문을 향하던 그의 발이 무언가를 밟고 세차게 미끄러진다. 그가 밟은 것은 바닥에 흥건한 붉은 피, 당황하는 남자는 지하철 기둥을 붙잡고 가까스로 일어난다. 심히 경악할만한 광경을 앞에 둔 남자가 무언가에 홀린 듯 옆 칸으로 통한 문의 창문을 바라보며 그 쪽으로 서서히 다가선다. 그 창 너머를 바라보는 남자의 경직된 동공이 향한 곳에 놓인 건 누군가의 뼈와 살을 가르는 어느 살인마의 뒷모습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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