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이거 하난 확실하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디지털 캐릭터의 꿈을 꾼다. <폴라 익스프레스>이후로 3D디지털 이미지에 심취한 저메키스는 이제 더 이상 실사적 세상을 뷰파인더로 관찰하지 않는다. 북유럽 영웅 서사시 <베오울프>에 이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을 디지털 양각의 세계로 구현한 저메키스는 이제 디지털 세계의 조물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크루지(짐 캐리)는 마주선 이들을 질색하게 만드는 지독한 수전노다. 그에게 크리스마스란 놀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이 만들어낸 혐오적 하루일 뿐이다. 그에겐 크리스마스 파티는 낭비고, 웃음은 사치이며, 길거리의 찬송가마저 소음일 뿐이다. 그런 그의 삶에 대단한 반전이 찾아온다. 언제나처럼 홀로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보내던 스크루지는 7년 전 죽은 동업자 말리의 혼령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3명의 유령이 찾아올 것이란 말을 전해 듣게 된다. 스크루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세 유령과 스크루지의 만남을 다룬 <크리스마스 캐롤>의 플롯은 동화적 교훈극의 온화함이 깃들어 있던 원작과 달리 호러와 판타지가 뒤엉킨 환상적 이미지로 재현된다.
배우의 실제적 외모를 스크린의 디지털 캐릭터에게 이양하려는 것마냥 보였던 <베오울프>의 편집증적 시도와 달리 <크리스마스 캐롤>은 그와 반대로 디지털 캐릭터의 불완전한 형태에 실제적 외모를 함몰시켜버린다. 전자가 디지털 체계를 응용해 실제적 이미지를 허구의 세계관에 실현시키고자 한 이입적 시도였다면 후자는 실사적 표현력을 허구적 세계관에 어울리는 이미지로 리모델링하는 디지털 부호의 변환적 시도에 가깝다.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디지털 캐릭터의 특성에 함몰된 실제적 배우의 외양은 희미한 형태를 간직하거나 온전히 자취를 감춘 채 영화적 세계관에 철저히 복무한다.
디지털 캐릭터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는 언제나 저메키스의 영화를 혐오하게 만들거나 폄하하게 만드는 한계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언캐니 밸리란 음산한 작품의 톤에 어울리는 적절한 장치적 효과로서 성과를 발휘한다. 시체의 눈이라는 비아냥을 얻는 디지털 캐릭터의 눈과 얼굴은 역설적인 효과적 표현력을 얻는다. 디지털 캐릭터의 음산함을 기본적인 요소로서 삼아 호러적 이미지를 확장하는 한편, 판타지적인 입체감을 덧씌운 <크리스마스 캐롤>은 디지털 캐릭터의 기술적 한계마저도 작품을 위한 표현적 질감으로서 설득시키는 적절한 맞춤형 선택처럼 보일 정도다.
다만 <크리스마스 캐롤>이 종종 과욕적 이미지를 선사한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다. 입체적 이미지로서 탁월한 감상을 부여할만한 순간들이 존재하지만 입체적 이미지를 감상하기 위한 시각적 피로감과 맞바꿀 만큼의 기회비용적인 쾌감이 이를 적당히 보충하는가라는 질문에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동시에 저메키스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위한 맞춤형 효과로서 3D디지털 비주얼을 활용했다기 보단 지난 실험의 연장선상의 연결고리에서 시도를 거듭하는 가운데 <크리스마스 캐롤>의 효과를 후발적으로 얻어낸 것은 아닌가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저메키스의 실험은 여전히 과도기적이며 그것이 집착을 넘어선 발전적 지향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판단이 불가피하다. 중요한 건 그 도전적 의지를 존중할 수 있는가, 라는 지점이다. 그 여부에 따라 저메키스가 꾸는 디지털 캐릭터의 꿈 역시 가치적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눈에 띄는 건 디지털 캐릭터 아래 놓인 짐 캐리의 흔적이다. 그는 3D디지털 부호의 숲 안에서도 아날로그적인 기본기를 설득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크리스마스 캐롤>은 진화보다도 답보란 측면에서 유용한 몽상가의 꿈인 셈이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그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디지털 캐릭터의 꿈을 꾼다. <폴라 익스프레스>이후로 디지털 캐릭터와 3D비주얼에 올인 중인 로버트 저메키스는 북유럽 영웅 서사시를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한 <베오울프>에 이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을 디지털 부호로 재생시킨다. 지독한 구두쇠로 악명을 떨치는 스크루지(짐 캐리)가 자신이 혐오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7년 전 사별한 동업자 말리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로 3명의 유령을 만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게 된다는 플롯은 저메키스를 통해 환상적인 디자인을 입고 재생된다. 배우의 실제적 외모를 스크린의 디지털 캐릭터에게 이양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베오울프>의 편집증적인 시도와 달리 <크리스마스 캐롤>은 디지털 캐릭터의 특성 안에 실제 배우의 외모를 함몰시켜버린다.
전자가 디지털 부호를 통해 현실을 가상에 안착시키기 위한 극사실적인 전이적 실험이었다면 후자는 디지털 부호를 통해 현실적 형태를 지워내고 새롭게 창조된 가상적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 변환적 실험에 가깝다. 전자가 재생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을 활용했다면 후자는 창조를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을 활용한 셈이다. 이는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 만한 성공적 방식이다. 디지털 캐릭터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조차도 음울한 영화의 톤에 어울리는 효과처럼 인식될 정도로 <크리스마스 캐롤>은 허구적인 가상성에 어울리는 디지털 캐릭터의 음산함을 구축하고 이미지의 입체적 환상성을 적절히 활용한다. 다만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3D비주얼이 필수적인 의상인가를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때때로 과욕적 활용처럼 보인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때때로 입체적 이미지로서 탁월한 감상을 부여할만한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그 전체적인 형태가 과도한 시각적 피로감과 맞바꿀 만큼의 기회비용을 설득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로버트 저메키스의 이상이 단순히 <크리스마스 캐롤>에 대한 맞춤형 효과로서 3D 비주얼과 디지털 캐릭터를 활용했을까, 라는 의문도 동원될 필요하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실험은 여전히 과도기이며 때때로 그것이 집착을 넘어서는 발전적 지향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답하기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 도전적 의지를 존중할 수 있는가, 라는 지점에서 로버트 저메키스의 꿈 역시도 판단가치를 얻을 만한 산물인 셈이다. 물론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눈에 띄는 건 짐 캐리다. 그는 디지털 캐릭터와 3D비주얼의 숲 속에서도 유효한 아날로그적 기본을 설득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은 진보보다도 답보란 측면에서 유효한 몽상가의 꿈인 셈이다.
잘 키운 캐릭터 하나면 시리즈가 보장된다. 특히 캐릭터의 매력이 중시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드림웍스가 자사의 프랜차이즈 캐릭터들을 우려먹으며 시리즈를 거듭해나갈 수 있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슈렉3>, <마다가스카2>와 같은 기대 이하의 속편을 공개하며 도태되는 드림웍스의 작품들이 증명하듯 단지 잘 나가는 캐릭터의 인기 하나만으로 시리즈를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은 망상에 가깝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캐릭터의 매력도 함께 닳고 닳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이하, <아이스 에이지3>)는 의미 있는 속편이다. 의미 있는 애니메이션을 창작해내는 픽사의 정반대의 영역에서 나름의 의미를 추구했다 해도 좋을 만한 <아이스 에이지3>는 순수 엔터테인먼트의 야심으로 점철된 코믹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두 편의 전작이 보유했던 캐릭터들의 매력이 고스란히 보존되는 동시에 새로운 캐릭터를 수혈하며 새로운 스토리를 보충한다. 물론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이스 에이지3>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하러 가는 이들의 모험담에서 가족주의적 서사는 지극히 뻔한 사연에 불과하다.
그 뻔한 바탕에 특별한 묘미를 새겨 넣는 건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유머와 시각을 공략하는 이미지다. 특히 디지털 3D로 제작된 이번 작품은 입체적 영상의 묘미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노골적인 이미지가 곳곳을 메우고 있다. 또한 빙하기 동물 캐릭터들의 입심 좋은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은 쏠쏠한 오락적 묘미 그 자체다. 특히 새로운 시리즈에 걸맞게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벅(사이몬 페그)은 기존의 캐릭터와 함께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사연에 어울릴만한 필연적 매력을 발생시킨다.
순수한 오락물이라는 측면의 의미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가치가 없다고 평할 수 있는 <아이스 에이지3>는 말 그대로 자신의 의도 자체를 명확하게 관철시키는 작품이다. 세 편의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가운데서도 좀처럼 도태되지 않는 오락적 감각은 분명 이 시리즈가 지닌 최고의 매력이자 동시에 이 시리즈의 존재 이유를 위한 설득적 가치에 가깝다. 전작들로부터 물려받은 순수 엔터테인먼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새롭게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최소한 자신의 장기가 녹아 내리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매력으로 더욱 두터워진 시리즈란 점에서 미덕이 있다.
드림웍스가 자사의 프랜차이즈 캐릭터들을 우려먹으며 속편 증후군에 빠진 것과 달리 폭스의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이하, <아이스 에이지3>)는 다시 한번 캐릭터의 위력을 톡톡히 이어나간다. 의미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픽사의 정반대 영역에 놓인 듯한 <아이스 에이지3>는 순수 엔터테인먼트의 야심으로 점철된 코믹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두 편의 중심캐릭터들이 여전한 매력을 과시하는 가운데 새로운 캐릭터가 신선함을 더한다. 단순한 스토리에 양념 같은 유머를 가미하고 효과적인 이미지를 치장시킨다. 특히 3D 방식으로 제작된 이번 시리즈는 그만큼 이미지를 통해 건져 올린 오락적 묘미가 쓸만하다. 입심 좋은 캐릭터란 면에서 성인에게 어필할만한, 빙하기의 동물 캐릭터의 귀여운 이미지는 아동들에게 어필할만한, 단순한 스토리에 딴지를 걸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만큼 순수한 오락적 자질이 충만하다. 무엇보다도 기존 시리즈로서의 매력이 녹아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속편이라 할만하다.
‘스토리 슈퍼바이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 시간 반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방대한 스토리를 영화적으로 제대로 구성하기 위해 항상 디렉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스토리를 슈퍼바이징(supervising)하는 것, 즉 말 그대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관리해나가는 게 슈퍼바이저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그곳에서 방대한 스토리보드를 봤던 기억이 나는데 다양한 모델링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데이터를 하나의 결과로 유출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즐기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단한 작업이었다.
(웃음) 물론 DVD에 추가된 영상을 보면 실제로 게임도 하고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모습조차도 진지한(serious) 작업의 일환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실성이 담긴 현실적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도 쉴새 없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끊임없이 캐릭터 디자인이나 스토리에 수정을 가한다. 애니메이터인 동시에 스토리텔러로서 활약한다. 디자인, 스토리, 등 모든 과정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픽사의 작업 방식이다.
러셀의 모델이 <업>에 앞서 상영된 단편 <구름조금>의 디렉터인 ‘피터 손’이라고 들었다.
실제 러셀의 모델은 2명이다. 첫 번째는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소년인데 실제로 보이 스카우트 소속이며 그 소년의 활발한 모습이 러셀의 모티브가 됐다. 또 한 명의 모델은 방금 말했던 ‘피터 손’이다. 그는 굉장히 유쾌한 동료라서 러셀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줬다. 실제로 외모도 굉장히 흡사하다. (웃음) 보다시피 러셀에게선 동양인 소년의 느낌이 많이 난다. 아시아적 요소가 투영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좋은 영화로 탄생하게 됐다는 점에서 한 명의 아시아 인으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근래에 픽사에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노골적인 코미디를 자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슬랩스틱이나 입담을 통해 끊임없이 코미디를 구사하는 드림웍스와 확연한 차별점이 나타난다.
코믹한 요소들을 많이 첨가해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디즈니는 개그적인 요소를 남발하면서 사람들을 웃기기만 할 뿐 심정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 부분을 방지하고자 항상 스토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그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그 가운데서 부가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발생시키는 스토리를 구상해 나가고자 한다.
픽사는 항상 작품의 중심을 이야기라고 강조해왔다. 그만큼 스토리 슈퍼바이저를 맡고 있는 당신이 픽사의 중책을 담당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픽사에서 이야기를 담당한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픽사에서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걸 큰 행운이라고 느낀다. 나는 필리핀 출신인데 어렸을 때 글쓰기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저 TV나 영화로 이야기를 보는 게 전부였다. 29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직업이 없었고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몇 년 뒤에 픽사에 있게 됐다. 내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존 라세터’나 ‘피트 닥터’, ‘앤드류 스탠든’ 같은 픽사의 애니메이터 겸 스토리텔러들이 내 작업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당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당신이 직접 그린 캐릭터 ‘Nina’를 봤다. 단지 스토리 슈퍼바이저이기 이전에 캐릭터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돋보였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기 전에 프로덕션 디자이너,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해왔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란 단순히 스토리만 다루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제작과정이나 캐릭터 디자인도 관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내가 가진 경력들이 현재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픽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창작 조직이다. 그만큼 개별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많은 전문가가 모여있다 보니까 혼란스런 부분도 있지만 디렉터가 스토리텔러로서 작업을 이끌어 간다는 점은 분명하다. 각자의 의견이 일어나는 걸 막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수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많은 목소리가 일어나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최종적인 결정권이 감독에게 있다는 건 중요하다. 감독의 결정 이후로 모든 언쟁들은 종료가 되고 그 결정에 맞춰서 작업이 진행된다.
<업>은 픽사 최초의 3D애니메이션이다. 3D는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런 시각적 자극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이야기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는 게 아닐까.
일단 절대적인 대원칙은 스토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3D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에 압도돼서 스토리 자체를 간과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픽사에서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3D나 뭐가 됐던 간에 스토리가 제1의 전제조건이란 점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스토리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특히 <업>에서는 칼과 러셀을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고 결국 주변의 모든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업>의 스토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아내와의 사별 후 홀로 남겨진 노인이 남은 인생의 방향을 선택한다는 설정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나갔다. 홀로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할 것인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이룰 것인지,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노인의 심리로부터 만들어진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근래 픽사의 작품들이 선사하는 스토리는 로맨틱하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도 있나? (웃음)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다. (웃음) 다만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필요한 요소를 첨가할 뿐이다. 요리사가 사랑한다는 <라따뚜이>같은 경우나 로봇이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월-E>, 그리고 운명적인 존재와 사별한 노인이 등장하는 <업>처럼, 다양한 옵션들이 존재한다. 그게 픽사만의 특별한 방식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하겠다 싶은 옵션들을 삽입하는 형태로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간 것뿐이다.
<업>의 초반부 무성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클래식한 무성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픽사의 작품들이 종종 고전영화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적인 요소들을 삽입하는 것 역시 픽사의 특별한 방침은 아니다. 단지 이야기에서 필요로 하는 방식일 때 삽입이 요구된다. <업>의 초반부에서 칼과 엘리 커플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은 칼의 지난 인생들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삽입된 거다. 영화적인 방식이 픽사의 고유한 요소는 아니다. 단지 필요에 따라 삽입될 뿐이다.
픽사의 작업엔 언제부터 참여했나?
2004년이 처음이었다. 그때 시작했던 작품이 <카>였고, <라따뚜이>, <월-E>, 그리고 <업>까지 차례로 참여하게 됐다.
‘라이팅 슈퍼바이저(lighting supervisor)’라면 조명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라이팅 디렉터(director)’는 간단히 말해서 무대장치를 가상의 온라인 공간에 설치하는 일이다. 영화제작의 마지막 단계에 실시되며 영화의 스토리와 색감 등을 가장 마지막으로 꾸며주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에 라니(Ronnie Del Carmen) 씨와 함께 국내 컨퍼런스에 참여해서 강의도 했다고 하던데.
이번 세미나의 컨셉이 ‘비주얼(visual) 스토리텔링’이었기 때문에 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내가 ‘라이팅 디파트먼트(department)’에 있으니까 라이팅을 먼저 강의하고, ‘레이아웃(ray-out)’에 대한 강의를 병행했다. 카메라로 어떻게 프레임을 잡고, 어떻게 찍을 것인지 결정하는 게 일단 중요하지만 날씨에 따라서 프레임을 바꿔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라이팅과 레이아웃이 상호협력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르고, 장면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카메라가 움직이고, 그에 따라 어떻게 프레임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어떻게 캐릭터가 움직일 것이지, 이 모든 것들이 스토리텔링과 직접적인 관련을 짓고 있다. 그런 모든 요소를 통해 복선과 암시를 주면서 스토리를 강화시키는 거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예를 든다면?
일단 칼라가 주는 상징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업>의 엘리 같은 경우 엘리의 색깔이 있다. 엘리가 나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핑크가 나온다. 처음에 칼과 엘리의 결혼식 장면에서도 핑크가 보인다. 나중에 병원에서도 핑크고, 자세히 보면 원피스도, 헤어 밴드도 핑크색이다. 나중에 엘리가 죽은 후에 칼이 혼자서 쓸쓸하게 돌아갈 때 집 창문에 저녁 노을이 핑크 색으로 비치는데 칼이 문을 닫고 들어갈 때 핑크빛이 사라진다. 엘리가 죽어서 결국 칼의 생활에서 없어졌다는 의미다. 칼의 피부만 봐도 처음에 엘리가 떠나고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할 때는 저채도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색에 가깝다. 그런데 나중에 모험을 마친 칼의 피부색을 보면 생기가 넘치는 핑크색이다. 그러니까 사실 <업>은 라이팅과 레이아웃으로 스토리를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을지 많은 계산이 들어가고 상당한 연구가 이뤄진 작품이다.
CG애니메이션에서 조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컴퓨터에서의 조명은 무엇일까. 사실 실사랑 똑같다. 실사에서 영화 찍을 때 무대 장치에 무대 세트 조명이 없으면 정말 깜깜하지 않나. 그러다가 스포트라이트가 하나 생기면 거기서부터 점점 화면이 구성된다. 컴퓨터에서도 조명이 없으면 실사처럼 컴컴한 화면이 된다. 예를 들어서 이 카페를 컴퓨터에서 만든다고 생각하면 컵 하나씩 모델링을 다 만든 뒤에 조명도 하나하나 다 만든다. 다만 실사와 다른 건 실사에서는 하나하나를 모두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우리는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를 커트하면 된다. 그래서 천 개, 백 개, 금방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테크닉이 다를 뿐 우리가 하는 것은 실제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링을 위한 목적이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 다만 하이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업>을 비롯한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기계적 질감의 색채라기 보단 좀 더 회화적인 느낌이 난다.
일단 디렉터가 이번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컨셉이 이거라고 설명하면 프랙티컬(practical)한 작업 이전에 ‘디오라마(diorama)’를 이용해 전체적인 테스트를 해본다.
<업>에서 라이팅 파트에서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업>같은 경우, 피트 닥터가 2006년에 라이팅 분야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자기가 어떤 라이팅 컨셉을 하고 싶은지 말했다. 그 중 하나가 복잡한 장면을 심플리케이션(simplaication)하게 만들어서 캐릭터가 돋보이게 하는 것인데 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라이팅으로 보여주는 거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당신 시선에선 내 얼굴이 부각돼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컵이 밝아서 시선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인위적으로 컵을 약간 어둡게 한다. 왜냐면 사람의 눈이라는 건 콘트라스트(contrast), 대비가 강한 곳이나 밝은 부분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니까 그런 방식으로 시선을 유도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질감 같은 부분인데 러셀이 매고 다니는 배지 띠 한 가운데가 비어있다. 나중에 칼이 그 빈자리에 반질반질한 질감의 캔 뚜껑을 붙여주는데 그 때 질감의 대비가 심하게 느껴진다. 둔탁한 질감과 반질반질한 질감을 대비시켜서 사람의 시선을 유도하는 거다. 장면 하나하나가 실사에 기반을 두고 라이팅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스토리와 이 장면에서 어떻게 보여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철저한 분석과 공부를 하고 라이팅을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리기도 했는데 거기서 픽사는 각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모인 장인 집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들의 작업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픽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픽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아이디어도 흥미롭지 않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반면에 괜찮긴 한데 그리 익사이팅하지 않은 아이디어도 좋은 사람끼리 모이면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다. 픽사가 자유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 릴렉스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나오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는 공부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놀면서 얘기를 하는 순간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음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에서 미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픽사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미국으로 떠난 건 아닐 것 같은데, 픽사에서 일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웃음) 맞다. 내가 처음으로 픽사의 ‘룩소 주니어(Luxo Jr.)’를 접하게 된 건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였다. 처음에 전등이 막 ‘통통통’ 뛰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단순한 사물에 어떻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하더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후에 뒤늦게 알았다. 픽사란 회사가 있다는 건 그때 알았다. 나중에 뉴욕에서 컴퓨터 아트를 공부하면서 그런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할까. 그 전엔 솔직히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이 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설치미술이나 인스톨레이션(installation)과 같은 순수 아트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뉴욕의 컴퓨터 아트과에선 분야에 대한 구분을 두지 않더라. 비주얼을 하고 싶으면 비주얼을 하고, 페인팅을 이용한 인스톨레이션이나 영상을 추구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가 가능한 환경에 있다 보니까 자연히 그런 환경에 나도 노출된 거 같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픽사가 훨씬 크고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라는 걸 알게 됐다. 미국에 가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픽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픽사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
내가 만든 졸업작품이 순수 미술 성향의 실험적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상상 외로 반응이 좋았다. 학생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고 PBS에서 방송도 됐다.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인터뷰 기회가 왔다. 처음에 ‘PDI 드림웍스’에서 <슈렉2>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때쯤 되니까 픽사의 문화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고, 점점 픽사에 가고 싶더라. 결국 드림웍스에서 일하다가 2년 후에 픽사로 옮겼다.
픽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서 <업>을 끝낸 다음에 터키 이스탄불에 갔었는데 내 오피스 옆에 있었던 친구가 터키사람이었다. 그렇게 로컬(local)과 같이 생활하면서 좋은 문화체험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인터내셔널한 사람들과 만나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재능 있고 똑똑한 친구들과 같이 있음으로 인해서 무언가 계속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픽사 내엔 ‘PU(Pixar University)’라는 게 있는데 업무 후 오후 시간에 많은 수업을 제공한다. 수업의 종류도 많고 퀄리티도 굉장히 높다. 한국에서 접하지 못했던 수업들이 많고 그런 것들이 나에겐 배움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다.
혹시 문화적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나?
나는 한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고 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의견을 공유하는 부분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학교 다닐 때 손들어서 질문할 수도 없고, 어떤 한 사람이 얘기할 땐 조용히 듣기만 해야 되는데 미국은 항상 기본적으로 토론이 일반화돼 있다. 지금까지 교육받았던 것들에서 벗어나 그런 문화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된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클래스, 액팅(acting) 클래스, 보이스(voice) 클래스까지 들었다. (웃음) 어떻게 하면 영어로 언어를 바꾸면서 내 목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라이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은 없을지 궁금하다.
나도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전부 다 해봤으면 좋겠다. 예전에 졸업 작품은 ‘미니(mini) 디렉팅’이었지만 내가 다 한 거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굉장히 재미있더라. 지금은 라이팅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라니 님도 강의하는 스토리텔링 클래스를 비롯해 PU에서 많은 걸 배운다. 내가 직접 레이아웃을 하진 않더라도 관심이 많아서 공부하고 그렇게 견문을 넓힌다고 할까. 내가 해야 하는 것보다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 많으니까 그 안에서 내가 찾아서 많이 배우려고 한다.
픽사는 항상 이야기를 중시한다. 그만큼 다른 분야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과물이 좋다는 건 그만큼 내부적인 합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희끼리도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 셋째도 스토리, 라고 말한다. 사실은 모든 파트가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라이팅 파트라고 생각하면 세트를 아름답게 만드는 미학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건 화면의 어떤 부분이 스토리를 중요하게 묘사하는지, 그리고 그 부분에 어떻게 시선을 유도할 수 있는가다. 캐릭터도 그 캐릭터를 하나 개발하면 그게 끝이 아니라 스토리에 맞지 않는 부분은 변형시킬 수 있다. 그렇게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개발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 아닐까.
나에게도 파이팅한 일이랄까. 정말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도 기쁘고, 실제로 강의장 안에서의 에너지도 굉장히 좋더라. 컨퍼런스에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강의를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놀랐다.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 강의한 내용들은 내가 픽사에 있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많이 가져오려고 노력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지식을 공유한다는 건 너무나 좋은 일 같다. 사람들이 같이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니 님도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
픽사는 인터내셔널한 창작집단이다. <업>의 러셀과 같은 동양인 꼬마 캐릭터가 영화에서 등장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픽사는 미국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인터내셔널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의견이 반영되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모두 다 픽사의 좋은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달콤한 막대사탕처럼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풍선이 한 가득 하늘을 메운다. 푸른 잔디가 자라는 작은 정원 위로 떠오른 아담한 집 모양 그림자가 드리운다. 방 안에 앉아 비행선을 타고 세계를 모험하는 꿈을 꾸던 소년의 상상처럼 집이 날아오른다. 빌딩 숲을 지나 구름을 스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집을 타고 모험을 시작한다. <업>은 거짓말 같은 꿈을 진담처럼 그려내는 작품이다. 내려앉은 집 안에서 하늘을 날아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하는 모험을 꿈꾸던 소년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자신의 피앙새와 다짐했던 꿈을 띄운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집. 꿈은 이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집단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픽사(PIXAR)’의 1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업>은 수많은 풍선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집과 그 집에 사는 노인, 그리고 그 집을 찾은 소년의 모험담이다. 세계에서 유래 없는 성공담 <라따뚜이>와 우주 최강의 SF로맨스 <월-E>까지, 픽사의 근작들은 CG 애니메이션을 회화적 경지로 끌어올렸다 해도 손색이 없는 장관의 이미지를 전시하고 탄탄하고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을 통해 수려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픽사의 1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업>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모험담이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작품이다.
비행선을 타고 파라다이스 폭포로 떠난 모험가 찰스 먼츠를 동경하던 소년 칼 프레드릭슨은 마찬가지로 모험을 동경하는 소녀 엘리를 만나게 된다. 우정으로 시작된 소년, 소녀의 인연은 로맨스로 거듭나고 백년가약의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결혼 후에도 파라다이스 폭포로의 모험을 기약한 채 꿈을 저축해나가던 칼과 엘리는 먹구름처럼 일상으로 끼어드는 예측불허의 일상 속에서 꿈을 미루고 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저금통을 부수고 또 부수다 얼굴 가득 세월의 흔적만 고스란히 쌓아나간다. 칼의 유년시절에서 출발해 칼과 엘리의 서사를 압축한 무성 시퀀스를 지나 노년이 된 칼의 모습에 다다르는 <업>은 비로소 본격적인 말문을 연다.
칼과 엘리의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여정을 간략하게 넘겨가는 무성 시퀀스는 짧은 순간에 진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농축시킨다. 그 짧은 서사는 <업>의 서사를 본격적으로 부양시키는 풍선과도 같다. 풍선에 매달린 채 하늘로 떠오르는 집이라는 비현실적 광경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건 그 광경 자체가 주는 동화적 아름다움, 혹은 그 광경을 둘러싼 실제적 풍경의 생생함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상황을 이루기 위한 인물의 결심이 설득력 있는 진심을 전달하는 덕분이다. 비현실적인 동화적 소재에 감정적 색채를 입히고 스토리에 현실성을 주입함으로써 영화를 부양시킨다. 짧은 순간만으로 뚜렷한 정서적 감동이 각인된다.
사별한 부인과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모험을 결심하는 칼과 우연찮게 이에 합류하게 된 탐사대 소년 러셀을 중심으로 전진하던 모험담은 말하는 개 더그를 비롯해 희귀 새 케빈까지 끌어안으며 예상 경로를 이탈해나간다. 사실상 <업>의 서사는 명확한 만큼 단순하다. 하늘을 나는 집을 타고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하는 칼과 러셀의 여정을 입체적으로 수식하는 건 재기발랄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다.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집, 그리고 풍선처럼 떠오른 집을 몸에 매달고 다니는 인물들, 통역기를 부착한 덕분에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개 등, <업>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차례로 등장시키며 창의적인 설계도면을 마련한다. 모험을 동경하던 유년시절을 잊지 않은 노인의 모험담은 요리하는 쥐의 성공담이나 미래로봇들의 로맨스만큼이나 순수하고 창의적인 스토리와 세계관을 품고 있다. 동심 어린 소년의 꿈처럼 순진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재기 발랄한 유머, 형형색색의 캐릭터로 치장한 스토리는 달콤하면서도 풍요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 역시 <업>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이다. 알갱이 하나하나에 컬러를 입힌 듯 다채롭고 선명한 색감을 자랑하는 포도 모양의 풍선이 푸른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오르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탐스럽다. 자연적인 색채 감각과 사실적인 이미지를 누비는 캐릭터들은 그 활약상만으로 실사적 현장감과 만화적 개성을 아우른다. 한편 픽사에서 최초로 제작한 3D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업>은 사실상 3D기술을 시각적 자극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단 이미지의 표현방식으로서 수용한다.-여기서 '3D'란 단지 3D렌더링 과정을 통해 공간감을 획득한 CG애니메이션을 손쉽게 지칭하기 위해 국내에서 와전된 형태로 통용된 '3D 애니메이션'이란 용어와 다른 의미인 입체 상영 방식의 3D영화를 지칭하는 의미로 활용됐다.- 즉물감을 부르는 입체효과를 관객의 시각적 눈요기로서 내보내기 보단 공간감을 확보하고 이야기의 생동감을 보좌하는 촉매로서 장치한다. 매 작품마다 이야기를 최우선의 가치로 우대하는 픽사의 모토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산업의 새로운 개척지로 지정된 3D 애니메이션의 세계관 안에서 더욱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업>은 그 방향성을 짐작하게 하는 나침반이나 다름없다. 또한 <업>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한국어 더빙의 사례로 꼽혀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외국산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의 한국어 더빙이 대부분 아동들을 배려한 결과물에 불과한 것과 달리 <업>의 더빙은 되레 또 다른 형태의 매력을 가미했다 해도 좋을 만큼 탁월하다.
순수한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뿐히 날아오르는 <업>은 선명한 꿈을 꾸는 영화다. 현란한 스펙터클도, 빠른 속도감도, 대단한 긴장감도, 거대한 스케일도, <업>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업>에 엄지손가락을, 아니, 두 손을 번쩍 들어 지지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실로 투명한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유년시절의 모험을, 순수했던 한 시절에 가능했던 상상의 나래를, 지극히 순수하게 눈 앞에 그려낸다. <업>은 감동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증명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픽사는 또 한번 관객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선물한다. 사랑할 수 있는 영화를 선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고백을 부끄럽지 않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 바로 픽사가 지닌 로맨틱한 재능이다.
일 때문에 바쁘기만 한 부모의 무관심이 원망스러운 코렐라인(다코타 패닝)은 새롭게 이사온 집을 구경하던 중 작은 문을 발견한다. 벽으로 막혀있던 문을 기이하게 바라보던 코렐라인은 결국 그 문이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임을 알게 되고 그 곳에서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인형 눈의 부모를 만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인형눈을 한 그 곳은 코렐라인을 위한 모든 것이 마련된 세계다. 일에 매달리는 진짜 부모와 달리 가짜 부모는 코렐라인에게 헌신적이고 자상하다. 하지만 단추를 단 눈은 때때로 기괴하며 음침한 예감을 부른다.
인형을 새롭게 봉제하는 바느질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출발하는 도입부는 인형과 바늘의 이미지를 통해 순수함과 불길함이라는 양면성을 재단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하, <코렐라인>)의 상상력을 온전히 대변한다. 팀 버튼의 원작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 <크리스마스 악몽>의 헨리 셀릭 감독의 새로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코렐라인>은 <크리스마스 악몽>만큼이나 불길하고 순수한 악몽의 세계다. 세계적인 작가 닐 게이먼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코렐라인>은 동화적 세계관을 구술하는 텍스트를 표현력이 풍부한 이미지로 치환하고 새롭게 각색한다.
닐 게이먼이 창작한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완성된 <코렐라인>은 이미지만큼이나 독창적인 세계관을 품은 스토리텔링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다.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코렐라인이 현실로부터 느끼던 결핍을 우연히 발견한 비밀의 문 너머의 충족시켜나간다는 사연은 오늘날 어린이들을 고립시키는 어른들의 무관심과 맞닿아있으며 이에 대한 부모들의 책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계몽적이다. 그러나 마치 음침하게 변주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판타지 버전같기도 한 <코렐라인>은 자연적이고 순수한 동화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괴하고 음흉한 괴담의 기운을 그려넣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을만 하다.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며 현실 안에서 결핍을 쌓아나가던 코렐라인이 우연히 발견한 비밀의 문 너머의 세계에서 부모와 빼 닮은 단추눈의 부부를 만나 그들이 제공한 환상적인 공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과정은 순수한 아이들의 꿈을 대변한다. 그러나 친부모 몰래 매일같이 비밀의 문을 건너 대리만족을 만끽하던 코렐라인의 미소는 점차 위협적 예감으로 일그러진다. 단추눈의 불길함이 흉악한 송곳니를 드러내는 순간, 동화적 모티브에 가려 있던 악몽의 채색이 짙어진다. 코렐라인의 긴장감이 이미지를 타고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이된다.
상반된 공간의 특성을 대변하는 대비적 이미지는 <코렐라인>의 세계관을 수식하는 미사여구로서 탁월한 기능성을 발휘한다. 특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틀에 3D입체영상의 날개를 단 이미지는 기능적인 효과보단 입체적 감각 그 자체가 중시될만한 독창적인 이미지의 카니발을 선사한다. 스톱모션의 분절된 연속성은 물리적인 입체감을 구현하는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보존한다. 물리적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비주얼은 호러적인 긴장감을 연출하거나 캐릭터의 심리적 두려움을 생동감 있는 물리적 형태로 반영하는데 있어서도 효과적이다. 다만 아동 취향의 동화적 색채가 강한 소설을 원작으로 두는 만큼 이야기의 기본 맥락은 지극히 단순하고 지극히 교훈적인 결말도 상투적인 감상을 부른다. 이미지의 입체감에 비해 스토리의 평면성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코렐라인>은 수공예적인 제작방식만큼이나 풍부한 감수성으로 이뤄진 이미지의 체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통해 완벽한 인공적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요즘의 애니메이션의 월등함을 제치고 <코렐라인>의 진보된 투박함을 권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동화와 판타지를 아우르는 순수한 상상력이 황홀한 이미지의 날개를 달고 악몽의 카니발을 선사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이 황금비율을 이루는 <코렐라인>의 황홀경은 감성적 체온이 느껴지는 기술의 진보를 설명할 수 있는 성과 그 자체다.
한국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이번이 8번째 방문이다. 한국에 오는 건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드림웍스(Dream works)의 초창기 투자 멤버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마치 가족을 방문하는 느낌이다.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흥미와 이해가 어느 정도 인가?
한국시장에 대한 특이점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이 국제적으로 탑 텐 시장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시장의 특성 중 하나는 영화 제작과 영화 상영 모두가 매우 중요한 시장이란 점이다. 한국영화 산업기반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자체가 성공적으로 제작되고 외국영화들도 한국시장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올린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매우 건실한 영화 산업과 시장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예슬 씨가 한국에서 더빙을 맡았는데 목소리 연기자 섭외에 직접 관여했다고 들었다. 캐스팅 기준이 궁금하다. 그리고 한예슬 씨를 실제로 만났는데 인상이 어땠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은 47개 언어로 더빙된다. 우리가 목소리 캐스팅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목소리의 멜로디다. 한예슬 씨는 훌륭한 배우이기 때문에 그 배역을 충분히 연기로서 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멜로디가 아름답기 때문에 이 역할에 가장 접합했다. 물론 목소리만큼이나 인물도 출중하더라. (웃음) 유머 감각도 빼어난 편이다. 게다가 지금 캘리포니아에 가족도 있고, 본인도 거주한 경험이 있어서 이에 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몬스터 vs 에이리언>(이하, <몬스터>)에 사용된 ‘인트루 3D(Intru 3D)’란 어떤 기술인가.
우리가 3년 전 즈음에 발견한 첨단기술로서 우린 이것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앞으로 모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이 기술로 제작하자고 결정했다. 과거엔 3D를 놀이공원에서 체험하는 매체로 생각했다면 이젠 이 새로운 기술이 3D를 영화상영체험과 영화제작방식에 혁신을 부를 것이라 예상한다. 우리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영화체험 자체를 바꿀 것이라 생각한다. <몬스터>가 이런 기술력을 활용한 첫 작품이 됐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번 보는 것이 천마디 보다 낫다는 말처럼 아마 내가 하는 삼천 마디보다 한번 직접 체험해보는 게 나을 거다.
드림웍스와 마찬가지로 경쟁 스튜디오라 할 수 있는 픽사(PIXAR)에서도 3D 애니메이션 제작에 착수할 것이라 밝혔다. 3차세대 매체로서 주목받고 있는 3D영상의 산업적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3년 반 전에 우리는 <폴라 익스프레스>를 아이맥스 3D로 제작했다. 그때 이 기술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적인 방향성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제작사들이 3D로 영화를 촬영하거나 제작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피터 잭슨’, ‘폭스(FOX)’, ‘디즈니’, ‘픽사’ 등 수많은 제작자나 제작사에서 3D를 활용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3D 기술의 미래가 상당히 밝지 않은가 생각한다.
당신이 말한 <폴라 익스프레스> 아이맥스 3D를 3년 전에 봤을 땐 눈이 많이 피로했다. 이번에 본 <몬스터>은 확실히 그런 불편함이 경감된 느낌은 있었다. 말한 것처럼 이번에 본 3D는 몇 년 전에 봤던 3D보다 훨씬 혁신적으로 개선된 상태다. <몬스터>는 고품질 디지털 영상으로 상영된다. 좌우 대칭이 이루어지고, 흐릿한 화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의 안 좋았던 부분이 최대한 개선했다. 이 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의 이미지와 함께 스크립터나 스토리텔러들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아마 1년 후에도 오늘을 되돌아보면 지난 1년 간 3D 기술이 많이 발전됐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이렇게 앞으로도 몇 년간 3D 기술이 계속 혁신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한다.
한국인을 비롯해서 전세계의 재능 있는 인력들이 드림웍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드림웍스가 인재를 선발하는데 있어서 국적이나 문화적 제약이 없다는 건 얼마나 큰 장점이 되는가?
지금 1700명의 아티스트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이중 매우 재능 있는 한국 아티스트들도 많다. 그 뿐만 아니라 기술자와 애니메이터도 많으며 그 중 드림웍스에서 배운 기술을 한국에 와서 나누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드림웍스를 애니메이션의 U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35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지금 드림웍스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방방곳곳에 있는 인재들이 지금 드림웍스에서 근무를 해주는 덕분에 우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3D기술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차별화시키는 전략이 될까?
3D이전에 우리는 이미 차별화된 회사라고 생각한다. 영화 한편에 1억 5천만 불 정도 규모의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실질적으로 세계에서 한두 곳 정도밖에 없지 않나.
작년에 개봉된 <쿵푸팬더>는 2D애니메이션이지만 큰 인기를 모았다. 2D애니메이션의 시장성이 여전한데 3D애니메이션과 병행할 생각은 없나?
병행하진 않을 거다. 모든 영화는 처음부터 3D로 제작될 거다. 다만 현재 대부분의 극장이나 가정 DVD로는 3D영화를 볼 수 없다. 그런 상영관과 가정을 위해서 원래 3D로 제작한 영화를 2D로 출시할 예정이다.
2D애니메이션을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데 부가되는 비용은 얼마나 되나?
3D로 제작하는데 추가적으로 드는 비용은 1500만 달러 정도, 전체비용의 약 10%정도가 더 들어간다.
3D애니메이션에 주목하는 건 그만큼 시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3D영상을 보기 위해선 물리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 많다. 특히 홈 비디오 시장에서 3D애니메이션은 현재 무용지물 아닌가.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하고 있나?
홈씨어터를 통해서 3D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TV모니터에서도 3D영상이 구현되고 편광안경으로 이를 관람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중이다. 실제로 안경제작사에서도 3D전용안경을 제작한다고 들었다. 미래에는 아마 관객들이 자체적으로 자신만의 영화안경을 갖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실제로 선글라스를 제작하는 회사 ‘오클리(OAKLEY)’에서 개발하는 안경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할 땐 그냥 편광선글라스지만 영화관 실내로 들어와서 영화를 볼 땐 3D전용안경으로 자동 전환되는 안경을 제작중인 걸로 알고 있다. 지금 밖에 나가서 선글라스를 쓰듯이 극장용 안경을 쓰는 시대가 올 거라 기대하고 있다.
3D는 현재 시청각적 자극에 있어서 최종적인 단계에 가깝다. 혹시 그 다음단계라 할 수 있는 공감각적 자극을 활용한 단계로서의 개발을 생각하진 않나? 예를 들면 의자가 움직인다던가.
그런 단계까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공감각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관객들이 이를 지나치게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3D를 사용하는 건 관객이 스토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가 나가서 실제로 뭘 만지거나 이동시키면 관객 자체가 거기에 너무 의식해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거라 생각한다. <몬스터>이 시작될 때 라켓에 달린 페더볼(featherball)이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장난을 쳤다. 그리고 그 다음부턴 그런 장난을 하지 않았다. 거기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런 것도 가능하지만 <몬스터>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이런 특수효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효과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관객을 스토리로부터 탈피시키기 때문에 효과마저도 하나의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 놀이공원에서는 그런 것이 적용돼도 상관없겠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적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주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운석이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결혼식 날 거인이 된 수잔(리즈 위더스푼, 한예슬)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지하기지에서 선배(?) 몬스터들과 함께 ‘거대렐라’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채 격리된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계로부터 정체불명의 거대로봇이 또 미국 땅에 떨어져(!)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전군이 동원됐지만 거대로봇에게 맞서긴 역부족이다. 결국 비밀리에 격리돼있던 몬스터들이 출격한다. ‘거대렐라’가 된 수잔과 함께 미씽 링크와 닥터 로치, 밥은 작전에 성공하면 자유로운 신분을 주겠다는 워 딜러 장군(키퍼 서덜랜드)의 약속과 함께 거대로봇을 제압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다.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박진감 넘치는 SF액션물의 외피가 예상돼지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나사 빠진 캐릭터들의 우스꽝스러운 행위와 대사를 통해 유머로 발생시키는 스크루볼 코미디에 가깝다. 특히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라는 혈통을 입증하듯 의인화된 몬스터 캐릭터들이 해학적인 위트를 구사한다. 스토리 라인 자체는 결과적으로 단조로운 것이 사실이다. 주지하는 정서적 감흥이 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식상한 스토리는 어떤 면에 있어서 <몬스터>의 야심에 어울리는 배경이다. 인간을 위협한다고 믿었던 몬스터들이 지구를 구하고, 되레 인간의 혐오를 극복하며 슈퍼히어로에 버금가는 존재로 변태되는 성장스토리엔 나름대로 제 크기에 걸맞은 의미가 있다. <몬스터>의 야심은 심오한 스토리텔링과 어울릴만한 것이 아니다. 스토리는 조연에 가깝다.
주연은 영상이미지다. ‘인트루 3D(Intru 3D)’라 지칭되는 3D영상기술을 통해 구현된 입체적 영상이 <몬스터>의 야심 그 자체다. 시각적 기술의 진일보를 통해 새로운 차세대 엔터테인먼트의 자극을 체험하고 만끽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일수록 이미지는 단명해진다. 거대로봇과 맞서는 몬스터들의 에피소드는 거대한 사물의 등장을 통해 스케일을 넓히고 스펙터클을 확장하려는 기술적 성취의 전시적 욕망의 부산물에 가깝다. <몬스터>는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킨 3D영상의 엔터테인먼트적 자질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알리는 현대의 지표란 점에서 일단 흥미롭다. 이미 역치의 수준이 실무율의 단계에 들어선 영상의 오락적 기능성을 대체할 입체영상의 현대적 지표가 어느 수준에 다다랐는가를 증명하는 기술적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몬스터>는 되레 자신의 야심과 다른 지점의 사실을 증명하는 영화 같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담보로 한 혁신적인 이미지를 장착하고 있다 해도 그것이 어떤 수준 이상의 이야기와 함께 맞물리지 못한다면 영화적 만족도를 주지 못한다는 것. 뛰어난 효과는 뛰어난 영상의 기반이 되지만 그것이 영화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창작적인 스토리를 기반으로 삼지 못한 이미지는 결국 영화로서의 가치에 도달할 수 없다. 때때로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인상적인 매력이 있지만 그것 또한 <몬스터>를 권할 만큼 강력한 매력이라 정의 내리기도 쉽지 않다. <몬스터>는 창작과 기술의 조합에 있어서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우주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운석은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거인이 된 수잔(리즈 위더스푼, 한예슬)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지하기지에 격리된 채 ‘거대렐라’라 불리며 선배(?) 몬스터들과 조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나 외계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거대로봇이 또 미국 땅에 떨어져(!)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비밀리에 격리돼있던 몬스터들이 출격한다.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박진감 넘치는 SF액션물의 외피가 예상돼지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라는 혈통을 입증하듯 나사 빠진 캐릭터들의 행위와 대사를 통해 위트를 유발하는 해학적 작품이다.
주지하는 정서적 감흥이 뻔한 수준을 맴돌지만 단순하다고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의 스토리까진 아니다. 인간을 위협한다고 믿었던 몬스터들이 지구를 구하고, 되레 인간의 혐오를 극복하며 슈퍼히어로에 버금가는 존재로 변태되는 성장스토리엔 나름대로 제 크기에 걸맞은 의미가 있다. 다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그보다 다른 의도가 명확한 작품이다. 스토리는 조연에 가깝다. 주연은 ‘인트루 3D(Intru 3D)’라 지칭되는 3D영상구현기술을 통한 시각적 자극의 진일보를 체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속성이다. <몬스터>는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킨 3D영상의 엔터테인먼트적 자질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알리는 현대의 지표란 점에서 흥미롭다. 다만 그 자극이 뛰어난 창작력을 기반으로 삼지 못했을 때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때때로 블랙코미디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들이 귀엽지만 그것이 이 영화를 권할 만큼 강력한 매력이라 정의 내리긴 쉽지 않다. 기술도 과도기지만 이야기 수준도 과도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