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거북이의 노래를 좋아하게 될 것이란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제목조차도 명확히 모르는 그들의 노래가 종종 귓가에서 맴돌았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물론 그들의 노래가 조금 싸보여서가 아니란 말도 못하겠다.

그 단순한 후렴구가 질릴 정도로 단순해서가 아니란 말도 못하겠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건 그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노래를 즐겨듣진 않았지만

단순하면서도 발랄한 거북이의 노래가

가끔은 너무나도 익숙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가 쉽게 지겨워져서 즐기지 못했을 뿐,

그들의 행위 자체에 어떤 관념적 비하를 섞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거북이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던 가수도 아니었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던 가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북이의 리더인 터틀맨의 죽음은 왠지 모르게 숙연했다.

사실 난 그가 터틀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그가 속한 그룹의 이름을 마치 그의 이름으로 호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건 나뿐만은 아닌거 같다. 모 기자 선배가 나에게 거북이가 죽었다고 네이트온으로 알려올 때, 난 그 순간에도 그래서 누가 기르던 거북이를 생각했으니까. 그래, 그건 나뿐만 아니었던 거다. 그런 면에서는 조금 다행이다.


난 연예인을 공인으로 직결시키는 관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단지 유명세를 탄다고 해서 공인이라는 개념은 인정할 수 없으니까. 그건 마치 그들에게 전근대적인 강압의 감투를 씌우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유명세가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종종 그들의 죽음을 기사로서 접하게 되는 순간이다.


연예인의 죽음이란 건 좀 묘한 감상을 부른다.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정체불명의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고야 만다.

어떤 인간적 관계를 맺지 못했음에도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부고는 이상한 허망함을 부르고야 만다.

물론 모든 인간의 죽음은 삶에 대한 허망함을 고찰하게 만든다.

어떤 인생도 죽음을 비켜갈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는 누구나 한번씩 겪어야 하는 실증과도 같은 거니까.


어쨌든 그가 끝까지 테이프 음반을 고집했다는 걸 그가 죽어서야 알았다.

그 이유도 그의 골수팬들의 상당수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직업 운전사들이기 때문이란 것도 그가 죽어서야 알았다.

나처럼 고상한 척하는 사람은 언제나 뒤늦게 이런 이야길 들으면 역시나 감동받은 척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족을 돌아왔지만 그냥 고인의 명복을 빈다.

터틀맨이든, 임성훈이든, 누군가에게 즐거운 노래를 들려준 당신의 명복을 빈다.

물론 난 당신의 노래를 여전히 좋아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당신이 적어도 나보단 의미있는 인생을 산 것 같다고 인정하련다.

수고했다고, 그냥 이 말 한마디 전해주고 싶어서 뒤늦게 지나간 길에 인사남긴다. 잘 가라고.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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