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이하, <공작부인>)과 비슷한 사례를 현대에서 색출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불륜치정을 다루는 '사랑과 전쟁'과 <공작부인>은 기본적인 골조가 비슷하다. 시집온 여자의 남편이 난봉꾼이고 이에 자극 받은 아내는 맞바람을 핀다는, 치정에 얽힌 부부의 갈등과 대립은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의 형식으로 줄곧 소비되는 전형적 양식이다. 하지만 <공작부인>이 두른 시대상에서 여성의 위치는 '사랑과 전쟁'과 같이 불륜 스캔들을 다룬 오늘날의 그것들과 현저히 다른 지점이다. 고로 같은 소재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주제 양식이 판이하다.
아만다 포맨의 소설 '조지아나, 데본샤의 공작부인'을 원작으로 한 <공작부인>은 18세기 영국의 실존인물을 대상으로 둔 작품이다. 최고의 권력과 부를 지닌 데본셔 공작(랄프 파인즈)과 결혼한 공작부인 조지아나(키이라 나이틀리)가 그 주인공으로 그녀는 정치와 문화 전반에 걸친 영향력을 행사한 사교계의 거물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작 혹은 실화가 영화에 끼치는 영향력은 염두에 두지 않아도 상관없다. <공작부인>은 한 여인의 삶을 통해서 어떤 가치관을 끌어내는 것보다도 그 여인의 삶 자체를 응시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드라마를 재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 여인의 구차한 삶이 시대에 대한 회의를 내포하고 있음은 확실하나 <공작부인>은 그 시대를 고발하기보단 그 시대에 몸을 담고 있는 여인의 태도에 주목한다. 어느 순간 통속적인 로맨스처럼 보이기도 하는 만큼 과감한 결말을 통해 비극적 감상을 고취시킬 가능성도 충분한 이 영화가 되려 무덤덤하게 인물의 심리를 그려내는 것도 한편으론 의외적인 측면이다. 비극적이거나 비범하게 포장될만한 상황에서 영화가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인물의 선택이다. 현대적 관점을 부여함으로써 영화에 주제의식을 인위적으로 삽입하기 보다 시대적 취향을 수용하는 여성의 태도를 통해 그 시대의 현실상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조지아나의 선택은 이 영화의 관점을 손상시키지 않음과 동시에 영화의 외부에서 효력이 발생할 시대읽기에 대한 욕심을 충족시킨다.
고풍스런 이미지들이 전반적으로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마치 고전주의 양식의 그림처럼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18세기 영국의 다양한 풍경과 귀족들의 호사스런 문화는 단지 눈으로 영화를 즐기는 것 자체를 허락하는 기분이다. 물론 <공작부인>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지점은 남성권위주의적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자기 권리를 획득해나가는 과정이다. 단지 가문의 후손을 낳기 위한 씨받이의 도구로 취급 당하던 여성이 쾌락을 경험하고 진정한 로맨스를 찾아 떠나지만 모성애의 의무에 저항하지 못하고 투항하는 과정은 격렬하지 않지만 굴곡이 깊다. 결국 조지아나는 한 개인으로서 사회적 구속력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해 여성으로서 자립한다. 통속적인 방식으로 통속을 차버리는 쾌감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