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흉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몇 주 동안 가판대에서 보이지 않고 있는 어느 주간지에 대한 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해를 넘기고 신년이 되면 출판될 거란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새해가 밝아도 그 주간지는 보이지 않았다. 주간지가 한 달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중이다. 가히 치명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8주년 기념호를 낸 직후부터였다. '필름2.0'은 그렇게 침전하고 있다. 인쇄 과정의 문제라고 둘러대던 답변도 인쇄 대금의 부족을 고백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한 시대의 획을 그었다 할만한 영화 전문지 하나가 시장에서 점멸하듯 기울어간다. 물론 아직 스스로 선언하지 않은 끝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다. 하지만 시장에서 모습을 감춘 어느 잡지의 끝을 예감하는 소문엔 범상치 않은 기시감이 덧씌워진다. 공공연하게 떠도는 소문 너머로 드리운 그림자는 꽤나 낯익은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드라마 전문지를 표방한 '드라마틱'은 지난 해 2월을 끝으로 무기한 휴간을 결정했다. 산소호흡기를 떼지 않았지만 뇌사 진단이 떨어졌다. 미드와 일드의 국내 저변이 넓어지고 국산 드라마의 제작이 활기를 띠는 가운데 드라마 잡지의 가능성에 담보를 잡았다. 영화나 음악과 달리 드라마에 대한 담론이 전무하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시도는 고무적이었다. 독보적인 시장 개척이 가능하다 여겨졌다. '드라마틱'은 격주간 발행으로 시작됐지만 월간 발행으로 궤도를 수정했고 끝내 운행을 멈췄다. 길은 열려있었지만 연료가 부족했다. 수익에 발목을 잡혔다. 컨텐츠에 대한 열의만으로 자본의 무심함을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작년 말, 장르문학을 표방하던 '판타스틱'이 휴간됐다. 폐간되는 것 아니냐. 소문이 분분했다. 한 달 동안 자취를 감췄던 잡지가 익월에 출간됐다. 하지만 불운한 소식이 연이어졌다. 일년 열두 달마다 발간되던 잡지의 발행일이 연중 네 번으로 줄었다. 월간지가 계간지가 됐다. 기사회생을 위한 일말의 선택이었다. 소설과 만화가 연재되는 장르잡지가 세 달마다 돌아온다는 건 가혹한 일이다. 척박한 국내장르문화의 토양 속에서 '판타스틱'은 일종의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장르 팬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비주류의 소수감성이 한데 뭉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자본이었다. 광고가 붙지 않았다. 자본은 새로운 문화적 시도에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TV라는 매체비평을 통해 다양하고 획기적인 컨텐츠를 생산하던 '매거진T'도 새로운 움직임의 한 축이었다. 기사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댓글의 양이 독자들의 애정을 확인하게 한다. 어느 포털 사이트마다 밑도 끝도 없이 악랄하게 인신 공격을 퍼붓는 악플러도 보이지 않는다. 순수하게 컨텐츠를 즐기고 의견을 교류하고 매체에 대한 애정을 남긴다. '매거진T'는 현재 버려진 땅처럼 황량해졌다. 더 이상 기사도 댓글도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매거진T'를 채우던 일원들은 새로운 스폰서를 찾았으나 갈등을 빚었고 결국 기존의 집을 버리고 새집을 장만했다. '매거진T'를 버리고 '텐 매거진'을 꾸렸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 사이 주인을 잃은 집은 황폐해졌다. 손님을 맞이하는 건 새로운 컨텐츠가 아니라 백신에 감지되는 트로이목마다. 버려진 집기처럼 묵어가는 컨텐츠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흉측하게 자리잡고 유저를 급습한다.
'키노'의 폐간은 상징적이었다. 영화 담론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그 뒤로도 몇몇 영화지가 시장을 선도하고 온라인 영화 사이트가 성장했지만 자본의 논리에 예술적 담론이 무너지는 형국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상징적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키노'의 온라인 자매지에 가까운 '엔키노' 역시 '키노'의 폐간 이후 3년이 지나서 사이트가 폐쇄됐다. CJ는 '엔키노'를 인수했지만 컨텐츠를 수급한 뒤 과감히 경영을 포기했다. 거대한 자본을 다스리는 대기업에게 있어서 '엔키노'는 수익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는 작은 부서에 불과했다. 문화적인 언어의 존명은 중요치 않았다. '엔키노'의 몰락은 여타 영화 사이트의 어려움을 대변한다. 한때 군소 영화사이트들은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파이를 키웠다. 하지만 거대한 포털사이트들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영화사이트의 파이는 눈에 띄게 줄어갔다. 결국 시장 장악력이 떨어질수록 수익은 악화됐다. 컨텐츠의 질적 하락을 부추겼고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대중문화에 대한 담론은 점차 낡고 고루한 것이 됐다. 오프라인에서 문화적 언어가 남루해지는 사이, 온라인에선 수많은 말들이 찰나를 오간다. 블로그를 장만하며 인터넷에 입주한 개개인은 저마다의 익명을 내걸고 자신만의 사념을 축적한다. 여기저기 발길을 돌리며 부지런히 발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크건 작건 제각각 목소리를 내고 서로 뒤엉켜 굴러가다가도 무심히 지나친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고유의 아이디로 접속한 대중들은 저마다의 주파수를 개설해 자신들의 생각을 송신한다. 저마다 뒤엉킨 생각들이 어지럽게 나열되고 뒤섞인다. 서로 자신의 생각을 트랙백으로 걸고, 링크를 달며, 댓글로 남긴다.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데 여념이 없다. 언어의 바다가 형성되는 것 같지만 개개인의 사유화된 생각이 첨탑처럼 솟아오른다. 거대한 논의의 장이 형성되기 보단 개개인의 각축전이 활발하다. 논의보단 주장이 첨예하다.
포털사이트의 메인화면에 종속된 언론은 언어의 가치를 급속하게 몰락시켰다. 정보의 우열보단 속도전이 중요해졌다. 포털사이트가 뉴스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신문을 펴는 대신 모니터를 켰다. 실시간으로 세상의 소식이 빠르게 전해졌다. 정보의 질적 가치는 중요치 않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는 언어의 선택이 중요하다. 언어가 가벼워졌다. 짧고 굵은 언어들이 난무한다. 대상에 대한 표피적인 판단이 압도한다. 언론에게 뉴스 공급을 사주하던 포털사이트는 이제 을이 아니라 갑이다. 신문이 시장을 잃어가는 사이 포털사이트는 시장을 독점했다. 남의 안방을 넘보다 자신의 안방을 잃어버린 언론은 머슴살이가 한창이다. 포털사이트가 메인화면에 인심 쓰듯 기사를 올려주면 마냥 고마워해야 할 따름이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화면을 장식하는 뉴스의 팔 할이 연예인에 대한 가십으로 도배됐다. 사람들은 연예인에 대한 왈가왈부에 손가락을 쉽게 허락했다. 재미를 본 언론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값싼 컨텐츠를 쏟아냈다. 질적 우열과 무관하게 동일한 장소에 진열된 정보들의 가치는 일정하게 하향 평준화됐다. 하나같이 그저 그런 정보로 도매금처럼 취급 당했다. 언어의 가치를 스스로 몰락시킨 언론의 자충수는 신뢰의 기반을 잃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대세가 됐다. 비평은 말장난처럼 따분해졌다. 날카로운 분석이나 섬세한 비유는 인기스타 사진 한 장 앞에서 무색해졌다. 스크롤의 압박 속에서 텍스트에 대한 인내심은 사라졌다. 그 와중에 개개인의 주장들이 난무한다. 저마다 옳은 소리를 내며 분열해 나간다.
시청률 30%를 넘긴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막장 드라마라 불린다. 대중 가요는 아이돌 그룹의 경연장이 됐다.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지만 맥을 짚어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 대중문화에 대한 담론의 영토가 상실되니 언어의 주체도 함께 소멸한다. 짧고 자극적인 텍스트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긴 호흡의 언어가 지겹다. 자연히 진지한 논의가 무색해진다. 문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어려워지는 만큼 문화적 담론을 언어로 생산하는 대중문화저널들이 궁핍해진다. 물속에 산소가 부족하면 금붕어는 뻐끔거린다. 생존을 위한 신호를 보낸다. 대중문화저널의 위기는 대중문화 위기의 신호다.
자본의 논리로 모든 것이 선택되고 수급된다. 자본의 선택에 따라 양산된 컨텐츠는 결국 과도한 팽창으로 이어지고 소멸된다. 돈 되는 댄스 가수 일색으로 무대를 채우던 대중가요가 시장을 잃은 것도 자본에 휘둘린 까닭이다. 대중가요에 대한 언어는 무력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비슷한 양상이다. 예술적 가치가 무마되고 자본의 횡포가 도외시될 때 대중문화는 급격히 퇴보한다. 대중문화에 기생한 저널들이 여기저기서 난립한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도하고 소문을 퍼뜨리는데 여념이 없다.
창작자가 생산한 컨텐츠에 대한 언어도 일종의 예술이다. 작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견지되고 새로운 시선을 부여할 때 넓고 깊은 유희가 발생한다. 대중문화저널은 단순히 대중문화를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다. 대중문화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반자로서 공존할 때 명분이 선다. 오늘날 대중문화저널의 위기는 언어의 가치가 상실되는 가운데 대중문화저널의 존재가치를 망각하는 데서 온다. 대중문화를 씹어 뱉기보다 되새김질하고 곱씹을 때 대중문화저널에 힘이 실린다. 점점 힘이 부친다. 대중문화를 팔아먹는 언어가 진지한 담론을 벼랑으로 밀어내고 있다. 정작 그것이 자신들의 시장을 몰락시키는 하나의 형태가 될 것임을 그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프리미어)
'cultur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81회 아카데미 수상후보작 발표 (0) | 2009.01.23 |
---|---|
<원스>음악과 함께 영롱하게 빛나는 투명한 기억의 공간 (0) | 2009.01.20 |
제66회 골든글로브 수상작 총망라 (0) | 2009.01.13 |
캐릭터 열전 노덕훈 & 강철중 (0) | 2008.12.30 |
텍스트의 위기 (3) | 2008.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