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혈이 선명한, 상흔이 뚜렷한, 공포에 질린 소녀가 공장지대에서 발견된다. 신체 곳곳에 학대의 흔적이 가득한 소녀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다. 소녀가 발견된 공장지대 건물 내부엔 가학적 증거들이 즐비하다. 의문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과연 그 안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큐적 질감의 영상 너머로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연이 펼쳐진다. 본격적인 사연은 다시 한번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 의문으로 시작된다.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또 다른 의문을 증폭시키고 좀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물음표의 미로를 만들어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봉쇄한다.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잔혹한 이미지가 전시되는 스크린을 응시할 수 밖에 없는 건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라는 물음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이하, <마터스>)은 실로 잔혹한 영화이기 전에 강한 의문을 발생시키는 영화다.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가학적 사연을 짐작하게 만드는 시작 이후로, 역시나 근본을 알 수 없는 무참한 학살신이 시선을 장악하고 그 지점부터 충격이 고스란히 쌓여나간다. 모든 의문의 주체인 루시(밀레느 잠파노이)가 눈물을 동반한 학살을 자행하고, 정체불명의 괴인으로부터 근본을 알 수 없는 공격을 당하고 쫓기게 되는 순간까지, 관객은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을 공략하는 서스펜스에 난도질 당해야 한다.
쏘고, 베고, 찌르고, 가르는 고문적 이미지가 생생하게 눈앞을 오가는 광경은 치가 떨릴 만큼 잔인한 감상을 부른다. <마터스>가 핸드헬드로 포착한 혼란의 도가니를 통해 캐릭터의 공황적 심리에 동참하고 있다고 믿게 됐다면 공포에 질린 캐릭터의 얼굴을 관찰하는 외부자의 위치를 문득 깨닫고 캐릭터가 내지른 비명과 함께 저만치 다른 편으로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말 것이다. 폭풍우처럼 거세게 몰아치는 서스펜스의 여정이라 할만한 중반부까지의 과정은 장르적 연출 면에서 가히 탁월하다 칭해도 좋을 만한 수준을 일관하는 동시에 극한적인 체험에 가까운 공포를 깊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정체를 드러내는 극악한 세계관은 앞선 시각적 자극을 잊게 만들 정도로 참담한 심경을 안긴다. <마터스>의 본질은 그 지점에서 발효된다.
탁월한 장르적 연출과 극한의 가학적 이미지를 동원한 중반부까지의 과정은 사실상 후반부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수련과 같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편적인 이미지즘의 총합을 통해 전가되는 서스펜스의 즉물적 자극을 넘어서 좀처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품게 만드는 공황적 충격이 엄습한다.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의문에서 시작해 감정을 후벼 파는 서스펜스가 거칠게 휘몰아치고 나면 후두부를 강타하듯 충격적인 세계관이 머리를 들고, 밑도 끝도 없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된다. <마터스>는 불순하게 여겨도 무방할 정도로 극악한 영화다. 의문을 품게 만드는 극단적인 참상이 거칠게 전시되고 나서야 베일을 벗는 끔찍한 세계관의 정체는 결과적으로 그것의 의미에 대한 해석적 빌미를 전혀 제공하지 않으면서 제 스스로 물음표를 파기한다. 그것은 선의의 여운이라기 보단 악의적 도피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대체 뭘 본거냐. 하지만 끝난 영화는 말이 없다. 참혹한 기분과 어지러운 심정이 모든 감정이 휘발되듯 창백해진 심리 안으로 어지럽게 맴돈다.
끝없는 의문 사이로 감탄과 탄식이 명확히 동반되는 <마터스>는 어떤 의미로든 분명 놀라운 영화다. 장르적인 방식 안에서도 뛰어난 연출적 자질을 선보이고,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서사의 저력이 대단하다. 동시에 그 끔찍한 이미지를 전시하는 방식 역시 관습을 잘 따르면서도 창의적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깊게 파고 드는 참담함 너머로 내려앉은 의문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게 좀 마음에 걸린다. 공포를 넘어 극한의 불순함을 선사한다. 그 불순함을 좀처럼 잊을 길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