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단평

cinemania 2008. 9. 23. 01:20

이지형의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원작으로 한 정지우 감독의 <모던보이>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되 좀 더 복잡한 경우의 수를 두며 결말을 철저히 변주했다. 역사적 주관을 가미하되,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신기전>과 같은 국수주의적 천박함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세련된 주의다. 스스로를 낭만의 화신이라 지칭하는 이해명은 원작소설처럼 반쯤 껄렁하고 말도 많지만 실로 그 의지도 대단하다. 김혜수를 연상해보진 않았지만 김혜수가 연기한 조난실도 어색하지 않다. 굳이 원작소설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리 알 필요가 없는 정보일지 모르겠지만 원작에서 변주된 스토리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가장 크게 변주된 건 결말부인데 이해명의 비정치적 자유관념에서 비롯된 시대적 냉소를 얹은 원작의 결말은 시대와 개인의 선택적 갈등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로맨스적 안타까움이 짙은 농도로 첨가된 비극의 형태로 변주됐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해명은 마지막 순간조차도 낭만의 화신으로 분하고 있으니. 다만 설명이 부족하던 조난실에 살이 더 붙었고, 신스케는 원작의 기본 설정을 제외하곤 정반대의 기질을 지닌 캐릭터로 변주됐다. 전반적으로 원작의 굵직한 사건들을 재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종종 그 개연성이 매끄럽지 않은 느낌을 준다는 점은 지적될만하다. 특히 숲 속에서 해명과 난실이 난투를 벌이다 사건이 무마되는 광경은 다소 감정적이라 석연찮다. 차라리 원작처럼 완전한 감정적 충동을 부르는 형태라면 또 모를까. 그럼에도 <모던보이>는 나름 성과를 거뒀다 할만한 작품이다. 때때로 이것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 난 것마냥 제 이름을 밝히는 큼지막한 자막이 거슬리지만 1930년대 경성을 재현한 CG의 거짓풍경도 그럴싸하다. 물론 가장 큰 만족감은 <모던보이>가 민족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서 줄타기에 성공했다 할만하단 점이다. 되려 밋밋한 양상으로 결말을 맞이한 소설의 냉소주의보다도 결단력 있는 영화적 결말이 좀 더 맘에 든다. 어린 시절 일본인을 꿈이라 말했던 낭만의 화신 모던보이는 결국 천황폐하신민이 될 수 없는 꼭두각시의 삶에서 이탈한다. 그 과정만으로도 유쾌함과 처연함이 공존한다. 누가 모던보이를 미치게 하는가. 그건 사랑마저도 냉소하게 만드는 운명이란 원죄다. 조센징이거나 친일파거나, 아니면 망하거나 죽거나.

 

P.S>김혜수의 보컬이 꽤나 훌륭하다. 할리우드처럼 국내에서도 근사한 뮤지컬 영화에 김혜수가 출연한 모습을 상상해봤다. 안무도 노력한 흔적만큼 괜찮은 편이다. 사실 김혜수의 춤은 <모던보이>에서 버라이어티한 이미지가 극대화된 순간이기도 하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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