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얼굴만큼이나 그 표정을 둘러싼 풍경으로 기억되는 영화들이 있다. 그와 그녀의 사연이 담긴, 방이 있는 영화 속 풍경으로 당신을 안내한다.
맘마미아! <맘마미아!>는 전설적인 스웨디시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프를 삼아 기획된 뮤지컬이다. 1999년 런던 초연 이후로 브로드웨이 진출을 거쳐 현재까지 160여 개국에서 공연된 롱런 뮤지컬로 거듭났다. 그림 같은 지중해 가운데서도 백미에 가까운 그리스 해변가를 배경으로 주옥 같은 넘버들이 하나의 러브스토리를 치장하는 이 작품이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기획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상의 뮤지컬 무대가 자아내는 환상을 살아있는 풍경으로 전시해내는 일이었다. 제작진은 촬영 한 달 전부터 최상의 무대를 찾고자 그리스 전역을 뒤졌고,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이 최고의 병풍이 되리라 확신했다. 그 중에서도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진경의 핵심지다. 푸른 지중해를 병풍처럼 두른 스코펠로스 타운은 붉은 지붕을 쓰고 하얀 회벽으로 몸을 감싼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능선을 따라 얼굴을 내밀고 앉아 있는 고지대 마을이다. 온화한 아치형 창문으로 시원한 바닷바람과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는 이 주택들은 춤과 노래의 향연을 위한 천혜의 무대였다.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눈에 띄는 복식 구조의 주택은 경쾌한 가무에 입체적인 동선을 치장한다. 집 안팎 곳곳에 자리하며 일상을 영위하던 인물들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거나 창문을 여닫고 때때로 뛰어내리며 스크린을 역동적인 뮤지컬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그림 같은 카스타니 해변을 비롯해서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세 아버지들과 처음 마주하는 아그논다스, 그리고 소피의 결혼식을 위해 긴 계단을 오르던 도나(메릴 스트립)가 옛 연인의 고백을 애절하게 뿌리치는 아기오스 요다니스 성당,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조망하는 영화 속 그 집에 머무를 수 있다면 스스로 인생의 승자가 됐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만 같다. 영화 속 그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적인 여행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한 여인이 행복을 찾아 나서는 3막 3장 여행기다. 영화는 그 일탈의 경험이 기록된 활자를 영상으로 치환하며 일탈의 충동을 보다 입체적으로 부추긴다. 뉴욕에서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던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그 편안한 삶이 자신을 서서히 풍화시키고 있다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결혼을 비롯해서 손에 쥐고 모든 것들을 과감히 놓은 채 1년 간의 순례를 결심한다. 풍요로운 진미가 넘치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먹고, 명상으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인도의 아쉬람에서 기도한 뒤, 소박한 일상을 영위하며 새로운 운명을 발견해내는 발리에서 사랑하는, 한 여인의 이 모든 여정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자 떠나는 순례나 다름없다. 그 모든 여정의 종착지 발리는 새로운 삶을 위한 약속의 땅이다. 현대적인 물질 문명의 침입이 상대적으로 덜한 발리의 자연적인 경관으로 둘러싸인 리즈의 집은 안온한 인상을 부른다. 목재로 건축된 친자연적인 이 주택 곳곳에 놓인 창과 문은 자연을 향해 마음껏 열려있으며 이는 곧 자신을 놓고, 새롭게 가다듬던 리즈의 여정이 비로소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차례에 놓여 있음을 대변한다.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더 큰 균형’을 찾아간 그녀는 비로소 발리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되며 그 앞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두려움 속에 머물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새로운 사랑 앞에서 뒤돌아서지 않길 다짐한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사치스럽게 보이는 고민이겠지만 쳇바퀴 도는 삶 속에서 지쳐가는 현대인 누구나 한번 즈음은 꿈꿔봤을 진짜 일탈이 담긴 이 영화는 대리만족으로서가 아닌, 당신에게 진짜 일탈을 촉구하는 일종의 안내서다. 언 애듀케이션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닉 혼비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술가 린 바버가 한 잡지에 기고한 짧은 회고록 에세이에 사로잡혔다. 이를 바탕으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그는 끝내 영화 제작까지 관여했다. 바로 그 영화가 <언 애듀케이션>이다. 17세 소녀 제니(캐리 멀리건)는 옥스포드 진학을 기대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보수적인 부모와 엄격한 학교에 갇히듯 살고 있다 여기며 작은 일탈로 숨통을 열어두길 원한다. 딱딱한 라틴어 공부보다는 첼로 연주와 샹송을 즐기고 프랑스 파리에서의 삶을 염원한다.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중년남자 데이빗(피터 사스가드)과 만남을 거듭하던 제니는 그로부터 제공 받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교와 집을 오가던 일상에 대한 필요성을 잊기 시작한다. <언 애듀케이션>은 전통적인 영국드라마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전쟁 직후인 1960년대 영국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샹송과 재즈, 올드팝을 즐기던, 테일러드 복장의 말쑥한 청년들과 심플한 스타일과 짙은 눈화장의 첼시룩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의 풍경이 재현된다. 빈티지한 데코와 장식들로 가득한 실내 인테리어들도 눈에 띈다. 오늘날 오랜 멋과 정취를 지닌 스타일로 인식되는 빈티지풍의 실내 정경은 단아하고 소박한 1960년대 영국의 현실을 대변한다. 고리타분한 가치관 속에 갇혀있다 믿는 제니에게 그 모든 것은 벗어나야 할 낡은 풍경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삶이 뒤틀린 이후, 제니에게 그 풍경은 곧 새로운 기회를 되찾기 위한 안식처가 된다. <언 애듀케이션>은 안온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자극을 꿈꾸던 소녀가 백일몽과 같이 짧고 강렬한 경험을 거친 뒤 얻게 되는 큰 깨달음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제목에서 명시하는 ‘교육’이란 바로 그 시행착오조차 품어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는 배려이자 덕목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가르치고 있다. 아멜리에 소녀는 어려서부터 특이했다. 아니, 어쩌면 특별했다. 아버지의 손길에 심장박동이 빨라진 탓에 심장병 진단을 얻었고, 소녀는 쉽게 외출을 허락 받지 못한 탓에 자신의 외로움을 함께 견뎌줄 친구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그 덕분인지 아멜리(오드리 토투)금붕어의 자살마저 눈치챌 정도로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남다른 재주를 얻게 됐다. 그런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의 오래된 소지품을 발견한 그녀는 주인을 찾아나선 뒤 결국 그 물건들을 되돌려주는데 성공하며 대단한 보람을 얻게 된다. 누군가의 행복이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체감한 그녀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행복한 감정을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하며 그들이 모르는 선물을 준비한다. 프랑스가 배출한 귀여운 여인 아멜리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인이다. 어려서부터 혼자에 익숙한 그녀는 그 외로움을 달래고자 타인의 행복을 위한 대리만족의 일상으로 도피해나간다. 강렬한 레드톤으로 채워진 아멜리의 방은 그녀의 욕구불만을 간접적으로 발산시키고 이를 대리 충족시키는 공간인 셈이다. 화려하고 강렬한 컬러가 방 안에 가득하지만 소박하고 귀여운 도구들로 채워진 그 방의 정경은 아멜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타인으로부터 괴리된 자신만의 공간 속에 숨겨둔 욕망의 도피처이자 사랑 받고 싶은, 혹은 사랑하고 싶은 여자로서의 심리를 유일하게 보관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것. 결국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에 다가서길 망설이는 아멜리의 불안은 그 상대를 방 안에 들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진다. 남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강렬한 염원 속에 그토록 바라던 사랑이 찾아온다. 이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는 마음의 열쇠를 여는 남녀의 만남에 관한, 판타지 같은 러브스토리다. (HILLSTATE SPRING Vol.18 'SPECIAL 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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