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개인적으로 별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걸 내가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때때로 채무를 느끼기도 한다. 별점 한 개건, 별점 열 개건, 그건 마찬가지다. 마치 몇 개의 별점이 한 영화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마냥 착시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별점제 따위는 악랄한 방식의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굉장히 기능적인 장치라 장착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떡밥이라는 것 정도는 인정한다. 일종의 필요악이랄까. 그 유명한 로저 이버트 역시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에 대해 밝힌 적이 있는 걸로 안다. 자신 역시 별점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이 별점을 통해서 평론을 읽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 역시 별점을 기능적으로 활용하고 있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어쨌든 그렇다. 개인적으로 별점은 영화의 무한한 가치를 알량하게 거세해 버리기 좋은 악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확실히 편한 건 박한 것보다 후한 것이다. 좀 더 긍정적인 평이 가능한 영화가 좋다. 좋은 영화가 좋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구린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시간을 투자하고 발품을 팔아서 2시간을 지긋지긋하게 보낸 까닭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야 할 이유가 얼마나 유쾌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혹자는 씹어대는 재미가 있다는데, 그딴 재미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바에야 방에 쳐 박혀서 지뢰찾기나 하는 게 낫다. 다만 일방적인 씹기가 아니라 어떤 근본적 이유에 대한 곱씹기라면 괜찮다. 9개의 불미스러움이 있더라도 1개의 미덕이 있다면 그것이나마 한번쯤 곱씹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9개의 불미스러움을 단지 악랄한 문체로 찍어누르고 마는 것보단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는 방식이라면 바람직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직시하기 보단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야기시키는 글이 좋다. 평론가든 기자든, 그들은 영화를 재판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좋고 나쁨을 직시하는 건 일반 네티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떤 특별한 시야를 제공하고 참고할만한 해석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전문가라면 딱히 기능적으로 쓸모가 없다.
어쨌든 종종 내가 몸담고 있는 무비스트는 리뷰를 통해 작품성과 오락성이라는 구분 아래 별점을 매긴다. 작품성과 오락성의 별점 구분이 딱히 공정한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냥 행할 따름이다. 10개도 좀 과한 숫자 같지만 별점 자체가 그다지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하진 않으며 이 숫자가 매체의 독창성을 부각시키는 면모가 있다는 판단 아래 딱히 트집잡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항상 이 방식을 대체할 만한 다른 효과적인 방식에 대해서 고민은 품고 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다만 별점에 대해 집착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다. 호의든 악의든, 하나같이 난감하다. 전문가의 탈을 쓰곤 있지만, 그냥 그 별 개수 따윈 어느 개인의 판단이라는 전제를 인식하길 원한다. 그냥 참고용으로 밟고 지나갈 지표 정도로 관찰하길 바란다. 이 블로그에 별점을 표기하지 않는 건 내가 그 별점을 스스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다. 별점 따윈 그냥 심심풀이 땅콩 같은 거다. 물론 내가 그렇다고 별점을 함부로 찍는다는 건 아니고. 단지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는 거. 그건 예언서도 아니고 진단서도 아니다. 누군가의 주체적 기호와 객관적 지식의 빅뱅 사이에서 추출된 결과적 은하다. 그 자체로서 보존될 필요가 있을 뿐, 그 은하에 편입될 필요는 없다. 괜히 그 앞에서 돌팔이니, 사기꾼이니 길길이 날뛰는 건 그저 불필요한 관심의 공헌이다. 그냥 참고만 하시라. 물론 좋은 별점이 찍힌 영화는 적어도 어느 정도 괜찮은 구석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정도만 인지할 것. 그 정도 관심에 멈출 수 있이면 별점도 괜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단지 그것을 행한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느껴져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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