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풀한 에너지로 무대를 누비던 2NE1의 산다라박이 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순수한 여인으로서 카메라 앞에 홀로 섰다. 산다라박이 아닌 박산다라라는 이름으로.
“아마 오늘 화보 촬영도 2NE1으로서 했다면 예전처럼 무서운 언니들 컨셉트로 갔을 텐데 박산다라 혼자이기 때문에 차분한 느낌을 시도해볼 수 있었던 거죠. 저희 팬들은 이제 제가 뭘 해도 잘 안 놀라는데 오히려 오늘 찍은 화보가 지난 반삭보다 더 충격적일 걸요.” 그녀의 말처럼 오늘 그녀는 충만한 에너지로 악동처럼 무대를 누비던 2NE1의 산다라박을 벗고 여성스러운 순백의 의상을 입은 박산다라로서 카메라 앞에 홀로 섰다.
박산다라가 산다라박으로 불리게 된 건 <인간극장>에 출연한 이후부터였다. 당시 그녀의 필리핀 생활이 ‘내 이름은 산다라박’이란 타이틀로 전국에 송출되면서 알려진 산다라박이란 이름은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완전히 익숙해졌다. 그녀 스스로에게마저도. “이젠 저조차도 가끔은 산다라박 대신 박산다라라고 불리는 게 어색해요. 외국인도 아닌데.” 사실 2NE1의 산다라박이 된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9년 전, 21살 무렵이었다. 당시 필리핀의 국민여동생과도 같았던 산다라박이 일개 연습생 신분을 선택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 말이다. “그땐 어렸으니까요. 지금은 아마 그렇게 못할 거에요. 필리핀에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지만 한국에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었죠. 꿈이었던 YG에 들어올 수 있어서 두려움 없이 온 거 같고요.”
지난해엔 반삭까지 시도했던 산다라박도 10대 시절엔 S.E.S.나 핑클 같은 가요계의 요정을 꿈꾸던 소녀였다. 애초에 솔로로 연습했던 네 멤버가 처음 2NE1이란 이름 아래 한자리에 모였을 땐 가히 충격적이었다. 서로가 봐도 너무나 다른 그들이었다. 게다가 학창시절엔 벙어리로 오해 받을 정도로 숫기가 없었던 그녀다. 심지어 10년 가까이 본 YG의 양현석 대표, 일명 양 사장과도 여전히 살갑게 지내지 못하는 그녀에게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세 멤버들과의 어울림이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청 어색했죠. 그런데 그 세 명이 혼자 밥 먹거나 연습하면 먼저 다가와줬어요. 그래서 빨리 친해진 거 같아요. 지금은 다른 세 멤버들이 저를 보호해주고 챙겨주는 거 같아요.” 물론 작은 오해도 있었다. 산다라박은 최근 동갑내기 멤버인 박봄에게서 처음엔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길 들었다. 당황한 나머지 살갑게 전화한 박봄에게 무뚝뚝하게 응답해버린 탓이었다. “지금은 제 성격을 잘 아니까 뒤늦게 그 일이 너무 웃긴대요.” 여전히 숫기가 없어 보이는 그녀가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2NE1의 멤버 산다라박이라는 건 조금 놀랍다. “학교에서 말 한마디 못하던 제가 용기를 내서 학교 축제 때 솔로로 노래를 했어요.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그녀에겐 진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가 필요했단 말이다. “데뷔 전부터 제 꿈은 항상 콘서트 무대에 서는 거였는데 재작년에 한번 해보고는 완전히 맛이 들렸어요. 그래서 작년에도 투어 돌면서 정말 즐거웠죠. 재작년엔 일본 투어만 했지만 작년엔 미국이랑 싱가포르, 대만까지 갔다 왔거든요. 특히 첫 미국 공연은 떨렸어요. 아는 이 하나 없는 뉴저지까지 와서 잘할 수 있을지, 관객이 많이 올지 두려움이 컸거든요. 그런데 놀랍게 객석이 다 차있어서 한인 교포들이 많이 와주셨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다 현지의 미국인들이라고 해서 놀랐죠. 투어 마지막엔 많이 울기도 했어요. 올해에도 작년보다 많은 곳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국경과 언어를 넘어서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넓어졌음에 짜릿해진다는 것, 확실한 무대 체질이다. 그녀가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 아쉬움도 적지 않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어를 돌고 왔어도 한국에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 작년엔 디지털 싱글로 발매한 ‘I Love You’를 빼면 새로운 게 없었으니까요. 항상 새로운 곡과 새로운 퍼포먼스와 새로운 스타일로 무대에 서는 게 기대되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이 낯설고 그만큼 새로웠던 데뷔 초가 문득 그리울 때도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 욕심이란 게 이것저것 더 해보고 싶은 건가 봐요. 데뷔 4년째가 된 지금까지 좋은 추억도 많았고, 한 단계씩 더 발전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욕심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어쨌든 그녀도 이제 나이 서른이다. ‘다 죽여버리자!'며 무대에 오르는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도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박산다라로서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의 외모가 시간을 멈춰 세우는 건 아니니까. “사실 26살에 데뷔했으니 빠른 편은 아니었죠. 우리 팀의 (공)민지만 해도 16살에 데뷔했잖아요. 물론 딱히 나이에 신경 쓰진 않았어요. 2NE1이란 팀 자체가 어린 소녀 같은 느낌은 아니니까 계속 이렇게 음악을 해나갈 수도 있을 거 같고요. 하지만 서른이 되니까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물론 2NE1을 벗어나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믿는다. 단지 박산다라라는 이름으로 이루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욕심이 많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제 모습을 많이 남기고 싶더라고요. 5년 뒤에 돌아봤을 때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한편 최근 결혼식을 올린 원더걸스의 선예의 소식은 묘한 자극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제가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했어요. 되게 예뻐 보였어요.” 데뷔 3년간 연애 금지 조항을 잘 지킨 덕에 소속사로부터 연애의 자유를 보장받은 지금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막연한 연애보다도 새로운 음반 녹음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다. 정규 앨범이 될지, 미니 앨범이 될진 모르지만 그녀가 위한 새로운 곡과 새로운 퍼포먼스와 새로운 스타일이 마련될 예정이라는 것. 박산다라가 말했다. 처음 마주본 순간의 어색함 대신 그 익숙한 산다라박의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