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First Intention
조진웅, 다시 살다
누가 뭐래도, 이 남자 대세다. 브라운관에서 이목을 끌더니 스크린에서도 주목을 당긴다. 조진웅은 행복하다. 인기가 많아서? 부산 극단에서 뭐든 다 해야 했다던 그는 이제 연기만 한다. 그게 즐겁단다.
개봉을 앞둔 <용의자 X> 외에도 <분노의 윤리학>을 마치고, <나의 파바로티>를 촬영 중이다. 대세다.
단가가 싸니까(웃음).
주목 받는 기분은?
주목 받을 짓을 했나 싶어서 부담스럽지만 어쨌든 고맙지. 그런데 재미있는 작업 쫓아다니는 건 광대로서의 의무이니까 역할의 경중과 상관없이 일단 부딪히는 거다.
<용의자 X>의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던데.
모두 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연기하는 기분이었다. 촬영을 마치면 100% 만족할 순 없더라도 최대한 다 끌어냈단 안도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항상 현장에 빨리 가고 싶었지.
여자 감독과는 두 번째 영화다.
<날아라 펭귄>의 임순례 감독님은 와이드한 샷에서의 앙상블을 섬세하게 만들어낸다면 방은진 감독님은 드라마를 끌고 나가는 핵심을 잘 제공해준다. 사실 배우 출신이니까 배우로서 대하기 껄끄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시원해지지 않는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서 긁어주더라.
원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은 봤나?
우연히 영화만 봤다. 드라마틱한 호흡들이 와 닿았다. <용의자 X>는 인물들의 심리나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이내믹하게 조망하지 않았나 싶다.
<용의자 X>의 민범은 <용의자 X의 헌신>의 지적인 물리학자 유카와를 동물적인 감각의 형사로 변주한 느낌이다.
내 감각에 포커스를 맞추려 했다. 내가 느끼는 공간과 냄새, 시야, 용의자를 바라보는 심정까지, 나로서 캐릭터 안에 들어가는 거다. 한번은 컷을 하고 모니터를 확인하는데 내 입장에서 도저히 쓸 수 없어서 다시 한번 가자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내가 공감해야 움직일 수 있었다.
본인의 연기를 쉽게 만족하지 못하나?
평생 그럴걸.
이제 오디션이 필요 없는 배우 아닌가?
오디션이 필요 없는 배우는 없다. 최소한 리딩이라도 하면서 현재의 컨디션을 알려야 된다. 당락의 의미를 떠나서 진짜 내가 해도 되는지 질문해야지. 지난 작품에서 이 정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 정도 할 거란 기대만으로 작품에 들어갔다가 무너지면 서로 낭패다. 서울보증보험에서 내 연기를 공증해주는 것도 아니고.
처음 카메라 앞에 설 때는 어땠나?
연기 자체는 동일하지만 영화적 기법에 적응하긴 쉽지 않았다. 각 장면에 어울리는 에너지를 안배하면서 작품 전체의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 <용의자 X>에서도 그 호흡을 놓쳐서 한 컷을 버렸다. 한 장면 찍을 때마다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어야 했다.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고 들었다. 부산 토박이?
나고 자랐지. ‘구도 부산’의 핏줄이 어디 가겠나?
언제 서울로 올라왔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 모두 올라왔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다.
서울에서 제일 멀어서 부모님한테 안 걸릴 줄 알았다.
연극영화과를 영문학과로 속인 거?
속인 건 아니다. “아버지, ‘경성대 영흐여하과(발음을 뭉개면서)’입니다.” 그랬더니, “뭐? 영어? 그래? 괜찮네! 알았다!” 그리 된 거지(웃음). 딱히 반대하신 건 아니고, 한 2~3년 하다 관둘 줄 알았다 하시더라.
지금은?
영화에 입문할 때,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로 아버지 성함 좀 빌려 쓰면 안되겠나 여쭸더니, “집에서 가져갈 게 없으니 별 걸 다 가져간다. 맘대로 해라, 마!” 하셨다. 요즘은 항상 로열티 얘기하신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공식석상에서 내 이름을 되찾아야지(웃음).
본명이?
원준이다. 조원준.
야구 영화를 두 편이나 했다.
<글러브>에선 야구선수로 나온 게 아니니까. 어느 연말 파티 중에 최동원과 선동렬이 나오는 <퍼펙트 게임>이 제작된다고 들었는데 그 자리에 박희곤 감독님이 있었다. 무작정 가서 “나 야구 잘 안다!” 그랬지. 대뜸 해태 타이거즈 역할을 말하길래 유니폼만 입어도 좋으니 롯데 단역을 하겠다 했다(웃음). 촬영할 때 야구 못하니까 화내더라. “너 야구 잘한다며?” 그래서 말했지. “잘 안다고 했지, 잘 한다고 안 했는데(웃음).”
광주에서 군생활을 했더라.
그래서 서울말만 썼다(웃음). 어차피 롯데가 맨날 꼴찌하던 때라 군생활에 집중했다.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브루터스 리, <글러브>에서 찰스, <맨발의 꿈>에서는 제임스, 외국인 이름의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그렇네. <솔약국집 아들들> 할 때 영어를 못해서 작가님께 맨날 빌었다. 2형식 이상 쓰면 안 된다고(웃음).
예전에 비하면 정말 샤프해졌다.
살을 빼고 있을 땐 괴롭다. 조절해야 하니까. 작품이 없으면 살이 찐다. 그냥 놓고 지내니까. 스스로 어떻게 변해야지, 라는 건 없다. 뚱뚱해지거나 샤프해지는 건 그 작품에 존재하는 이유가 그렇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당위성을 쫓아가는 거지.
배우들이 체중을 조절하는 건 항상 경이롭다.
솔직히 다이어트는 징글징글하다. 처음 한 달은 배가 고파서 자다가도 욕 나온다. 한 달이 지나면 새벽에 <식신로드>를 봐도 괜찮다(웃음). 어느 정도 목표량을 달성하면 스스로에게 상을 줘야 된다. 그 상을 먹겠다고 달리는 거지.
배우에게 다이어트란 캐릭터의 갑옷을 입는 과정이다.
즐기지 못하면 불가능하지. DNA 구조를 바꾼 게 아닌 이상 몸으로 거짓말하는 거잖아. 연기란 빙의도 접신도 아니다. 이성과 감정을 평행하게 두고 항상 외줄을 탄다. 주목 받는 게 부담스러운 건 그래서다.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는데 일정한 기대가 있다는 건 부담스럽지.
<뿌리 깊은 나무>의 무휼이나 <범죄와의 전쟁>의 김판호는 천차만별의 캐릭터인데, 연기 범위가 넓더라.
사실 무휼의 준비 기간은 짧았다. 시놉시스를 보고 딱 꽂혀서 뭐라도 하고 싶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섰다가 칼도 많이 써야 된다 하니, 아차, 싶었지. 결국 중요한 건 무휼이 왜 거기 존재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왕의 호위무사라는데 겉치레로 경호원 노릇만 하는 인물은 아니니까. 무휼에게 이도, 세종이란 사람은 대체 무어냔 말이다. 작가님과 얘기하면서 무휼에게 세종은 곧 조선이란 결론에 닿았다. 그런 마인드로 현장에 가니 무휼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의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이성과 정서를 넓히는 게 중요했다. 현장엔 연기를 돕는 스태프들도 많으니 그들을 믿어야 된다. 정답은 작품에 있다.
경험하지 않곤 모를 것 같다.
운 좋게도 트레이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부산엔 배우 인프라가 적다. 서울말을 할 줄 아는 배우도 없으니 번역극을 하면 무조건 무대에 섰다. 덩치 큰 배우도 없고, 자연히 공연을 많이 했지. 많이 한 놈한테 당할 놈 없지 않나. 그래서 20대엔 나이 마흔 다섯이 되는 게 꿈이었다.
마흔 다섯?
그 나이가 된 선배님들의 호흡은 아무리 훈련해도 나오지 않거든. 늙고 싶어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막상 나이 서른 되니 30대라 우울해하고(웃음).
나이 서른은 어땠나?
사람들 이야기가 들렸다. 뭔가를 흉내 내기 보단 물 흘러가듯 스스로를 받아들여야 된다는 걸 알았지. 거대한 강의 흐름에도 부딪히는 바윗돌 하나 즈음은 있으니까. 욕심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막연히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내 마음이 무엇으로부터든 자유로울 수 있어야 했다.
의외로 수다쟁이 같다. 무휼처럼 과묵한 캐릭터는 어떻게 참았나?
뭐, 컷하고 떠들면 되니까(웃음). 사실 연기하는 게 어려웠지. 존경하는 선배님들도 많이 계셨고.
술도 많이 먹었나?
어디 가서 술로 안 밀리는데, 선배님들 뵈니까 사람 아닌 사람 많더라. “내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으니 조금만 먹자.” 그런데 회 한 접시 나오기도 전에 소주 네 병을 까(웃음).
개구진 성격 같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하니까 상대가 먼저 거부감을 느끼기 전에 먼저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하게 된다. 사실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불편했다. 여름에는 땀도 많아서 버스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괜히 일어났다. 겨울에 만원 지하철 타도 내 탓인 거 같고.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상황이 아니면 걸어 다녔다. 소심했지.
극단에서 무대 연출도 했다던데.
연기를 위한 기능적 역할로서였다. 배우가 자유롭게 노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해체시키는 작업이 연출이라 생각했지. 배우가 되기 위한 워크샵이랄까? 연출할 생각은 죽어도 없다. 하면 안 되는 직업 같다(웃음).
무대에 다시 서고 싶은 생각은?
항상 한다. 태생과도 같은 곳이니까. 잠시 쉬고 있는 것뿐이지.
놓쳤으면 후회했을 것 같은 영화는?
첫 영화였던 <말죽거리 잔혹사>. 길가다가 우연히 만난 군대 고참이 연출부에 있어서 단역을 주더라. 한 장면만 세게 등장했다 사라지는 역할이 있고, 지리하게 병풍처럼 출연하는 역할이 있었다. 이 일을 길게 해야 될 거 같으니 현장에 오래 있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항상 어깨에 걸리거나 저 뒤에 서있는 식이더라(웃음). 부산에서 연극할 땐 너무 열악해서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했다. 조명도 만지고, 분장도 하고, 의상도 맞추고, 글도 써야 된다. 영화 현장의 파트 포지셔닝은 경이로웠다. 현장 스태프들한테 이거 저거 묻고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 연극적 본질이나 영화적 본질은 달라도 연기적 본질은 똑같다 이거야. 그렇다면 갈 수 있겠다 생각했지.
첫 수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돈 받으면서 했지.
아직도 그때 생각나나?
요즘엔 ‘이 정도 뛰고 힘들어? 이 정도도 못 따라가?’ 생각한다. 그렇게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결국 내가 계속 할 일이니까.
초심이 중요하다?
작품에 대한 고민이 부담으로 변하지 않길 바란다. ‘이런 걸 또 해야 돼?’가 아니라, ‘이거 재미있을 거 같은데!’ 할 수 있어야지. 작품 속 캐릭터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꾸준히 도전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준비라는 게 그런 거 같다.
(ELLE KOREA 10월호 NO.240 'ELLE interview')